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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눈
비너스 갈림길 정원 먼지 죽음의 색채를 보다 내 몸엔 네가 겁먹을 무언가가 있어 그 얼굴 그 애가 날 위해 불러준 노래 실재하지 않는 존재 표류의 노래 복수複數의 춤사위 전화를 뚝 끊듯 사라져줘 밤이 너무나 깊어서 작가의 말_새로이 거듭나기 |
陳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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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두어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으면 남자가 얼른 원고를 내민다. 오탈자가 없는 타자 원고를 깔끔하게 인쇄했고, 10포인트 글자들은 눈에 무리가 가지만 아름답다. 남자는 자간과 잉크 농도까지 세심하게 조정했다. 하얀 종이에 찍힌 검은 글자들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잡아당겨 가지런히 편 것처럼 반듯하여 흐트러짐이 전혀 없다. 그 글자들처럼 여자는 남자와 처음 시선이 마주친 순간부터 그의 질서 속으로 빠져들었다. 여자는 원고를 받아 배낭에 넣고는 말없이 차를 마저 마신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어나 침실로 향한다. 조용히 사랑을 나눈다.
---「하늘의 눈」중에서 “나한텐 항상 너무 컸어.” 펑황이 자기 손을 둥수의 손에 포갰다. 두 사람의 겹쳐진 손 사이에서, 그 물체의 핏줄이 미세하게 뛰고 있었다. “커지기도 해?” 둥수가 물었다. “어쩔 때는. 그래도 많이 커지진 않고, 갑자기 잠에서 깬 고양이마냥 휘어져 있어. 점점 작아지는 중이고.” 펑황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그 물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생명을 지닌 듯 숨 쉬고 꿈틀거린다는 건 매우 확실하지만, ‘커지거나 딱딱해지는’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비너스」중에서 어머니의 물건 집착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모든 게 수수께끼였다. 내가 중학생일 때 어머니는 늘 늦게 돌아왔고, 집에 오면 피곤하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가 피곤했던 이유는 부업으로 작은 회사에서 경리 업무까지 했기 때문이며, 기운이 없었던 이유는 쓰레기장과 벼룩시장을 돌면서 버려진 가구를 수거하고 ‘값싸고 가성비 좋은 물건’을 잔뜩 사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넝마주이처럼 자전거와 손수레를 이용해 물건을 실어 날랐다. 밀고 끄는 것도 모자라 손에 들고 어깨에 들쳐메고 오는 어머니를 보면, 피리 부는 사나이가 쥐 떼를 몰고 오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쌓여가며 아파트는 쓰레기 집이 되고 말았다. ---「먼지」중에서 나에게 속한 삶의 시간은 어머니 집을 나선 그날 오후부터 멈춰버렸고, 끊임없이 되감겼다. 두 가지 시간 중 하나에 속한 나는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스무 살로 성장하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한 번 또 한 번 연애를 하면서 애착 대상을 찾아헤맸다. 또 다른 시간에 속한 나는 연애 상대인 어떤 여인도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연애를 해도 잘못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 마음속 시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거꾸로 돌아갔다. 어머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줄이고 어머니와 함께 살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는 듯이, 하루하루가 거꾸로 흐르며 과거와 현재가 포개졌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어머니와 나의 공생체였다. ---「죽음의 색채를 보다」중에서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안은 어머니가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벌거벗은 몸에서 형광빛을 발하며 광기에 휩싸여 횡설수설하는 안을 보며, 어머니가 안에게 씐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나는 그녀의 상처 입은 목구멍, 가슴속, 위장을 살며시 쓰다듬고, 파라티온의 강력한 독성에 침식된 그녀의 온몸을 어루만졌다. 죽기 전 24시간 동안 어머니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죽음의 색채를 보다」중에서 고집이나 충동 또는 설명할 수 없는 천진함에 기대어 그녀는 어린 시절을 보낸 이 동네로 돌아왔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삶, 자기 자신이 주인인 삶을 꿈꾸며. 20년 전에 이곳 월세는 5천 위안이나 되었다. 다섯 평 남짓한 크기에 스프링 침대 하나, 침대 옆 발코니는 철창으로 완전히 막혀 있고, 창문은 중정을 향해 있어 낮에도 어두컴컴하고, 빛이라고는 저 높이 중정 꼭대기에서 새어 들어오는 잔광뿐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중정으로 뻗어나간 철봉에 널린 옷들이 퀴퀴한 쉰내를 풍기며 깃발처럼 펄럭이는 모습만 가득했다. 빨래봉 말고 환풍기도 툭 튀어나와 있었다. 요리하고, 싸우고, 섹스하고, 아이들을 혼내고 아내를 때리는 소리가 밤낮없이 울려 퍼졌다. 중정의 냄새와 화면만으로도 이 건물에서 당장 도망쳐 나와야 한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바보처럼 집세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 얼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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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마음은 글쓰기를 통해 색을 입는다
