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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내기 … 007
반출품 No_001: 보세 양복 … 031 반출품 No_002: 조미료 … 065 반출품 No_003: 통가발 … 093 반출품 No_004: 베로니카의 손수건과 봉헌초 … 131 채워두기 … 171 작가의 말, ‘다음’이라는 묵직한 기약 … 191 |
성해나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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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뿌리를 걷어내야 새 뿌리가 트인다는데, 배배 꼬인 내 삶은 어디부터 들어내야 숨통이 트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애도와 죄책감, 인간으로서의 회의감. 회복되지 못한 삶의 흔적이 화분 속 잔뿌리처럼 온 집 안을 휘감고 있었다. 나 역시 그 형태에 맞춰 억지로 동선을 줄이며 쪼그라들 뿐이었고.
---p.27~28 내가 만난 수용자 대부분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었고, 극에 이르면 자녀가 부모와 같은 죄목으로 수감되기도 했다. (…) 가족 접견을 하러 온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일말의 연민과 함께 그 애들의 미래를 거칠게 상상하게 되었다. 노란 명찰을 단 관심대상수용자의 자녀들에게는 나도 모르게 더 불온한 꼬리표를 붙였고. 너 역시 네 부모처럼 되겠지, 피는 못 속이니. ---p.48 진주소에서만 스무 해 넘게 일한 공 여사님은 각 부서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았고, 속정이 깊어 사람을 두루 챙겼다. (…) 오지랖이 넓은 여사님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명랑한 사려가 좋았다. 누구에게나 품을 내주고 넓게 챙기는 세심함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재능이 아니리라. ---p.70 마음이란 게 파이프만큼 단단하지 않아요. 생각보다 약해서 쉽게 금이 가요. 영주 씨, 뼈에 금 간 적 있어요? (…) 금 갔을 때 방치하면 뼈가 더 틀어지고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견디는 거 다 필요 없고, 마음에 지지대를 대라고요. ---p.128 죄란 거창한 악행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화살이 엇나가는 것처럼 가야 할 방향을 놓치고 닿아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는 사소한 순간에서 시작된다. ---p.169 내 이름은 닦을 수(修)와 어질 인(仁)이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한자로 이뤄져 있었으나 아내와 가정을 이룬 후로는 이름 뒤에 한자를 써야 할 때마다 물 수(水)와 맑을 인(潾)을 병기하곤 했다. 초원을 시원하게 적시는 맑은 물이 되고 싶어서. 그런 다짐은 살아가며 점차 메마르고, 아내의 너른 초원도 황무지가 되었지만. ---p.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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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쌓이고 방치된 생의 짐을 비워
‘다음’이 올 자리를 마련하는, 찬란한 반출의 여정 『일일 반출록』은 절망한 한 남자, ‘수인’에게서 시작한다. 환갑을 앞둔 그는 전직 교도관으로, 지난봄 퇴직한 후 몸도 마음도 돌보지 않고 지내고 있다. 실은 몇 년 전 아내 ‘초원’과 사별한 뒤로 스스로를 유기하듯 살아온 지 오래다. 아내와 단둘이나마 단란하게 꾸려온 집 안은 아내의 유품과 생활 쓰레기, 반평생 몸담았던 교도관 생활에서 물러나며 가져온 온갖 짐들로 난장판이다. 환갑이 다 되도록 정신없이 살아오는 동안, 꿈과 젊음은 너절해졌고 가장 소중했으나 충분히 아껴주지 못했던 사람을 잃었으며 처치 곤란인 짐과 기억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었다. 상실과 좌절 속에서 내일을 폐기한 채 은둔하던 어느 날, 수인은 교도관 시절 알고 지낸 한 수용자의 말을 불현듯 떠올린다. “분재가 잘 자라려면요. 잔뿌리부터 걷어내야 해요. 그래야 새 뿌리가 굵고 건강하게 자라거든요.” 