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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펀 현대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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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에 붙여

제1부
섬진 나루
삼도리
화개재
동편
무풍장
달빛휴게소
섬진강 참게탕
동풍
서풍
문학인대회
광주와 대구
목포와 부산
동체자비
강물 소리
대구 무한

제2부
나주 사람
전주 사람
무풍 사람
구례 사람
대구 사람
대전 사람
수원 사람
부산 사람
강릉 사람
광주 사람
서울 사람
인천 사람
평양 사람
북청 사람
제주 사람
철원 사람
목포 사람

제3부
남뫼
명옥헌에서
우포늪
와온
느러지 가자
만연사 산책
달 밭
가보고 싶은 제주도
영산강
부안 생각
서울에 가면
금남시장 가는 길
압구정
광화문
십이령길

제4부
역지
대초원
별곡
용추폭포
채석강에서
귀향
정정진
소소
정치는 마음이다
동편 서편
강물이 되기까지
바람바람
국토대장정
가난 풀이
달빛시리즈

∎해설: 경계 너머의 삶과 역사를 껴안은 장소성의 시학-하상일

저자 소개 1

1956년 전북 부안군 동진면 당봉리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92년 교육문예창작회지에 「이 땅의 헤엄 못 치는 선생이 되어」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나무 위의 여자』, 『만다라화』, 『어머니 나라』, 『나쁜 사과』,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 『슬픔아 놀자』, 『목포, 에말이요』가 있다. 현재 민족작가연합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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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135*210*20mm
ISBN13
9791122234404

책 속으로

무풍장


거기 무풍장에 가며는
기차 허고 바다만 빼고 다 있다네

삼도봉 숲길 따라
간고등어, 소금, 호두, 질그릇 넘어가고
모시적삼, 호맹이, 가락지, 꽈배기 넘어가고
보리쌀, 고추마늘, 산야초, 짐생들 실어가고
그것들 무주장에는 안 가도 무풍장에는 간다네

거기 무풍장에 가며는
충청, 경상, 전라도 사람들 섞어 들어
얼씨구 저절씨구 말도 트고 눈도 트고
맘도 튼다네

영동사람들
김천, 거창사람들
무주, 설천 사람들
그래 그래서 저절로 흥이 난다네
맹근 것들은 대전에서 내려오고
잡은 것들은 안동, 진주에서 올라오고
기르고 따온 것들은 무진에서 실어오고

거기 무풍장에 가며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네
기차 허고 바다만 없고 다 있다네


-------------------------------------------------------------------

광주와 대구


광주에는 무등산이 있고 대구에는 팔공산이 있다
대구에는 낙동강이 있고 광주에는 영산강이 있다

광주에는 충장로가 있고 대구에는 동성로가 있다
대구에는 서문시장이 있고 광주에는 양동시장이 있다

광주에는 명옥헌이 있고 대구에는 하목정이 있다
대구에는 달구벌이 있고 광주에는 서석대가 있다

광주에는 시인 박용철이 있고 대구에는 이상화가 있다
대구에는 청라언덕이 있고 광주에는 호랑가시나무 언덕이 있다

광주에는 학생독립운동이 있고 대구에는 국채보상운동이 있다
대구에는 3.1만세 운동길이 있고 광주에는 3.1만세 아리랑 고개가 있다

대구에는 동촌유원지가 있고 광주에는 지산유원지가 있다
광주에는 기아 타이거즈가 있고 대구에는 삼성 라이온스가 있다

광주에는 생고기가 있고 대구에는 뭉티기가 있다
대구에는 따로국밥이 있고 광주에는 주먹밥이 있다

광주에는 5.18항쟁이 있고 대구에는 10월 항쟁이 있다
대구에는 2.28민주의거가 있고 광주에는 4월 혁명 발상지가 있다

광주에는 228번 버스가 있고 대구에는 518번 버스가 있다
대구에는 동해대로가 있고 광주에는 서해대로가 있다

-----------------------------------------------------

목포와 부산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국도 1호선
목포에서 부산까지 국도 2호선
그렇게 국토는 뻗어갔다
그렇게 국토는 이어졌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부철도선
서울에서 목포까지 호남철도선
그렇게 철도는 뻗어갔다
그렇게 철도는 이어졌다

