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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과 '만화'는 꽤나 잘 어울리는 친구이다.
-신필립(http://blog.yes24.com/aska1206)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선배들이 손에 들고 다니며 읽던 책 중 하나가 바로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였다. 그 때 선배들은 1학년인 나에게 “니가 읽기엔 좀 어려운 책이야.”라는 말을 했고, 그 말에 기가 좀 죽었지만 오히려 오기가 나서 나도 한 번 읽어 보겠다고 소리쳤던 책이 바로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이기도 했다. 그 책에 밑줄을 쳐가며 이게 무슨 뜻일까 저건 또 무슨 말일까 한참을 고민하면서 나름 재미있게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내 대학 시절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책이 얼마전 만화로 다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 명의 만화 작가가 다시 구성한 『미학 오딧세이』가 바로 그것이다.
‘미학’이라는 말과 ‘만화’라는 단어가 어떻게 어울려 있을까라는 궁금증에 책을 펼쳤다. 1권은 키치적 감수성으로 엽기 발랄한 그림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고 하는 현태준이 원시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예술 세계를 설명해주고 있다. 고대의 예술 기원설로 시작해서 그리스를 지나 헬레니즘을 거쳐, 중세 찍고, 르네상스 살짝 들렸다가, 근대까지 후루룩 단 번에 돌아본다. 원작이 주는 느낌과 만화로 각색한 이 책이 주는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원작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일 수 있지만 처음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생략으로 인한 흐름 잡기가 생각보다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미학 그리고 루벤스와 푸생,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예술론 등 예술에 대해서 비슷한 시기에 다른 견해를 표출한 사람들을 대비시켜 설명한 것은 쉽게 전달이 되지만 예술을 보는 관점에 대한 철학적 사상 전개는 오히려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만화의 강점, 그림을 통하여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일반 예술 교양서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핵심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어 진도도 빨리 나갈 수 있다. 『삼인 삼색미학 오딧세이』는 그 구성 또한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1권에서는 각 장 처음에는 에셔(Maurits C. Escher)의 그림 혹은 판화와 그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갑자기 왠 에셔?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각 장의 제목과 그리고 내용과 기가막히게 잘 매치 시켜놓아서 오히려 더 신선하다. 그리고 책 중간중간에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페이지가 삽입되어 있는데 이른바 ‘생활미학산책’이라는 코너이다. 이 코너에서는 옛날에 나왔던 미학관련 서적이나, 그 장에 맞는 사진이 실려 있다. 가령 중세를 설명하는 장의 ‘생활미학산책’ 코너에는 움베르토 에코가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장 자끄 아노 감독의 <장미의 이름> 영화와 한국판 ‘깔깔론(이 책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을 지칭)’이라고 하는 유머책 소개가 들어있다.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를 3명의 만화 작가들이 참여하여 자기만의 그림과 관점으로 다시 내 놓은 책인 만큼 원작의 재미에, 만화보는 재미 그리고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새로운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게 하는 재미까지 줄 것이다. |
원작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미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대중적으로 소개한 《미학 오디세이》를 만화로 작업하면서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다양한 이론과 풍부한 내용을 최대한 살려 독자들을 지식의 세계에 흠뻑 빠지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작자가 머리말에 썼듯이 원작의 구조는 촘촘해서 이를 해체하고 새롭게 창조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시간이 필요했다. 《미학 오디세이》1, 2, 3권은 시간적으로 진행되면서도 공간을 넘나드는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대화체와 설명글의 교차, 문어체와 구어체의 결합, 적극적인 도판 활용 등 선형적인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컷으로 상징되는 만화적 장치에 대입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또한 각 권은 에셔, 마그리트, 피라네시라는 화가의 그림으로 기술적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세 명의 작가들은 이를 각기 다른 방식과 색깔로 창조적으로 파괴했다. 하지만 세 명의 작가 공히 원작의 내용과 담고자하는 주제는 최대한 살렸다. 정보는 살리되 보는 즐거움은 배가 시켜 지식만화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원작과 어떻게 차별화 할 것인가 원작의 정보와 주제는 살리되 만화라는 새로운 미디어로 재창조하는 작업 역시 중요한 일이었다. 만화의 특징인 ‘쉽고 재미있게’ 표현하기 위해 원작을 극화 형식으로 재창조하거나(3권의 경우), 작가의 개성과 생각을 적극 개입시켜 과감히 생략, 추가하거나(1권), 독특한 캐릭터와 트랜디한 채색, 재미있는 말투로 지루하고 어려운 설명들을 감각적으로 소화(2권)했다. 