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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인의 말
제1부 그래도 ‘통일’이다 13 한탄강 14 만나자 16 금강金剛에서 만나자 18 중련열차 20 물꼬 22 도보다리 24 가출 26 신년에 이런 꿈 28 통일이 안 되는 이유 30 그래도 통일이다 32 북에서 온 편지 34 복기 37 대화 제2부 ‘5월 광주’를 노래하다 43 무등산 45 광주항쟁 11일기 48 그 목소리 50 오월에 피는 꽃 52 대구에서 광주를 말하다 56 80년 광주에서 온 편지 58 금남로 60 해방구 62 살아남은 자여 64 변, 임을 위한 행진곡 66 청년 신영일 - 광주 5월의 들불열사 68 합수 윤한봉 - 5·18 마지막 수배자 71 시민군 정해직 - 5월 항쟁지도부 민원부장 74 527 제3부 ‘제주 4·3’과 ‘여순항쟁’, ‘대구항쟁’ 79 여수동백 80 제주도 오름 82 파르티잔 84 푸른 하늘 시월에 - 대구 시월항쟁에 붙여 86 사드는 가라 88 여순항쟁 90 형제묘 92 느티나무 증언 94 제주항쟁 99 성주사람 100 죽비 102 단도론 104 너븐숭이 퐁랑 - 4·3 제주 북촌리 학살 증언 제4부 천왕봉과 촛불혁명 111 천왕봉 112 선인장 색이 올라올 때까지 114 진짜 봄 115 이런 고개 118 그런 자유에 저항하라 120 더디 오는 너 122 삼일절에 124 모시나비는 돌아오고 싶다 126 용서받을 조건 128 2016년 12월 129 촛불의 노래 132 철쭉제 133 참고인 양금덕 할머니 제5부 이태원, 세월호와 저항의 연대 139 마스크 1 140 마스크 2 142 증발 144 이태원 146 붉음에 대하여 -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하여 148 미얀마를 위하여 150 팔레스타인 152 가자지옥 154 따이한 제사 156 신용길의 눈 159 아직도 물속이다 162 기억은 힘이 세다 165 4월의 기억 168 오열 171 해설 시로 쓴 저항의 ‘한국현대사’ _ 권순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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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가 없어졌다
그런데 누구도 찾지 않았다 우리에게 통일이는 언약이고 믿음이었다 그런데 누구도 걱정하거나 염려하지 않았다 누구도 젖과 꿀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통일이는 어디로 갔을까 엊그제까지만 해도 봄꽃들이 한창이더니 환호와 놀람과 희망을 속삭이고 손짓하더니 이어짐과 자유로움과 결집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더니 통일이의 사자후는 어디로 갔을까 통일이가 가출했다 그런데 아무도 속을 태우지 않았다 우리에게 통일이는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었을까 봄을 시샘하는 꽃샘바람 때문에 그럴까 성조기 나부끼고 촛불이 꺼져서 그럴까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통일이를 잊었다 예수도 석가도 공자도 통일이를 언약하지 않는다 순천자도 역천자도 존귀함을 떠올리지 않는다 통일이는 어디로 갔을까 통일이의 사자후는 어디로 갔을까 ---「가출」중에서 광주에서 그가 말했다 어릴 적에 광주의 산이란 산은 모두가 무등산으로 알았다고 해도 달도 별도 거기에서 뜨고 지는 것으로 알았고 물도 바우도 구름도 거기에서 나려오는 것으로 알았다고 금남로 4가역에서 그가 말했다 모든 큰 소리는 무등산에서 들려왔다고 새소리도 물소리도 밤소리도 거기에서 들렸다고 북소리도 트럼펫 소리도 오포 소리도 거기에서 들려왔고 독경 소리도 함성 소리도 울부짖음도 거기에서 들려왔다고 송정리에서 소를 끄는 무등을 보았고 양동시장에서 품을 재는 무등을 보았고 용봉동에서 음을 고르는 무등을 보았으며 산수오거리에서 붓대를 잡은 무등을 보았다고 모든 평평한 것들은 거기에서 높아지는 것이었고 모든 드높은 것들은 거기에서 낮아지는 것이었다고 석양을 뒤로하고 그가 말했다 아직도 그때처럼 광주의 산이란 산이 무등산이었다고 세계의 산이란 산이 무등산이었다고 상서로운 모든 것들이 무등이 주는 선물이었고 상처 입은 모든 것들이 무등이 주는 시련이었다고 ---「무등산」중에서 내 귓속에 들어온 그 목소리 그때의 그대가 분명하다 잠을 자다가도 그 목소리 피어나서 흠칫 놀래라 그립던 그 목소리 길을 가다가도 뒤돌아다 머리채 흔들며 귓바회 붉히면서 가끔보다 애틋하고 솔깃하고 황홀하고 내 귓속에 똬리 틀고 속눈썹 깜박이며 볼웃음 짓는 아픔이여 위안이여 어제도 그제도 달포에도 그때 그대로 물살 짓는 그 목소리 눈물 나다 휘우듬한 도돌이표여 누군가의 그 목소리 귀에 들어간 몽예라고 부른다면 아프지 않을까 그럴까 ---「그 목소리」중에서 갑오년에 우금치 전투에서 살아남은 자여! 공주에서 상주에서 금구에서 석대벌에서 살아남은 자여! 