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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1혁명과 대한민국의 건국 1
양장
황태연
솔과학 2026.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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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머리에 _ 5
들어가는 말 _ 19

제1권

제1장 1910년대 독립투쟁전략의 대전환

제1절 의병전쟁에서 비폭력 정치투쟁으로 41
1.1. 평화혁명으로서 3·1혁명 41
· 『중화신보』, 3·1혁명을 “맨손혁명”으로 찬양하다 42
· 박은식·이종일, ‘맨손혁명’이라는 표현을 수용하다 43
· 임병찬의 비폭력 정치투쟁론과 3·1평화혁명 전략 46
1.2. 임병찬에게 내린 고종과 순종의 거의擧義밀지 47
· 두 임금에게서 밀지를 받은 유일한 의병장 임병찬 48
· 순종의 거의밀지 51
· 순종의 황칙과 고종의 밀칙 59
1.3. 임병찬의 비폭력 정치투쟁전략서 「관견」 62
· 천하대세론과 시국론 62
· 지피지기론: “거국합동擧國合動”의 투쟁개념 66
· 천시론: 일본 정객들의 좌충우돌 시대 71
· 이문제무以文制武·거국용동聳動의 비폭력 제승·정산론 72
· ‘이문제무론’ 비방에 대한 비판 76
1.4. 관작 활용의 조직 대한독립의군부 78
· 대한독립의군부 관제 78
· 국권반환 투서와 태극기게양 작전 시행계획 82
· 고종의 「관견」 비준과 대한독립의군부 인사편제 83
‐ 대한독립의군부 사령총장 임병찬 84
‐ 13인의 총대표와 14인의 각도 대표 86
1.5. 조직사업과 비폭력 정치투쟁의 개시 89
· 대한독립의군부의 전국적 조직과 노출 89
· 둔헌 자신의 개인적 비폭력 정치투쟁과 순국 91

제2절 「관견」의 영향과 3·1평화혁명 전략의 탄생 94
2.1. 대한독립의군부에 대한 이종일·손병희의 접촉과 지원 95
· 임응철(임병찬의 아들)과 이종일의 접촉 96
· 이종일의 독립의군부 재정지원과 손병희의 지지 99
· 「관견」과 손병희의 전략적 구상의 합치 100
· 독립의군부 와해에 대한 이종일·손병희의 공지共知 102
2.2. 「관견」의 확산과 3·1평화혁명 전략의 일관된 관철 104
· 『고등경찰요사』에 기록된 「관견」의 전국적 살포 105
· 대한독립의군부 총대표들의 3·1혁명 참여와 지도 107
· 기타 대한독립의군부 조직원들의 3·1혁명 참여 115

제2장 3·1혁명과 거족적 평화투쟁

제1절 혁명 개념과 3·1혁명의 정명正名 125
1.1. 혁명의 개념정의 126
· 대중적 혁명주체의 존재 127
· 혁명성과로서의 국가창건과 신新정권 수립 128
‐ 국가창건의 경우 128

