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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영화로운 사주
1장. 음양오행 음양오행과 사주명리 나무로 만든 집 목 [늑대아이] 사랑이야말로 화 [헤어질 결심] 물레 앞에서 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열매의 시간 금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겨울의 이름 수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2장. 십성 십성 잠든 호랑이 비겁 [라이프 오브 파이] 폭로 식상 [서브스턴스] 통과하는 자 재성 [타짜] 발레리나와 서퍼 관성 [빌리 엘리어트] 늦봄 인성 [리틀 포레스트] 맺으며 지나온 것들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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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을 잣는 자
처음처럼 조용해진 가오나시가 센을 따라 기차에 오른다. 창밖으로는 어스름이 내리고, 물 위를 달리는 기차 안은 고요하다. 센과 가오나시, 어울려 보이지 않는 이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이 장면은 이상하게 평온하다. 가오나시는 처음보다 작아지고 순해져 있다. 사금도, 음식도, 삼킨 목소리도. 그는 비어 있는 채로 센 곁에 앉아 있다. 그저 손을 한번 내민 인연으로 둘은 같은 길 위에 서 있다. 기차에서 내린 가오나시는 센과 함께 제니바의 집으로 향한다.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 제니바는 자상하고 따뜻한 마녀다. 유바바가 이름을 빼앗아 사람을 부리는 자라면 제니바는 이름을 묻지 않고 곁을 내어주는 자다. 얼굴은 같지만 둘은 전혀 다른 존재다. 가오나시에게도 똑같다. 이전 그가 누구였는지, 무엇을 했는지, 왜 여기 왔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그에게 물레 앞, 자리를 내어준다. 그리고 실을 잣게 한다. 처음으로 가오나시가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 삼키지 않고, 내밀지 않고, 빼앗지 않고. 물레를 따라 손이 천천히 실을 감는다. 가오나시는 센과 여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제니바의 집, 물레 앞에 남는다. 그것이 그가 도달한 자리다. 누군가를 삼키지도 무언가를 내밀지도 않고, 자기 손으로 실을 감으며 비로소 평온함에 이른다. 사주 오행에서 여러 기운들이 섞여 있는 ‘토’는 그 안에 가장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겉은 흙으로 덮여 있으니 어떤 때, 토는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상태가 되기 십상이다. ‘내가 누구다’ 같은 뚜렷한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토가 자신을 드러내는 건 어느 자리에 서느냐다. 마치 영화 속 가오나시와 쌍둥이 마녀처럼 말이다. 여관 안의 가오나시는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욕망에 이끌려 스스로 괴물이 된다. 같은 얼굴의 쌍둥이 유바바와 제니바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삶을 사는 인물이 된다. 변해야 할 건, 이름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자리였다. 토는 받아들이는 자리기도 하다. 그러나 받아들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받아들여진 자리에서 무엇이 자라나기 시작할 때, 그제야 받아들임이 완성된다. 흙이 씨앗을 품기만 하는 게 아니라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니바의 집에서 가오나시가 실을 잣는 장면은 그 자체로 완성의 자리다. 스스로 원하던 바를 몰랐던 자가 마침내 자기 손을 쓰기 시작한다. 가면은 그대로 있지만 가면 아래에서 처음으로 무언가가 움직인다. ---본문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