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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장 로고스와 뮈토스 제2장 성과 속 제3장 종교 없는 신 제4장 신 없는 종교 제5장 종교 없는 종교 제6장 에토스의 종교 제7장 무신론과 반종교를 넘어서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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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근거로서 신비적으로 경험되는 주관적인 신(神) 체험에 근거한 신비적 신앙만이 이 세속화된 세상에서 헌신적인 삶을 이끌어낼 수 있고, 그로 인해 이 세상을 살 만한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답은 야스퍼스가 말한 인류의 정신적 발전에 중심축을 이룬 ‘축의 시대(Axial Age)’의 위대한 종교적 전통에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먼 길을 돌아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7장 반종교와 무신론을 넘어서」중에서
종교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 또는 종교적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이처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고, 돌려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한 인간의 생명을 하느님께 선물(죽음이라는 선물)로 바치는 일종의 광기(madness)인 것이다. 따라서 종교를 유용성에 기초한 일종의 도구로 보는 도구주의적 견해는 종교에 대한 이해와는 거리가 먼 해석이 아닐 수 없다. ---「4장 신 없는 종교」중에서 오늘날 종교인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무신론자가 있고, 반종교인들 중에도 상당수의 유신론자가 있다. 이들이 종교에 접근하는 방식은 상이한데, 그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종교는 무신론자에게는 ‘신 없는 종교’이고 유신론자에게는 ‘종교 없는 종교’이다. …… 종교를 옹호하는 무신론과 종교를 거부하는 유신론, 이것이 오늘날 현대인들이 종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다. ---「머리말」중에서 만약 우리가 미술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볼 때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와 시선에 이끌리기보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어떤 표현기법을 사용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림을 본다면 그것은 미술 전공자나 화가의 태도일지는 몰라도 예술을 감상하는 태도는 아닐 것이다. 모나리자처럼 시선으로 대화를 거는 그림 속 인물에게 시선으로 답하는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 방식일 것이다. 전자가 학문적 태도라면 후자는 예술적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 태도란 바로 후자와 같은 것이다. ---「1장 로고스와 뮈토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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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참된 종교의 모습은 무엇이며,
종교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종교의 시대’라는 역설, 잃어버린 성스러움을 찾아서 가히 종교의 시대다. 종교의 ‘필요성’과 종교의 ‘무용성’에 대한 담론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번성하기 때문이다.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희망의 불씨를 찾고 있으며, 정치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종교는 수많은 갈등과 폭력의 진원으로도 지탄받고 있다. 지금 종교의 모습은 이처럼 역설적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종교를, 신이 통치하는 세상을 꿈꾸는 유신론과 신이 사라진 세상을 외치는 무신론의 대립으로 정리하면 될 것인가? 바로 여기에 우리 시대 종교의 이해를 둘러싼 ‘오해’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그래서 극단적 대립과 이분법적 구도에 감추어진 종교의 참된 모습과 성스러움의 가치는 수면 위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책은 이 문제를 매우 집요하고 끈기 있게 다룬다. 종교 없는 신, 신 없는 종교, 그리고 종교 없는 종교 저자는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종교인 가운데는 적지 않은 무신론자가 있으며, 종교를 배척하는 반종교인 가운데는 상당수의 유신론자가 있다.” 종교란 단어의 의미가 유신론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인 동시에, 오늘날 종교를 바라보는 단편적 시선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시대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종교를 ‘옹호’하는 무신론과 종교를 ‘거부’하는 유신론 모두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맥락에서 제시된 ‘종교 없는 신,’ ‘신 없는 종교,’ ‘종교 없는 종교,’ 이 세 용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 역할을 한다. 먼저 ‘종교 없는 신’부터 살펴보자. ‘종교 없는 신’은 모든 종교 교리와 제의가 탈색된 신앙의 형태다. 예를 들어 서양 근대의 ‘자연종교’나 현재 미국적 맥락에서의 ‘시민종교’가 종교 없는 신의 대표적인 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로고스(이성)에 의한 뮈토스(신화적 상상력)의 해체로 나온 결과다. 