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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언제 휘어지는가-반감기 _007
젊은 유령은 어떻게 말하는가 _055 중족골은 어디인가 _103 어두운 골목길을 배회하는 자, 누구인가 _139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_175 우리는 왜 엉망이 되어가는가-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2 _211 숫기란 무엇인가 _249 |
LEE GI-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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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게 된 후로 나는 줄곧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왔는데, 그것들은 주로 분노나 수치, 혐오와 죄책감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누군가의 마음에 귀기울이는, 어렵고 고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왔고 또 그런 글들을 써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때때로 그것들이 그저 내 안에서만 해결되고 마는 감정은 아닐까, 의심이 들 때가 많았다. 누군가의 불쾌와 부끄러움을 그저 이해하고 헤아리는 일.
헤아리고 나면 무엇이 변하는가? 마음만 흘러넘치면 그다음엔 무엇이 오는가? 나는 그게 더 큰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지울 길 없었다. ---「마음은 언제 휘어지는가-반감기」중에서 북토크의 중심엔 언제나 ‘책’이 있습니다. 책을 가운데 두고 작가와 독자가 대화하는 자리……인 것 같지만 …… 그것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 사실은 책 홍보에 방점이 찍힌 시간이 맞습니다. 책 홍보라고 하면 너무 대놓고 뻔뻔한 것 같으니 ‘대화’라고 포장을 한 것이죠. 그러니 사실 그 자리의 주인은 책도 아니고, 작가도 아닙니다. 오직 독자, 독자인 것이죠. 하지만 저는 그것도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책도 팔아야 하는 소비재가 맞으니까요. 그래야 출판사도 힘내서 다른 책을 더 펴낼 수 있고, 출판사 직원들도 생업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그 자리가 갖는 어떤 폭력성, 어떤 적나라함이었습니다. ---「젊은 유령은 어떻게 말하는가」중에서 그뒤부터 병실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밖에서 물품이 들어오면 으레 침대마다 골고루 나누었고, 또 그걸 예상해 주문하기도 했다(놀랍게도 나는 코호트 격리 기간에 체중이 이 킬로그램이나 증가했다). YTN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큰 변화 중 하나였다(전직 교감이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리모컨을 슬쩍 이십대 청년의 침대에 올려두었다). 그후 병실에선 계속 〈한국인의 밥상〉만 보게 되었다. (…) 식사 시간마다 모두 한목소리로 부실한 도시락 반찬을 비난했고, 그러면 또 냉장고에서 이런저런 반찬이 나와 침대마다 고르게 배분되기도 했다(병원에서 간장새우장이 웬 말인가). 모두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식구처럼, 함께 밥과 반찬을 나눠 먹었다. 그 사람들 속에 홍성곤씨는 없었다. ---「중족골은 어디인가」중에서 마스크를 쓰고 가벼운 하늘색 재킷을 걸친 어르신은,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 걸어오다가 나를 마주치곤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간을 찡그린 채 나를 잠깐 노려보기도 했다. 나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 가급적 빠르게 그 옆을 지나갔다. 걸음걸이도 똑바르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어르신을 지나쳐 몇 걸음 더 걸어가다가 화들짝 놀라서 뒤돌아보았다. 그였다! 그가 분명했다! 전두환이었다! 방금 내 옆을 스쳐지나간 소녀의 이름, 아니 노인의 이름은! 나는 막 코너를 돌아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그리고 이내 아무도 남지 않은 골목길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래, 이곳은 바로 연희동이었다. ---「어두운 골목길을 배회하는 자, 누구인가」중에서 어른들을 비판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더구나 돈 문제나 국가 예산 문제 갖고 비판한다는 게 어쩐지 좀 좀스럽기도 하고…… 이게 더 나아가면 예술과 국가 사이의 문제까지 거론해야 하잖아요. 예술가가 국가의 관리하에 있다는 것을 비판하면서 또 한편에선 공적 자산의 문제까지 얘기해야 하고, 그러면 자연 근대 예술 제도 문제까지 파고들어가야 하는데…… 이게 복잡하고 머리 아프니까 침묵하게 되고…… 에이, 그 시간에 글이나 쓰자, 이런 식이 되어버리는 거죠.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중에서 문학이 한 개인의 고유한 창작물인 거 같지만, 실상은 다 구조와 환경의 산물일 뿐이다.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한 해 수백 종의 시집이 발간되는가? 왜 수백 편의 단편소설이 발표되는가? 저 수많은, 수지타산 맞지 않는 문예지는 무엇인가? 다른 나라에 없는 구조와 환경 탓이다. 이제 그 구조와 환경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야 한다. K는 그런 말도 적었다. 구조와 환경에 잘 적응한 작가만이 살아남는다, 아니, 살아남았다…… ---「우리는 왜 엉망이 되어가는가-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2」중에서 아, 그 숫기 없는 친구. 