원작을 읽었던 독자들에게는 원작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를 주고,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는 미학과 예술, 그리고 다양한 사유의 세계에 접근하는 입문서로 유효한 교양만화이다. 독특한 캐릭터가 주는 즐거움 만화가 주는 즐거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림 자체를 보는 즐거움일 것이다. 특히 《삼인삼색 미학 오디세이》에서는 실존 인물들인 철학자, 화가들이 각기 다른 세 작가들의 개성만큼이나 독특하게 그려지고 있다. 컨닝 대장으로 묘사한 아우구스티누스, 슈퍼맨으로 묘사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개구쟁이 아가씨로 묘사한 칸트 등 현태준 작가는 대가의 이름이나 사상 등을 키치하게 해석해 파격적인 그림으로 옮겨왔다. 이우일 작가는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답게 실존 인물들의 사진과 초상 등을 보며 철저히 연구해 독특한 만화 캐릭터로 승화했다. 괴팍하지만 유머 감각 있는 헤겔, 댄디한 신사 메를로-퐁티, 잘난 체하는 정신과 의사 역할의 비트겐슈타인 등 그림 자체만으로도 대가의 사상과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게 캐릭터를 창조했다. 그리고 난해한 탈근대 미학을 다룬 김태권 작가는 실존 인물의 특성과 3권의 이야기 축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캐릭터를 적절히 혼합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창조했다. 어린 왕자 캐릭터로 나와 병든 세계를 구하려는 발터 벤야민, 흰 토끼로 등장하는 보르헤스, 완고한 신전지기로 나오는 하이데거 등 창조적인 캐릭터가 읽는 즐거움을 더해줄 것이다. 창조적 번역으로서의 만화 창작만화가 희귀해지고 있는 요즈음, 새로운 트랜드로서 ‘학습만화(혹은 교양만화)’, ‘에듀테인먼트 만화’가 유행하고 있고, 그 대상층은 주로 초등학생이다. 대개 46배판의 판형에 컬러, 180여쪽 정도의 사양으로 ‘학습’이라는 미끼로 ‘만화’에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들을 유혹하고 있다. 만화 강국인 일본이나 유럽과 차별된 우리 만화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유행을 따라가며 조악하고 빠르게 생산되고 있는 학습만화를 보면 한편으론 걱정스럽기도 하다. 교양의 건강한 대중화란 측면에서 만화라는 장르만큼 지식과 정보를 효율적으로 재미있고 쉽게 전달하는 매체도 없다. 잘 만든 한 편의 만화는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도 감동과 정보, 재미를 줄 수 있는 교양서가 될 수 있다. 미학과 철학, 예술이라는 딱딱하고 난해한 이론들을 재미있게 풀어쓴 《삼인삼색 미학 오디세이》는 잘 만든 교양만화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현태준의 엽기발랄 《미학 오디세이》 시간상으로 원시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시기의 미와 예술을 다루고 있다. 작가의 개성이 가장 솔직하고도 직접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현태준 작가는 키치적 감수성과 사회적 금기를 작품에 과감히 드러내고 있다. 또한 ‘예술’이라는 ‘그들만의 고상한 취미’를 똥과 코딱지, 성적 호기심으로 대변되는 일반인의 원초적 욕구와 링크시키고 있다. 또한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학에 대한 생각을 ‘생활미학산책’이라는 정보 페이지를 통해 옮겨왔다. 작가는 ‘그리스의 아테네가 이역만리 대한민국의 촌동네에 버젓이 나타나는 게 신기하고 우습기도’ 하다며 ‘나에게 미학은 단지 폼 재기 위해서 끼고 다니는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독자들은 현태준의 《미학 오디세이》를 보며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각을 발견하게 되고 자기만의 심미안을 얻게 될 것이다. 더불어 ‘미학’이라는 학문이 우리에게 멀리 있는 학문이 아니라 가까이 존재하는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우일의 재기만발 《미학 오디세이》 헤겔의 ‘예술의 종말’로부터 시작하는 2권은 원작의 내용을 가장 잘 살린 작품이다. 진중권 작가가 ‘책의 구성이 너무 조밀해서 한 부분을 고쳤다가는 책을 완전히 새로 써야 할 것처럼 보였다’고 밝혔듯이 촘촘한 원작의 내용을 이우일 작가는 특유의 캐릭터와 재치있는 대사로 자연스럽게 옮겨왔다. 원작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사 부분은 텍스트에게 양보하고, 본문에서는 화려한 색감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텍스트 양의 압박에서 눈을 시원하게 해방시키고 있다. 그리고 자그마한 캐릭터의 표정과 손짓, 의상에도 내포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피카소의 줄무늬 티셔츠, 고뇌하는 세잔의 모습, 거만한 비트겐슈타인 등 캐릭터 하나하나에도 사상과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 도상을 가지고 있다. 만화의 캐릭터가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재미를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만한 작품이다. 김태권의 쾌도난마 《미학 오디세이》 난해한 탈근대 혹은 포스트모던의 미학을 다루고 있다. 미학을 전공한 김태권 작가는 원작의 내용을 소화하고 더 나아가 자기 것으로 체화해 또다른 김태권만의 미학책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공부를 바탕으로 깊이있는 내용과 발랄한 유머를 버무려 그저 난해하다고만 알고 있던 포스트모던의 미학을 극화로 재창조했다. 세계의 종말과 관련된 음모에 휘말려 쫓기는 만화가와 병든 세계를 구하려는 발터 벤야민, 세상을 구해줄 <신의 글>을 찾아 나서는 보르헤스와 이들을 뒤쫓는 하트여왕과 병사들... 가상과 현실, 텍스트와 그림, 인용을 넘나드는 이야기 자체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할 수 있다. 김태권 작가는 독자들에게 그저 즐기라고 말하고 있다. ‘어린 시절 소풍 때마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보물찾기처럼’ 포스트모던의 예술로 가는 길은 ‘모험’이고 ‘놀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적 유희를 맛보고 싶은 독자들은 김태권 작가의 ‘초대장’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