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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봄
존 버거의 산문 양장
열화당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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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I
풍경을 그린다는 것
가능한 미래에서 바라본 과거
한 사람이 보는 것
그 순간에 빠져들다
가시성에 대하여
회화와 시간
회화의 장소
가시적인 것에 대한 작은 이론을 위한 걸음
사바강의 제방에서
얼마나 빨리 가는 건가요?
출구를 열며
포강
우리가 작별을 말할 때마다

II
원시적인 것과 직업적인 것
붙잡힌 것
한 무더기의 똥
벌판
창살 너머로
왜 동물을 바라보는가?
유인원 극장
먹는 자와 그가 먹는 것
맨해튼

III
광부들
케이프래스에서 사라진
대중 시위의 속성
체코슬로바키아 홀로
부커상 소설 부문 수상 연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히로시마
시칠리아의 삶
무관심의 극장
시의 시간
사과 과수원
곰 한 마리

IV
낯선 도시의 끝자락에서
스트라스부르에서의 하룻밤
파리를 상상하다
모스크바의 묘지에서
볼로냐의 빨간 차양
르 코르뷔지에
빅토르 세르주
알렉산드르 게르첸
마야콥스키: 그의 언어와 그의 죽음
레오파르디
프랑수아, 조르주, 그리고 아멜리에: 세 부분으로 된 장송곡
어머니
옮긴이 주
수록문 출처

저자 소개 2

John Peter Berger, John Berger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는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 미술평론으로 시작해 점차 관심과 활동 영역을 넓혀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깊고 명쾌한 관점을 제시했다. 중년 이후 프랑스 동부의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시골 농촌 마을로 옮겨 가 살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농사일과 글쓰기를 함께했다. 주요 저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기』 『제7의 인간』 『행운아』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벤투의 스케치북』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등이 있고, 소설로 『우리 시대의 화가』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는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 미술평론으로 시작해 점차 관심과 활동 영역을 넓혀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깊고 명쾌한 관점을 제시했다. 중년 이후 프랑스 동부의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시골 농촌 마을로 옮겨 가 살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농사일과 글쓰기를 함께했다. 주요 저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기』 『제7의 인간』 『행운아』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벤투의 스케치북』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등이 있고, 소설로 『우리 시대의 화가』 『G』, 삼부작 ‘그들의 노동에’ 『끈질긴 땅』 『한때 유로파에서』 『라일락과 깃발』, 『결혼식 가는 길』 『킹』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A가 X에게』 등이 있다.

존 버거의 다른 상품

金玄佑

1974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비교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역서로 『스티븐 킹 단편집』 『행운아』 『고딕의 영상시인 팀 버튼』 『G』 『로라, 시티』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A가 X에게』 『벤투의 스케치북』 『그레이트 하우스』 『킹』 『멀고도 가까운』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초상들』, 삼부작 ‘그들의 노동에’ 『끈질긴 땅』 『한때 유로파에서』 『라일락과 깃발』, 『저수지 13』 『4 3 2 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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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1월 0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04쪽 | 140*220*35mm
ISBN13
9788930108300

