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개화기(1883~1910)
현대사의 견인차 근대 신문의 효시 근대 언론의 역할 민족지와 친일지의 대립 2. 수난기(1910~1945) 한일합방과 민족지의 소멸 3·1운동과 민족지의 재생과 발전 일제의 침략과 민족지의 재소멸 3. 격동기(1945~1960) 해방과 감격. 혼란과 격동의 미군정기 신문 좌파 신문의 몰락과 우파 정론 신문의 등장 전쟁과 전시 신문 자유 언론의 기반 아래 상업지로 4. 융성기(1960~2000) 정기 간행물의 급증 언론 탄압과 신문의 상업주의 언론 통폐압과 신문의 독과점화 신문의 창간과 복간. 증면 경쟁 신문 개혁 신문의 다변화 7. 신문 편집 초창기 신문 편집 제작 시스템의 발달 지면 체재의 현대화 신문 제목의 변천사 8. 신문 광고 개화기 일제 무단 정치 시기 3·1운동에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강제 폐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강제 폐간 이후 해방에서 1960년대 말 1970년대. 눈부신 성장기 개방 시대 |
차배근의 다른 상품
|
이처럼 한일합방 이전부터 일본은 식민 통치에 방해가 되는 우리 나라 민족지의 말살을 획책한다. 그러다가 1910년 8월 22일에 강제로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한 뒤, 8월 29일에 그 조약을 공포하고, 대한제국을 조선으로 개칭하고 조선총독부를 설치한다.
이튿날 대한매일신보를 강제로 매수하여 총독부의 한글판 기관지로 만든 후 대한이라는 두 글자를 떼어 내고 매일신보로 개제한다. 제호에 대한이나 황성 등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단어가 붙은 모든 신문에게 그 단어를 떼도록 하면서 폐간을 강요한다. 1909년 6월 2일에 대한협회의 오세창 등이 창간한 대한민보는 1910년 8월 30일자부터 대한이라는 두 글자를 떼고 그냥 민보로 개제하나 이튿날 폐간하고 만다. 그런가 하면 이완용 친일 내각의 앞잡이 대한신문(1907년 7월 18일 창간)도 8월 30일자로 한양신문으로 제호를 고치나 9월 1일에 매일신보에 흡수된다. --- pp. 81-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