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일기를 펼치며
최시온 누군가 날 안아 줄 때마다 마음의 뼈가 부러진다 사람들은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가을은 심장의 최댓값 차유오 모두 지나간 뒤에야 가을의 쓸모 임유영 머티리얼 걸(Material Girl) 추산가처(秋山佳處) 김현아 자몽은 제철이 가을 폴더명 [남의 집 고양이 컬렉션] 김유나 2학기의 캠퍼스는 차갑다 코트 위의 열기와 삶의 템포 추일범 볕과 심장 가을 탓은 아니지만 나수람 고요가 머무는 10월의 서재 겨울의 초입, 나로 돌아오다 성동혁 시인의 말 구옥 문호현 볕 쪽으로 가면 곧 따뜻해진다는 말을 믿고 걸었던 모든 아침에 대하여 마른 것은 붙지 않고 도로 떨어진다는 김하늘 밤과 하이볼은 퍽 잘 어울리고 희박해지지 말자고 최필립 투명을 입고 방 밖을 나와 미리 혼자 다녀온 김유이 유산 자꾸 알고 싶은 계절이 있어서 홍여문 광통교 우산 챙기기 강예린 견딜 수 없는 기분에 가을엔 유서를 쓴다 가을에는 노을 속 바다를 기다린다 조성래 2019년 가을 편지 2022년 가을 편지 신재우 바람은 다 알고 있어 야구팬 절반은 가을이 심심하다 김용희 남원 상강 |
성동혁의 다른 상품
|
그러므로 가을엔 언제나 심장이 최댓값으로 가동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연인 또는 연인으로 엮이고 싶은 자들에 대한 사랑, 이름 모를 자들에 대한 사랑, 더 나아가 인류에 대한 사랑까지. 모든 것이 익고 또 떨어지는 계절. 나를 이루는 고독과 우울은 한껏 농익어 내 심장 위로 쿵쿵 떨어진다.
--- 「가을은 심장의 최댓값」 중에서 가을이 오면 나는 또 뒤늦게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무언가를 먹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 잠시 멈춰 서 있을 거야. 특별히 가을다운 일을 하지 않아도 가을 속에서 시간은 흘러가겠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가을은 가을이니까. --- 「모두 지나간 뒤에야」 중에서 오늘 사진 폴더를 정리했다. 단이의 사진을 [남의 집 고양이 컬렉션] 폴더로 옮겼다. 그리고 애기 사진 또한 [고양이] 폴더에서 [남의 집 고양이 컬렉션] 폴더로 옮겼다. 겨울에 우리 집에 있던 고양이는 가을에 남의 집 고양이가 되었구나. 가을엔 털을 부풀리렴. 가을엔 새로운 식구와 베란다 밖 은행나무를 구경하렴. 가을엔 집 안 구석구석 따뜻한 바닥을 탐색해 두렴. [고양이] 폴더는 비어 있지만 그곳에 있었던 고양이를 여전히 나는, 잘 안다. --- 「폴더명 [남의 집 고양이 컬렉션]」 중에서 저녁이 되자 공기가 다시 조금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불쾌한 한기가 아니라, 나를 더 깊은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포근한 기운이다. 나는 창문을 닫고 방 안의 조명을 조금 낮췄다. 이제는 안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반드시 빠르게 달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무들처럼, 제자리에 굳건히 서서 계절의 흐름을 온몸으로 받아 내는 것. 그 정적 속에서 자신의 무게를 확인하고 내면의 온도를 높여 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방식이다. --- 「고요가 머무는 10월의 서재」 중에서 활자는 빛이 새고 소리가 새는 그릇이다. 그러니 균열이 갸륵하길, 그 균열로부터 시작된 믿음이 그릇 안의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이 되길. 기도. 그러니 쓴다는 것은 맘껏 금이 가는 일. 우리의 가을이 맘껏 금이 가길. 기도. 균열이 넓어져 길이 된다면, 우린 만날 것이다. --- 「시인의 말」 중에서 〈베티블루 37.2〉,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나쁜 피〉, 〈피크닉〉, 〈어둠 속의 댄서〉, 〈천상의 릴리아〉,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앞에 나열한 영화들을 매일매일 번갈아 보며 11월이 끝나면 좋겠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당신들은 나를 어떤 이름으로 불러 줄 건지 몹시 궁금하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덜 구겨져 있을지 아니면 아주 구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을지.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이것도 저것도 해보다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소멸하는 쪽도 생각해 본다. 어쨌든 내 우울에도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말이지. 오늘은 하필 내가 태어난 날, 삶은 후유증처럼 살아진다. --- 「희박해지지 말자고」 중에서 사랑했던 것들의 흔적은 내 기억 속에만 있다. 그래서 매년 가을이 돌아오면 나는 다시금 선선해진 바람에 기억을 꺼내 놓고 천천히 펼쳐 본다. 색이 바래지는 않았나 지워지지는 않았나 들여다보기 위해서. 그리고 생각한다. ‘아, 그 계절이야. 안에서부터 천천히 익어 가는 계절!’ 