배고프고 서러운 시절에
‘목포의 눈물’도 ‘비 내리는 호남선’도 불리었다
‘이별의 부산정거장’도 ‘굳세어라 금순아’도 불리었다
그렇게 목포는 일어섰다
그렇게 부산은 커져갔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이 부산에서 표를 얻었다
박정희가 목포에서 지지를 받았다
그렇게 부산은 올곧음이었다
그렇게 목포는 헤아림이었다

3·1운동도 4·19도 서울의 봄도 6월 항쟁도 같이 했다
부두 파업도 철도 파업도 민주노조운동도 희망버스도 함께 탔다
그렇게 목포는 눈물이었다
그렇게 부산은 서러움이었다

목포에서 부산까지 남해철도선
부산에서 목포까지 남파랑길
그렇게 국토는 뻗어갔다
그렇게 국토는 이어졌다

동녘을 받드는 부산은 항구다
서녘을 받치는 목포는 항구다
그렇게 부산은 기적이었다
그렇게 목포는 신명이었다


-------------------------------------------------------

대구 사람


이 사람들 피워내는
말꽃 한번 꼬숩다

“아이고 마! 으데서 왔노”
“이 문딩이~ 밥은 묵읏나?”
“아이다, 배고프다 밥 묵자”

이리 정내미 넘칠 수가 없다
이리 호들갑스러울 수가 없다

“그라마 으데로 갈끼고?”
“거 있잖아 골목에 뭉티기집 말이다”
“맞다 맞아 거기 괴않다 포뜩 가자”

이리 맞아떨어질 수가 없다
이리 의기투합 할 수가 없다

“아이고 이 맛, 뭉티기 즥인다”
“하모! 쫀닥쫀닥 찰방지고 깔끔하이”
“고마 새벽에 잡은 꾸릿살이라 카데”

이 사람들 둘러보면
뭉텅뭉텅 썰어낸 뭉티기처럼 거머당긴다

“마! 뭉티기 지대로 묵었데이”
“그라모, 퍼뜩 일어나자 술 깨가 연락하거라”
“문디 자슥들! 단디 챙겨라 조만간 또 뭉치자”

이리 꼬수울 수가 없다
이리 불끈거릴 수가 없다

이내 말이라면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나선다
마냥 붉어져서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준다

---------------------------------------------------
평양 사람


예전에 대동강 거닐던 풍류남이
보통강 사는 류경이를 만나 허는 말이
“야, 이게 누기오 보통 송객 버들이 아니오
어드러케 얼굴 보기가 그리 힘드오”

이 사람들 대함이 진지하고 싹싹하다
겉으로는 덤덤하게 보여도 삭은 정이 느껴진다
“내래 랭면 대접하갔으니 딴소리 마오
이런 날엔 랭면이 제일입네다 여 들어오라요”

말에 캐미가 있고 높낮이가 과하지 않다
사람 대접이 극진하고 말아 드는 인심이다
“여이 랭면 두 그릇에 쟁반 하나 말아주기오”
“아이고, 정성껏 말아 올리겠습네다! 랭면 사리 곱빼기로 말아 드릴까오?”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고 세심하다
강물 흘러가듯 유유하고 아련하다
“여, 드시라요 동치미 국수에 꿩고기 고명 얹은 랭면입네다
놋쟁반에 고기 편육이랑 채소 푸짐하게 올린 어복쟁반도 맛있게 드시라요”

처음에는 슴슴하나 끝내는 은근하고 고풍스럽다
사람 사람이 시원시원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하다
“이게 맵지도 짜지도 않고 맹숭맹숭하지만 먹을수록 육향이 깊어져요
면발이 쉬이 끊어지고 그래도 한 그릇 뚝딱 말아 묵으면, 더운 거나 허기진 거나 싹 물러 가기.”

