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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_ 5
들어가는 말 _ 19 제2권 제3장 대한민국의 건국과 임시정부의 수립 제1절 헌법제정과 대한민국의 건국 593 1.1. 3·1혁명 전후 공화제 국가개념의 등장 593 · 3·1혁명 과정에서 건국 이야기와 건국방안들 593 ‐ 민중 속의 독립국가 발상 594 ‐ 손병희의 민주국가 건국구상 596 · 신한혁명당과 「대동단결선언」의 신한국 구상 599 ‐ 신한혁명당의 입헌군주제 ‘신한국’ 건립시도 599 ‐ 「대동단결선언」의 ‘신한국 건국’ 제창 604 ‐ 「대동단결선언」의 암약暗弱군주론 611 1.2. 대한민국 국호의 제정 624 · ‘민국’ 개념의 250여 년 장구한 전사前史 624 ‐ 영·정조와 순조의 민국이념과 ‘민국’의 용례 630 ‐ 고종시대 ‘국민국가’로서의 민국 개념의 정착 640 ‐ 공맹의 민유방본론과 백성자치론 651 ‐ 민유방본론의 직해直解와 민본주의적 민국사상 655 ‐ ‘민국’ 국체와 ‘평민국가’로서의 ‘국민국가’ 683 ‐ 민국과 국민형성: ‘민’에서 ‘국민’으로 695 · ‘대한민국’이라 불린 대한제국 701 ‐ 고종의 구본신참론과 국호 ‘대한’의 제정 704 ‐ 1899년 아펜젤러의 『독립신문』, ‘대한민국’ 첫 사용 722 ‐ 1903년 정부의 태환증권에서 ‘대한민국’ 국호 사용 723 ‐ 1907·1909년 『대한매일신보』에서 ‘대한민국’ 등장 725 ‐ 1909년 『대동공보』에서 ‘대한민국’ 국호 사용 727 ‐ 1909년 정치·사회단체에서 ‘대한민국 만세’ 삼창 729 ‐ 대한제국기 ‘대한민국’ 국호의 대중화의 역사적 의미 733 ‐ 대한제국에서 ‘대한제국’이라는 국명은 쓰이지 않았다 737 ‐ ‘한국’의 국호를 ‘조선’으로 바꾼 일왕의 칙령 740 · 1910년대 ‘대한大韓’ 또는 ‘신한新韓’의 빈번한 사용 749 ‐ 국호 ‘신한’과 ‘신대한’ 750 ‐ 3·1혁명과 그 이후의 국호 ‘대한大韓’ 752 · 표결을 통한 ‘대한민국’ 국호의 결정 754 ‐ 대한민국 국호의 진짜 발의자 조소앙 755 ‐ ‘대한’을 둘러싼 ‘대한세대’와 ‘일제세대’의 대립 763 ‐ 국호 ‘대한’의 계승과 항일의 의미 777 ‐ ‘민국’에 관한 논란 여지의 임기응변적 차단 783 · 민족분단에까지 이르는 ‘대한’과 ‘조선’의 대결사 788 1.3. 헌법의 제정과 대한민국의 건국 791 · 3·1혁명 열기 속에서 건국·정부수립 방안들 792 ‐ 조소앙의 임시헌장 초안 792 ‐ 신한민국 임시정부안 796 ‐ 조선민국 임시정부안 810 ‐ 대한국민의회 임시정부안 818 ‐ 한성정부안 826 · 4월 11일 임시헌장 제정과 대한민국의 건국 843 ‐ 정부 수립이냐 정당 창당이냐 843 ‐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제정 844 ‐ 아시아 최초의 완전한 남녀평등 조항 848 ‐ 제8조 ‘구황실 우대’와 복벽파를 위한 고려 849 ‐ 복벽파와 공화파의 동족상잔(1919-1924) 856 ‐ 국무총리제의 확정과 정부각료 선임 866 ‐ 신채호가 문제 삼은 이승만 위임통치론의 실체 879 ‐ 4월 11일은 건국일이고 정부수립일 892 · 9월 11일 임시헌법과 통합 임시정부의 수립 895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창기 혼란과 표류 896 ‐ 안창호의 통합 임시정부 추진 899 ‐ 임시헌법의 제정과 통합 임시정부의 탄생 909 ‐ 이동휘와 이승만의 상해 도착과 취임 928 제2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제적 승인 933 2.1. 국제법상 국가승인과 정부승인의 효과 933 · 법적(de jure) 승인과 사실상의(de facto) 승인 934 · 법적 승인의 소급 효과 938 2.2. 세계 각국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승인 939 · 소련, 최초의 임정 승인에서 승인 견제로 939 ·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의 한국임정 승인 954 · 중화민국: ‘법적 승인’에서 ‘사실상의 승인’으로 960 · 미국, 불승인 정책에서 ‘사실상의 승인’으로 995 · 프랑스 망명정부의 ‘사실상의 승인’과 외교실책 1021 · 여언餘言과 소결 1047 맺음말 _ 1054 [부록1] ‘옥파(묵암)비망록 위작설’에 대한 비판 _ 1065 [사료1] 〈대동단결선언〉 _ 1075들어가는 말 19 [사료2] 〈2·8독립선언서〉 _ 1083 [사료3] 〈기미독립선언서〉 _ 1089 [사료4] 〈대한독립선언서〉 _ 1093 [사료5] 〈신한민국임시정부안〉 _ 1097 [사료6] 〈조선민국임시정부안〉 _ 1099 [사료7] 〈한성임시정부안〉 _ 1106 [사료8] 〈신채호의 이승만위임통치론 성토문〉 _ 1112 [참고문헌] _ 1115 [찾아보기] _ 1141 |
黃台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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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1혁명 전후 공화제 국가개념의 등장