교도소 직업훈련장에서 분재 교육을 받았던 수감 번호 258번 ‘송 씨’의 그 한마디는 이상한 힘으로 수인을 일으킨다. “화분 속 잔뿌리처럼 온 집 안을 휘감”은 “회복되지 못한 삶의 흔적”을 정리해야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직감한 수인은 오래 묵혀둔 물건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모두 정리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여전히 버린다는 생각만 하면 식은땀이 나고 숨이 막혔”기에, 수인은 아내의 유품을 들어내기 전에 자신에게 우연히 흘러든 타인의 짐부터 돌려주기로 한다. 보세 양복, 조미료, 통가발, 손수건 등 교도소에서 사망한 수용자의 유류품이나 동료의 물건을 주인에게 되돌려주겠다는 명목으로 수인은 오래된 중고 아반떼를 끌고 길을 나선다. 그리고 그 길은 타인의 물건을 돌려주는 일에 기대어 수인이 다시 삶을 되찾아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여정이기도 하다. 소설의 제목 ‘일일 반출록’은 수인이 그간 쌓아두고 방치해온 생의 짐을 하나씩 반출하며 서서히 내일을 향해 가는 매일의 기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버리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반출을 시작한 수인은 정말로 물건을 하나씩 덜어낼수록 무언가 하나씩 얻는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 그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사연이다. 송 씨의 유품인 양복을 돌려주기 위해 만난 그의 어린 아들 ‘정목’을 시작으로 희대의 살인마 ‘조영근’의 형제 ‘동근’과 ‘영주’, 한때 재직한 교도소에서 가까이 교유했던 수녀 ‘베로니카’, 교도소 구내식당의 조리사 ‘공 여사’ 등 한 이야기 속에서 섞이기 어려운 인물들이 수인이라는 한 사람을 경유하여 독자 앞에 선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심판받은 죄인의 가족이라는 점에서, 수도자임에도 아무에게도 말 못 할 복수심으로 괴로워한다는 점에서, 누구든 살뜰히 먹이고 돌보지만 자신의 외로움만큼은 솔직히 터놓지 못한다는 점에서 모두 수인만큼이나 자기 삶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인물들이다. 각자의 굴곡을 품은 그들의 이야기는 “타인의 낙담도, 허무도, 고독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나의 비통에만 빠져” 있던 수인의 시야를 점차 넓혀간다. “오롯이 혼자였던 ‘나’가 ‘너’를 만나 ‘우리’가 되어”(작가의 말)가듯 수인은 그들과 삶의 한 귀퉁이를 나누며 타인과 세상을 향해 천천히 마음을 열어가고, 그제야 오래 회피해왔던 자신의 지난날 또한 되짚어보게 된다. 여정의 말미에 수인이 오래전 멀어진 교도관 동료 ‘중선’을 다시 만나는 장면은 눈여겨볼 만하다. 아내를 잃은 뒤 자포자기한 수인이 얼마나 깊이 무너졌으며, 그리하여 각별하던 동료에게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 전말이 중선과의 재회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늘 교도관으로서 수용자를 교화하고 교정하는 자리에 서 있던 수인이 죄의식에 갇힌 ‘수인(囚人)’이 되어 잘못을 고백하는 이 대목은 수인에게 그간의 여정이 실은 속죄의 과정이었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살다보면 눈앞의 일에 매달리느라 주변에 소홀해지고 타인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기며 어느새 모자라고 비겁한 인간이 되어 있기도 하다. 수인은 자신 또한 그러했음을 인정하고, “오차나 실수라는 초라한 명분 뒤에 숨었”던 스스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렇게 오점투성이인 삶까지 끝내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며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딘다. 홀로 쓰는 일기였던 수인의 반출록은 저마다의 곡절을 지닌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며 점차 여러 인물의 서사가 포개어진 하나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아울러 권말의 ‘작가의 말’에 등장인물과 물건에 얽힌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가 작품의 세계를 한층 더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했다. 