일제는 그들을 동비라고 했다 봉기에 봉기를 거듭하면서 패전에 패전을 거듭하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여! 지리산 빨치산 유격대에서 살아남은 자여! 추위와 기아에서 재귀열병에서 살아남은 자여! 국방군은 그들을 공비라고 했다 반제에 반제를 거듭하면서 출몰에 출몰을 거듭하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여! 제주항쟁 산사람이 되어서 살아남은 자여! 예비 검속에서 소개령에서 중산간에서 살아남은 자여! 토벌대는 그들을 역도라고 불렀다 반대에 반대를 거듭하면서 은신에 은신을 거듭하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여! 80년 오월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여! 공수부대의 만행에도 헬기 사격에도 도청진압작전에도 살아남은 자여! 신군부는 그들을 폭도라고 했다 타도에 타도를 이어가면서 사수에 사수를 이어가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여! 죽지 않고 살아서 죽은 자의 입이 되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여! ---「살아남은 자여」중에서 여수라고 벙긋하면 저도 모르게 벙글어져서 붉은 속내 드러내는가 아픈 멍울이 불거지고 그날의 그 이름 물어물어 여민 가슴 속속들이 빠개지는가 물 맑은 여수바다 못내 그립던 사랑 겹겹이 피어나서 동박새도 직바구리도 저 좋다고 화답하는가 여수라고 벙긋하면 저도 모르게 뚝뚝 떨어져서 언 땅 벌겋게 물들이는가 ---「여수동백」중에서 제주 4.3항쟁이 일어나자 거기 진압 명령을 받은 제14연대는 우리는 동포를 학살할 수 없다며 38선 철폐와 조국통일을 명분으로 무장봉기한다 궐기문 우리들은 조선 인민의 아들, 노동자, 농민의 아들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사명이 국토를 방위하고 인민의 권리와 복리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제주도 애국 인민을 무차별 학살하기 위하여 우리들을 출동시키려는 작전에 조선 사람의 아들로서 조선 동표를 학살하는 것을 거부하고 조선 인민의 복지를 위하여 총궐기하였다 1. 동족상잔 결사반대 2. 미군 즉시 철퇴 제주도출동거부병사인민위원회 봉기군은 곧바로 경찰서와 관공서를 점령하고 순식간에 순천, 벌교, 보성, 고흥, 광양, 구례를 거쳐 곡성까지 장악한다 이승만과 미군정은 광주에 ‘반란군토벌사령부’를 설치하고 진압작전에 나선다 봉기군은 병력과 화력에 밀려 여수를 버리고 백운산, 조계산 인근으로 후퇴한다 1950년 초까지 백운산, 지리산, 백아산, 불갑산, 회문산 등지에서 게릴라전이 이어진다 ---「여순항쟁」중에서 팔레스타인! 양을 치고 젖을 짜던 사람들 어느 때나 돌아갈거나 네 이름만 불러도 안쓰럽구나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서안에서 저항하는 사람들 어느 때나 자유일거나 네 이름만 불러도 먹먹하구나 시온의 배척인가 종족의 초토인가 네 이름만 불러도 비명이 도는구나 네 이름만 불러도 파괴가 뜨는구나 탱크에 돌을 던졌다고 수백의 팔다리 부러졌다고 하네 저 도시 박격포 쏘았다고 이 도시 폐허가 되었다고 하네 서 있는 것들 누우라고 하네 입 달린 것들 닥치라고 하네 뿔 달린 것들 뽑으라고 하네 집 없는 것들 떠나라고 하네 팔레스타인! 젖과 꿀을 소원하는 사람들 어느 때나 구원이 될거나 네 이름만 불러도 빵이 생기는구나 그렇게 깔려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구나 무너져 내려도 다시 일어서는구나 어느 때나 어느 때나 용서가 될거나 네 이름만 불러도 겨자씨 돋아나는구나 ---「팔레스타인」중에서 나는 고백한다. 국왕을 겁박하여 나라를 팔아먹은 내각대신이었음을 나는 고백한다. 항일 독립군을 공격하고 사살한 간도특설대 장교였음을 나는 고백한다. 독립 운동가들을 억압하고 체포하고 고문한 순사였음을 나는 고백한다. 조선인의 이해에 반하여 기소하고 판결한 판검사였음을 나는 고백한다. 청년 학생들을 전쟁터로 내몬 지식인이었음을 나는 고백한다. 소작인들을 갈취하고 착취한 악덕 지주였음을 나는 고백한다. 일제의 손발이 되어서 부역한 신민 관리였음을 나는 고백한다. 일제에 아부하고 작위를 받은 매판 사업가였음을 나는 고백한다. 신민사관을 주창하고 역사를 왜곡한 사학자였음을 나는 고백한다. 종조부, 할아버지, 아버지가 친일반민족행위자였음을 나는 고백한다. 일신의 안위와 영달만 꾀한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었음을 ---「용서받을 조건」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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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하자는