「3·1독립선언서」는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라는 첫 구절 외에 어떤 구체적 신新국가 건설 계획도, 새로운 근대적 정부형태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국내에서 3·1혁명과정 중에서 새로운 국가 창건의 관념이 자연발생적으로 피어오르고 신국新國·임시정부안들이 등장했고, 해외에서는 3·1혁명 이전부터 새로운 민주국가 또는 독립투쟁을 위한 신新국가 창건과 정부수립이 구상되었다. 이 아이디어들의 총결집으로 이루어져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이 건국과 정부수립 자체도 3·1혁명의 열기 속에서 일어난 혁명작용에 속했다. ---p.593 ‘민유방본이라 본고방녕’이거늘 근본이 공고하지 않고 나라가 안녕하지 않은 것은 첫째도 7신臣의 죄이고 둘째도 7신의 죄인지라 폐하께서는 어찌 이 7신의 미미함을 애석해하시고 삼천리의 큼과 이천만의 많음을 생각지 않으십니까? 민왕후에게서도 핀잔을 들을 정도로 경전에 밝지 못했던 윤치호조차도 이렇게 민유방본론을 논하며 고종의 모든 정부대신을 삭탈관직하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민유방본’과 ‘민국’은 이렇게 하나로 결합되면서 이 친일파에게까지도 대정大政에 속하는 대신 인사에까지 개입할 수 있는 참정기회를 준 것이다. ---p.671 그들(대한민국 국호 지지자들)이 중국이 혁명 후에 새롭고 혁신적인 뜻으로 ‘민국’을 쓰고 있으니 이를 따라 ‘대한민국’이라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대한민국 국호 ‘민국’이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린 중화민국의 ‘민국’을 진짜 모방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중화민국’ 국호를 모방할 계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1919년 당시는 1917-1918년 손문의 제1차 호법정부護法政府(공식명 ‘中華民國軍政府’)가 군벌의 반란으로 사라졌고 1920-1921년의 제2차 호법정부(공식명 ‘中華民國政府’)는 아직 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경의 군벌정부가 ‘중화민국’ 깃발을 내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p.784 ‐ 안창호의 통합 임시정부 추진 국무총리 이승만이 부임하지 않음에 따라 1919년 4월 30일 임시의정원은 이동녕을 국무총리서리로 선임했었다. 그러나 5월 9일 이동녕은 대리를 못하겠다고 하며 사임했다. 이후 자연히 상해에 도착한 내무총장 안창호가 국무총리대리 노릇을 했다. 안창호는 이승만과 이동휘를 취임시키는 일을 급선무로 보고 상해로 오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에 대해 이승만은 국무총리를 대통령으로 바꿀 것과 ‘애국금’폐지·공채발행을 취임조건으로 요구했다. ---pp.899-900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프랑스 조계지에 살고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을 프랑스 총영사가 그의 관용이나 사적 동정심이 아니라 국제법상의 망명권과 정치범불인도의 원칙에 따라 왜경들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윌뎅은 1919년 10월 20일 안창호에게 출두를 요구해 면담했을 때 이 사실을 분명히 해준다.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땅에서 중국관리들의 마음대로 처분된다. 모두 경찰에 넘겨졌다. 반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억압받는 국민들을 항상 보호해온 프랑스는 그들을 절대로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윌뎅은 왜경의 마수로부터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보호하는 것을 마치 프랑스 공화국의 후의처럼 말하고 있지만 실은 이 정치망명자를 보호하고 정치범을 왜국에게 인도하지 않는 것은 당시에도 국제법적 법규였다. 그러나 상해주재 프랑스총영사관은 5월까지도 임정의 소재지를 중국 땅으로 옮길 것을 계속 권고했었다. ---pp.1023-1024 3·1혁명 민족대표나 대소大小 지도자들은 대부분 3·1혁명으로 왜적을 완전히 물리치고 독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 혁명으로 임시정부를 세우는 데 관심을 집중했다. 이 임시정부를 독립투쟁의 ‘구심점’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가령 한성 정부안 선포를 주도했던 이규갑李奎甲 목사는 “이 기회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이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면 당장에 독립을 전취戰取할 수 없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장차 독립투쟁을 위한 전열戰列을 정비하는 구심점이 되리라고 생각하였다.” ---pp.1061-10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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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3·1혁명을 ‘3·1운동’으로 격하해온 역사와 사론史論을 바로잡아 다시 ‘혁명’으로 복원하고, 3·1혁명으로 건국된 대한민국과 이와 동시에 창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관한 여러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집필되었다. 3·1혁명은 1919년부터 1948년까지, 아니 1948년 7월 1일 제헌헌법 초안의 제1·2독회 때까지도 ‘3·1혁명’이었다. 그러나 7월 7일 제3독회에서 이승만 의장의 갑작스
