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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집을 떠났다
무던히 떠나왔던 장소와 시선의 여행
박민아 글
건율원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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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율원 인문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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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세상

세상 밖으로 나를 꺼낸 너, 몰타
시간 위에 누운 세상
십자군이 달리던 골목
삶의 단서들
펄떡거리는 것은 나와 길거리의 물고기뿐
바다는 다행히 시원했다

2부 나

멍의 자리
예나 게나 똑같다
토끼를 찾느라 너무 바빴어
너에게 물어야지
신디케이트론의 위험
엄마, 상담을 예약했어
살만하니 떠난다

3부. 길

결정의 메커니즘
나를 꺼내는 장소
바람 인형
요리, 헤아리고 다스리는 일
자전거
먹이
빈집

4부. 타인

출산의 방
살 수 있는 자격
전지적 관찰자 시점
빠에야
생명이 머무는 곳
시선의 행선지

5부. 존재

불편
바람을 사랑하는 법
후퇴
깨 볶다 철학
세상의 남자친구
달 이고, 별 내린 밤

저자 소개 1

한국에서는 회계사로 회계법인과 외국계 기업에서, 몰타에서는 투자은행 내부감사로 일했다. 현재 바르셀로나에서 RESTAURANT MINA와 여행자를 위한 집, CASA MINA를 운영 중이다. 보편적 자아로서의 삶을 슬슬 물리고 창조적 자아로서의 삶을 살고자 낮에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밤과 새벽에는 SSWB-ACT 코치, 북클럽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2025년 엄마의 유산, 너 살아있니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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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18쪽 | 150*225*30mm
ISBN13
9791122221046

책 속으로

나의 위험? 승진에 누락될 위험, 남에게 사기당할 위험, 길거리에 나앉을 위험, 관계에서 상처받을 위험, 그리고 제일 무서운 죽을 위험. 여기까지 여러 가지 위험에 생각이 미쳤을 때, 갑자기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엄청난 위험이 참치처럼 수면 위로 펄떡 튀어 올랐다. 나로서 살지 못하고 죽을 위험!
- 「신디케이트론의 위험」 중에서

결국 나는 묻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싸우려고 들었나?’ 존재의 증명.
증명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결국 나는 증명하고도 존재하지 못했다.
나는 존재하기 위해서 자꾸 떠났다.
- 「살만하니 떠난다」 중에서

속도는 결코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지 못했다. 왜 나는 멈춰서 보는 대신 바빠서 안 보기를 택했을까? 멈추면 보이는 것은 자신이었다. 나 자신을 보는 것이 나 자신을 마모시키는 일보다 힘들었음을 나는 자전거 수리점에 쭈그려 앉아 인정해야 했다.
- 「자전거」 중에서

각진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서는 내가 아니라 방바닥을 뒹구는 나였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서 바람을 느꼈다. 아무 힘도 없는 것처럼 존재하지만, 존재로서 힘이 있는 바람.
나는 인형의 모양으로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인형이 사라진 뒤에도 바람은 남아있었다.
바람 인형은 존재하기 위해 바람이 필요하지만, 바람의 존재에는 바람 인형이 필요하지 않다.
생존에는 필요한 것이 많지만, 존재에는 필요한 것이 없다.
- 「바람인형」 중에서

낯선 장소는 모두에게 똑같이 낯설어서,
익숙한 곳에서 늘 앞장섰던 나, 그 뒤에 있던 나, 더 깊이 숨어 있던 나도 다 같이 기웃기웃 쭈뼛쭈뼛 나와 보는 것 같다.
- 「나를 꺼내는 장소」 중에서

예외는 없었다. 크고 외롭고, 황량했다. 무성한 잡풀, 용도를 모르는 잡동사니, 꽉 막힌 물고.
내 머릿속이 잡초밭이고 잡동사니 창고였고, 주인 없는 빈집이었다.
- 「빈집」 중에서

출판사 리뷰

잘나가던 회계사는 왜 느닷없이 몰타로 떠났을까?

증명하는 삶에서 벗어나려 떠났다가
자신이라고 믿었던 것들마저 의심하게 된 한 여자의 10년

한국에서 잘나가던 회계사였던 저자, 박민아는 어느 날 두 아이를 데리고 이름도 생소한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로 떠났다.

이 여자의 선택은 처음부터 심상치 않다. 익숙한 삶을 박차고 나서는 데 주저함이 없고, 마음이 움직이면 일단 몸부터 움직인다. 남들이라면 한 번 더 계산하고 따져볼 일 앞에서 그녀는 느닷없이 방향을 튼다.

그런데 정작 낯선 세상에 도착하자
모든 것이 그녀의 계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당연한 일은 이상한 눈초리를 받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

정확성과 효율을 믿고 살아온 사람에게 이보다 더한 혼란이 있을까.
그녀는 당황하고, 따지고, 분개한다.
때로는 어이없이 당하고, 때로는 주먹을 쥐고 맞선다.
그런데 처음에는 세상이 이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상한 것은 세상일까, 아니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일까?
그 질문 하나가 이 여자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간다.