출판사 리뷰

어떤 한 권으로 말해질 수 없는 작가
존 버거는 흔히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를 쓴 미술비평가, 부커상을 받은 『G』와 『A가 X에게』를 쓴 소설가, 『제7의 인간』과 같은 다큐멘터리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대중을 상대로 쉼없이 짧거나 긴 글을 썼던 에세이스트였고, 그 양과 질의 방대함과 깊이를 감안하면 오히려 산문이 가장 핵심적인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표작을 탄생시킨 사고의 뿌리들이 여기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버거의 선집을 몇 차례 냈던 제프 다이어(Geoff Dyer)는 실상 모든 작품이 그의 대표작이며, 어떤 한 권도 그를 충분히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했다. 버거 스스로도 “우리는 한 곳에서 한 사람의 시각으로 본 모습을 고정하고 보존하는 방법으로 한 인간의 정체성이 적절하게 구축될 수 있다는 주장을 더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썼다. 그의 세상을 향한 태도와 글쓰기는 이러한 생각에 기초해 있으며, 열화당이 존 버거의 전작을 출판하기 위해 노력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열화당이 출간한 존 버거의 책들에 수록되지 못한 산문을 모은 선집으로, 한국 독자들이 그의 글을 더욱 폭넓게 만나도록 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몇 해 전부터 역자, 유족과 논의를 시작해 최종적으로 1959년부터 2009년까지 발표된 46편의 산문을 추린 뒤 번역, 주석 작업, 구성을 진행했다. 여기에는 하나의 주제로 분류하기 어려운 경계에 있는 글, 사적이거나 문학적인 글, 연설문, 공개서한 등을 비롯해, 「왜 동물을 바라보는가?(Why Look at Animals?)」(1977)와 같이 선구적인 저술로 평가받는 것도 적잖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오십 년 전에 씌어졌음에도 최근 발표한 것처럼 현재성을 지니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표작의 뿌리가 되는 글
존 버거는 1950년대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예술과 문화를 사회적 현실에서 분리하지 않는 글들을 여러 매체에 꾸준히 발표했고, 동료 예술가들의 전시나 책 서문, 유럽 지역사회를 위한 글도 썼다. 주로 영어 매체였지만,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의 지면에 그 나라 언어로 번역해 먼저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글들이 어느 정도 모였을 때 산문집을 단행본으로 엮어 냈다. 1950년대에 영국의 진보적 정치 문화 주간지 『뉴스테이트먼(New Statesman)』에 발표한 글들을 모은 『영원한 빨강(Permanent Red)』(1960)이 첫 산문집이었고, 1969년에는 『큐비즘의 한때(The Moment of Cubism)』로 1960년대에 발표한 미술비평들을 모았다. (이 두 책에 실린 초창기 예술 에세이는 『초상들』과 『풍경들』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이후에도 십 년 안팎의 간격으로 산문집을 꾸준히 엮어 내게 되는데 『사물의 모습(The Look of Things)』(1972), 『본다는 것의 의미(About Looking)』(1980), 『하얀 새(The White Bird)』[1985, 미국판은 『시각의 감각(The Sense of Sight)』], 『랑데부(Keeping a Rendezvous)』(1991), 『주머니의 형태(The Shape of a Pocket)』(2001) 등이 그것으로, 구성상 필요할 때 앞서 나온 글 일부를 가져와 재수록하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동료 작가나 연구자들과 함께, 또는 자신이 직접 특정 테마로 묶어 내는 방식을 취했는데, 정치적 에세이를 모은 『모든 것을 소중히하라』(2007), 제프 다이어가 엮은 『존 버거의 에세이 선집』(2001)과 『사진의 이해』(2013), 대영도서관의 ‘존 버거 아카이브’ 책임을 맡았던 톰 오버턴이 엮은 예술가론 『초상들』(2015)과 예술론 『풍경들』(2016)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실리지 못하는 글들이 적잖이 남겨졌고, 때로는 동일한 글이 여러 책에 반복해 실리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 책 『알아봄』에는 그렇게 남겨진, 중복되지 않은 글들이 담겨 있으며, 특히 영국의 정치사회 주간지 『뉴소사이어티(New Society)』에 발표한 글이 다수 포함되었다. 편의상 ‘시각과 예술’, ‘문명과 사유’, ‘참여와 연대’, ‘죽음과 기억’을 중심으로 4부로 나누었으나, 자리를 바꿔도 무방한 것들이 많다. 번호로만 구분하고 장 제목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이 정해진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각 부 안에서는 발표 연도순으로 배열했으며 글의 흐름을 고려해 일부 순서를 조정했다.

