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림, 드림, 드림 007
깨어나 035 여덟 도시 이야기 045 그린 스크린 2122 067 태풍의 이름을 잊은 것처럼 083 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 111 섬의 애슐리 145 철관의 공주 193 절연 223 발화되지 않는 257 해설 | 오은교(문학평론가) 이야기의 크래프티비즘 283 작가의 말 299 |
鄭世朗
정세랑의 다른 상품
|
사람들이 매혹을 느끼는 몽환의 일러스트가, 선경에게는 사진을 보고 옮겨 그린 듯한 사실주의 작업이라는 게 기이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스스로를 비웃으면서도 선경은 타인의 꿈을 열고 들어가 볼 꼴 못 볼 꼴을 다 보며 소재를 찾았다.
---「드림, 드림, 드림」중에서 “나는 쟬 알아. 다시 하고 싶으면 어떻게든 할 애야.” 화희는 나도 내리지 못한 결론을 내리고는 나를 꽉 안았다.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와. 떠나야 돌아올 수도 있지. 그래도 돼.” ---「깨어나」중에서 이야기보다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은 좀처럼 드무니 접착제처럼, 보강재처럼 도시에 덧대어보자고 했다. 다수의 스토리텔러들이 비밀 유지 합의서와 함께 합류했다. 어떤 이야기들은 공식적인 경로로, 또 어떤 이야기들은 은근한 방식으로 창작되어 퍼져나갔다. ---「여덟 도시 이야기」중에서 “진통제 있는데 줄까요?” “진통제는 나도 있습니다.” 시아는 북한 사람에게 남한 제품을 권했을 때 좋은 반응이 돌아오는 적이 없다는 것을 잠시 잊고 말았다. 진주에서 온 자신은 평양 맥주를 거리낌없이 인정하건만 서운했다. ---「그린 스크린 2122」중에서 시를 읽는 시간에는 안쪽이 환해졌다. 사는 데 훨씬 중요하고 실용적인 것들도 많이 배웠을 텐데 낭독의 순간들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법을 배우고 권리를 배우고 한자를 익혀 신문을 읽었는데, 마지막에 남은 것이 시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태풍의 이름을 잊은 것처럼」중에서 할머니는 고통을 모른 척했고 가난을 모른 척했다. 용돈을 모아 파스를 사줬을 때 어찌나 발끈하던지. 할머니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석류 주스를 사줬을 때가 훨씬 반응이 좋았다. “결국 다 호르몬 때문이다.” ---「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중에서 그러니까 그 대재앙이 덮치기 전에, 나는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패배감도 입안에 오래 두고 굴리면 사탕맛이 나니까. ---「섬의 애슐리」중에서 가경은 잊고 흘리기 위해서도 결심이 필요하다는 점이 새삼 기묘하게 느껴졌다. “불행은, 상실은, 손해는, 상처는 어쩔 수 없이 올 거야.” 불확실한 것들을 불확실하게 두기로 하자 가경의 안쪽에 엉켜 있던 부분이 다소간 느슨해졌다. ---「철관의 공주」중에서 반생의 느슨한 인연, 중년을 지나 노년에도 이어질 거라 믿었던 관계를 스스로 끊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삶에서 미끄러져버렸다고 생각했다. 싱크가 무참히 어긋나버렸고 다시는 제자리로 맞추지 못할 거라고. ---「절연」중에서 “한 번만 마주쳐봐라, 그때 못한 말 쏟듯이 해버릴 거다 늘 마음먹고 있었는데 나이드니까 다 까먹었다. 갚아주는 것도 기억력이 좋아야 가능해.” “기억력뿐이겠어? 기력은 있어?” “없어.” ---「발화되지 않는」중에서 |
|
· 작가의 말
“그 이야기는 언제 책으로 묶이나요?” 독자분들이 조심스럽게 물어오실 때가 많았습니다. 대놓고 재촉하셔도 괜찮은데 그러시지 않아 더 죄송했습니다. 흩어져 있던 짧은 이야기들도 아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 점점 긴 이야기 쪽에 끌리고 있어서 단편집으로 인사드리는 일은 한동안 없을 듯합니다. 형태와 색깔이 제각각인 이야기들도 기꺼이 만나주시는 분들이 호방한 분들일지 꼼꼼한 분들일지 늘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열다섯번째 책을 이렇게 끝맺고 다음 열다섯 권을 채워나가려 합니다. 미래의 밀도를 결정 짓는 것은 필시 제가 아니라 읽어주시는 분들일 겁니다. 2026년 가을 정세랑 |
|
삶을 망원경으로 볼 수 있다면 엉망인 우리도 좀 괜찮아 보일 수 있을까? 현미경과 망원경을 번갈아 쓰며 이야기의 배율을 조정하는 정세랑의 작품들은 삶이 언제나 그것을 포착하는 화각의 형식보다 크거나 작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작은 일도 모서리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처럼 크고, 큰일도 쪼개어 해낸다면 찻잔처럼 작은 모금이 된다고, 삶은 다른 배치를 얻을 수 있다고. 정세랑의 소설은 오늘도 서로 다른 배율을 가진 이야기들을 엮는 재봉틀처럼 부지런히 달리고 있다. - 오은교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