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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 18세기에 21세기를 살았던 여인
제1부 김만덕, 그리고 18세기 제주의 일상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 나는 양민의 딸이오 - 거상을 꿈꾸다 - 한 걸음 더 : 만덕 생애담의 허와 실 시대 변화를 읽는 눈 - 조선시대의 여상인 - 포구, 조선 후기 지방 상업의 중심 - 객주의 역할 - 육지 상인과의 첫 거래 - 한 걸음 더 : 제주 여성의 삶 제주에서 상인이 된다는 것 - 상업의 도시 제주 - 토착 상인들의 횡포 - 실패의 쓴맛 - 한 걸음 더 : 제주의 역사 제2부 거상의 탄생 거상이 되기 위한 첫걸음 - 제주 오일장 - 하늘이 정해준 사람 - 한 걸음 더 : 18세기 장시 타고난 장사꾼 - 인재를 알아보는 눈 - 미래를 위한 준비 - 한 걸음 더 : 제주 관기의 세력 육지와의 직거래 - 배를 구하다 - 사람을 모으고 시장을 살피다 - 첫 출항 - 상인의 마음가짐 - 한 걸음 더 : 조선시대의 돛단배와 그 항해 모습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야 - 깨끗한 회계장부 - 만재와 언년이의 혼사 - 혼인잔치에서 들은 따끔한 충고 - 한 걸음 더 : 제주의 풍속 주문생산제의 도입 - 제주의 특산품에 주목하다 - 잠수들과의 거래 - 말총의 전매 - 한 걸음 더 : 제주의 특산물 제3부 이제 곳간을 열어라! 공물 진상선 경합 - 제주의 공물 진상 - 이제부터 만덕이 제주 최고의 거상이다! - 바람에 울고 웃는 제주 사람들 - 바른 길을 가지 않은 자의 초라한 말로 - 한 걸음 더 : 바다와 관련한 제주의 민속 신앙 만덕, 널리 덕을 베풀다 - 최악의 기근 - 남에게 베푸는 것도 상도 - 우릴 살린 이는 만덕이로다 - 제주의 여인, 바다를 건너다 - 한 걸음 더 : 조선시대 제주의 지역적 위상 이분이 임금이시고, 저곳이 금강이로구나 - 임금을 만난 첫 번째 양민 여성 - 모든 이의 꿈, 금강산에 오르다 -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부록 1 : 김만덕 연보 부록 2 : 김만덕 관련 문헌 목록 부록 3 : 채제공의 [만덕전]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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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을 모르는 운명의 개척자
김만덕은 제주의 양갓집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관기에게 의탁해 살았던 탓에 본의 아니게 관기의 신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스무 살 무렵 스스로 관아에 찾아가 양민 신분을 회복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녀가 여타의 기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적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당시 기녀들이 기적에서 벗어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첩의 길을 택하는 것이었다. 한 남성을 선택하여 가부장제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덕은 논리적인 언변과 당당함으로 본래의 신분을 되찾았고, 곧이어 상업의 세계에 뛰어들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삶을 시작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꽃으로 피기보다는 새가 되어 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신분을 회복한 만덕은 행상으로 돈을 모아 포구에 객주를 차렸다. 조선시대에도 여상인이 적지 않았으나 대개 소소한 행상을 하는 수준이었지, 만덕처럼 여러 남성들을 거느리며 큰 규모의 객주를 운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만덕은 객주의 운영에만 매진하면서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 노비나 기녀가 아닌 여성이 독신으로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덕이 독신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녀에게 주체적인 삶에 대한 자각과 사회제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는 뜻이다. 훗날 제주에 기근이 닥쳤을 때 어렵게 모은 전 재산을 내놓은 것이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말에 한양으로 가서 임금을 만나고 금강산에 오르고 싶다고 한 것에서도 만덕이 얼마나 자유롭고 주체적인 인물이었는지가 잘 드러난다. 결국 그녀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수많은 선비들이 흠모하는 대상이 되었으니, 시대와 불화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운명을 개척해간 조선 최고의 여장부였다고 할 만하다. 모험과 도전에 능한 혁신적 기업가 만덕은 조선 후기의 시대 변화에 명민하게 반응한 능력 있는 사업가였다. 그녀가 살았던 영ㆍ정조 시대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변화가 일던 시기로, 선박을 통한 상품의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포구가 새로운 상업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게다가 그 주변에는 장시가 개설되어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규모의 상업 도시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하나의 상권을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 변화 속에서 만덕은 운송 체계에 기초한 유통망이 상업 발전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바로 객주였다. 