‐ 정치혁명과 신新정권 수립의 경우 131
1.2. 세계사 초유의 최대 민족혁명으로서 ‘3·1혁명’ 132
· 3·1거사는 세계사 초유의 ‘전민족적’ 최대항쟁 134
‐ 시위 횟수 2300회, 참여자 202만 명 135
‐ 압도적 빈도의 만세구호 “대한독립 만세!” 139
‐ 제암리사건 등 집단학살사건들 144
‐ 전국적으로 혁명을 확산시킨 고종의 인산 148
‐ 대중 속에서 ‘건국’ 아이디어의 자연적 발생 153
· ‘소프트파워 혁명’으로서 비무장·비폭력의 3·1혁명 158
‐ 끝까지 견지된 비폭력·비무장 평화투쟁 노선 158
‐ 정당방위 차원의 주먹다짐·투석·방화 행위 166
· 대한민국의 건국과 임시정부의 수립 187
‐ 대한민국의 건국일은 1919년 4월 11일! 188
‐ 미국의 건국절(독립기념일) 지정 사례 190
‐ 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노르웨이·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 201
·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민족·민주·사회혁명 215
‐ 최남선의 후일담과 「독립선언서」의 혁명성 216
‐ 「독립선언서」의 결함과 혁명주체들의 실천적 보완 225
1.3. ‘3·1혁명’이냐, ‘3·1운동’이냐? 228
· 임시정부와 해방공간에서 ‘3·1혁명’ 명칭의 통용 229
‐ 임시정부와 외국신문에서 통용된 명칭 ‘3·1혁명’ 229
‐ 3·1혁명을 ‘3·1운동’으로 격하한 즉각결전파와 급진좌파 244
· ‘3·1혁명을 ‘3·1운동’으로 바꾼 제헌의회의 블랙코미디 250
‐ 행정연구위원회+유진오 공동 헌법초안 251
‐ 제헌의회의 헌법초안 제1·2독회 254
‐ 제3독회에서 ‘3·1혁명’을 ‘3·1운동’으로 변경 255
‐ “‘독립혁명’이란 말은 없다”는 이승만의 황당 논변 258
‐ 세계사에 즐비했던 독립혁명들 261
‐ ‘3·1혁명’을 기어코 삭제한 숨은 정치적 이유 265
· 이제 ‘3·1혁명’으로의 정명正名이 필수적 270
‐ 정치사회적 움직임과 오늘날 학계의 통설 270
‐ 새천년, 새 시대의 정명 필요성 272

제2절 고종 독시毒弑와 3·1혁명의 발발 274
2.1. 고종의 독시와 ‘죽음의 거의밀지’ 279
· 고종의 파리밀사 파견과 북경망명 계획 281
‐ 고종의 파리강화회의 특사파견 추진 282
‐ 고종의 북경망명 결단 295
· 일제의 고종 독시 작전 301
‐ 1919년 1월 6일 민영돈 독살을 통한 독약 실험 302
‐ 1919년 1월 20일 밤 독약시해의 실행 304
‐ 빙반氷盤과 법의학적 사실 321
‐ 고종 독약시해에 대한 여러 증언과 기록들 326
‐ 최종적 확증결론: 청산가리에 의한 독시와 시해범들 338
2.2. 고종 독살과 대중적 혁명주체의 거족적 궐기 353
· 독살 소식의 확산과 혁명동학革命動學의 형성 354
‐ 3·1혁명의 결정적 동인으로서 ‘고종의 독시’ 358
‐ 고종의 ‘계산된’ 순국과 ‘죽음의 거의밀지’ 370
‐ 고종의 순국과 순국을 각오한 혁명대중의 형성 374
‐ 머나먼 니콜스크에서도 비분의 태황제 추도회 397
· ‘역사의 종언’으로서 ‘고종의 죽음’과 ‘혁명적 인산’ 399
‐ ‘반만년 역사의 종언’과 민족의 재탄생 399
‐ 민족 대이동과 인산인해의 ‘혁명적 인산’ 403
· 3·1혁명기 순종의 ‘무언의 저항’ 410
‐ 순종의 처참한 심경과 왜식장례에 대한 반발 411
‐ 시위금지 명령을 내리라는 강요에 대한 거부 417
· 유림의 친일화와 민족유림의 늑장소극笑劇 「파리장서」 418
‐ 3·1혁명에 반동한 전국의 친일 유생들 418
‐ 황도유학과 유약군주론에 빠진 유생들의 무복론無服論 420
‐ 곽종석의 늑장과 「한국유림독립청원서」(파리장서) 422

