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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그래피 매거진 ISSUE 6 고은
고은 평전-우주의 사투리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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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그래피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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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IMPRESSION
고은의 첫인상을 그래픽 아트로 나타냈다

PREFACE
쓰지 않음을 쓰다

WORKS
고은의 주요 활동과 저작물을 간추렸다

TALKS AND TALES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고은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들었다

PORTRAITS
고은의 활동상을 화보에 담았다

BIOGRAPHY
고은의 삶을 서술한다

RUMOR
60년대 가짜 고은 사건을 추적한다

70S
70년대 민주화 투쟁의 일기를 수록했다

SIMILARITY
칠레의 혁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소개한다

NOBEL PRIZE
매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 고은. 노벨 문학상에 대해 알아본다

POETRY
고은의 시 몇 편을 골랐다

IN-DEPTH STORY (INTERVIEW / STILL LIFES / LECTURE)
고은과 대담했다. 수원 자택 풍경을 담았다. 청춘에게 전하는 강연을 옮겼다

COMPLIMENT
고은은 누구인가. 세계 문인들의 평가를 모았다.

저자 소개 1

高銀, 호:파옹(波翁), 본명:고은태(高銀泰), 법명:일초(一超)

한국의 대표적인 참여시인. 본명은 고은태로 1933년 전북 군산에서 출생하였다. 1952년 20세의 나이로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법명은 일초(一超)로 효봉선사의 상좌가 된 이래 10년간 참선과 방랑의 세월을 보내며 시작 활동을 하다가 1958년 『현대문학』에 시「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등을 추천받아 등단하였다. 1960년 첫 시집『피안감성』간행하였으며 1962년 환속하여 시인으로, 어두운 독재시대에 맞서는 재야운동가로서의 험난한 길을 걷기도 하였다. 초기시는 주로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 반면 이후 어두운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의식과 역사
한국의 대표적인 참여시인. 본명은 고은태로 1933년 전북 군산에서 출생하였다. 1952년 20세의 나이로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법명은 일초(一超)로 효봉선사의 상좌가 된 이래 10년간 참선과 방랑의 세월을 보내며 시작 활동을 하다가 1958년 『현대문학』에 시「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등을 추천받아 등단하였다. 1960년 첫 시집『피안감성』간행하였으며 1962년 환속하여 시인으로, 어두운 독재시대에 맞서는 재야운동가로서의 험난한 길을 걷기도 하였다. 초기시는 주로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 반면 이후 어두운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의식과 역사의식을 표출하었다. 영웅주의에 물들지 않고 진솔한 삶의 내면을 드러내는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주었다.

19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를 출판하며 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였으며 이후 시ㆍ소설ㆍ수필ㆍ평론 등 100여 권의 저서를 간행하였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 참여하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섰으며 계속해서 1984년『고은시전집』을 냈고 1986년『만인보』간행을 시작하였다. 1987~94년 서사시『백두산』, 1999년 시집『머나먼 길』을 간행하고, 미국 하바드대학 하바드옌칭 연구교수, 버클리대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전세계 10여개 언어로 50여권의 시집, 시선집이 간행되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 시 아카데미 회원 한국대표이자 서울대학교 초빙교수, 단국대학교 석좌교수이다. 저서로 『허공』,『개념의 숲』,『오십년의 사춘기』, 『고은 시 선집』, 『고은 전집』(총 38권) 등 1백여 종이 있으며, 2010년에는 연작시편 『만인보』가 전 30권으로 완간되었다. 2011년에는 작품활동 53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연시집 『상화 시편』을 발표했다.