그러면 나를 아끼던 마음이 답한다. ‘그래, 너에게 이 계절을 남기고 가길 잘했네’라고. --- 「유산」 중에서 여름이 되면 꿉꿉한 슬픔이 아주 느리게 오고, 가을이 오면 밀려온다. 더위에 눌려 있던 것이 단숨에 온다. 아마 가을에만 발권되는 기차표가 있는 것 같다. 가을은 딱 일 년 중 끝자락에 다다르기 직전이라서, 무사히 건너가려면 맨몸으로는 견디기 힘들다. 힘들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마다 심장과 책을 가깝게 두는 것일까. --- 「가을에는 노을 속 바다를 기다린다」 중에서 아끼는 문장을 하나쯤 가진 사람을 좋아해. 언젠가 이런 대화를 했던 이는 누구였지. 분명 아끼는 사람이어서 이런 얘길 했을 텐데. 오랜 사물이 윤이 나듯 어떤 장면과 시절에도 윤이 난다. 좋아하는 문장들을 나누는 소모임을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고. 감동하고 감응하면서 서로를 응원하는. 어쩌면 함께 한 문장을 품고 집으로 돌아와 아끼는 밤을 뒤척여 보게 될. 그런 가을. 그런 가을밤. 그럼 슬그머니 살맛도 돌아오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해본다. --- 「상강」 중에서 |
|
“오랜 사물이 윤이 나듯 어떤 장면과 시절에도 윤이 난다.”
잃어버린 것보다 아직 사랑할 수 있는 것을 헤아리는 시간 가을은 무언가가 익어 가는 동시에 무언가는 떨어져 나가는 계절이다. 여름의 뜨거움과 습기가 걷히고 나면 하늘은 높아지고, 나무는 제 잎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한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장면이 문득 떠올라 마음에 남고, 이미 떠난 사람과 사라진 것들이 새삼 선명해진다. 그래서 가을은 지나간 것을 돌아보게 하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슬픔을 방어하기엔 방어가 최고』는 바로 그 가을의 마음을 들여다본 기록이다. ‘계절일기’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인 이 책에는 열일곱 명의 저자가 각자의 가을을 기록한 글이 담겼다. 직업도, 나이도, 살아온 시간도 다른 저자들은 ‘일기’라는 솔직한 형식 안에서 사랑과 상실, 기억과 이별,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마주한다. 떠난 고양이의 사진을 다른 폴더로 옮겨 담고, 이사를 준비하며 집 안의 물건들을 들여다보고, 사라진 집과 마당을 떠올리고, 오래된 그림 한 점을 바라보며 지나간 시간을 되짚는다. 버릴 것을 고르는 동안 끝내 버릴 수 없는 것이 드러나고, 떠나보낸 뒤에야 오래 남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기억이다. 김용희 작가는 “오랜 사물이 윤이 나듯 어떤 장면과 시절에도 윤이 난다”라고 썼고, 김유이 작가는 가을이 돌아오면 기억을 꺼내 놓고 색이 바래지는지 들여다본다고 말한다. 기억은 지나간 일을 되풀이해 떠올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이는 마음이 있고,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기억을 좇는 길에는 슬픔이 발자국같이 뒤따르지만, 그것을 견디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가을야구와 프로배구의 열기 속으로 들어가고, 누군가는 자몽청을 만들어 친구에게 건넨다. 긴팔 셔츠를 꺼내 입고, 레코드판을 걸고, 산책하고,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난다. 자몽 한 알의 쓴맛을 없애기 위해 한 시간 넘게 과육을 손질하는 일처럼, 소박하고 구체적인 일상이 슬픔을 견디는 힘이 된다. 책 제목이 된 “슬픔을 방어하기엔 방어가 최고”는 그런 마음에서 나온 문장이다. 슬픔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우리는 먹고 걷고 음악을 듣고 사람을 만나며 슬픔이 삶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지킨다. 때로는 슬픔을 자양분 삼아 자기 자신을 기르기도 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사랑의 의미를 되묻고, 상처와 사랑이 뒤엉킨 시간을 돌아보며 한 걸음 더 성숙해진다. 최시온 작가의 말처럼 가을은 “모든 것이 익고 또 떨어지는 계절”이며, 그때 심장 위로 떨어지는 고독과 우울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슬픔을 방어하기엔 방어가 최고』는 슬픔에 관한 책이면서, 슬픔을 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떠나보낸 뒤에도 기억하고, 상실한 뒤에도 사랑하고, 마음에 금이 간 뒤에도 다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서로 다른 열일곱 명의 가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타인의 마음에서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균열이 넓어져 길이 된다면, 우린 만날 것이다”라는 성동혁 작가의 문장처럼, 이 책의 가을은 우리의 균열을 서로에게 닿는 길로 만들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