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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산문 초판 한정 사인 인쇄본, 개정판
김애란
문학동네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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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나를 부른 이름

나를 키운 팔 할은 … 009
언제나 꿈꿔온 순간이 … 015
야간 비행 … 023
여름의 풍속 … 029
당신과 조우 … 046
현수막 휘날리며 … 054
한여름 밤의 라디오 … 060
나의 기원, 그의 연애 … 071
카드놀이 … 078
안아볼 무렵-이효석문학상 수상 소감 … 091
몸과 바람 … 096
속삭임-단어 사전 1 … 099
기우뚱-하다-단어 사전 2 … 102

2부 너와 부른 이름

생일 축하-창비 오십 주년 축사 … 107
여름의 속셈-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십 주년 발문 … 114
그녀에게 휘파람 … 126
연호관념사전 … 140
그녀의 푸른 손-황순원문학상 축사 … 150
두근두근 산해경山海經 … 159
말言 주변에서, 말주변 찾기-박완서, 「닮은 방들」 … 164
특별하고, 더럽고, 수치스럽고, 아름다운-헤르타 뮐러, 『숨그네』 … 170
부사副詞와 인사-단어 사전 3 … 176
초겨울-단어 사전 4 … 180

3부 우릴 부른 이름들

알록달록한 점점點點 … 185
리듬의 방향-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폴란드 북부 도시 그단스크 … 193
문장 영향권 … 204
점, 선, 면, 겹 … 213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 229
아는 얘기, 모르는 노래 … 245
빛과 빚 … 257
잊기 좋은 이름-「물속 골리앗」 작가노트 … 264
말의 약점-단어 사전 5 … 271

초판 작가의 말 … 273
개정판 작가의 말 … 277

저자 소개 1

Ae-Ran Kim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이중 하나는 거짓말』,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한무숙문학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최인호청년문화상 등을 수상했고, 『달려라, 아비』 프랑스어판이 프랑스 비평가와 기자들이 선정하는 ‘리나페르쉬 상(Prix de l’inapercu)’을 받았다. 2015년도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에서 1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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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8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336g | 133*200*18mm
ISBN13
9791141618568

책 속으로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p.12 「나를 키운 팔 할은」 중에서

몸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고 맘속에선 미풍이 불던 우리의 여름. 창문 너머론 거대한 초록이 넘실거리고, 그 시절 대중에게 사랑받던 젊은이 둘이 “나 더이상 무얼 바라겠니”라 노래하고 있었다. 대걸레와 빗자루를 든 그애와 내가 서 있는 창밖으론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하얀 뭉게구름이 흘러갔고, 힙합 문법에 맞게 사회 비판을 일삼던 두 가수는 그때만큼은 서정적인 멜로디에 몸을 맡긴 채 지금이 참 좋다고, 젊어서 참 기쁘다는 식의 가사를 읊고 있었다.
---pp.20-21 「언제나 꿈꿔온 순간이」 중에서

이따금 나는 내 성정의 경박하고 아름다운 어떤 부분, 내가 껴안는 상스러움의 많은 부분은 그 별들의 영향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토성의 영향 아래 있는 우울한 기질의 학자처럼, 빛을 흡수한 뒤 천천히 사라지는 야광 별의 영향을 받으며, 길을 걷고, 물건을 사고, 가끔은 그 대가리가 커다란 모니터 앞에 앉아 글을 쓰다, 전화가 오면 다시 벌떡 일어나 놀러 나갔던 것은 아닐까 하고.
---p.28 「야간 비행」 중에서

만일 언젠가 제 소설에 명랑한 세계가 가능했다면 그건 제가 특별히 건강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특별히 밝은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찧고 까불며 놀 수 있는 마당을 선배들이 다져줬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제 농담이 선배들의 진담에 빚지고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p.110 「생일 축하」 중에서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p.118 「여름의 속셈」 중에서