한국문학작가상, 만해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대산문학상, 만해대상 등 국내 문학상 10여 개를 비롯하여 스웨덴 시카다 상, 노르웨이 비외르손 훈장 등 국내외 주요 문학상을 두루 수상했다. 최근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면서 한국의 첫 번재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고은의 다른 상품

저자 : 스리체어스 편집부
"I had three chairs in my house; one for solitude, two for friendship, three for society."
- Henry David Thoreau 《Walden》

2014년 7월 언론인, 광고인, 국회 보좌진이 모여 설립한 ㈜스리체어스는 세상에 없던 가치를 창출하는 미디어 스타트업입니다. ㈜스리체어스가 만들어 갈 가치란 ①당신과(one for solitude), ②당신의 친구와(two for friendship), ③당신이 속한 사회를(three for society) 보다 윤택하게 만드는 가치를 뜻합니다.

㈜스리체어스는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발행은 물론 인문사회 서적 출간, 인물 브랜딩, 각종 문화 행사 기획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08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58쪽 | 512g | 166*225*16mm
ISBN13
9791195325887

책 속으로

고은은 용케 살아남았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다. 까닭 없이 우는 날이 많았다. 한번 울면 길 게 울었다. 날이 밝으면 멍하니 방공호를 팠다. 시체가 무더기로 나왔다. 죽창에 찔려 폐가 튀어나온 주검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달려가 시체를 더듬었다. 피붙이의 살덩이를 안고 울었다. 친구의 누이는 피범벅이 된 속곳 차림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먹고 자며 고은 은 백 여 구가 넘는 시체를 캤다. 며칠 뒤 집에 돌아와 빨래비누로 몸을 문댔지만 시취는 가시지 않았다. 몸속 깊이 들러붙은 냄새는 보름이 지나서야 사라졌다. 별이 총총한 밤이었다. 좌익에게 어머니와 누이를 잃은 친구가 말했다. “저 별들 다 쏴 버리고 싶다.” --- p.45

1962년 어느 여름밤이었다. 마니산 정상에서 철야 입정에 들어갔다. 철야 기도를 드리는 데 별이 쏟아졌다. 아름다웠다. 고은은 밤새 울었다. 예술이 하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스님 이 시나 소설을 쓰는 일을 속되게 어겼다. 종교냐 예술이냐의 기로가 그 새벽의 명제였다. 끝내 고은은 예술을 택하기로 했다. 저 미친 거리 속으로 내려가자고 되뇌었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 p.51

정릉의 병원에서 고은은 30시간 만에 깨어났다. 간만에 깊은 잠이었다. 자살을 감행한 날 예비군은 특수 작전을 훈련했다. 북한군의 침입에 대비해 산악 지대까지 훈련 반경을 넓혔 다. 예비군이 고은을 발견해 병원에 보냈다. 의사는 고은의 위장에서 수면제를 빨아냈다. 나의 죽음과 전태일의 죽음은 무엇이 다른가. 고은은 전태일의 죽음에 담긴 의미를 새삼 깨달았다. 한국 사회의 현실에 눈을 떴다. 더는 자살하고 싶지 않았다. 불면증이 사라졌다. --- p.55

70년대 후반 고은은 거리의 시인이었다. 문단과 재야, 노동 현장 어디에도 고은이 있었다. 70년대 고은의 시는 허무와 탐미를 벗어나 혁명과 투쟁을 노래했다. 비유와 상징은 줄었 고 산문화 경향을 띠었다. 그러다 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시적 상징과 투쟁 의지를 공 히 성취한 저항시를 발표한다. 1978년 발표한 [화살]이 대표적이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 온몸으로 가자 / 허공 뚫고 / 온몸으로 가자 /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 박혀서 /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 p.58

80년대 중반 이래 고은의 시는 민족 문학, 통일 문학, 세계 문학으로 나아갔다. 1985년부터 1994년까지 집필한 서사시 《백두산》에서는 항일 독립 운동을 그려 민족정신을 고취했다.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집필한 연작시 《만인보》에서는 민중의 삶과 애환을 세밀히 그려 우리 민족상을 드러냈다. 나아가 자연과 우주와의 교감을 노래하는 시를 발표했다. 형식면에서는 장시와 단시를 두루 집필했다. 수십 권짜리 대하 서사시를 쓰면서도 죽비 같은 한두 줄의 단시도 써냈다. 고은의 시에는 좌표가 없다. --- p.62