그를 움직이게 했던 말, 알아봄
존 버거에게 ‘알아보다(recognize)’는 예술과 사회, 타인의 삶과 역사, 기억과 애도의 문제를 가로지르며 세계를 이해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실천이었다. 실제로 이 동사는 그의 글 곳곳에 등장하고, 그가 ‘의식적으로’ 이 어휘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몸과 머리를 평생 동안 움직이게 했던 가장 핵심적인 단어라고 판단해 책 제목으로 삼았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난쟁이들, 티치아노가 그린 개들, 페르메이르가 그린 집들에서 우리는, 보여지려는 그 의지를, 에너지로서 알아본다. (…) 우리는 다른 시기들에 가시적이었던 것을 마주하고, 그것이 우리의 동반자가 되어 준다.”-「가시적인 것에 대한 작은 이론을 위한 걸음」

1부에는 ‘시각과 예술’에 관한 글 총 13편이 배치되어 있는데, 회화와 가시성에 관한 이론, 드로잉이라는 행위에 대한 탐구, 사진과 영화를 매개로 씌어진 산문들이다. 공통적으로 이 글들에는 추상적인 미학적 고찰이나 미술비평의 세부 논쟁은 담겨 있지 않으며, 바로 이 점이 존 버거의 예술에 관한 글이 지향하는 현재성과 총체성을 보여준다.
「가능한 미래에서 바라본 과거」에서 저자는 특정 계급과 소유 질서에 갇혀 버린 유럽 회화의 역사를 미래 시점에서 되돌아보면서, 진정한 예술의 변화는 혁명적인 사회적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유럽 이젤 회화(액자 안에 든 유화)와 사유재산의 관계를 비판하는 장의 기초가 된 글 중 하나다. 지배 계급의 요구에 종속된 직업 예술가와 제도 밖에 있던 원시 예술가의 시선의 차이를 다룬 「원시적인 것과 직업적인 것」(2부에 위치)에서 공통된 문제의식의 연장을 확인할 수 있다.
「가시적인 것에 대한 작은 이론을 위한 걸음」에서 버거는 회화란 세상을 단순히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와 대상이 맺는 ‘협력’ 관계이자 대화이며, 다른 시대 예술을 가시적인 세계 안에서 마주하고 귀 기울이면 그것은 우리의 동반자가 되어 준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보는 것」에서도 폴 세잔의 예술관을 통해 시각이란 사물들과 관계 맺고 질서를 부여하는 자발적 구성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글의 연결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에 빠져들다」는 죽은 아버지를 그린 경험을 바탕으로, 한 번뿐인 순간 앞에서 드로잉이라는 행위가 어떻게 ‘사라짐’에 도전하는지 보여주는, 시각 이론과 개인적 경험이 만나는 글이다. 이는 드로잉에 관한 탐구인 후기작 『벤투의 스케치북』의 전조가 되는 초기 산문으로 삼을 만하다. 4부 맨 마지막에 위치한 「어머니」는 이보다는 애도의 성격이 더 강하지만, 부모님을 그린 초상화가 각각 실려 있어 가까운 이의 사라짐에 맞서 그가 남기려 했던 순간을 이미지로 만날 수 있다.
아들 이브에게 바친 「얼마나 빨리 가는 건가요?」는 주변 환경과 신체적으로 깊이 교감하는 오토바이 타기와, 일상의 황량하고 무관심한 장소들을 포착한 프랑스 동부 산악 마을 사진을 매개로, 본다는 일이 몸으로 장소에 도달하고 기억을 다시 움직이는 경험임을 탐색한다. 「출구를 열며」는 핀란드의 사진가 펜티 삼말라흐티의 작업에 부치는 글로, 사진마다 등장하는 개와 특유의 빛을 길잡이 삼아 인간 세상 너머에 존재하는 또 다른 가시적 현실로의 비밀스러운 출구를 열어 준다. 「포강」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적 시선과 풍경의 관계를 다루고, 「우리가 작별을 말할 때마다」는 강제된 이동과 이별이 이어졌던 20세기를 ‘사라짐의 세기’라 부르며, 영화는 관객을 다른 장소와 삶으로 데려가는 탈것과 같은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바라봄의 소멸과 근대적 시간관

“동물과 인간 사이의 바라봄, 인간 사회의 발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어찌 됐든 모든 인간이 지난 세기까지 함께 살아왔던 그 바라봄이 소멸해 버렸다.”-「왜 동물을 바라보는가?」