첫 작품으로 실린 「하늘의 눈」 주인공은 출판사 편집자와 고전문학 번역가다. 둘은 그럴 필요가 없지만, 원고 교정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굳이 직접 만난다, 한 달에 두 번. 도보로 지하철역까지 가고, 청색선에서 홍색선 열차를 갈아탄 뒤 15분 더 걸으면 남자의 집에 도착한다. 고층빌딩의 B동 3405호. 남자의 하늘 위 작은 집은 황홀할 정도다. 공기조차 흔들림을 멈춘 것 같고, 심장 박동 소리까지 들릴 만큼 고요하다. 고요함을 투과한 남자의 손길이 고요함에 달아오른 여자의 몸을 어루만지는 듯하다. 차를 한잔 마신 뒤 오탈자 하나 없고 먹 농도도 세밀하게 조정된 원고를 편집자가 번역가로부터 건네받으면 둘은 침실로 향한다. 거기서 몸을 섞는다. 이것은 사랑일까? 하지만 책 작업이 종료된 이후 둘 사이의 만남도 끊긴다. 만남이 재개되는 것은 번역가가 뇌종양에 걸리면서다. 그리고 투병생활에 들어간 남자는 자신의 미래를 글 속에서나마 보장받고자 SF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에게는 미래가 없지만, 그는 SF 소설을 계속 쓴다. 마치 쓸 수만 있다면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천쉐의 다른 소설들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글을 쓰고 사랑을 나누는데, 「하늘의 눈」 역시 마찬가지다. 창백한 마음이 삶의 색채를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다. 이 작품은 눈부신 재생과 신생新生을 보여주며, 『연합문학聯合文學』은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구원”이라고 극찬했다. 과거 천쉐 소설 속 주인공들이 서로의 육체와 감정을 파멸로 치닫게 했다면,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한발 물러서서 서로를 ‘하늘의 눈目’처럼 가만히 바라보며 지켜준다. 편집자와 번역가는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또 자신이 떠난다 해도 그는 여전히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저항할 것임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했다. 이 작품은 13편 가운데 저자의 문학적 집념이 가장 정밀하게 투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비너스」는 이 책의 대표작이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펑황과 지정 성별은 여성이지만 남자가 되고 싶어하는 둥수가 주인공이다. 펑황은 열일곱 살 때부터 호르몬 주사를 규칙적으로 맞았다. 스무 살에는 가슴 수술을 받았는데, 유륜과 유두 모두 부드러운 분홍색이며 유두는 작은 팥알 같다. 매끄럽고 탐스러운 가슴은 한 손에 가득 찬다. 반면 둥수는 성확정 욕구 같은 게 딱히 생긴 적 없이 스스로를 남자로 여겨왔고, 수술이나 호르몬 요법 없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둥수는 성 경험이 전무하고, 이 제로라는 숫자는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이내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성관계를 맺는다. 펑황과 둥수는 자웅동체로 서로의 경계를 지워버림으로써 과거를 회복하고 미래를 창조해낸다.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가장 먼 바다 위로 조개 하나가 떠올랐다. 조개껍질 속에는 새로이 태어난 두 사람이 들어 있었다.” 즉 이 작품은 천쉐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거대한 조개껍데기로부터 비너스가 홀로 태어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다. 보르헤적 작품과 쓰레기 집 속 주인공들 「갈림길 정원」은 천쉐의 오랜 장기인 ‘기억의 애매모호함과 본질’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꿈속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화자인 샤오인이 친구들과 함께 어떤 신비로운 정원에 발을 들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곳에서 샤오인은 6년 전 격렬한 갈등 끝에 헤어졌던 옛 연인 ‘아저씨’와 예기치 않게 재회한다. 정원은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가 모호하게 뒤섞인 공간으로, 두 사람은 정원을 거닐며 서로에게 남긴 상처, 보이지 않는 기억의 파편들을 다시 꺼내 대면하게 된다. 천쉐는 우리가 사는 현실 자체가 거대한 도서관이나 타인의 꿈일 수 있다는 환상적 리얼리즘의 기법을 차용해, 퀴어들의 사랑은 오직 꿈과 환상 속에서만 복원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즉, “보이지 않는 상처는 치유될 수 없고, 오로지 허구라는 방식으로만 어루만져질 수 있다”. 소설가 우샤오러는 13편 중 이 작품이 가장 흥미롭다고 평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여러 작품은 유독 ‘집’이라는 공간에 집중한다. 「하늘의 눈」 「먼지」가 대표적이다. 특히 소설 속 주인공들은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자기 집도 ‘쓰레기 집’처럼 방치해버린다. 흘러넘치고, 냄새 나고, 줄줄 새고, 흩어지고…… 쑤셔넣고 쌓아두는 일은 수치스러운 짓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들은 무질서로 얽힌 과거를 송두리째 내보인다. 