“1945년 여름 이후 내가 만난 모국어와 세종의 문자가 내 운명입니다. 나는 내 모국어이기 도 해요. 5백년 뒤 사어가 될지 모를 언어의 멸종 시기를 앞두고 있는 나는 내 모국어에의 헌신이 곧 나의 삶이에요.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은 더 이상 추상적일 수 없어요. 나는 나의 말이고 나의 글이에요. 나의 말과 글을 잃어버리는 그 치매의 소실이 나의 내일일 거예요.”

--- p.130

출판사 리뷰

시란 무엇입니까? 시인이 답했습니다. 그 질문 속에 시가 있어요. 거기 가 봅시다. 다시 물었습니다. 시인은 무엇입니까? 시인이 답했습니다. 시와 시인은 때때로 하나이고 때때로 둘입니다. 그의 말은 선시와 서사시를 오갔습니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6호에서는 ‘한국이 낳은 세계의 시인’ 고은을 만났습니다.

고은은 그의 시 [자화상]에서 노래합니다. “나는 8·15였다 / 나는 6·25였다 / 나는 4·19 산중이었다 / 나는 곧 5·16이었다 / 그 뒤 / 나는 5·18이었다 / 나는 6·15였다 / 그 뒤 / 나는 무엇이었다 무엇이었다 무엇이 아니었다 / 이제 나는 0이다 피투성이 0의 앞과 0의 뒤 사이 여기” 시인의 삶이 시, 개인의 역사가 진짜 역사입니다.

장래 희망을 묻는 일본인 교장의 질문에 “천황 폐하”라 답한 당돌한 소년. 어느 날 길에 떨어진 책 한 권을 만납니다. 《한하운 시초》. 나병 환자였던 한하운의 절창이 가슴에 꽂혔습니다. 고은은 시집을 읽고 엉엉 울며 결심합니다. “나도 한하운처럼 불치병에 걸려 이 세상을 떠돌 것이다. 나도 한하운처럼 떠도는 시를 쓸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은 소년의 감수성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전란을 겪으며 마을 사람들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거의 죽었습니다. 길섶의 들풀처럼 숱한 죽음을 겪으며 고은은 생의 허무에 빠집니다. 이후 출가와 환속, 수차례의 자살 시도를 거치며 죽음과 탐미에 집착합니다.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나 폭음과 주란을 일삼던 시절, 술집에서 우연히 접한 부고 기사가 인생을 바꿉니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그는 허무와 탐미를 벗어나 혁명과 투쟁을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 온몸으로 가자 / 허공 뚫고 / 온몸으로 가자 /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 박혀서 /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1970년대 고은이 쓴 일기장에는 당시 시대상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합니다. “1974. 10. 23. 나 같은 순수 시인을 참여 시인으로 만들 것인가. 이 군인의 시대, 이 육군의 시대야, 이 총검의 시대야, 이 탱크의 시대야, 이 색안경의 시대야.”

숱한 시련은 필생의 역작을 낳았습니다. 옥중에서 구상한 연작시 《만인보》는 5,600명의 인간 군상을 시로 녹여낸 ‘한민족의 호적부’이자 문학 사상 최대의 기획으로 꼽힙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점치는 영국의 도박사이트 레드브록스에서 고은은 2015년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 8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현재 스웨덴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문인입니다. 《만인보》, 《순간의 꽃》, 《선시집》 등의 시집을 비롯해 장편소설 《화엄경》이 스웨덴어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 시인은 오전보다 오후에 인간이 참다워진다고 말합니다. 지혜는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다는 것. 가장 나중에 후회처럼 온다는 것. 수많은 어리석음과 과오, 시행착오가 만들어낸 결실임을 알려줍니다. 고은의 삶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험준한 길의 방황 속에 희망의 반딧불이 빛남을 역설합니다. 여러분 각자의 여정에 이 책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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