2.3. 3·1혁명에 대한 ‘결정적’ 외인外因도 있었나? 426
· 1917년 10월 뉴욕의 약소민족동맹회의 429
· 레닌의 민족해방 테제 431
‐ 1917년 11월 12일 「러시아 제민족의 권리 선언」 431
‐ 1918년 1월 3일 「피착취 근로인민의 권리선언」 432
· 1918년 1월 8일 윌슨의 「14개항」과 민족자결주의 434
‐ 「14개항」 가운데 제5항의 의미 434
‐ 윌슨 자신에 의한 제5항 민족자결 원칙의 제거 436
‐ 한국인들에 의한 기만적 민족자결론의 역이용 437
‐ 민족자결 테제 확산을 막으려는 일제의 보도관제 440
· 동경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과 외부요인들 447
‐ 고종독살 소식과 독립선언 현장의 통곡소리 455
‐ 분노와 통곡에 묻힌 외부요인 459
‐ 「2·8선언」의 문제점과 역사적 무지 463
‐ 「2·8선언」은 결코 3·1혁명의 ‘자극제’가 아니었다 465
‐ 「2·8선언」 그 후 470
· 만주 대한독립의군부의 「대한독립선언」(1919. 3. 11.) 472
‐ 재만 대한독립의군부의 결성 473
‐ 재만 대한독립의군부의 「대한독립선언서」 475
‐ ‘무오독립선언’ 명칭은 오류 476
‐ 「대한독립선언서」의 내용분석 484
‐ 3·1혁명의 ‘결정적’ 동력에 대한 최종 확인 489
2.4. 3·1평화혁명의 국제적 파장 494
· 서방세계의 국제적 관심과 우호적 여론의 형성 495
‐ 3·1혁명에 대한 세계언론의 전반적 보도추이 496
‐ 서양 신문매체들의 동조적 보도 505
‐ 국제여론전에서 3·1혁명의 완승과 미국의회 518
· 중국의 5·4운동에 대한 3·1혁명의 영향 523
‐ 3·1혁명과 아시아·아프리카의 민족운동 523
‐ 3·1혁명과 중국의 5·4운동 526
· 인도의 사탸그라하운동에 대한 3·1혁명의 영향 536
‐ 남아공에서 간디의 사탸그라하 운동 538
‐ 3·1혁명에 대한 인도 신문들의 경쟁적 보도 541
‐ 3·1혁명에 대한 간디의 야릇한 침묵과 네루의 찬양 568
‐ 롤라트 사탸그라하 운동의 실패와 ‘소금 행진’ 574
‐ 간디의 비폭력은 ‘허울’, 무력을 통한 인도의 독립 581

저자 소개 1

黃台淵

황태연黃台淵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헤겔에 있어서의 전쟁의 개념」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군복무 후 1984년에는 독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여 1991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Johan Wolfgang von Goethe-Universitat zu Frankfurt am Main)에서 《최신 기술변동 속에서 지배와 노동(Herrschaft und Arbeit im neueren technischen Wandel)》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4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초빙되어 30년 동안 동서양 정치철학과 정치사상을 연
황태연黃台淵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헤겔에 있어서의 전쟁의 개념」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군복무 후 1984년에는 독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여 1991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Johan Wolfgang von Goethe-Universitat zu Frankfurt am Main)에서 《최신 기술변동 속에서 지배와 노동(Herrschaft und Arbeit im neueren technischen Wandel)》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4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초빙되어 30년 동안 동서양 정치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며 가르쳤고, 2022년 3월부로 명예교수가 되었다. 그는 지금도 동국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강의를 계속하며 집필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한국정치연구회 부회장(1997-1999)을 역임하고, 지금은 한국정치학회, 정치사상학회, 한국국제정치학회의 명예이사이고, 김대중학술원 회원이다.

그는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원(1977-1980), 한겨레신문 프랑크푸르트 통신원(1989-1992),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1998-2003), 새천년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소장(2003-2004), 민주당국가전략연구소 소장(2007-2008) 등을 역임했다. 그간 한국일보 · 서울신문 · 조선일보 · 동아일보 · 중앙일보 등 여러 신문에서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2025년 7월부터 광복80년기념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근 반세기 동안 동서고금의 정치철학과 제諸학문을 폭넓게 탐구하면서 공자철학과 한국·중국근대사에 관한 광범하고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공자철학의 서천西遷을 통한 서구 계몽주의의 흥기와 서양 근대국가 및 근대화에 관한 연구에 헌신해 왔다. 그는 반세기 동안 총 87권의 책을 썼다.