‘문명과 사유’로 분류한 2부의 9편은 인류가 자본주의 시대에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 구분과 위계를 흔들어 다시 바라보게 한다. 동물원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 예술과 노동을 가르는 위계, 먹고 배설하는 몸의 현실, 벌판과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을 따라가며 문명이 무엇을 가치있는 것으로 여기고 무엇을 감추거나 배제해 왔는지 묻는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 근대적 소외와 시각 문화를 함께 다룬 「왜 동물을 바라보는가?」는 버거의 저술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히며 동물 연구와 시각문화 논의에 큰 영향을 준 대표작 중 하나다.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온 오랜 관계를 되짚고, 근대 자본주의가 동물을 일상에서 밀어내는 한편 동물원과 애완동물, 장난감, 만화, 각종 장식물 속에 다시 등장시키는 역설을 지적한다. 동물이 현실의 삶에서 멀어질수록 이미지로는 더 많이 소비되지만, 동물원에서 관람객은 동물과 시선을 주고받는 만남에 이르지 못한다. 버거에게 이 단절은 인간 역시 자연과 타자의 시선에서 고립되는 사건이다. 이런 모순은 오늘날 현대인들이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면서도 정작 육식 소비는 줄이지 않는, ‘사랑과 착취’의 분열된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1959년에 발표한 「창살 너머로」는 버거가 동물원에서 아구티와 나무두더지를 개별적인 존재로 관찰하는 에세이로, 동물의 처지에 대한 그의 관심이 상당히 일찍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며 「왜 동물을 바라보는가?」를 예고하는 글이다. 「유인원 극장」은 바젤 동물원의 영장류 우리를 관람하는 경험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 및 진화의 신비를 탐구한다. 인간과 유인원의 놀라운 유사성과 불편한 인접성을 극장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조명한다.
「먹는 자와 그가 먹는 것」 「한 무더기의 똥」은 계급에 따라 달라지는 식사의 방식, 배설물과 그것을 치우는 노동을 다루며 문화와 문명의 관념을 구체적인 삶의 조건으로 되돌린다. 「붙잡힌 것」은 현대사회가 신봉하는 단선적이고 객관적인 시간관을 비판하며 이에 맞서는 인간 경험의 다면성을 섹슈얼리티, 사랑, 예술로서 조명하고, 「벌판」은 자연의 공간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사건들이 어떻게 시공간을 연결하며 인간 내면에 강렬한 자유와 행복을 일깨우는지 말하는 서정적이고 실험적인 산문이다. 「맨해튼」은 꿈과 절망이 거칠게 충돌하는 곳, 자본주의의 압박과 강박이 극도로 압축된 도시로서 맨해튼의 실체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고립과 단절에 저항하며

“‘가난한’이라는 단어는 아주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고, 그 전통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첫번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이 전통을 알아보고 존중하면서 단 한순간도, 가난을 인간이 처한 조건에 시련을 주는 구성 요소로 받아들이는, 역겨운 타협에 빠져서는 안 된다.”-「시칠리아의 삶」

