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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서쪽 하늘 안목 낯선 하루 늦가을 환절기 물멍 그래도 장미 폐사지 채혈의 시간 무늬 시계는 아침부터 똑딱똑딱 습격 페이크 젤리피쉬레이크 난분분 2부 무인모텔 로그아웃 늦가을 동창회 방폭 응급실 벽에 N극과 S극이 산다 깔끔한 운구식 네바도 데 톨루카 실업 핑퐁게임 기린의 방 달팽이 블랙아이스 고독, 어디쯤 혹등고래 은자부호 3부 절벽 의자 건초봉지를 들고 양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 왼손 별자리 목련의 뒤편 오래 전 봄이 나에게 왔다 포항초 파도를 건너다니는 말 겨울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사각지대 누워 있는 버드나무 요즘 세상 하염없이 낮은 부처 능소화 엽서 4부 옛 골목에 우리의 봄이 살고 있다 바닥 꽃가루 구월 보이지 않는 적 트롤퉁가 실업자 입춘 회오리 수빙 밀려나다 사람임을 증명했습니다 그 섬에 당신이 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새 ■ 해설 ‘쓸쓸’이라는 별 | 김춘식(문학평론가, 동국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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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서랍속으로 들어가는 별이 있다 반짝이는 법을 잃어버린 별은 내 방 창문을 넘어 거실 천장에 붙어 어둠속에서 말소리를 엿듣곤 했다 나는 그 별을 쓸쓸이라 부른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별의 눈에 고이던 눈물 아침이 오면 별똥별처럼 떨어져 나간 양어깨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돌기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숨소리를 숨긴다 그 별이 푸른 날개를 펼칠 때까지 나는 넓은 식탁에서 밥을 먹는다 가끔 어둠을 열어 쓸쓸의 얼굴을 만져본다 새벽의 고요가 별 그림자를 밟고 멀어지면 시린 발을 접어 서랍속으로 몸을 숨긴다 달팽이 그는 오늘도 가판대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가 이 거리에 나앉은 건 오래전 일이지요 신문과 껌과 쓸쓸함을 파는 그곳으로 들어갈 때마다 그는 달팽이에요 작은 네모에 얼굴을 내밀고 하루 종일 앉아 있어요 네모 밖은 태어나고 사라지는 그들만의 세상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네모 밖의 일 가끔 발가락이 사라진 비둘기가 지나가요 몸을 움직일 때마다 벽과 벽이 부딪치는 한 평은 그의 초원 서로 헐뜯는 세상은 네모 밖의 일이라는 듯 하품을 늘어지게 할 때도 있어요 두 팔을 내밀어 천천히 구름을 당겨 봅니다 노모의 나긋한 털실처럼 줄줄이 딸려오는 그것들을 가지런히 그러모아 가판대 위에 걸어놓아요 이곳은 고여 있는 물 같아요 누군가 삐죽이며 지나가요 그러거나 말거나 네모 속 달팽이는 저녁이 멀어질 때까지 초원에 떠오를 은하를 기다려요 어쩌면 달팽이 집 속에서는 대평원을 달리는 말의 등 뒤로 붉은 노을이 빛나고 있을지도 모르죠 달빛이 플라타너스 꼭대기에 걸릴 때쯤 네모 속 달팽이는 기지개를 켜며 천천히 밖으로 나옵니다 당신과 당신의 새 당신의 새는 늘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당신의 날개를 조그만 더 펼쳐보세요 날개 속에 또 다른 날개가 자라 날아가는 동안 듬성듬성 깃털이 빠져나간 곳마다 없는 계절이 자라났다 언제부터였을까 기울어진 날개에 서로의 날개를 덧대고 날아간다 내가 날고 싶은 곳보다 함께 날아야만 했던 그곳은 수시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구름을 뚫고 나온 새가 날개를 푸득이며 어디로 불지 모르는 바람길을 가늠해본다 공중을 향해 날개를 펴며 균형을 잡는다 통증이 굳은살처럼 박여 있는 서로의 날개를 바라보며 지나온 길을 올려다본다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길, 아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