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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ION
고은의 첫인상을 그래픽 아트로 나타냈다 PREFACE 쓰지 않음을 쓰다 WORKS 고은의 주요 활동과 저작물을 간추렸다 TALKS AND TALES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고은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들었다 PORTRAITS 고은의 활동상을 화보에 담았다 BIOGRAPHY 고은의 삶을 서술한다 RUMOR 60년대 가짜 고은 사건을 추적한다 70S 70년대 민주화 투쟁의 일기를 수록했다 SIMILARITY 칠레의 혁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소개한다 NOBEL PRIZE 매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고은. 노벨 문학상에 대해 알아본다 POETRY 고은의 시 몇 편을 골랐다 IN-DEPTH STORY (INTERVIEW / STILL LIFES / LECTURE) 고은과 대담했다. 수원 자택 풍경을 담았다. 청춘에게 전하는 강연을 옮겼다 COMPLIMENT 고은은 누구인가. 세계 문인들의 평가를 모았다. |
高銀, 호:파옹(波翁), 본명:고은태(高銀泰), 법명:일초(一超)
고은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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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은 용케 살아남았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다. 까닭 없이 우는 날이 많았다. 한번 울면 길 게 울었다. 날이 밝으면 멍하니 방공호를 팠다. 시체가 무더기로 나왔다. 죽창에 찔려 폐가 튀어나온 주검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달려가 시체를 더듬었다. 피붙이의 살덩이를 안고 울었다. 친구의 누이는 피범벅이 된 속곳 차림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먹고 자며 고은 은 백 여 구가 넘는 시체를 캤다. 며칠 뒤 집에 돌아와 빨래비누로 몸을 문댔지만 시취는 가시지 않았다. 몸속 깊이 들러붙은 냄새는 보름이 지나서야 사라졌다. 별이 총총한 밤이었다. 좌익에게 어머니와 누이를 잃은 친구가 말했다. “저 별들 다 쏴 버리고 싶다.” --- p.45
1962년 어느 여름밤이었다. 마니산 정상에서 철야 입정에 들어갔다. 철야 기도를 드리는 데 별이 쏟아졌다. 아름다웠다. 고은은 밤새 울었다. 예술이 하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스님 이 시나 소설을 쓰는 일을 속되게 어겼다. 종교냐 예술이냐의 기로가 그 새벽의 명제였다. 끝내 고은은 예술을 택하기로 했다. 저 미친 거리 속으로 내려가자고 되뇌었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 p.51 정릉의 병원에서 고은은 30시간 만에 깨어났다. 간만에 깊은 잠이었다. 자살을 감행한 날 예비군은 특수 작전을 훈련했다. 북한군의 침입에 대비해 산악 지대까지 훈련 반경을 넓혔 다. 예비군이 고은을 발견해 병원에 보냈다. 의사는 고은의 위장에서 수면제를 빨아냈다. 나의 죽음과 전태일의 죽음은 무엇이 다른가. 고은은 전태일의 죽음에 담긴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 한국 사회의 현실에 눈을 떴다. 더는 자살하고 싶지 않았다. 불면증이 사라졌다. --- p.55 70년대 후반 고은은 거리의 시인이었다. 문단과 재야, 노동 현장 어디에도 고은이 있었다. 70년대 고은의 시는 허무와 탐미를 벗어나 혁명과 투쟁을 노래했다. 비유와 상징은 줄었 고 산문화 경향을 띠었다. 그러다 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시적 상징과 투쟁 의지를 공 히 성취한 저항시를 발표한다. 1978년 발표한 [화살]이 대표적이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 온몸으로 가자 / 허공 뚫고 / 온몸으로 가자 /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 박혀서 /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 p.58 80년대 중반 이래 고은의 시는 민족 문학, 통일 문학, 세계 문학으로 나아갔다. 1985년부터 1994년까지 집필한 서사시 《백두산》에서는 항일 독립 운동을 그려 민족정신을 고취했다.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집필한 연작시 《만인보》에서는 민중의 삶과 애환을 세밀히 그려 우리 민족상을 드러냈다. 나아가 자연과 우주와의 교감을 노래하는 시를 발표했다. 형식면에서는 장시와 단시를 두루 집필했다. 수십 권짜리 대하 서사시를 쓰면서도 죽비 같은 한두 줄의 단시도 써냈다. 고은의 시에는 좌표가 없다. --- p.62 “1945년 여름 이후 내가 만난 모국어와 세종의 문자가 내 운명입니다. 나는 내 모국어이기 도 해요. 5백년 뒤 사어가 될지 모를 언어의 멸종 시기를 앞두고 있는 나는 내 모국어에의 헌신이 곧 나의 삶이에요.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은 더 이상 추상적일 수 없어요. 나는 나의 말이고 나의 글이에요. 나의 말과 글을 잃어버리는 그 치매의 소실이 나의 내일일 거예요.” --- p.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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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무엇입니까? 시인이 답했습니다. 그 질문 속에 시가 있어요. 거기 가 봅시다. 다시 물었습니다. 시인은 무엇입니까? 시인이 답했습니다. 시와 시인은 때때로 하나이고 때때로 둘입니다. 그의 말은 선시와 서사시를 오갔습니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6호에서는 ‘한국이 낳은 세계의 시인’ 고은을 만났습니다.
