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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4
1 서 · 15 2 동아시아문명권의 현주소 · 23 - 서구화 속의 유교적 생활문화의 재생산 2.1. 동아시아문명의 서구화·25 2.2. 동아시아 생활문화의 유교적 성격·32 2.3. 일종의 ‘짜깁기문명’으로서의 현대 동아시아문명 ·40 3 ‘패치워크문명’의 개념 · 65 3.1. ‘패치워크’?·67 3.2. 문명융합론과 문명갈등론의 오류·74 3.3. 헌팅턴의 ‘문명충돌론’과 그 오류·83 3.4. 패치워크문명론·87 3.5. 문명패치워크의 ‘법칙’·102 4 극서유럽의 공자철학 패치워킹과 ‘근대유럽’의 탄생 · 125 4.1. 공자철학의 충격과 계몽주의의 흥기·129 4.2. 공자열풍: 서양철학의 탈희랍화와 서양사회의 탈주술화·143 4.3. 극동에서 유래한 서양의 근대사상과 근대적 제도들·181 4.4. 근대성에 대한 근본적 재성찰·229 5 동아시아의 부상 속에서의 ‘철학의 빈곤’과 격심한 역내갈등 · 249 5.1. 동아시아의 정치경제적 부상-‘아태시대’의 도래·251 5.2. 동아시아인들의 지적 능력·258 5.3. 동아시아의 ‘철학의 빈곤’·267 5.4. 동아시아의 격심한 역내갈등·281 6 ‘공자주의’의 창조 문제 · 281 6.1. 패치워크철학으로의 ‘공자주의 철학’의 시대적 요청·284 6.2. ‘공자주의 철학’과 ‘전통유학’의 차별성·293 6.3. 문명사적 변곡점: 중국공산당의 공자 역사관의 채택·299 K-컬처와 유교문명의 전망: 결론을 대신하여·306 참고문헌·309 |
黃台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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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대표적 문명이론으로는 문명융합론과 문명갈등론이 있다. 이 두 문명론은 정반대의 이론체계로서 줄곧 대립해왔다. 문명융합론은 세계의 여러 문명들이 상호교류를 통해 융해되어 단일한 ‘세계문명’ 또는 ‘보편문명’으로 ‘융합’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낙관적 문명관인 반면, 문명갈등론은 문명이란 애당초 상호 융합될 수 없고 오로지 서로 지배-피지배 관계 또는 우적관계로 나뉘어 마냥 우열을 다투는 대립·갈등으로 점철된 뿐이라고 주장하는 비관적 문명관이다.
---p.17 문명발달은 언어발달 과정과 마찬가지로 언어가 ‘무의식적’ 생활 속에서 다른 문명권에서 들어온 모든 풍요롭고 수준 높은 문명요소들을 자기 문명의 습관과 표기법에 따라 알맞게 다듬고 변형시켜 자문명 속으로 받아들이고 이것들을 자기문명의 문법으로 짜 맞추고 이를 위해 필요하면 내부의 죽은 토착문명요소들을 퇴출시키거나 바꾸고 또 새로운 외래문물의 자극을 받고 또는 이것과 결합하여 내부로부터 새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외래문명요소들과 토착요소들을 다시 자문명의 규칙으로 짜깁고 자문명의 고유한 정서에 따라 접착시키거나 꿰매고 자문명의 정서적 윤활유로 외래문명 요소들을 광택 낸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패치워크문명은 가죽조각들로 꿰매어 짜깁기되었지만 걷어차도 터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축구공처럼 탄탄하고 숲처럼 다양하게 풍요롭고 태산처럼 장엄한 ‘완전자(엔텔레키)’로 재생산되고, 더욱 튼튼하고 강력한 쪽모이 제품처럼 완전한 짜깁기로 발달해 나간다. ‘단단함’, ‘튼튼함’, ‘완전자’ 등의 이런 표현들은 다 문명의 자기재생산능력과 계속성을 담은 불변적 정체성을 뜻하는 것이다. ---pp.98-99 서구인들과 서양숭배적 아시아인들은 서구문명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일반적 ‘거대담론(the Grand Narrative)’이 ‘근대적’ 서구문명이 고대그리스로부터 ‘내재적 발전’을 통해 형성되어 나온 것으로 이야기한다. 자유와 관용을 “서양에 근본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이 거대담론은 자유의 이상이 “플라톤(Plato)에서 나토(NATO)까지” 일직선적 발전을 거쳐 실현된 것으로 설명해왔다. 그러나 이 서구중심주의적 거대담론은 결코 “진지한 학자들의 독자적 발견물이 아니라”, 서양의 “중도적 자유주의세력의 정치적·교육적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서구중심적 거대담론은, 14세기에서 18세기까지 500여 년 동안 동아시아의 문물을 수입하기 바빴던 르네상스·계몽주의 시대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담론 형태다. ---pp.143-144 공자와 맹자는 ‘혁명’을 폭정과 악정의 상황에서의 자기방어(정당방위)를 위한 백성의 천부적 권리와 의무로 간주했다. 그리하여 중국의 역사는 수많은 인민혁명으로 가득하다. 