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C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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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칼리와 한국 그림작가가 함께 만든 첫 그림책
다비드 칼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해 수원북키즈콘에서였습니다. 행사장에서 잠시 만나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습니다. 짧은 만남이었기에 그때만 해도 그 인연이 한 권의 그림책으로 이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어느 날, 뜻밖의 메일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발신인은 다비드 칼리였습니다. 함께 작업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와 함께 여러 편의 글과 해외 그림작가들과 작업 중인 더미북을 보내왔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그림작가들과 수많은 그림책을 만들어온 작가가 지난해의 짧은 만남을 기억하고 먼저 연락해 왔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가 보내온 새로운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던 중, 한 작품 앞에서 마음이 멈췄습니다. “바로 이거다!” 처음 읽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비드 칼리의 글에는 그만의 독특한 힘이 있습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지면서도 이야기는 유쾌하고 경쾌하게 흘러갑니다. 독자에게 무엇이 옳다고 가르치기보다 엉뚱하고 기발한 상황 하나를 툭 던져놓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웃으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묵직한 질문 하나가 마음에 남습니다. 이번 작품 역시 그랬습니다. 만약 인간이 동물들에게 재판을 받는다면? 우리는 흔히 인간을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지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생명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구 생명의 긴 역사를 펼쳐놓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포유류는 약 2억 2천만 년 전, 조류는 약 1억 5천만 년 전, 파충류는 약 3억 1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등장했으며, 양서류와 물고기, 곤충 역시 수억 년에 걸쳐 이 지구에서 살아왔습니다. 그에 비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은 불과 약 30만 년 전입니다. 수억 년이라는 생명의 시간을 한 줄로 늘어놓고 바라본다면 인간은 가장 늦게 지구에 도착한 존재입니다. 어쩌면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갓난아기와도 같은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뒤늦게 나타난 인간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지구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놓았습니다. 숲을 없애고 다른 생명들의 터전을 빼앗았으며, 바다와 대기를 오염시키고 수많은 동물을 멸종의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변화들을 대부분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아 왔습니다. 그렇다면 시선을 한번 뒤집어보면 어떨까요? 동물들의 눈에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환경과 자연 파괴라는 주제는 중요하지만 어린이에게 전달하는 순간 자칫 무겁고 교훈적인 이야기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비드 칼리는 이 묵직한 주제를 ‘동물들이 인간을 재판한다’는 기발한 상상으로 풀어냅니다. 이 책에서는 인간을 피고석에 앉히고 동물들에게 목소리를 건넵니다. 그리고 그들의 증언을 통해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바라보았던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정반대의 자리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인간은 정말 지구의 주인일까요? 우리가 당연하게 해왔던 일들은 다른 생명에게 어떤 일이었을까요? 그리고 동물들이 인간에게 판결을 내린다면 과연 어떤 말을 들려줄까요? 이 작품은 그 질문에 정답을 먼저 내놓지 않습니다. 독자가 동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자리를 남겨둡니다. 무거운 질문을 던지면서도 무겁게만 이야기하지 않는 것, 기발한 상상과 유머 속에 생각할 거리를 담아두고 마지막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 다비드 칼리 특유의 이야기 방식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이 글의 그림작가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작품을 한국의 그림작가와 함께 만들어보면 어떨까?’ 다비드 칼리는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뛰어난 그림 작가들과 협업하며 다양한 그림책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비드 칼리의 글에 한국 그림 작가만의 시선과 해석이 더해지면 어떨까 궁금해졌습니다. 한 작가가 쓴 이야기는 그림작가를 만나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됩니다. 같은 문장도 누가 어떻게 해석하고 그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과 온도를 갖습니다. 다비드 칼리의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질문이 한국의 이만경 작가의 섬세하고 깊이있는 그림과 상상력이 만나면 어떤 그림책이 탄생할지 기대되었습니다. 그렇게 이 책의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해 수원에서 우연히 건넨 한 장의 명함. 그리고 몇 달 뒤 바다를 건너 도착한 한 통의 메일. 짧은 만남에서 시작된 인연은 한 편의 글을 만나고, 다시 한국의 그림작가에게 이어져 마침내 한 권의 그림책이 되었습니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만은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지구에서 살아온 수많은 생명 사이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우리는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어쩌면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아니라, 이제 막 이곳에서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가장 어린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오랫동안 이 지구를 살아온 동물들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