객주는 여관의 구실도 했지만, 물건을 위탁받아 팔거나 거간하는 중간상의 역할도 했다. 만덕은 객주를 중심으로 제주의 양반층 부녀자에게 육지의 옷감과 장신구, 화장품 등을 팔고, 제주의 특산물인 미역, 전복, 표고, 양태, 말총, 녹용, 귤 등을 육지에 팔아 시세차익을 남겼다. 그녀는 중간상의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선박을 소유해 육지와 직거래를 실시했으며, 수공업자나 목축민 등과 직접 계약을 맺어 물건을 주문생산하는 '선대제'의 방식을 도입하여 거래의 규모를 키워갔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공물 진상선 경합이라는 사건으로 보여주고 있듯, 관아의 물품을 조달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만덕은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통찰력과 과감한 투자, 모험 정신으로 변방이라는 지리적 한계와 여성에게 강요된 시대적 굴레를 극복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최근 뛰어난 사업적 수완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여성 기업가들이 사회 전면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200여 년 전에 그 선구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만덕의 삶은 오늘날 마땅히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화폐인물 1호로 만덕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나눔을 실천한 선구적 자선가 만덕은 제주에 최악의 기근이 닥친 1795년 전 재산을 관아에 기부했다. 그때는 조정에서 보낸 구휼미를 싣고 오던 배들이 침몰하면서, 3년 전부터 계속된 기근이 최악의 상황을 맞은 시기였다. 당시 경제력을 지닌 몇몇 양반층 인사들이 구휼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만덕처럼 전 재산을 내놓은 경우는 없었다. 이는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기부'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이전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일이다. 평생에 걸쳐 모은 재산을 아무런 대가 없이 내놓은 만덕의 모습에서, 일찍이 사회 환원의 의미를 깨달은 선구자의 면모와 마침내 꿈을 이룬 사람이 이른 무상의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 "이제 곳간을 열어라!"라고 외치던 만덕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재산을 더 많이 축적하여 후손에게까지 물려주려고 하는 우리와 달리, 만덕은 상인이자 생활인의 입장에서 분배의 문제를 가장 먼저 고민하고 실천한 선구자였다. 만덕의 기부는 오늘날로 치자면 거대 기업의 경영자가 그 기업이 내는 이윤 전부를 사회에 환원한 것이나 다름없다. 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결정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 만큼, 만덕의 뚜렷한 주관과 결단력은 빛을 발한다. 그동안 역사 서술에서 소외되었던 만덕의 삶을 복원하는 일은 결국 오늘날 우리 곁의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는 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역사를 읽는 한 가지 이유를 분명히 제시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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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심사임당, 나혜석, 허난설헌 등 역사 속의 여성인물을 재평가하고 기리는 사업이 지방자치단체마다 전개되고 있지만, 김만덕보다 큰 비중을 갖고 있는 인물은 없다. 21세기가 요구하는 여성상은 역경을 뚫고 일어난 여성, 사회와 함께 하는 여성으로 신사임당은 가부장제가 선택한 여성이기 때문에 이에 부적합하다. 김만덕은 21세기를 사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귀감이 되는 여성상인 만큼 화폐 도안 개정 및 고액권 발행 때 반드시 화폐인물로 들어가야 한다. --- '여성인물을 화폐에! 시민연대' 대표 김경애 교수 (동덕여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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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여성 인물의 발굴
조선의 서민층 여성 중에서 생전에 김만덕만큼 큰 공적 명예를 누린 이는 없었다. 그녀는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안동 장씨 등이 개인의 뛰어난 능력으로 일부 상류층에 알려졌던 것과는 사뭇 대비되는 인물이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들은 양반층에 속했고, 남성들이 정의한 위인의 조건에 들어맞는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만덕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보다 능동적인 인물이었고, 일찍이 나눔의 가치를 깨달은 말 그대로 '큰' 상인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만덕을 한국 역사(특히 여성사)를 대표할 새로운 인물로 내세우려 한다. 