초기 선교사들은 정당한 혁명 관념이 중국에서 폭정에 대한 항구적 억지력이라고 보고했다. 뒤알드, 흄, 케네, 올리버 골드스미스 등도 모두 이것을 언급했다. 중국혐오론자 몽테스키외조차도 중국에서 “나쁜 정부는 즉각 처벌받는다”는 것을 인정했다.207) 또 몽테스키외는 “우리는 중국의 역사 속에서 22개의 왕조가 이어져왔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하고, “이것은 중국이 무한히 많은 수의 특수한 혁명들을 거친 것이 아니라 22번의 보편적 혁명을 겪었다는 말이다”라고 덧붙인다. ---p.222 이 지능지수 순위표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1-5위를 휩쓸고 있다. 중국은 IQ 100으로 8위에 올라 영국·뉴질랜드·벨기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유교전통의 나라 베트남도 IQ 96으로 러시아·아르헨티나와 공동 12위를 마크하고 있다. 아무튼 모든 동아시아국가들은 세계 12위 이상의 IQ를 자랑하는 ‘지능국가’로 나타나고 있다. 린과 바하넨은 국가가 아닌 홍콩도 국가별 IQ 비교표에 집어넣고 있다. 홍콩의 IQ 107은 도시로서 높은 편이지만, 홍콩(720만 명)보다 인구가 많은 서울(986만 명)과 도쿄(1330만 명) 의 IQ와 비교하면 아마 낮을 것이다. 홍콩을 빼면 한국이 세계에서 IQ가 가장 높은 나라다. 따라서 서울의 IQ도 틀림없이 홍콩이나 도쿄보다 더 높을 것이다. 린과 바하넨은 『지능지수와 국부』의 속편으로 『지능지수와 세계적 불평등(IQ & Global Inequality)』(2006)을 속간했는데, 이 책에 새로 소개한 192개국의 IQ통계치는 꽤 변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6년 세계 192개국 국민의 평균지능지수 1위 (108) 홍콩, 싱가포르 2위 (106) 한국, 북한˚ 3위 (105) 중국, 일본, 대만 4위 (102) 이탈리아 5위 (101) 스위스, 아이슬란드, 몽고˚ 6위 (100)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pp.261-262 동아시아제국, 특히 한·중·일 삼국에는 일부 서양유학파 동아시아인들의 의식 속에서 유교가 완전히 잊혔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동아시아인들이 공맹철학을 무의식적 정치문화와 생활문화의 형태로 공유하고 있다. 이 무의식 속의 공자주의적 정치·생활문화는 극동에서 한·중·일 삼국 FTA를 체결하고 이를 거쳐 ‘동아시아공동체’로 나아가는 발전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공통의 문화기반이 될 수 있다. 이전에 극서에서도 일상생활 속에서 기반문화로서 잔존하는 기독교문화를 권역으로 삼아 유럽공동체를 건설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럽연합’을 형성했다. 한·중·일 삼국도 대만·월남·싱가포르와 더불어 유교적 생활문화를 진작함으로써 이를 동아공동체의 건설의 기반문화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유교적 생활문화의 진작은 공자철학의 창조적 재해석, 즉 ‘공자주의의 창조’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p.301 대한민국이 반도세력화되면, 대륙과 해양세력의 갈등을 완충하여 미국과 중국이 직접 충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를 위요한 해양과 대륙은 옛 고구려 시대처럼 대한민국 반도세력의 온전한 프런티어가 되고, 광대무변의 대륙과 해양도 K-컬처의 매력에 감화되고 이끌리어 자발적으로 K-소프트파워 프런티어(유사영토) 속으로 편입될 것이다. 한마디로, 아시아와 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은 대한민국의 반도세력화에 달려있다 할 것이다. ---p.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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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패권경쟁과 시기질투가 치열하고 중국의 경제성장이 자체적으로 둔화되고 도처에서 국제상황이 긴장관계로 돌변하여 중국이 미국을 경제적으로 앞지를 것이라는 그전의 예측들이 힘을 잃고 있다. 이에 서양에 대한 동양의 역전 시나리오는 다소 선명도를 잃었다. 동서관계는 역전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 정립으로 흐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관점과 전망은 유럽의 EC와 같은 옛 유교국가들의 국제공동체를 기대하던 입장을 완전히 버렸다. 대신 최적의 하드파워와 최강의 소프트파워를 둘 다 갖춘 세계적 ‘스마트파워 초강대국(smart power superpower)’으로서 대한민국의 ‘반도세력화’에 아시아와 태평양을 평화화하고 안정화할 임무를 맡기고, 또 대한민국의 ‘스마트파워 초강대국’으로의 부상에 기대를 걸었다. 