문제는 뮈토스가 사라진 종교에는 종교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헌신, 경건, 실천이 자리 잡을 수 없다. 그래서 윌리엄 제임스는 “자연종교는 종교가 아닌 철학이며, 기성 종교의 입장에서 보면 무기력한 신을 내세운 위장된 무신론”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자연종교에서 비롯한 한계를 미국 대통령들의 취임사를 분석한 연구를 들어 지적한다. 미국의 시민종교가 19세기 미국의 팽창정책을 옹호하고 미국이 개입한 정의롭지 못한 전쟁을 정당화하는 부정적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시민종교의 한계는 곧 뮈토스의 종교가 아닌 로고스의 종교인 데서 비롯한다는 주장이다. 둘째로, ‘신 없는 종교’다. 종교를 삶의 유용한 도구로 보는 일종의 도구주의 신앙의 형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소설 속 이야기가 실제 일어난 사건이거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인 양 생각하며 읽는다. 이처럼 종교의 경우도 신앙고백을 통해 일종의 ‘믿는 체 하는 놀이’에 참여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하는 푸아드뱅이나 “종교란 개인의 행복 추구와 관련된 다양한 사적 담론”이라고 말한 로티의 종교에 대한 사유가 이러한 도구주의 계열이다. 문제는 도구주의적 종교인들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종교가 삶의 유용한 도구 역할을 할 수 없는 역리(逆理)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종교가 삶의 유용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식을 바치는 아브라함의 광기 같은 헌신이 요구되는데 도구주의적 관점에서는 이런 헌신을 이끌어내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종교적이지만 행복한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스칸디나비아 사회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필 주커먼의 『신 없는 사회』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평가도 이러한 맥락에 닿아 있다. 삶의 궁극적 의미와 가치를 찾는 성찰은 삶의 고난과 역경 즉 삶의 부조리에서 오는 것인데, 온갖 복지 혜택을 누리며 사는 대다수 스칸디나비안이들은 만족스러운 삶에도 불구하고 깊은 성찰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종교 없는 종교’다.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화된 종교와 독단적 진리를 해체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실천적 차원의 진리를 세우고자 하는 움직임, 한마디로 경전과 교리가 없는 종교를 말한다. 예를 들어 바티모는 성육신과 신의 죽음을 철저하게 자기 비움(Self-emptiness)의 메시지로 해석하여,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로 ‘보편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런 측면에서 바티모의 ‘비종교적 기독교’는 ‘종교 없는 종교’의 대표적 유형이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근대 계몽주의 이후 서양의 종교에 대한 사유는 ‘종교 없는 신’과 ‘신 없는 종교’를 넘어서 ‘종교 없는 종교’로 전개되어왔다. 특히 현대 포스트모던 신학에서 강조하는 ‘종교 없는 종교’는 유신론의 부정적 측면을 제거하고, 긍정적인 측면을 수용함으로써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려는 변증법적 지양의 소산이다. 축의 시대, 종교의 오래된 미래 포스트모던 신학이 지향하는 ‘종교 없는 종교’는 우리 시대 신과 종교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지만, 종교적 실천을 이끌어내는 신비주의적 요소가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미래 ‘참된 종교’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바로 에토스에 토대를 둔 신비주의 종교다. 에토스(의지)야말로 로고스(이성)과 파토스(감성)의 중첩되는 영역으로 진정한 종교적 실천의 출처이고, 이러한 에토스를 견인하는 동력이 바로 신비주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에토스에 토대를 둔 신비주의 종교만이 세속화된 세상에서 삶의 경건과 헌신을 기대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이 세상을 살 만한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의 위대한 종교적 전통이 오히려 우리가 모색할 미래 종교의 모습”이라는 저자의 언급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아인슈타인이나 암스트롱이 강조한 종교적 경험의 ‘신비스러운’ 특성은 초월과 성스러움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이 마주해야 할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종교’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성찰은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를 막론하고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새롭고 유익한 통찰을 제공해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저자에게서 종교는 편안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힘겹게 살아온 삶의 무게이자 고뇌의 결과물이었다. 책에 담긴 문제의식이 ‘긴박하고’, 내용이 ‘절실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의 출발점에 선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