요즘 나는 ‘우리는 누군가와 반드시 두 번 만나는데, 한 번은 서로 같은 나이였을 때, 다른 한 번은 나중에 상대의 나이가 됐을 때 만나게 된다’는 걸 배웠다. 살다보면 가끔은 두번째 만남이 훨씬 좋다는 것도.
---p.122 「여름의 속셈」 중에서

부사는 명사나 동사처럼 제 이름에 받침이 없다. 그래서 가볍게 날아오르고, 허공에 크게 선을 그린 뒤 ‘그게 뭔지 알 수 없지만 바로 그거’라고 시치미를 뗀다. 부사 안에는 뭐든 쉽게 설명해버리는 안이함과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안간힘이 들어 있다. ‘참’ ‘퍽’ ‘아주’ 최선을 다하지만 답답하고 어쩔 수 없는 느낌. 말(言)이 말(言)을 바라보는 느낌. 부사는 마음을 닮은 품사다.
---p.178 「부사(副詞)와 인사」 중에서

책을 읽다 문득 어떤 문장 앞에 멈추는 이유는 다양하다. 모르는 정보라. 아는 얘기라. 아는 얘긴데, 작가가 그 낯익은 서사의 껍질을 칼로 쓰윽 벤 뒤 끔찍하게 벌어진 틈 사이로 무언가 보여줘서. 그렇지만 완전히 다 보여주지는 않아서. 필요한 문장이라. 갖고 싶어서. 웃음이 터져. 미간에 생각이 고여. 그저 아름다워서.
---pp.214-215 「점, 선, 면, 겹」 중에서

나란 사람은 타인에게 냉담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그렇게 애쓰지 않으면 냉소와 실망 속에서 도리어 편안해질 인간이라는 것도 안다. 타인을 향한 상상력이란 게 포스트잇처럼 약한 접착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해도 우리가 그걸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런 얇은 포스트잇이 쌓여 두께와 무게를 지닌 무언가가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p.226 「점, 선, 면, 겹」 중에서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pp.241-242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중에서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 혹은 부족한 것은 공포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선善에 대한 상상력이 아닐까.

---p.268 「잊기 좋은 이름」 중에서

출판사 리뷰

살랑 미풍이 불 때 마음은 부풀고 우리는 조금 자란다
은은히 반짝이는 것들을 디디며 마침내 당도한 이곳
지금의 삶을 힘껏 껴안는 김애란의 작고 오래된 비밀

김애란은 어떤 시간을 보내 지금과 같은 소설가가 되었을까. 아마 김애란의 소설을 읽는다면 자연스레 품게 될 궁금증일 것이다. 『잊기 좋은 이름』은 그 비밀에 처음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탐스럽고 훌륭한 보고이다. 이번 책은 각 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나’에게서 시작하여 ‘너’로, 그리고 다시 ‘우리’로 뻗어나가는 세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 방향은 자연스러운 변화의 흐름을 하나의 지향으로 꿰어내는 작가의 의도가 담긴 것이리라.

1부 ‘나를 부른 이름’은 “누군가의 겸연쩍은 ‘뽕치기’로부터 ‘소설’이란 그럴듯한 ‘뻥치기’에 이른”(90쪽) 작가의 과거가 유쾌하면서 울림이 있는 목소리로 전해진다. 마음을 부풀게 하는 학창시절 누군가와의 간지러운 주고받음, 고향인 지방에서 상경해 뜨거운 햇볕 속에서 몸을 누일 작은 방을 찾아다니던 스무 살의 헤맴, 대학교 컴퓨터실에서 처음 등단 소식을 들었을 때 크게 울렁이던 마음이 선명한 해상도로 펼쳐짐으로써 이번 책을 청량하고 짙푸르게 수놓는다. 특히 “교육이나 교양으론 대체할 수 없는, 구매도 학습도 불가능한 유년의 정서”(10쪽)가 만들어진 어머니의 칼국숫집 맛나당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부모의 연애담을 능청스럽게 풀어내는 몇몇 에세이는 김애란 소설이 지닌 사람과 삶을 긍정하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게 하는 소중한 글이다.