일본은 아시아침략의 원흉이었던 전력 때문만이 아니라 현재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둘 다 쇠락하고 있기 때문에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주도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중국은 하드파워는 강력해졌으나 문화적 매력도 없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소프트파워 약대국弱大國’인 ‘업서드파워’ 국가이기 때문에 역내 평화와 안정을 주도할 수 없다. 그러나 원래 도출된 패치워크문명 이론의 큰 프레임워크는 건재하다고 생각한다. 패치워크문명론은 원래 (1)문명의 정체성을 소홀히 하는 라이프니츠의 나이브한 문명융합론을 극복하고, 또 (2)문명들 간의 교감과 공감, 교류와 협력, 선망과 모방으로 특징지어지는 평화적 학습과 교호적 짜깁기라는 문명의 본질적 현상을 철저히 무시하고 9·11테러나 극악무도한 IS의 테러범죄까지도 ‘문명의 충돌’로 일반화·평면화·정당화해 줄 수 있는 헌팅턴의 ‘어리석고 위험한’ 문명충돌론도 극복하는 제3의 문명이론으로 기획된 것이다. 각 문명은 언어처럼 서로 다른 특이한 사회적 행위양식의 반복에 근거하고, 공리적·유희적·예술적·도덕적·지식적 행위와 그 가치지향들(이익·재미·미·선·진리)로 이루어진 특이한 인간행위의 반복은 다시 특이한 풍토·풍류·관습적 행동양식의 의미맥락의 차이에 기인하고, 이 특이한 차이는 궁극적으로 특이한 지리적 자연체험과 형통기질 및 사회적·정치적·역사적 생활체험의 차이에 근거하는 것이다. 문명이 처음 발생한 장소의 자연지리·풍토와 민족적 혈통기질의 의미맥락이 특이한 한에서 모든 문명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활세계적 공감·소통가능성·친숙성·사회적 안정성을 소중히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각 민족의 언어적 특이성처럼 문화적 특이성을 문화적 ‘정체성’으로 여겨 이를 ‘자존심’으로 사수死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해야 80-90년의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생활세계의 친숙성과 장기적 안정성은 ‘잘 삶’ 또는 ‘행복’의 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명들 간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생활문화적 친숙성과 안정성의 지속적 보존을 위해 처음에 정체성과 전통을 굳게 지키려고 든다. 하지만 중·장기적 차원에서 문명 간에는 대체로 공감적·모방적 ‘문명짜깁기’가 벌어진다. 이런 까닭에 문명적 정체성은 수십 년 또는 1백 년 안팎의 단기적 관점에서 보면 일단 불변적인 것으로 현상하지만, 수백 년, 수천 년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문명적 정체성은 서서히 강화되거나 약화될 뿐만 아니라 서서히 재개발·재창조되고, 따라서 이를 통해 오랜 세월에 걸쳐 아주 서서히 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패치워크문명론의 핵심논지의 하나다. 그리고 이 문명이론의 본질적 특징 중의 하나는 동아시아 관점에서 새로운 문명관을 보편적 이론형태로 모색하는 것이다. 서양에서 생산된 모든 근·현대 문명이론들은 암암리에 서양 고유의 서구우월주의적 편향을 깔고 있다. 따라서 서구적 문명론의 관점에서 보면 서양문명 이외의 모든 문명은 애당초 변두리문명이거나 서술의 흐름 속에서 조만간 변두리문명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이 패치워크문명의 이론에서는 그 흔한 하이브리드이론이니 리프킨의 ‘공감적 문명론’ 등 기타 문명론들을 더 들먹이며 논의를 전개해야 할 필요가 없다. 또 이 기존의 문명론들은 아무런 ‘이론성’도 없이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나 착상들을 모아놓은 정도의 논변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과문 탓인지 모르겠으나 이 책에서 굳이 다루어야 할 만한 이론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이 패치워크문명이론은 잘 읽히기만 한다면 문명 논의를 뛰어넘어 여러 분야의 논의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아마 동서문명의 격차를 뛰어넘어야 했던 조선의 근대화 및 대한민국의 근대적 경제건설과 관련된 근현대사 연구, 세계사 연구, 문명교류사 연구, 새로운 미래철학의 모색, 국가발전·남북통일·동아시아공동체 건설과 관련된 대내외적 국가전략의 기획과 개발 등 다방면에서 쓰임새가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