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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 시 손을 흔드시오_성해나
두 번째 만남_이기호 장면들_김현 새소리_현호정 너도 어서!_임선우 둘로 나뉘어 있다는 감각_김화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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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을 올려다보며 안달복달하거나, 택시가 안잡혀 초조해하거나, 환승역에서 긴 줄을 서는 경험이 내겐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p.16 앞서 말했듯 체념과 낙담은 내게 그다지 낯선 감각이 아닌지라 황홀경 따위는 일찌감치 접어두고 지방으로 내려왔다. ---p.22 인구가 적으니 별수 있나. 예산이 없는데 어쩔 수 없지. 그렇게 굳어가는 동안 누군가는 치료받지 못하고, 누군가는 교육을 포기하며, 또 누군가는 체념하듯 지방을 떠난다. ---p.26 그 집은 종로구 구기동에 있었다. ---p.35 판결이 잘 나와서 다행이었지만 판사가 중얼거린 가난한 작가, 가난한 작가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어쩐지 모욕을 받은 기분이었다. ---p.46 나는 가끔 서울이 그리웠다. (중략) 하지만 아내에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p.50 먹고사는 얘길 쓸 때면 부러 돈 얘기를 적는다. 돈이 불러오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돈이 있었더라면, 서울에 계속 살았을 것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더 없어서 서울을 떠나왔다. ---p.61 퀴어는 앞집, 옆집, 뒷집에 살지만 그런데도 퀴어는 언제나 앞집, 옆집, 뒷집에 없다. ---p.63 지하철 승객들의 면면을 살피며 그들의 전후사를 상상하는 게 또한 경의중앙선 타는 재미이고. 그게 시 되고, 소설 되고, 에세이 되고. ---p.68 첨 하룻밤 자고 난 서울 방에서, 나는 낯선 새소릴 들었다. ---p.81 철저한 무시.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나는 ‘듣지 않아도 된다’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내 삶에 연결되거나 포함되지 않았다. ---p.88 외로움과 자유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인지 나는 서울에서 배웠다. 무시와 존중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p.92 서울에서 벗어나는 순간 문학에서 소외될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p.111 그에 반해 내가 사는 분당은 문학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는데, 특히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는 문예부조차 없어서 직접 만들어야 했다. ---p.113 20대 초반에 했던 생각으로부터 나는 여전히 멀리 있지 않다. 나는 여러 개의 정체성을 받아드는 일을 좀 어려워하는 것 같다. ---p.128 나는 나를 좀 통일하고 싶었다. ---p.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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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살지 않지만 그곳에 사는 느낌’
도시 속 ‘나’와 도시 밖 ‘나’는 얼만큼 다르며 얼만큼 동일한가? ‘자기’와 ‘자기 위치’를 찾아가는 문학적 다큐멘터리즘 성해나 소설가의 〈탑승 시 손을 흔드시오〉는 소도시 생활의 기억을 품고 상경한 작가가 서울과 부딪히며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더듬어 나가는 여정이다. 차도로 손을 뻗어 탑승 의사를 강력하게 드러내야만 버스에 탈 수 있고, 기사에게 인사를 건네면 외려 반문(“너 나 알아?”)을 받는 ‘투박한’ 장소를 거쳐 작가는 버스 기사로부터 먼저 인사를 건네받는 ‘상냥한’ 대도시의 시민이 되지만 곧 그곳의 지체 없음과 순조로움에 의문을 느낀다. 이 매끄러움은 왜 자연스러운가? 어째서 당연한가? 왜 어떤 시민은 기약 없는 버스를 기다리다 눈길을 걸어야 하고, 왜 어떤 시민은 버스가 아니라면 지하철, 택시, 아니면 또 다른 버스를 타면 되는가?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이러한 일상적 체험을 사회적, 구조적 체념의 정서로 전환한 작가는 서울 바깥으로 빠져나온 이후에도 당시의 기억을 곱씹으며 자기 자리와 그 의미를 끊임없이 탐색한다. 이기호 소설가의 〈두 번째 만남〉은 구기동에서 출발한다. 당시 아직 신인으로 첫 책을 내지 않은 작가는 첫 창작집 계약금과 한 재단에서 받은 창작 기금 등으로 종로구 구기동에 자취방을 구한다. 주차장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었으나 작가는 북한산 비봉과 문수봉이 보이는 그 집이 한눈에 좋았다. 입주 전 아버지 직업부터 본적, 형제 관계 등을 캐묻던 집주인은 결로 문제를 발견한 작가의 지속적인 보수 요청을 묵살하고, 금방 해결될 줄 알았던 일은 법원까지 가서야 가까스로 마무리된다. 이후 작가는 서울을 떠나 광주에 터를 잡고, 수년이 흐른 뒤 둘은 서울의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두 번째 만남’을 갖는다. 세월이 지나도 흐려지지 않는 대상과의 우연한 만남은 천만 인구의 도시가 건네는 짓궂은 농담이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떠다니던 은은한 책 냄새와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던 여름밤은 도시가 선사하는 낭만적 비애다. 한 편의 소설 같은 글은 이기호가 왜 오래도록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일 수밖에 없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김현 시인의 〈장면들〉은 지하에서 반지하로, 1.5층으로, 투룸으로, 소형 아파트로, 방 세 개짜리 아파트로 이동한 이주의 역사를 담고 있다. 