동서정치철학 또는 공자철학연구서로는 『실증주역(상 · 하)』(2008), 『공자와 세계(1-5)』(2011),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1-2)』(2014·2015), 『패치워크문명의 이론』(2016), 『공자의 인식론과 역학』(2018),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1-2)』(2019), 『근대 영국의 공자숭배와 모럴리스트들(상·하)』(2020·2023), 『근대 프랑스의 공자열광과 계몽철학』(2020·2023),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2020·2023), 『공자와 미국의 건국(상·하)』(2020·2023),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상·하)』(2021·2023) 등이 있다. 그리고 『공자의 자유·평등철학과 사상초유의 민주공화국』(2021)에 이어 『공자의 충격과 서구 자유·평등사회의 탄생(1-3)』(2022)과 『극동의 격몽과 서구관용국가의 탄생』(2022), 『유교제국의 충격과 서구 근대국가의 탄생(1-3)』(2022) 등이 연달아 공간되었다. 공자 관련 저서는 15부작 전29권이다. 해외로 번역된 책으로는 중국 인민일보 출판사가 『공자와 세계』 제2권의 대중판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2015)를 중역中譯·출판한 『孔夫子與歐洲思想?蒙』(2020)이 있다.

서양정치 분야에서는 Herrschaft und Arbeit im neueren technischen Wandel(최신 기술변동 속에서의 지배와 노동, Frankfurt/Paris/New York: 1992), 『환경정치학』(1992), 『포스트사회론과 비판이론』(공저, 1992), 『지배와 이성』(1994), 『분권형 대통령제 연구』(공저, 2003), 『계몽의 기획』(2004), 『서양 근대정치사상사』(공저, 2007)등 여러 저서를 출간했다. 그리고 2023년에는 『놀이하는 인간』(2023), 12월경에는 방대한 저작 『도덕의 일반이론: 도덕철학에서 도덕과학으로(상·하)』를 공간했다. 2025년 초반에는 『분권형 대통령제: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나누기』와 『정의국가에서 인의국가로: 국가변동의 일반이론(상·하)』을 거의 동시에 공간했다.

한국정치철학 및 한국정치사·한국정치사상사 분야로는 『지역패권의 나라』(1997), 『사상체질과 리더십』(2003), 『중도개혁주의 정치철학』(2008), 『조선시대 공공성의 구조변동』(공저, 2016), 『대한민국 국호의 유래와 민국의 의미』(2016), 『갑오왜란과 아관망명』(2017),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2017), 『갑진왜란과 국민전쟁』(2017), 『한국근대화의 정치사상』(2018), 『일제종족주의』(공저, 2019·2023), 『중도적 진보, 행복국가로 가는 길』(2021·2023), 『사상체질, 사람과 세계가 보인다』(2021·2023), 『대한민국 국호와 태극기의 유래』(2023) 등 여러 저서가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 금속활자의 실크로드』(2022)와 『책의 나라 조선의 출판혁명(상·하)』(2023)을 공간했다. 2026년 현재는 『동학애국전쟁과 아관망명의 정치혁명(상·하)』, 『‘대한민국’이라 불린 만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고종의 거의밀지와 대한독립의군의 국민전쟁(상·하)』, 『한국 근대화의 정치철학과 개혁(상 · 하)』 등 근대사 4부작 전8권이 편집에 들어가 있다.

저자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오픈강의 중이고, 이 강의는 유튜브 <황태연아카데미아>로 송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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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08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94쪽 | 152*225*35mm
ISBN13
9791173790706

책 속으로

3·1혁명은 평화적 맨손혁명 전략이 세계인의 관심을 끌며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만세시위의 고조된 열기 속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임시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그 직후부터 3·1혁명의 평화적 맨손투쟁 전략을 계승하려는 독립운동세력과, 이 맨손투쟁 전략을 일제의 민중학살에 무방비로 당한 ‘비겁한’ 또는 ‘유약한’ 투쟁전략으로 비판하고, 또 초기 임정과 이승만의 독립외교론도 배격하고 신민회의 독립전쟁론도 ‘준비론’을 배제하면서 화급하게 무력투쟁에 나서기를 부르짖는 독립운동세력으로 분화·분열이 일어났다.
---pp.37-38

‐ 정당방위 차원의 주먹다짐·투석·방화 행위
물론 3·1혁명이 장기화되면서 일제의 잔혹한 학살에 맞서 민중들이 ‘자위自衛’를 위해 격렬하게, 그러나 비무장 수준에서 저항한 사례들도 있었다. 초기 평화시위가 일제의 무차별 사격으로 유혈이 낭자하게 되어가자 일부 지역에서는 맨주먹의 주먹다짐, 전통적 민속놀이인 ‘석전石戰’이나 농기구 등으로 왜경과 왜군의 무력진압에 맞서고 왜경파출소·헌병분소·관공서를 방화하기도 했다.
---p.166