언젠가 그는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누군가 등뒤에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힐끔 뒤돌아보니 예전에 같은 팀에서 일했던 L팀장과 의무기록팀 소속 J팀장이었다. 일할 땐 그런 친구들이 좋지. 특히 우리처럼 말 많은 병원에선. 호진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묵묵히 식사를 마쳤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들 눈엔 지금 내가 안 보이나? 저런 게 숫기인가? 퇴근한 뒤에도 계속 그 말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숫기란 무엇인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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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좀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들 아무 문제 없다고 느끼는 건가요?”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에 수록된 7편의 단편과 그 안에 담긴 문제의식은 아래와 같다. 「마음은 언제 휘어지는가-반감기」 문학도이면서 비트코인을 운용하던 제자의 인생에 개입하게 된 대학교수의 이야기 ‘나’의 제자 ‘성우정’은 IT나 금융 투자처럼 실용성 높은, 문학과는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영역에 밝다. 성우정은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차원에서 비트코인 투자를 권유한다. “교수님 자유롭게 해드리고 싶어서요.”(10쪽) ‘나’는 제자의 조언을 다소 아니꼽게 받아들인다. 소설의 미학은 각자의 부자유한 삶의 조건에서 발생한다고 학생들에게 말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성우정의 조언을 일축하며 ‘코인 같은 것 하지 말라’고 회답한다. 강산이 한 번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이제 교수의 무심한 한마디가 제자의 인생을 얼마나 크게 흔들 수 있는지 확인할 차례다. 예술의 효용과 가치, 권위자에게 손쉽게 주어지는 신뢰의 무게, 관계 속에서 반감이 싹트는 순간과 그로 인해 드러나는 인간의 비겁함을 곱씹게 하는 작품. 「젊은 유령은 어떻게 말하는가」 모객이 안된 북토크에서 열패감을 느낀 소설가가 작가와 독자의 관계를 되새기는 이야기 ‘나’는 지역 서점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는 북토크에 다소 구색 맞추기처럼 느껴지는 섭외를 받는다. 현장에 자리한 독자는 총 다섯 명. 그중 한 명이 요즘 소설은 몰개성하고 판에 박혀 있다며 불만을 드러낸다. 생업에 치이면서도 나름의 사명감으로 글을 쓰는 ‘나’에게 그 대화는 상처가 된다. “독자는 소비자일까요, 심판관일까요?/그도 아니면 저의 또다른 분신일까요?”(68쪽) 귀가하는 길, 홀로 운전하던 ‘나’는 뒷좌석에 앉아 있는 유령을 발견하고 기겁한다. 심지어 유령은 방금 전 행사에서 만난 독자 중 한 명이다. 유령과 함께인데다, 북토크에 참석한 독자가 실질적으로 네 명뿐이었다니…… 없는 시간을 쪼개 차 안에서 글을 쓰던 ‘나’는 그날 이후 어쩔 수 없이 독자라는 이름의 유령과 기묘한 동행을 시작한다. 예술품인 동시에 소비재인 문학 단행본의 위상을 짚고, 독자를 의식하며 독자와 공생하는 작가의 생업을 유령과의 동행에 비유하면서,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물론 오늘날 출판 생태계의 현실까지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 「중족골은 어디인가」 감염병으로 고립된 병실 안에 형성된 작은 사회의 명암을 들여다보는 이야기 ‘나’는 중년의 나이에 스케이트보드를 배워보려다 발뼈가 부러져 입원한다. 때는 코로나19로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고 고립되던 시절. ‘나’가 입원한 병원에도 감염자가 발생하고, 병실은 출입이 통제된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환자와 가족들은 서로 돕고 의지하며 격리 기간을 씩씩하게 버텨낸다. 하지만 격리 해제일이 다가올수록 ‘나’는 마음 한구석에 밀쳐두었던 한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병실 안에서 누구보다 고립되어 있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그곳의 모두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홍성곤씨’를…… 집단의 크기와 무관하게 혐오와 배제를 통해 질서가 세워지고, 그 안에서 누군가 필연적으로 고립되는 과정을 포착한 작품. 「어두운 골목길을 배회하는 자, 누구인가」 연희문학창작촌에서 글이 써지지 않아 산책에 나섰다가 전두환을 마주치는 이야기 새 소설을 위한 취재차 출국하려던 계획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산되자, ‘나’는 돌파구를 찾고자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집필실이 생겨도 왜인지 도통 쓸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아, 여긴 작가들 한데 모아놓고, 일찍 자면 미안한 마음 들게 만드는 곳인가보다.”(150쪽) 자리를 박차고 산책에 나선 ‘나’는 한 노인과 마주친다. 노인은 분명 전두환이었다. 국가폭력을 증언한 신부를 모욕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거동이 불편해 출석하지 못한다던 그가 정정한 발걸음으로 멀어져간다. ‘나’는 그 체험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골똘히 헤아려본다. 혹시 그것은 전두환 사택과 맞붙은 안전한 집필실 안에서 현실과 유리된 채 글쓰는 찜찜함과 관련 있지는 않을까. 국가권력이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더해 현실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글쓰기에 관해 점검하게 하는 작품.