집의 변전만큼이나 집이 속한 도시의 변화는 시인의 내면을 흔든다. 서울 떠나 파주에 정착함으로써 더 넓은 집에 살게 된 그는 그 여유로운 자리에 손님방을 마련해 친구들을 초대하고, 새삼 생겨난 타인을 위한 공간에서 이타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기쁨을 누린다. 사는 곳이 바뀔 때마다 속절없이 출렁이는 삶의 모습은 집이 과연 삶의 무늬를 완전히 뒤바꾸는 중대한 사건임을 다시금 환기한다. “드나듦이 나이듦이며 나이듦이 돌봄”이라는 시인의 말은 서울이라는 절대 조건의 유한성을 생각하게 하고, 그리하여 이제껏 꿈꾸지 않은 새로운 선택지에도 눈 돌리게 한다. 생에 더 다채로운 장면을 선사할 수 있음을 시인은 기꺼이 자신의 장면으로 증명해낸다. 현호정 소설가의 〈새소리〉는 그가 언젠가 살았던 원룸을 무대로 한다. 삼대가 살던 시끌벅적한 집을 나와 드디어 갖게 된 혼자의 공간, 그곳에서 작가는 세상 모든 소리로부터 놓여나는 고요의 풍요를 경험한다. 아르바이트를 마친 나른한 몸을 이끌고 귀가하던 그는 건물 복도에서 귀를 거스르는 낯선 신음을 듣고, 이제껏 자신이 머물렀던 적막이 객관적 상태의 무소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적막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작가는 각종 소리가 난무하는 공간에서 사실상 진공 상태로 지내온 그간의 시간을 반추하고, 자신이 어떻게 그토록 완벽하게 생활 소음을 차단한 채 지낼 수 있었는지를 차차 깨닫는다. 작가는 반의어라 여겨지는 ‘무시’와 ‘존중’을 수치심의 사유화라는 차원에서 동일시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한 익명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인간성을 그려낸다. 타인에게 시공간적 여백을 허락함으로써 경의를 표하기,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대도시의 감수성일 것이다. 임선우 소설가의 〈너도 어서!〉는 서울이 추동하는 욕망에 주목한다. 폴 그레이엄의 에세이 〈도시와 야망〉을 읽은 작가는 ‘위대한 도시는 개인에게 수백 가지의 미묘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보낸다’라는 요점에 주목해 과연 서울은 시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입하는지 탐구하기 시작하고, “안테나를 세운 채 서울 곳곳을 돌아다”닌 끝에 하나의 결론에 다다른다. ‘너도 어서’가 그것이다. 어서가 지시하는 대상은 시대와 세대에 따라 다르지만 궁극적인 방향은 같다. 자본의 자리다.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집, 더 나은 차와 직장을 향해 사람을 끊임없이 떠미는 서울의 메시지를 알아챈 작가는 “삶의 추진력이 개인의 야망이나 내적 동기가 아닌 도시의 시스템에서 비롯되고 있”다라는 예리한 진단을 내린다.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야망을 자극하는 서울의 잔혹한 시스템이 문학에 대한 욕망과 창작을 향한 욕구의 땔감이었음을 실토한다. 작가의 내밀한 고백 앞에서 독자는 도시가 욕망의 가장 핵심적인 재료이자 조력자라는 사실을 감각할 수 있다. 김화진 소설가의 〈둘로 나뉘어 있다는 감각〉은 경기도의 ‘나’와 서울의 ‘나’가 다르다는 뚜렷한 인지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서울에 있다가 안양으로 돌아가며 서울의 것들이 안양이란 물줄기에 씻겨 내려갈까 전전긍긍한다. 홍대와 합정, 상수가 주는 문화예술적 수혜를 갈망했던 작가는 안양과 서울 양쪽으로 분열되어 있는 자신을 한쪽으로 “합치고”자 서울로 이사한다. 한 시간씩 걸려 가던 카페를 도보로 가고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에서 좋아하는 소설가를 두 명이나 만나는 꿈 같은 생활을 이어가지만, 애써 획득한 통일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여러 감정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불가능을 예감하면서도 무엇이든 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민의 숙명을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과 그런데 해냈네 하는 기쁨으로 분절”된 삶이라 표현한 작가는 내게 주어진 자리와 내가 바란 자리 간의 미세한 어긋남이라는 존재론적 고뇌를 고백함으로써 통합된 자아로 살아가는 일의 부침을 어루만진다. 대도시 안팎을 가로지르는 가뿐한 사유 여섯 작가의 내밀한 인터뷰 수록 각 작가의 글 말미에 수록된 1문 1답은 본문 내용을 기반으로 담당 편집자가 묻고 여섯 작가가 답한 진솔한 인터뷰다. 체념과 우정, 동질감, 외면, 일체감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루는 문답은 책 내용에 새로운 층위를 더하며 작가의 생각에 독자가 더욱 다각도로 접근하도록 돕는다. 『서울 밖 감정』을 읽고 난 뒤에도 서울은 언제까지나 서울이고 서울 밖도 언제까지나 서울 밖일 테지만 우리의 위치는 변동된다. 서울 밖 감정이란 불안이나 비관이라는 단편적인 상태로 수렴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그 감정적 다양성이 책이 건네고자 한 의미이자 재미라는 것을 독자는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오가는 두 도시가 단절되어 있다는, 정확히는 두 도시를 오가는 내가 둘로 나뉘어 있다는 감각은 통학하는 내내 지속되었다. 나는 특히 남태령역과 선바위역을 지나갈 때마다 이제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라고 은근하고 끈질기게 생각했다. 그 두 역이 내가 생각하기에 서울의 진입로였다. 포털을 열고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처럼 자 이제 변신 준비…… 서울에서의 내가 되는 거다…… 하게 되는. _김화진 〈둘로 나뉘어 있다는 감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