이 사람들 말이 유창하다
“랭면 괜찮은 기요?”
“아유, 잘 먹었기오 더위도 허기도 싹 물러갔습네다”
“맛있게 비워주니 내래 고맙습네다 입맛 슴슴할 때 다시 사겠습네다

---------------------------------------------------------

대전 사람


이 사람들
흘려보내는 것
강물 한번 깊은 갑다

지나치지도 모자람도 없다
치우치지도 내세우지도 않는다
공부가 없어도 공부가 되어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잘잘못을 가리지도 않는다
의견이 없어도 의견이 되어 있다

오래 가는 잔불과도 같다
그냥 꺼질 것처럼 비껴가지만
새북이면 뜨신 밥상을 내어주고
사람사람 댑혀 주는 불씨로 살아난다

말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다
길이 있어도 가지를 않는다
이도 저도 옳다고 그렇다고 한다

부풀림도 시새움도 없다
드러내지도 그런 척하지도 않는다
택일이 없어도 택일이 되어 있다

이 사람들
막 내온 가락국수 냄새가 난다
굵은 면발 후루룩
궁금함도 출출함도 달래주던

출판사 리뷰

길 위에서 피어난 삶의 구체성과 뜨거운 연대의 다성악

최기종의 시는 시대정신을 누구보다도 실천적으로 구현하고 있어서 운동가로서의 시, 활동가로서의 시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시인의 이번 아홉 번째 시집 『달빛휴게소』는 시대정신을 삶으로 실천해 온 시인의 뜨거운 발걸음이 담긴 결실입니다. 그의 시에서 미학적 수사와 기교는 한낱 장식에 불과하며, 시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대화이자 소통, 그리고 실천적 운동으로 다가옵니다.

‘달빛휴게소’는 달구벌과 빛고을, 경계 너머의 장소들이 서로 만나고 만개하는 화합과 연대의 공간입니다. 시인은 길 위에서 마주하는 일상의 사람들과 공동체적 장소에서 거침없는 소통을 나누며, 갈라진 시대를 보듬는 건강하고 생명력 넘치는 통합의 세계를 열어냅니다.

이 시집은 사람들의 온기가 어우러지는 활기찬 장터처럼,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온 마음이 무지개처럼 퍼져 나가는 다성악적인 대화의 장을 선사합니다. 그 속에서 들려오는 민중의 숨결과 가락은 세상의 오감을 관통하며 타자를 향한 우정과 환대의 정신을 가슴 깊이 실감하게 합니다.

아울러 나주, 전주, 대구, 부산, 대전, 수원, 평양 등 17개 지역 사람들의 생생한 삶과 특질을 형상화하여, 각양 각지의 사연과 정겨운 사투리가 펼쳐지고 저마다의 자부심으로 들썩거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시에 붙여

시를 쓰면서 동녘을 바라보는 때가 많았다.
이 바람 저 바람이 되어서 그리로 가는 상상에 빠졌다.

전라도 금만경에서 벼 이삭 패어 내면서 완산주 지나 진안고원 넘어, 나제통문 지나 산채비빔밥 훌훌 비벼 먹고 삼도봉 숲길 따라 소백산맥 넘어, 낙동강 건너 김천, 성주로 대구로 영천분지로 간다. 거기서 한우 우둔살 우물우물 씹으면서 하루를 훌쩍 놓기도 하고 읍치에서 동부 서부로 패를 지어 벌이는 고싸움도 줄다리기도 보고, 풍물에 어깨춤을 추면서 돌아다니고 싶었다.

사실 경상도나 전라도는 세시풍속도 같고
자연환경도 같고 사람살이도 거의 다르지 않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흰옷을 즐겨 입는다. 인仁함을 따르고 가족을 건사하고 이웃을 챙긴다. 논에는 벼가 자라고 밭에는 참깨, 들깨가 자라고 산에는 소나무, 참나무가 자란다. 다 같은 ‘단군의 자손’이고 다 같은 ‘동방의 등불’이고 ‘붉은 악마’다.