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대한민국예술원이 맞닥뜨릴 비판과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방안을 제시하는 이야기 ‘이기호 소설가’가 필자인 보고서 형식의 소설로, 대한민국예술원이 지닌 문제점과 향후 발전 방향을 논하며 표면상으로는 예술원의 존립과 위상 강화를 도모한다. 필자는 대한민국예술원의 설립 배경에 대한 비판적 해석부터 폐쇄적인 회원 선출 방식, 예산 대부분이 회원 수당으로 쓰이는 데 비해 협소한 사업 기능,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임에도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의아한 존재감까지 조목조목 언급한다. 해외 예술원 사례를 비교 분석한 끝에 제언이 이어진다. “친정에 침 못 뱉”도록 “회원을 획기적으로 증원”(205쪽). “젊은 놈들 위주로 간다는 억울한 마음이 들더라도” “그놈들도 나중에 어쩔 수 없이 따라” 할 것이므로 “‘젊은예술가상’ 운영위원회 설립”(206쪽). 내부로 집중된 예산안을 개혁해 “예술원이 나서서 국가 예산을 절감했다는 미담 창출”(같은 쪽). 다양한 노력의 결실로 “미담 속출”(207쪽). 소수에게 조용히 집중된 권력과 자원에 문제제기하는 이 소설은 2021년 발표 당시 예술원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청원과 작가·예술가들의 공동성명으로 이어지며 반향을 일으켰고, 대한민국예술원은 이듬해 젊은예술가상 운영을 시작했다. 「우리는 왜 엉망이 되어가는가-예술원에 드리는 보고 2」 목소리를 내도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서 조금씩 비겁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 단편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발표한 뒤 문화체육관광부의 간담회에 참석한 ‘나’는 준비한 안건을 꺼내보지도 못한 채 예술원 관계자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어디서나 돈 얘기들뿐이니까요. 정부를 상대로 늘.”(224쪽) 맥이 풀린 ‘나’는 마음을 달랠 겸 소설가 후배 K를 찾아가 술을 마시고 곯아떨어진다. 한밤중 K의 다급한 부름에 깬 ‘나’는 위험에 처한 K의 가족에게 음주운전을 해서 데려다달라는 부탁을 받고, K의 곤경을 그가 자초한 문제로 돌리며 법을 어기기를 망설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국가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문제제기한 이후 펼쳐지는 지난한 갈등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법을 바꾸려던 인물이 정작 지인의 곤경 앞에서 법제 안에 속한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하는 아이러니까지 그려낸 작품. 「숫기란 무엇인가」 너무 일찍 어른이 된 청년이 잊고 있던 천진함을 깨닫는 이야기 ‘호진’에게는 마흔 살까지 자산을 모아 은퇴하고 지방으로 이주한다는 인생 목표가 있다. 일찍이 주어진 삶의 조건을 받아들인 호진은 같은 틀 안에서 일상을 반복하며 인생을 절약해왔다. 그런 건조한 태도 때문일까. 호진은 줄곧 ‘숫기 없는 사람’ ‘존재감이 희미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계획보다 일찍 목표를 달성한 호진은 작은 마을에 낡은 한옥을 얻어 개조 공사를 시작한다. 마을 노인들의 텃세를 경계했지만, 막상 그들은 낯선 이의 등장에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불청객은 다름 아닌 떠돌이 개. 불쑥 찾아와 공들여 손본 집을 망가뜨리는 개에게까지 방어 태세를 취하던 호진은 문득 깨닫는다. 자신이 잊고 있던, ‘숫기’라는 천진한 마음에 대해. 이기호 장편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의 씨앗이 담긴 이 짧은 소설은 굳게 닫힌 마음이 뜻밖의 존재를 통해 조금씩 열리는 순간을 그린다.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 가장 높은 곳을 향해 터지는 소설이라는 함성 ‘언제’ ‘어떻게’ ‘어디’ ‘누구’ ‘왜’ ‘무엇’이라는 육하원칙을 제목에 나누어 가진 단편들은 표제작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와 어우러지며 한 권의 보고서를 이루는 듯한 구성의 묘를 획득한다. 문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 작가와 독자, 국가와 예술, 쓰는 존재들 간의 미묘하고도 첨예한 상호작용을 포착해낸 이 책은 실제로 ‘문학을 둘러싼 우리 모두에 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함께 이루는 크고 작은 사회를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하지만 너무 잊기 쉬운 노력들이 있다는 것. 이기호가 삶의 핍진한 단면들로 전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메시지이고, 작가에게는 소설쓰기 자체가 그 노력의 일환인 듯하다. 이기호는 ‘우리가 엉망이 되어가는’ 이유를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소설화하기 시작했다. 한껏 몸을 낮춘 그의 소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들을 둘러싼 체제와 권력을 향해 기어이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체제의 구성원인 작가 자신에게도 되돌아온다. 작가 이기호의 고민과 반성, 변화를 향한 희망이 아프고도 열띤 목소리로 담긴 이 책은 이 시대를 위한 저항문학이 제대로 되살아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 나는 아주 가끔 정의롭고, 대부분은 끔찍하다. 이 책은 그 마음에 대한 기록이다. 끔찍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진실도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_이기호,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