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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온 쇳덩어리
돼지 이데올로기 Stainless 고기를 위한 분자학 닫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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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을수록 할 일이 있어야 건강해. 쓸모없으면 더 아파. 더 빨리 죽어.
--- p.17, 본문 「날아온 쇳덩어리」중에서 철에 크롬을 섞어가 이래 잘 나오제? 녹도 안 슬고, 기스도 안 나고, 안 기나? 여 뭐 묻어도 닦으면 말끔하다 아이가. 싹 없어지뿐다. ... 아무 일 없던 맹키로 반짝반짝 사라지제. --- p.39, 본문 「돼지 이데올로기」중에서 더러워서 나온 거 아니고, 살려고 나온 거예요. --- p.40, 본문 「돼지 이데올로기」중에서 살면서 적응된 게 하나도 없는데, 죽어가는 걸 적응하래. --- p.68, 본문 「Stainless」중에서 한 사람 인생이 어떤 식으로 사라지는지, 그 사람 가족이 평생 어떤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지, 아주 잘 알아요. 사고가요. 우연이라고 하기엔 견뎌야 할 필연이 많더라고요. --- p.85, 본문 「Stainless」중에서 예전에는 유통기한 지나면 대체 언제까지 먹어도 괜찮은 건지 매번 헷갈렸잖아. 그렇게 나도 남은 시간에 확신이 없어져버렸어. --- p.92, 본문 「Stainless」중에서 나도, 그 사람도, 다시 증명할 방법이 또 몸이라서, 그것밖에는 내가 도저히 모르겠어서. (사이) 삼키려고. --- p.94, 본문 「Stainless」중에서 지긋지긋해서 쳐다보기 싫은데도, 이상하게 좋았던 기억이 깍두기 반찬처럼 끼어서 와. --- p.99, 본문 「고기를 위한 분자학」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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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삼키는 행위에 담긴 삶의 은유
작품에 등장하는 산업화 시대의 도축에서 현대 사회의 도시락까지 먹고 삼키는 원초적인 행위를 연상시킨다. 천태의 기억 속에 도축은 인간의 몸이 기계처럼 쓰이는 노동 현장을 상징하고, 피영이 만드는 도시락은 거대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이 사육되는 방식을 은유한다. 특히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할 첫 새끼를 뜯어먹어 스스로의 영양분으로 소화해 버리는 돼지의 습성처럼, 생존을 위해 서로의 몸을 뜯어먹어야 하는 가혹함은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도달하는 삼키는 행위에서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그것을 온전히 내면으로 가져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꿋꿋이 살아내려는 의지를 볼 수 있다. 쓸모를 다한 삶 앞에서 다시 시작하다 ‘다시’와 ‘고치다’라는 뜻을 가진 갱(更)은 주인공이 마주한 신체적 절망과 새로운 시작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신체적, 세대적 상처를 안고 있다. 금옥은 아버지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고, 바리는 손을 다쳤고, 피영의 자궁은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던 기성세대와 불안정한 노동을 거부하는 청년 세대는 충돌하지만, 고된 노동과 허기를 공유하며 끝내 서로를 외면하지 못한다.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부채감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를 끌어안게 한다. 쓸모를 잃어가는 몸과 삶 앞에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동시대 희곡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이음 희곡선. 두산아트센터 DAC Artist로 선정된 본주의 희곡 『갱更』은 2026년 9월 2일부터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초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