고은은 그의 시 [자화상]에서 노래합니다. “나는 8·15였다 / 나는 6·25였다 / 나는 4·19 산중이었다 / 나는 곧 5·16이었다 / 그 뒤 / 나는 5·18이었다 / 나는 6·15였다 / 그 뒤 / 나는 무엇이었다 무엇이었다 무엇이 아니었다 / 이제 나는 0이다 피투성이 0의 앞과 0의 뒤 사이 여기” 시인의 삶이 시, 개인의 역사가 진짜 역사입니다. 장래 희망을 묻는 일본인 교장의 질문에 “천황 폐하”라 답한 당돌한 소년. 어느 날 길에 떨어진 책 한 권을 만납니다. 《한하운 시초》. 나병 환자였던 한하운의 절창이 가슴에 꽂혔습니다. 고은은 시집을 읽고 엉엉 울며 결심합니다. “나도 한하운처럼 불치병에 걸려 이 세상을 떠돌 것이다. 나도 한하운처럼 떠도는 시를 쓸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은 소년의 감수성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전란을 겪으며 마을 사람들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거의 죽었습니다. 길섶의 들풀처럼 숱한 죽음을 겪으며 고은은 생의 허무에 빠집니다. 이후 출가와 환속, 수차례의 자살 시도를 거치며 죽음과 탐미에 집착합니다.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나 폭음과 주란을 일삼던 시절, 술집에서 우연히 접한 부고 기사가 인생을 바꿉니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그는 허무와 탐미를 벗어나 혁명과 투쟁을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 온몸으로 가자 / 허공 뚫고 / 온몸으로 가자 /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 박혀서 /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1970년대 고은이 쓴 일기장에는 당시 시대상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1974. 10. 23. 나 같은 순수 시인을 참여 시인으로 만들 것인가. 이 군인의 시대, 이 육군의 시대야, 이 총검의 시대야, 이 탱크의 시대야, 이 색안경의 시대야.” 숱한 시련은 필생의 역작을 낳았습니다. 옥중에서 구상한 연작시 《만인보》는 5,600명의 인간 군상을 시로 녹여낸 ‘한민족의 호적부’이자 문학 사상 최대의 기획으로 꼽힙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점치는 영국의 도박사이트 레드브록스에서 고은은 2015년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 8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현재 스웨덴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문인입니다. 《만인보》, 《순간의 꽃》, 《선시집》 등의 시집을 비롯해 장편소설 《화엄경》이 스웨덴어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 시인은 오전보다 오후에 인간이 참다워진다고 말합니다. 지혜는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다는 것. 가장 나중에 후회처럼 온다는 것. 수많은 어리석음과 과오, 시행착오가 만들어낸 결실임을 알려줍니다. 고은의 삶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험준한 길의 방황 속에 희망의 반딧불이 빛남을 역설합니다. 여러분 각자의 여정에 이 책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