‘참여와 연대’ 아래 모인 3부의 글들은 노동자와 시위대, 체코슬로바키아 시민, 이민 노동자와 흑인 공동체, 전쟁과 원폭의 희생자처럼, 역사와 권력의 불균형 속에서 목소리를 빼앗기거나 주변으로 밀려난 이들의 삶에 주목한다.
「대중 시위의 속성」은 시위가 단순히 국가 권력에 대한 호소가 아니라 혁명을 향한 상징적 예행연습이자 집단적 자각을 일깨우는 과정이며, 도시의 일상을 중단시키고 공간에 새로운 주체성을 생성시킴으로써 참여자들에게 더 큰 자유와 공동체적 연대감을 가져온다고 분석한다. 이 글의 계기가 된 ‘1898년 밀라노 폭동’은 소설 『G』의 배경으로 등장해 자세하게 묘사되기도 했다. 「체코슬로바키아 홀로」는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의 무력 침공으로 인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적 격변과, 소련과 서방 양 진영 사이의 고립을 다룬다. 이 사건이 제기한 민주적 사회주의의 가능성과 한계를 논의하기 위해 1969년 2월과 4월 관련 국제회의와 세미나가 열렸고, 존 버거는 이때 『뉴소사이어티』에 3회에 걸쳐 글을 연재한다. 정치적 문제 앞에서 작가로서 취했던 즉각적이고 긴급한 반응을 보여주는 사례다.
「부커상 소설 부문 수상 연설」은 1972년 소설 『G』로 문학상을 받으면서 상금의 출처가 과거 식민 지배와 카리브해 지역의 착취에서 비롯되었다는 모순을 지적한, 자신의 작품을 문학 제도 안에 가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유명한 연설문이다. 상금 일부를 블랙팬서운동과 유럽 이민 노동자를 위한 작업(『제7의 인간』)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밝혀, 억압에 저항하고 평등한 연대를 이루려 했던 작가의 용기를 목격하게 된다.
「히로시마」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시칠리아의 삶」 「시의 시간」 「사과 과수원」은 아시아와 유럽, 남미 등 어떤 장소와 기억을 통해 그곳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증언한다. 히로시마 원폭 생존자들의 상처, 이스탄불의 정치적 억압과 빈곤, 시칠리아 공동체의 이야기, 남미 독재 정권이 자행한 납치와 고문, 리옹의 옛 감옥 터의 미래를 바라보며, 버거는 풍경과 장소를 그 안에 새겨진 폭력과 불평등, 공동체의 기억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읽어낸다.
「무관심의 극장」은 도시의 낯선 군중 속에서 벌어지는 과장된 행동과 무표정한 반응을 살아 있는 풍자화처럼 그리는 매우 현대적인 글이다. 도시의 공적인 삶은 진정한 소통이 부재한 채 모든 개인이 강제로 관객이자 연기자가 되어 서로에게 무관심한 거대한 연극 무대로 변모한다. 이러한 무관심의 극장 속에서 사람들은 고립감을 피하고 시선을 끌기 위해 과장된 표정이나 폭력, 또는 일시적인 스타의 지위를 갈망하게 된다. 버거는 이를 민주주의의 실패와 사람들 사이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며, 외양과 허위가 진실을 가려 버린 현대 도시의 비극적 단면이라고 진단한다. 오십 년 전에 씌어졌음에도 마치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가리키는 듯하여 읽을수록 서늘함을 느끼게 된다.

삶과 죽음이 깃든 장소에서

“그는 자신의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의 힘을 알아보았고 그 안에서 살기로, 행동과 상상력 둘 다를 통해 그 안으로 뛰어들기로 선택했다.”-「빅토르 세르주」