물론 이 마을 저 마을에도 경계가 있는 것처럼 영호남 사이에도 시비가 있고 나뉨이 있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갈라지고 지역감정의 골도 깊을 것이다. 하지만 다 같은 지구촌이요, 다 같은 한반도요, 다 같은 코리안 공동체일 뿐이다. 먼 우주에서 본다면 그저 푸른 별의 좁쌀만 한 다름일 뿐이다.

영호남을 오고 가는 시를 쓰고 싶었다.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산 따라 물 따라 바람 따라 술렁술렁 젖어가고 싶었다. 말도 섞고 숨도 섞고 노래도 춤도 나누고 거기 그리운 벗들과 만나서 잔이라도 기울이고 싶었다.

수유교칠水乳交漆이란 말이 있다. 물과 우유가 섞이듯이, 아교와 칠이 붙듯이 합쳐진다는 것이다. 경상 전라도도 물과 우유가 되어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만나는 그대로 섞이면서 나아갔으면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2026년 10월
남뫼시사에서 최기종

◉전문가 비평

최기종에게 말과 사람, 술과 팔도의 밥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정과 환대의 문학공동체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아름다운 뿌리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 모든 경계는 비인간적인 작위에 불과하다. 달빛휴게소는 광주와 대구를 잇는 고속도로에 있다. 이 연결된 선을 따라가면 지리산을 넘고 섬진강을 건너 영호남이 만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애뜻하다. 광주와 대구, 목포와 부산은 그 흐드러진 말들과 향연 속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서로의 몸을 뒤섞는가. 구례사람, 목포사람, 수원사람, 부산사람, 광주사람, 서울사람, 인천사람, 제주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자부심 속에서 얼마나 들썩거리는가. 문딩아, 깽깽아 정답게 식탁을 앞에 두고 넘나들다 보면, 그의 시처럼 너도 나도, 동도 서도, 얼씨구 좋구나, 그렇게 문학을 하고 사랑을 할 수 있다.

최기종의 시집 『달빛휴게소』는 러시아의 문학평론가 바흐친이 말했던 다성악(polyphony)적인 대화의 장소가 사람과 사람이 붐비는 곳, 곧 장터임을 잘 보여준다. 그곳에서는 못난 이와 잘난 이의 관계가 역전되며, 모든 경계를 허무는 말과 마음의 향연이 무지개처럼 퍼져 나간다. 시집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 육자배기 소리, 잔물결 뭍으로 오르는 소리를 듣다 보면, 문학이란 한 세상을 다 육감으로 관통하고 우정과 환대를 극대화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강해진다. 최기종의 시는 말의 섬세한 결로 글의 완강한 그물을 부드럽게 초월한다. 따뜻한 절창이다.
-이명원(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최기종의 시는 시대정신을 누구보다도 실천적으로 구현하고 있어서 운동으로서의 시, 활동가로서의 시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최기종의 시는 길 위에서 창작된 삶의 구체성과 경계를 넘어선 장소에서의 어울림, 그리고 공동체적 장소에서의 거침없는 소통을 보여준다. 시의 미학이라는 그럴듯한 수사와 기교는 그의 시에서 한낱 장식에 불과하다. 그의 시는 그 자체로 대화이고 소통이고 실천이고 운동이다. 달구벌과 빛고을을 오가는 사람이 함께 만나고 어울리는 ‘달빛휴게소’의 장소성 안에는 최기종의 시가 지향하는 상징적 가치와 의미가 그대로 담겨 있다. 경계 너머의 삶과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에 헌신해온 그의 삶이 마주하는 일상의 길 위에서 그의 시는 건강한 생명력을 드러내는 통합의 세계를 열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하상일(문학평론가, 동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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