2부 ‘너와 부른 이름’은 신뢰와 애정을 담아 건네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인사가 담겨 있다. 김연수, 윤성희, 편혜영 작가 등 소설이라는 세계를 통해 처음 만나 관계를 이어나가는 동료 작가와의 일화는 우정이 어떻게 시작되고 두터워지는지 내밀하면서 보편적인 양상을 들여다보게 한다. 또한 작가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다. 박완서에서 헤르타 뮐러에 이르기까지 자분자분한 음성으로 책 속 세계로 안내하는 작가의 손길을 따라 이야기를 다채롭게 받아들이고 음미하는 또하나의 방식을 알 수 있다.

3부 ‘우릴 부른 이름들’은 우리라는 넓은 단어로 담아낸 공동체의 모습을 비춘다. 폴란드 그단스크를 찾았다 방문한 제2차세계대전박물관을 거치며 시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포개어 읽는가 하면, 우리 삶의 돌이킬 수 없는 표징이 된 세월호 사건 앞에서 느낀 혼란과 낙망을 여과 없이 고백한다. 그러한 어지러움과 실망 속에서도 마치 책장 사이사이에 은근히 감춰진 꽃잎처럼 타인에게 건네받은 따뜻하고 물컹한 것이 3부 갈피 속에 들어가 있어 우리에게 숨쉴 자리를 내어준다.

김애란은 이번 책을 ‘이름’이라는 공통의 단어로 묶으면서 ‘내가 부른 이름’이라거나 ‘너를 부른 이름’ ‘우리가 부른 이름’이라 하지 않고, ‘나를 부른 이름’ ‘너와 부른 이름’ ‘우릴 부른 이름들’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는 스스로에 대해 말할 때조차 오롯하게 혼자 있는 독자적인 개인이 아니라 타인들 속에서 함께하는 개인의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는 뜻일 것이다. 일인칭이 아니라 그 너머를 향해 힘껏 뻗어나가는 움직임, 그렇기에 혼자에게는 필요치 않은, 늘 둘 이상이 모여 있을 때 의미와 필요가 생겨나는 이름이라는 단어가 이번 책을 감싸안는 이유일 것이다.

*

첫 산문집에 새 옷을 입혀 다시 내보냅니다.
덕분에 저도 오래전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최근에 쓴 산문들과의 차이가 보였습니다.

예컨대 첫 산문집에 등장한 제 ‘젊은 부모’는 두번째 산문집에 이르러 쇠약해지셨고, 제가 오십 주년 축사를 건넨 출판사는 육십 돌을 넘었습니다. 이국의 한 시인이 제게 준 연필은 특별한 새 주인을 찾았고, 자전거 앞자리에서 아빠를 돌아보며 웃던 K 선배의 딸은 어엿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세번째 산문집을 낼 즈음이면 또 많은 게 달라져 있겠지요?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며 흘러가는 구름처럼 혹은 그 구름을 옮기는 바람처럼요.

물론 변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제 “성정의 경박하고 아름다운 어떤 부분, 내가 껴안는 상스러움의 많은 부분”은 지금도 여전하고, 벌받듯 맨손으로 도시의 “축제를 받치고 있을” 사람들의 근심 또한 그대로이거나 더 깊어진 듯합니다. 옛날 시의 아름다움과 누군가를 애도하는 이들의 마음 또한 변하지 않은 듯하고요.

변하지 않은 것 중에는 원고 앞에서 매번 쩔쩔매는 저의 모습도 있습니다. 어떤 글을 쓰든 고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그 과정과 수고를 다른 데 양보하거나 위탁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뭘까 생각합니다.
제 속의 어떤 고지식함 때문일 수도 혹은 이 산문집에 적은 여러 이름 앞에서 무언가 삼가는 마음, 옷매무새를 살피는 예의 같은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닐 테지만요.

한동안 글쓰기에 용기를 잃었던 시기, 제게 힘이 되어준 이름들에게 감사와 우정의 인사를 전합니다. 정말이지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릅니다.

2026년 한여름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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