그 절절한 말이 다가오지 않는다 통일하자고 너무 오래 소원하다 보니 이젠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통일하자는 그 마땅한 말이 왜 이럴까 통일하자고 내미는 손의 온도가 달라서 그러는가 던지는 돌의 무게가 적어서 그러는가 - 「그래도 통일이다」부분 ‘통일하자’는 마땅한 그 말이 더 이상 당위로 실감되지 않는 현실을 시인은 ‘내미는 손’과 ‘던지는 돌’을 통해 환기시킨다. 간명한 비유가 던져주는 커다란 공명이다. 이러한 어조와 어법으로 시인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현대사를 노래한다. 차츰 잊히는 남북통일에 대한 열망을 북돋고 해방 이후 대구항쟁에서 제주 4·3, 여순항쟁으로 이어진 민중들의 아픔과 여망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2부 ‘광주를 노래하다’에서는 1980년 광주의 비극을 죽은 자 중심에서 산 자 중심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세월호와 이태원의 비극, 팔레스타인과 미얀마의 비극을 저항의 연대로 풀어낸다. 그때 건물 안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났어요 계엄군이 앞쪽이 아니라 뒤쪽으로 온 거예요 동시에 헬기가 뜨고 일제 사격을 해왔어요 우리는 황급히 식산국장실로 피했지요 정부군과 총으로 맞설 수는 없었던 거예요 여기서 살 수 있을까 그런 여망뿐이었지요 도리가 없었어요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거짓 자백을 강요당했지요 인간성을 포기당한 시간이었지요 - 「시민군 정해직」 부분 탱크에 돌을 던졌다고 수백의 팔다리 부러졌다고 하네 저 도시 박격포 쏘았다고 이 도시 폐허가 되었다고 하네 서 있는 것들 누우라고 하네 입 달린 것들 닥치라고 하네 뿔 달린 것들 뽑으라고 하네 집 없는 것들 떠나라고 하네 팔레스타인! 젖과 꿀을 소원하는 사람들 어느 때나 구원이 될거나 네 이름만 불러도 빵이 생기는구나 - 「팔레스타인」부분 권순긍 교수는 해설에서 “최기종 시인의 언어는 구수하고 인정이 넘치지만 메시지는 명쾌하고 시어의 전개는 거침이 없다. 그의 시도 그렇게 내지르는 힘이 있다. 세련된 기교보다도 ‘역사’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두드러진다. 말하자면 그의 시는 민중들의 함성과 피가 어우러진 저항의 현대사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라며 “한국현대사의 아픔과 상처가 동백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고 했다. 나종영 시인은 표사에서 “이번 시집은 우리 민족 현대사에 대한 질곡의 기록이며 시인으로서 부끄럽고 슬픈 기억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우리 민중의 역사에 대한 ‘죽비’이며 묵시록임이 분명하다.”라고 했다. 역사왜곡의 문제가 파다한 요즈음 대한민국 현대사를 직시하고 그 방향을 숙고하고 제시해 내는 최기종의 이번 시집은 수천 쪽의 역사서를 한 권으로 담아 낸 축약서이자 주목할 만한 가집이라 할 만하다. 최 시인은 1956년 전북 부안 출신으로 1992년 교육문예창작회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2년부터 교사의 길을 걸었고 ‘전교조’ 파동으로 해직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굳건하게 교육운동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목포지회장을 맡아 전교조 조직을 이끌어나갔다. 1994년 복직된 뒤에도 안주하지 않고 목포지회장, 신안지회장 등을 맡아 교육운동에 헌신했다. 현재 민족작가연합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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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시인의 말」에서 고백했듯이 최기종의 이번 시집은 우리 민족 현대사에 대한 질곡의 기록이며 시인으로서 부끄럽고 슬픈 기억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우리 민중의 역사에 대한 ‘죽비’이며 묵시록임이 분명하다. 민족통일, 5월 광주, 제주 4·3과 여순항쟁 그리고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에 이르기까지 먹먹하고 비극적인 시공간의 기억을 시인은 ‘어둠의 빛’이라고 했다. 그의 시 앞에는 어떤 기교와 서정보다는 오로지 참된 역사와 자유를 위한 도저한 저항이 존재한다. 민족과 역사를 폄하하고 훼절하는 이들이 난무하는 시절에 이번 시편들은 참으로 용기 있는 시정신의 표상이자 시인의 절규로 읽힌다. 그것은 좋은 언어를 뛰어넘은 순결한 시인만이 가질 수 있는 깊고 고귀한 아름다움이다. - 나종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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