그런데 중국이 제국에서 공화국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제국으로 돌아갔다가 1916년 6월 다시 공화국으로 되돌아오는 바람에 북경 사람들이 옆 나라에서 망명 온 황제를 좋게 대할 것 같지 않은 불확실성이 돌출되었다. 그러자 고종망명 논의는 망명계획이 무모하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조남익은 태황제의 유폐된 처지, 독살당할 위험에 노정된 상태, 영친왕이 일본여인과 혼인하면 황통의 단절 등을 들며 고종이 “최후의 일전”을 각오하고 있다고 말하고, 북경으로 갔다가 여의치 않으면 상해나 홍콩으로 이어移御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이회영도 거들었다. 그간 국내인들이 많이 변질되어 해외로 망명하겠다고 약속했던 사람들이 꿈쩍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금지원도 하지 않는 판국인데도 “태황제의 명이다”라고 하면 돈을 내놓는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아직도 고종의 여전한 절대적 권위를 확인하고 “만약 황제께서 망명하신다면 독립운동의 불길이 엄청나게 일어날 겁니다”고 피력했다. 이로써 망명계획에 대한 불안감은 해소되었다.
---p.299

조선 후기에도 영조나 정조의 인산 때 구경꾼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기록은 실록 등에 등장하지만 당시 한양의 상주常住 인구와 유동 인구의 규모를 고려할 때, 1919년 당시 서울 인구의 몇 배에 달하는 수십만 명(당시 추산 약 50-60만 명)이 한꺼번에 몰린 것은 조선 역사상 유례가 없는 수준이었다. 1659년 효종의 인산 때는 인산 행렬이 지나가는 길목에 수많은 백성이 모여 곡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1800년 정조의 인산 때는 정조에 대한 백성들의 애정이 각별했기에 당시 한양의 모든 백성이 거리로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두 인산 때는 주로 한양 및 인근 경기 지역 거주자에 국한되었고, 고종 때처럼 전국 차원의 인구 대이동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pp.404-405

‐ 3·1혁명의 ‘결정적’ 동력에 대한 최종 확인
최종적으로, 「2·8독립선언서」의 기초든, 「3·1독립선언서」의 기초든, 「대한독립선언서」의 기초든 외인의 영향보다 결정적인 동인은 고종의 독살이었고, 민중의 목숨 건 항쟁을 부른 고종의 순국으로 통곡 속에서 끝나는 과거 시대의 마감과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었다. 고종의 순국이 불러일으킨 “민중의 비무장 맨주먹 순국투지”는 “육탄혈전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로 끝나는 「대한독립선언서」의 비장한 최후 문장에서도 다시 나타나고 있다. 민중은 고종의 순국을 따라 자기들도 맨손·맨주먹으로 싸우다가 순국하려고 생각했고, 순국을 각오한 이런 고귀한 충군애국 투지와 담대한 자기희생 의지는 3·1혁명이 계속되는 10-11월까지도 변함없었다. 전형적 친일매국노 윤치호조차도 1919년 5월 31일 일기에서 민중의 순국의지와 침착함에 감탄했다.
---pp.489-490

인도의 사탸그라하운동에 대한 3·1혁명의 영향
인도에는 3·1혁명이 발발하기 전 간디가 창안한 무저항·불복종의 저항운동으로 ‘사탸그라하(Satyagraha)운동’이 있었다. ‘사탸그라하’는 불변적 진리를 견결히 잡는 것, 즉 진리 파지把持, 진리 견지, 진리 고수의 의미를 가진 간디의 조어인데, 영어로 “passive resistance”로 번역되어 알려졌다. 그러나 간디는 이 영역을 못마땅해 했다. 정신적 강력함을 뜻하는 이 말이 무력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사탸그라하’는 여럿이서 불변적 진리를 고수하듯 자기들의 참된 주장을 몸으로 견디며 내세우고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고 비폭력·불복종으로 저항하는 것을 뜻했다. 간디는 사탸그라하전략을 10만 안팎의 인구집단에 적용하여 실제로 남아프리카 인도인들의 임금인상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p.536