‘죽음과 기억’으로 묶인 마지막 4부는, 낯선 도시를 걷고 바라보며 그 안에 깃든 삶의 모습을 포착하고,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과 장소, 작품을 기억하는 글들이다. 「낯선 도시의 끝자락에서」는 이름 모를 어느 도시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씌어진 글이다. 카페에서의 카드게임, 성당의 엄숙한 견진성사, 산을 찾는 군중의 행렬 등 다양한 삶의 순간들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소속감을 향한 갈망이 섬세하게 포착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인 두 남자에 의해 강제로 택시에 태워지는 순간에 처한 한 여성의 저항은 개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을 상징하는 듯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전한다. 「스트라스부르에서의 하룻밤」은 알랭 타네 감독과 공동 각본을 쓴 영화 「세계의 중심(Le Milieu du Monde)」(1974)을 작업할 시기의 글로, 카페와 역 대합실에서 만난 남루한 사람들과 여인들의 모습을 통해 사랑과 열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떠올리며 적은 단상이다. 「파리를 상상하다」는 페르 라셰즈 묘지와 빅토르 누아르의 무덤을 찾아가며 죽은 이들이 도시의 현재에 남기는 흔적을 살펴본다.
「르 코르뷔지에」 「빅토르 세르주」 「알렉산드르 게르첸」 「마야콥스키: 그의 언어와 그의 죽음」 「레오파르디」는 이미 세상을 떠난 건축가, 사상가, 소설가, 시인의 생애와 사상을 경유해 한 시대의 희망과 좌절이 그들의 작품과 언어에 어떻게 새겨졌는지를 되짚는다. 특히 이 시기 러시아 사상가와 작가들에 대한 글이 자주 등장하는데, 버거는 러시아혁명과 예술을 거울삼아 혁명의 약속이 권력에 의해 어떻게 훼손되는지, 예술가는 그 안에서 어떻게 자유를 지키는지에 주목했다. 당시 아내였던 러시아계 영국인 번역가이자 페미니스트 아냐 보스톡의 영향도 짐작되며, 함께 작업한 마야콥스키에 관한 글은 시인의 시적 성취가 러시아어의 특수한 역사적 조건과 사회주의 혁명의 열기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분석한다.
「모스크바의 묘지에서」 「볼로냐의 빨간 차양」 「프랑수아, 조르주, 그리고 아멜리에」 「어머니」는 죽은 이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관계를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린다. 묘지와 도시의 풍경, 친척과 이웃의 죽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통해 버거는 죽음을 삶의 바깥에 놓인 단절로만 보지 않고, 기억과 이야기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관계로 바라본다. 특히 「볼로냐의 빨간 차양」은 어린 시절 지적 영감을 주었던 에드거 삼촌의 죽음에서 출발해 개인의 기억을 도시와 공동의 기억으로 넓혀 간다. 에드거는 버거의 초기 소설 『코커의 자유』의 주인공 윌리엄 코커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죽은 삼촌과 마주치고 대화하는 환상적인 장면은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의 망자들과도 연결되며, 이 소설은 죽은 어머니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프랑수아, 조르주, 그리고 아멜리에」는 알프스 산록 농촌 마을 이웃이었던 세 사람을 위한 장송곡의 형식으로 평범한 이들의 삶과 죽음을 기린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세상을 떠났지만, 세대를 이어 흐르는 삶의 거대한 순환과 자연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삼부작 소설 ‘그들의 노동에’ 속 농촌 공동체의 사람들과도 관련지어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책 끝에 자리한 글 「어머니」에서 존 버거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비밀스러웠던, 많은 것을 알았지만 침묵했던, 젊은 시절 살생에 반대해 채식을 했지만 자식들에게는 강요할 수 없었던, 아들이 작가가 되길 바랐지만 그의 글은 거의 읽지 않았던, 그런 어머니를 그녀의 죽음 앞에서 담담하게 회고한다.

“어머니는 다른 말은 없었다. 나는 이해를 했거나 하지 못했다. 덧붙일 말은 없었다.”-「어머니」

존 버거를 기억하는 시간
복잡한 출간 배경에서도 짐작되듯이, 이 책을 읽어내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너무나 전방위적으로 걸쳐 있는 시대와 주제인 데다, 제프 다이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시대 다른 작가들의 유창함과 달리 존 버거는 ‘생각이 거의 육체 노동처럼 이루어지는 모습’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표작 이상으로 그를 더 알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분명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앞서 나온 다른 작품들과의 연결성 속에서 살펴본다면 한 작가의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고 이어지고 확장되었는지 발견해 가는 즐거움이 있다.
이런 연유로 옮긴이 주에는 존 버거의 주변 인물과 글이 씌어진 배경 등 독자의 이해를 최대한 돕기 위한 내용이 편집자의 제안으로 포함되어 있다. 수록문 출처에도 최초 발표본과 단행본의 서지사항을 가능한 정확하게 기입하려고 노력했으며, 이미지는 글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것만을 수록해 글에 집중하도록 했다. 아들 이브 버거가 그린 아버지의 초상 드로잉을 표지화로 사용했는데, 작가를 기념하는 의미와 더불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알아보고 전해 주려 했던 존 버거의 시선을 책 제목과 조응시켜 표현하고자 했다.
한편, 이브 버거가 부모님이 묻혀 있는 마을 묘지를 그린 작품집 『모두 우리의 삶(All Our Lives)』이 국영문으로 함께 출간되어 그의 부모님에게 헌정된다. 이 책은 바르셀로나의 라비레이나이미지센터(La Virreina Center de la Imatge)에서 2026년 11월부터 2027년 3월까지 열리는 동명의 전시에 맞춰 발행되었다. 근간으로 존 버거와 수전 손택의 대담 및 서신 교환을 담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To Tell a Story)』(가제)도 예정되어 있으며, 그를 기리는 작지만 의미있는 자리를 마련해 이어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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