「먼지」의 주인공 ‘나’는 정리, 분류, 청소, 폐기를 하는 데 재능이 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신문 기자생활도 했지만, 어떤 일을 해도 그 직업과 내가 딱 맞는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파트타임 청소부를 거쳐 소규모 ‘가정 청소’ 업체를 꾸리자 이 일은 천성처럼 잘 맞았다. ‘나’는 이제 막 안나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안나의 집에는 무수한 물건과 쓰레기가 쌓여 있다. ‘나’는 안나의 집을 청소하고 그녀를 도우면서 과거 내 어머니가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집을 쓰레기장처럼 파괴해버렸던 기억의 핵심(어머니의 방)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이 작품은 대만 독자들이 가장 애호하는 작품인데, 집에 쌓인 먼지와 잡동사니를 한 겹씩 벗걷어내는 과정에서 마음속 어둠도 한 꺼풀씩 벗겨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 소설집의 전체 주제인 ‘폐허 속에서의 재생’을 가장 뛰어나게 시각화한 작품으로 꼽힌다. *** 이번 단편집은 트랜스젠더의 성과 사랑, 레즈비언 커플의 보조생식술을 통한 출산, 동성 커플의 육아와 대 잇기 등 성소수자가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며 겪는 법적·현실적 장벽과 관계의 피로감을 다룬다. 소설의 인물들은 여전히 상처와 고독 속에 있지만, 파멸하기보다 서로 힘을 북돋우며 재난 같은 현실을 버티면서 치유와 재생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상처 입고 밤을 헤매는 소수자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치유받는 「밤이 너무나 깊어서」는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때 이질적인 듯하지만, 대미를 장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내 몸엔 네가 겁먹을 무언가가 있어」에서는 잠자리를 속이는 여자와 사랑을 속이는 남자가 나온다. 둘 다 너무나 이상하고 나쁘다. 하지만 이렇게 나쁘고 이상한 인간들이 왠지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천쉐의 특기인데, 등장인물들이 점점 더 기이해지며 악행을 저지르고 변덕스럽지만, 그들이 나 자신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독자가 천쉐의 인물들과 공생하는 이유다. 천쉐는 우리 안에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우리는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 자신을 살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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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권리를 얻은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천쉐는 욕망과 외로움, 가족과 결혼 시스템의 모순, 애정과 죽음이 뒤엉킨 자리에서 퀴어의 삶을 또렷이 응시한다. 정상성에 대한 강렬한 질문을 담은 그의 언어는 잔혹할 만큼 정확하고, 놀라울 만큼 뜨겁다. 『하늘의 눈』은 사랑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동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왜 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알게 된다. 우리를 살아남게 하는 것은 완벽한 사랑이 아니라, 끝내 사랑을 향해 나아가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이토록 정확하게 인간의 사랑을 해부하는 작가는 드물다. - 박상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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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권 운동과 젠더 정치의 의제들을 다루면서도 이 책이 퀴어 문학의 최전선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화제성 때문이 아니다. 천쉐는 결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다. 그저 퀴어라는 존재를 충실히 완성해낼 뿐이다. - 천바이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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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글을 써오며 삶이 점차 안정된 천쉐는 ‘한곳에 안주’하면서 축적된 에너지를 등장인물들의 심경적 비상으로 전환시켰다. 비록 운명이 뒤틀려 있다 해도, 우리는 허구 속에서 스스로를 한번 제대로 키워낼 수 있다. - 우샤오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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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부서짐과 불완전함도, 성장을 동반한다면 결국 모종의 안정감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 천산니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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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창조해낸 소설 속 하늘과 바다, 심지어 외딴 길가에 피어난 한 송이 꽃마저 ‘마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황황히 불안해하는 세상의 모든 당신과 나, 우리를 위해 특별히 개척해놓은 안식처’ 같다. - 셰잉쉬안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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