만덕은 누구보다 비참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결국 모든 금기를 깨고 제주 최고의 거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룬 뒤에는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즉 그녀의 삶을 이끌었던 것은 축적이 아니라 성취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부자유한 시대, 빈한하게 자란 한 여성이 자아실현에 매진하는 모습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어여쁜 아내, 인자한 어머니가 되기보다는 꿈을 가진 한 사람의 '나'로 살았던 김만덕. 그녀는 우리 시대의 진취적 여성들은 물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다. 제주 역사의 재조명 이 책은 김만덕의 일대기와 더불어 18세기 제주 문화사를 표방하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기록을 놓고 한 인물의 일대기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를 전면적으로 고찰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무엇을 입고 먹으며 살았는지,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고단한 삶을 달래기 위해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등이 촘촘히 들어찬 이야기 속에서 만덕은 그 시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생생한 캐릭터로 되살아났다. 그 과정에서 역사적으로는 유배의 땅이었고, 현재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지로만 여겨지는 제주가 독특한 산물과 뛰어난 해운기술을 가진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다. 그동안 제주는 이국적인 자연환경과 풍습, 언어 혹은 4ㆍ3 사건 등의 어두운 현대사로 우리의 역사 인식 속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사실 김만덕이라는 걸출한 여성도 국내외를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지이자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했던 제주라는 지역적 배경 덕분에 등장할 수 있었다. 제주는 척박한 자연환경 때문에 예부터 농업보다는 상업이 크게 발달한 지역이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상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기 때문에, 집안 살림과 가족들의 생계는 주로 여성들이 책임져야 했다. 제주 여성의 강인한 생활력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만덕은 유교적 질서가 확고히 자리잡은 육지에 비해 여성들의 적극적인 경제활동이 쉽게 용인되었던 제주의 독특한 환경이 만들어낸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간 '정창권식' 글쓰기 정창권은 그동안 여성, 장애인 등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과 결혼생활, 이혼, 가정폭력 등 일상적인 소재, 그리고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박진감 넘치는 글쓰기로 국내 미시사 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온 연구자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만의 글쓰기 방식을 한층 더 강화하여 픽션 부분에는 이야기체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고,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설명을 더하는 구성을 취했다. 대신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상황이나 제주의 풍속 등 내용의 이해를 돕지만 이야기의 전개상 뺄 수밖에 없었던 부분은 정보 페이지에 수록하는 방식으로 구성상의 한계를 보완했다. 그의 이러한 글쓰기에 대해 사료적 한계와 학문적 엄밀성을 묻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상상의 여지를 넓혀 획일화된 글쓰기를 피하고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기를 바라는 그는 자신의 방식을 좀더 밀고 나갈 생각이다. 그는 사실 관계를 엄밀히 고증하는 역사학자의 입장이 아니라, 결혼이나 가족, 사랑과 같은 우리 주변의 일들이 과거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꾼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 학자의 글은 그와 언어를 공유하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지만, 이야기꾼의 말에는 누구나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실제로 그의 글은 한 번 잡으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읽어 내려갈 수 있고, 그만큼 독자의 폭도 넓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을 "주변인들의 생활사를 콘텐츠화하는 아웃사이더"라고 소개했다. 그는 요즘 문화 콘텐츠의 생산과 공유에 관심을 갖고 사이버전시회 등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최근의 관심은 이 책에도 많이 반영되어 있는데, 이야기체로 사건을 전개하는 영상적 글쓰기와 풍부한 시각자료, 생활사의 세세한 복원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자신의 저작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거나 아동물이나 만화 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는 그에게서 모든 문화 장르에 열려 있는 21세기형 연구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