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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불을 통해 표현된 소녀의 소망
몹시 추운데다가 흰눈까지 펑펑 내리는 한 해의 마지막 날 밤, 소녀는 꽁꽁 얼어붙은 맨발로 거리를 헤매고 다닙니다. 성냥은 하나도 팔지 못했지요.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성냥을 못 팔았다고 아버지한테 매를 맞을 게 뻔했으니까요. 소녀는 남의 집 모퉁이 틈새에 웅크리고 앉아 그 귀중한 성냥을 벽에 그어 불꽃을 일으킵니다. 너무 추워서 어쩔 수 없었지만, 소녀가 가진 성냥개비들로는 몸을 녹일 수도 살아 남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장면들을 눈앞에 떠올리는 정도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요. 성냥불을 통해 소녀의 눈앞에 나타난 난로와 식탁,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할머니는 소녀의 작지만 커다란 소망을 나타냅니다. 난로, 식탁, 크리스마스트리, 할머니가 상징하는 따뜻함, 배부름, 가족의 사랑 등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것이지만, 소녀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필요하고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소녀는 성냥을 그을 때마다 환상을 봅니다. 그리고 성냥불이 꺼지면 사라질 그 환상을 잡기 위해 목숨과도 같은 성냥을 모두 태워 자신의 소망을 이룹니다. 파코브스카의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 성냥팔이 소녀 가질 수도 만질 수도 없고,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환상들. 크베타 파코브스카는 소녀의 눈앞에 나타난 이런 환상들을 자신의 그림에 담아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녀의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합니다. 『성냥팔이 소녀』에 나오는 가난이나 아동 학대, 죽음과 같은 내용들은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다소 어둡고 무거운 내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파코브스카는 이러한 상황이나 내용이 주는 느낌을 색을 통해 표현합니다. 책의 곳곳에 검은색을 사용함으로써 외롭고 힘든 소녀의 마음을 나타내고, 빨간색을 주로 한 대담하고 강렬한 색들로 이야기의 무게를 더합니다. 반면 소녀가 숨을 거둔 장면에서는 소녀의 얼굴에 알록달록한 색들을 덧칠함으로써 소녀가 죽기 직전 경험할 수 있었던 기쁨을 표현합니다. 또한 그와 더불어 소녀의 죽음이 소녀에게는 어둡고 불행한 끝이 아닌, 밝고 행복한 시작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그림책의 가장 큰 특징은 고전적인 이야기에 현대적인 감각의 그림이 더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술이나 디자인 관련 책으로 착각할 정도의 감각적인 표지에서부터 책의 마지막 장에 나타나는 붉은색 성냥개비들까지, 파코브스카는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 세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책 속에는 마치 아이가 쓴 듯한 글씨가 그림의 일부처럼 표현되었으며, 곳곳에 은박지나 노트 등의 다양한 종이를 오려 붙인 콜라주 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크레파스, 사인펜, 물감, 연필 등의 그림 도구들을 사용하여 다양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렇듯 파코브스카는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그림들을 보여 줍니다. 그 동안 무수히 많은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된 '성냥팔이 소녀'는 늘 틀에 박힌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책 속에는 언제나 하얗고 투명한 피부에 고불거리는 머리를 가진 초라한 옷을 걸친 예쁜 소녀가 등장했지요. 하지만 개성적인 화가 크베타 파코브스카는 『성냥팔이 소녀』를 그린 여느 화가들과는 다른 접근을 시도합니다. 파코브스카의 그림에서는 일반적으로 고정화되어 있는 '성냥팔이 소녀'의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소녀는 얼굴 없는 모습으로, 얼굴만 강조된 모습으로, 삼각형과 직사각형들을 이용한 기하학적인 형태로 장면에 따라 다르게 그려져 있지요. 파코브스카는 이야기를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장면에 따라 소녀를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상황이나 배경을 현실적으로 묘사하지도,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있어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비애감을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표현주의적이고 현대적이며 명료한 그림들을 그려 책을 읽는 사람에게 많은 해석과 상상의 여지를 남겨 둡니다. 199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한 화가, 크베타 파코브스카. 『성냥팔이 소녀』를 읽는 동안 우리는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한 파코브스카의 그림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체험하고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