출판사 리뷰

이 책은 3·1혁명을 ‘3·1운동’으로 격하해온 역사와 사론史論을 바로잡아 다시 ‘혁명’으로 복원하고, 3·1혁명으로 건국된 대한민국과 이와 동시에 창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관한 여러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집필되었다. 3·1혁명은 1919년부터 1948년까지, 아니 1948년 7월 1일 제헌헌법 초안의 제1·2독회 때까지도 ‘3·1혁명’이었다. 그러나 7월 7일 제3독회에서 이승만 의장의 갑작스
런 변덕으로 ‘3·1운동’으로 격하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을 창건하고 임시정부를 창립한 이 3·1혁명을 다시 ‘혁명’으로 복원하여 현행헌법 전문前文의 어불성설 문구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3·1혁명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운동’과 ‘항쟁’은 정부수립이나 신국新國건국을 이루지 못한 민중의거를 부르는 용어다. 따라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은 정부건립을 이루지 못한 ‘운동’이 ‘정부’를 건립했다는 개념적 어불성설語不成說의 비문非文인 것이다.

보통 조선의 건국을 한국 ‘근세(Early Modernity)’의 발단으로 분류하고, 대한제국의 창건을 ‘근대(High Modernity)’의 개막으로 친다. 그리고 3·1혁명은 우리 ‘현대사(the Contemporary History)’를 여는 서막序幕으로 본다. 그런데도 많은 사가들이 이 현대사의 서막을 레닌의 러시아혁명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등의 외적 영향으로 발발한 것으로 더럽혀 놓았다. 그러나 3·1혁명을 이런 외인外人들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는 사론史論은 모두 사료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3·1혁명에 참여했거나 관찰한 국내외의 수많은 수기手記와 일기들, 그리고 외국 선교사들의 보고서들은 모두 다 고종의 독살, 즉 ‘독시毒弑·순국’을 3·1혁명의 거의 유일한 동인動因과 동력動力으로 본다.

흔히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차라리 역사를 잘못 아는 것보다 역사를 모르는 것이 낫다. 역사를 잘못 아는 민족은 미래를 잘못 설계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악행을 반복한다. 가령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읽고 1904년 우리나라 사람들이 반反러·친일 노선을 걸었고 또 그랬던 것이 옳았다고 잘못 아는 자들은 미래의 친일매국노다. 제국주의 침략사를 영광스럽게 아는 왜놈들은 아베 신조와 다카이치 사나에를 따라 평화헌법을 부수고 미래의 일본을 ‘전쟁가능국가’로 만들려는 극우세력이다. 따라서 역사를 잘못 아느니 아예 모르는 것이 나은 것이다.
이 책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에 대해 아예 모르는 사람은 잘못 알고 있는 사람보다 이 책의 논의를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쉽게 흡수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에 대해 잘못 아는 자는 이 책을 이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잘못’ 아는 것이 아니라 ‘어렴풋이’ 아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얻는 지식을 두 배로 즐길 것이다. 역사를 ‘잘못’ 아는 자들은 ‘선무당 사람 잡듯’ 사람들의 의식을 해치고 국가정책을 왜곡시킨다. 이런 자가 장관이 되면 어떻게 될까? 서울대 국사학과를 나온 이런 장관이 최근 (2026년 삼일절 경축사에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을 여덟 번이나 반복한) 명민한 대통령 앞에서 안중근의 친일적 『동양평화론』을 강講하고 반反헌법적인 ‘평화적 두 국가론’을 설說했다고 한다. 이런 자들이 학계와 주변에 너무 많은 것이다.
이 책은 현대사에 대한 대중의 무지나 무식을 없애기 위한 책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중은 3·1혁명과 임시정부에 대해 대개 얼마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역사를 잘못 알고 왜곡시키는 학계와 주변 지식인들을 벼락 치듯 개안開眼·개명開明시키기 위한 책이다. 그 다음은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를 ‘어렴풋이’ 알고 있거나 강단에서 강의되는 그릇된 역사에 대해 의문을 품은 일반대중의 역사지식을 돕고 한국현대사에 대한 지식욕과 향학열을 충족시키기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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