이 여자는 삶도 예측 불허지만, 문장은 더 예측 불허다

이 책의 매력은 저자가 살아온 독특한 이력에만 있지 않다.
그 삶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방식은 더욱 독특하다.

저자는 좀처럼 점잖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남들이라면 그저 불편했다고 적고 말 상황에서 자신의 반응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느긋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혼자 머릿속에서 공연한 달리기를 자처하고, 바람 빠진 인형 하나를 보다가 자신이 평생 부풀려온 존재의 모양을 의심한다.

골목의 토끼,
통학버스,
시장에서 만난 식재료,
이웃과 나누는 음식,
집 안에 스며드는 바람까지.
그녀의 시선에 걸려들면 평범한 것들도 좀처럼 평범하게 끝나지 않는다.

관찰은 엉뚱한 데로 튀고,
문장은 느닷없이 방향을 틀며,
익살스럽게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 순간 독자의 생각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그렇다고 어려운 철학 용어를 앞세우지도 않는다.
자신이 겪은 일을 자신만의 언어로 밀어붙인다.
능청스럽고, 발칙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향해 사정없이 질문을 던진다.

한바탕 웃으며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웃음이 멎는 지점에 도착한다.

이 책은 문장을 따라가는 재미와
생각을 따라가는 긴장이 함께 있는 인문학 에세이다.

세상을 향해 뻗었던 손가락이 결국 자신을 가리켰다.

이 책은 흔히 기대하는 해외 생활의 낭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몰타의 쪽빛 바다도, 바르셀로나의 골목도 등장하지만, 저자의 관심은 아름다운 풍경을 수집하는 데 있지 않다. 그곳에서 살아내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믿고 있었는지 발견하는 데 있다.

시간은 정확해야 하고,
일은 효율적이어야 하며,
노력에는 결과가 따라야 한다.
사람은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자신은 언제나 옳은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런 믿음으로 살아온 사람이 전혀 다른 질서의 세계에 던져졌다.

처음에는 그 세계에 대들며 조목조목 따졌다.
하지만 내가 아닌 모든 것을 향한 시선이 자신 안으로 들어오자 바뀌어야 할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아닌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시작된다.

나는 왜 기다리지 못하는가.
나는 왜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는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은 누구의 기준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

그리고 마침내 가장 불편한 질문에 도착한다.

내가 나라고 믿었던 것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그때도 나는 나일까?

이 질문 앞에서 저자는 자신의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잘못 판단하고, 실패하고, 고집을 부리고, 뒤늦게 깨닫는다. 자신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인정하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

그 솔직함이 이 책의 사유를 살아 있게 만든다.

증명하기 위해 살았던 사람이 증명하지 않고 존재하는 법을 묻는다.

저자는 오랫동안 무언가를 증명하며 살아왔다.
능력을 증명하고,
선택을 정당화하고,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으려 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애썼는지 묻게 된다.

“증명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결국 나는 증명하고도 존재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가장 뼈아픈 문장 중 하나다.

저자는 자신을 설명하던 것들이 사라지는 경험을 통과한다.
자신이 쌓아온 성취와 역할, 확신이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해 주지 못하는 순간을 만난다.
그러나 그 빈자리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한다.

“바람 인형이 없는 곳에서도 바람은 불었다.”

바람을 넣어야 비로소 모양을 갖추는 인형과 달리
바람은 어떤 모양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 단순한 현상에서 존재에 관한 하나의 사유를 길어 올린다.

“생존에는 필요한 것이 많지만, 존재에는 필요한 것이 없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러한 문장들이 책상 앞에서 만들어진 관념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직접 흔들어보고
그 흔들림 속에서 얻은 질문을 문장으로 남긴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
성공의 공식을 제시하지도,
인생의 정답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정답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하나씩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가 동경해야 할 것은 ‘해외살이’가 아니라 ‘나로서 살이’다.

10년 동안 한국과 몰타, 바르셀로나를 오가며 저자가 발견한 것은 낯선 나라의 특별함이 아니었다. 익숙한 세계를 떠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세상과 거리를 두자, 세상을 바라보던 자신의 방식이 보였고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러나 이 책은 멀리 떠나야만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 떠나야 할 곳은 익숙한 장소가 아니라 익숙한 판단, 그리고 오래도록 자신이라고 믿었던 역할과 이름, 남의 시선으로 세워놓은 기준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해외에서 살아가는 일을 대단한 용기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으로 용기가 필요한 일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동경해야 할 것은 ‘해외살이’가 아니라 ‘나로서 살이’라고.

이 책은 그 말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지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다. 느닷없이 떠나고, 거침없이 부딪히고, 엉뚱하게 질문하며, 끝내 자신이라고 믿었던 것들까지 의심해 버린 한 여자.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도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누구의 기준으로 살고 있는가.
무엇을 그토록 증명하려 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껏 나로 살아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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