런 변덕으로 ‘3·1운동’으로 격하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을 창건하고 임시정부를 창립한 이 3·1혁명을 다시 ‘혁명’으로 복원하여 현행헌법 전문前文의 어불성설 문구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3·1혁명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운동’과 ‘항쟁’은 정부수립이나 신국新國건국을 이루지 못한 민중의거를 부르는 용어다. 따라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은 정부건립을 이루지 못한 ‘운동’이 ‘정부’를 건립했다는 개념적 어불성설語不成說의 비문非文인 것이다. 보통 조선의 건국을 한국 ‘근세(Early Modernity)’의 발단으로 분류하고, 대한제국의 창건을 ‘근대(High Modernity)’의 개막으로 친다. 그리고 3·1혁명은 우리 ‘현대사(the Contemporary History)’를 여는 서막序幕으로 본다. 그런데도 많은 사가들이 이 현대사의 서막을 레닌의 러시아혁명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등의 외적 영향으로 발발한 것으로 더럽혀 놓았다. 그러나 3·1혁명을 이런 외인外人들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는 사론史論은 모두 사료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3·1혁명에 참여했거나 관찰한 국내외의 수많은 수기手記와 일기들, 그리고 외국 선교사들의 보고서들은 모두 다 고종의 독살, 즉 ‘독시毒弑·순국’을 3·1혁명의 거의 유일한 동인動因과 동력動力으로 본다. 흔히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차라리 역사를 잘못 아는 것보다 역사를 모르는 것이 낫다. 역사를 잘못 아는 민족은 미래를 잘못 설계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악행을 반복한다. 가령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읽고 1904년 우리나라 사람들이 반反러·친일 노선을 걸었고 또 그랬던 것이 옳았다고 잘못 아는 자들은 미래의 친일매국노다. 제국주의 침략사를 영광스럽게 아는 왜놈들은 아베 신조와 다카이치 사나에를 따라 평화헌법을 부수고 미래의 일본을 ‘전쟁가능국가’로 만들려는 극우세력이다. 따라서 역사를 잘못 아느니 아예 모르는 것이 나은 것이다. 이 책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에 대해 아예 모르는 사람은 잘못 알고 있는 사람보다 이 책의 논의를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쉽게 흡수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에 대해 잘못 아는 자는 이 책을 이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잘못’ 아는 것이 아니라 ‘어렴풋이’ 아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얻는 지식을 두 배로 즐길 것이다. 역사를 ‘잘못’ 아는 자들은 ‘선무당 사람 잡듯’ 사람들의 의식을 해치고 국가정책을 왜곡시킨다. 이런 자가 장관이 되면 어떻게 될까? 서울대 국사학과를 나온 이런 장관이 최근 (2026년 삼일절 경축사에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을 여덟 번이나 반복한) 명민한 대통령 앞에서 안중근의 친일적 『동양평화론』을 강講하고 반反헌법적인 ‘평화적 두 국가론’을 설說했다고 한다. 이런 자들이 학계와 주변에 너무 많은 것이다. 이 책은 현대사에 대한 대중의 무지나 무식을 없애기 위한 책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중은 3·1혁명과 임시정부에 대해 대개 얼마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역사를 잘못 알고 왜곡시키는 학계와 주변 지식인들을 벼락 치듯 개안開眼·개명開明시키기 위한 책이다. 그 다음은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를 ‘어렴풋이’ 알고 있거나 강단에서 강의되는 그릇된 역사에 대해 의문을 품은 일반대중의 역사지식을 돕고 한국현대사에 대한 지식욕과 향학열을 충족시키기 위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