닳고 빛바랜 꿈과 젊음, 돌보지 못한 관계를 뒤늦게 마주하며 삶의 다음 장면을 만들어가는 휴먼 드라마 수인이 이 긴 여정의 끝에서 마주하는 이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 초원이다. 마지막까지 차마 버리지 못한, “추모를 이어가기 위하여 차차로 모아둔 고약한 제물”처럼 쌓인 아내의 유품 앞에서 수인은 초원과 함께한 시간을 천천히 복기한다. 초원과의 첫 만남부터 결혼 이십 주년을 기념했던 기억, 그리고 그녀를 가장 아프게 외면했던 순간까지. 익숙한 후회가 다시 가슴을 찌르지만 이제 수인은 반출을 시작하기 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타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너덜너덜한 마음을 기워온 수인은 주저앉아 있는 자신에게 초원이라면 건넸을 말을 기어코 건져 올린다. 그리하여 비로소 어제의 짐을 비워낸 자리에 내일이 깃드는, “단단했던 슬픔이 고요히 연화되”는 순간이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독자를 기다린다. 가장 귀하게 여기던 것에 무심해지게 하고 결국 방심한 사이 그것을 앗아가는 시간의 잔인함 앞에서, 다시 ‘다음’을 믿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용기와 결심이 필요한지.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듯, 성해나는 삶과 대치하던 한 사람이 끝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까지의 지난한 시간을 서두르지 않고 써 내려간다. 그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건 그럴듯한 화해나 온전한 회복이 아니다. 수인이 짐을 비운 후에도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고 이미 저지른 잘못은 사라지지 않으며 상처 또한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복구할 수 없는 것들로 얼룩진 삶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몫임을 기어이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회복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이 소설은 말하며, 어제에 멈춰 선 이를 조심스레 내일로 이끄는 듯한 따스한 문장으로 끝내 그 사실을 납득시킨다. 회복으로 향하는 수인을 도운 것은 그가 반출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라는 점을 이쯤에서 떠올려보아도 좋겠다. 한 사람을 삶 쪽으로 돌려세우는 것은 다름 아닌 또 다른 사람이며, 작가 또한 그중 한 사람으로서 수인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며 끝까지 응원한다. 그간 성해나의 작품이 강렬하고 매혹적인 서사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면, 『일일 반출록』은 한 인간을 구해보고자 하는 작가의 깊은 진심으로 독자를 소설 앞에 붙들어두는 작품일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난감한 질문에 대한 다정하고 끈질긴 응답으로서 쓰인 이 소설은 각자의 고민과 좌절과 실망을 견디며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래 남을 격려가 되어줄 것이다. | 작가의 말 소설의 첫 구상안을 박정민 대표님께 보여드렸을 때, 『첫 여름, 완주』는 제목에 ‘첫’, 즉 ‘1’이 들어가니 다음 듣는 소설의 제목에는 ‘2’가 들어갔으면 좋겠다 청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제목에 어떤 식으로 2를 넣을지 고심하다 1과 1을 더하면 2이니 일을 교차해 둘을 만들었습니다. ‘일일(日日)’이란 매일을 뜻하기도 하지만, 지금에 와 돌이켜보면 하나에 하나를 더해 둘이 된 이 ‘일일’이 다른 뜻도 지니는 것 같습니다. 하나[日]는 꼿꼿하고 외로이 서 있는 사람의 형상 같습니다. 그이 옆에 다른 이 하나가 나란히 서 둘이 되고, 오롯이 혼자였던 ‘나’가 ‘너’를 만나 ‘우리’[日日]가 되어갑니다. 둘이 된다는 건 무수한 고초를 감수하는 일이지만, 서로의 슬픔과 기쁨을 떠안으며 견딜 몫은 덜고 누릴 몫은 불려가는 애틋한 공존의 방식 같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본령이자 『일일 반출록』을 통해 제가 전하고자 했던 바이지 않나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