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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실천적 지식인의 삶,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정두희
아카넷 200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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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학술총서

책소개

목차

- 2판 서문
- 초판 서문

1장. 서론

2장. 중종 초 반역과 모반의 정치사

1. 중종 초의 역모 사건들
2. 중종반정 후의 논공행상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
3. 연산군대의 정치적 사건에 관한 논쟁의 격화
4. 중종 초의 정치사가 의미하는 것

3장. 조광조의 등장

4장. 조광조의 알성시 대책문

5장. 폐비 신씨의 복위 문제에 대한 논쟁과 조광조

1. 폐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박상과 김정의 상소
2. 중종반정과 폐비 문제가 남긴 것
3. 폐비 신씨의 복위 문제에 대한 논쟁
4. 박상과 김정의 처벌에 대한 조광조의 발언과 그 파장
5. 폐비 문제에 대한 논쟁이 남긴 것

6장. 단종의 어머니 권씨 왕후 소릉의 복권

1. 세조의 찬탈과 권씨 왕후
2. 성종대 남효온의 소릉 복위 주장이 제기한 정치적 논쟁
3. 연산군의 즉위와 소릉 복원 논의의 제개, 그리고 무오사화
4. 중종대 소릉의 복위 과정
5. 소릉 복위의 중요성과 조광조

7장. 정몽주와 김굉필의 문묘 배향

1. 유자광의 낙향 상소(중종 2년)
2. 연산군대의 김굉필
3. 조선 건국 이후 정몽주의 복권 과정
4. 정몽주와 김굉필의 문묘 배향에 관한 논쟁
5. 나머지말

8장. 소격서 폐지 논쟁에 나타난 조광조와 중종의 대립

1. 조광조의 소격서 폐지에 관한 상소(중종 13년 8월)
2. 중종대 이전의 소격서에 관한 논의들
3. 소격서 폐지를 둘러싼 왕과 유신들의 대립
4. 소격서의 폐시
5. 조광조의 실각과 소격서의 부활
6. 소격서 논쟁이 의미하는 것

9장. 돌아올 수 없는 길

1. 조광조 초기의 관력
2. 홍문과 전한
3. 홍문관 부제학
4. 동지 성균관사
5. 사헌부 대사헌
6. 조광조 생애의 전환점

10장. 중종 13년 5월의 대지진과 군자. 소인 논쟁

1. 중종 13년 5월 15일
2. 조광조에 의한 군자. 소인론의 제기(중종 13년 2월과 4월)
3. 중종 13년 5월 15일
4. 중종 13년 5월 17일
5. 중종 13년 5월 18일
6. 중종 13년 5월 19일
7. 중종 13년 5월 29일
8. 군자,소인. 논쟁이 의미하는 것

11장. 현량과 : 이념과 현실의 갈등

1. 천거제에 대한 조광조의 주장
2. 천거제에 대한 논쟁의 격화
3. 강윤희 고변 사건
4. 현랸과 급제자의 성격
5. 현량과 시행과 조광조

12장. 기묘사화와 조광조

1. 조광조에 의한 정국공신 개정 문제 제기와 기묘사화의 발단
2. 사화의 발생과 그 적법성에 관한 논쟁의 전개
3. 사화 주동 세력 및 그 모의 과정의 노출
4. 개혁안에 대한 비판의 제기와 조광조의 사사
5. 기묘사화와 조광조

13장. 조광조의 복권과정과 16세기 조선의 성리학

1. 머리말
2. 기묘사화 이후 중종 말기의 정국
3. 제1차 조광조 복권운동
4. 제2차 조광조 복권운동과 문묘배향
5. 맺는말 : 조광조 복권운동의 사상사적인 의미

14장. 실천적 지식인의 삶 :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1. 요약
2. 결론 : 조선 왕조에 남긴 조광조의 유산
3. 학문과 정치는 일치할 수 있는가?
4. <학자적 관료>의 길은 존재하는가?
5. 지성인으로서의 조광조

부록 : 조광조의 알성문과 시험 답안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저자 소개 1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81년 방문학자visiting scholar 자격으로 하버드 옌칭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에 머물며 한국사의 ‘글로벌’화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1983년에는 《조선 초기 정치지배세력 연구》(1983)로 제6회 두계학술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왕조의 얼굴: 조선 왕조의 건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2010), 《하나의 역사, 두 개의 역사학》(2001), 《조광조: 실천적 지식인의 삶, 이상과 현실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81년 방문학자visiting scholar 자격으로 하버드 옌칭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에 머물며 한국사의 ‘글로벌’화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1983년에는 《조선 초기 정치지배세력 연구》(1983)로 제6회 두계학술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왕조의 얼굴: 조선 왕조의 건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2010), 《하나의 역사, 두 개의 역사학》(2001), 《조광조: 실천적 지식인의 삶,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2000), 《미국에서의 한국사 연구》(1999), 《조선시대 인물의 재발견》(1997), 《조선시대의 대간 연구》(1994) 등이 있다. 편저로는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2007), 《유교, 전통, 변용》(2005), 《장희빈: 사극의 배반》(2004), 《한국사에 있어서 중앙과 지방》(2003) 등이 있다. 역사 에세이집으로는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역사》(2004)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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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정두희
서강대학교 사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전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 교환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초기 정치지배세력 연구』 『조선시대 대간 연구』 『미국에서의 한국사 연구』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조선 초기 지리지의 편찬' '조선 건국 초기 통치체제의 성립과 그 역사적 의미'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1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9103684

출판사 리뷰

불운한 정치적 현실에서 꽃피운 이상주의적 덕목
유교적 이상주의(지치주의[至治主義])를 통한 왕조의 도덕성 재확립, 소격서 폐지, 새로운 인재 등용을 위한 현량과 실시……. 세조의 왕위 찬탈, 연산군의 전제와 학정, 중종반정으로 이어지는 조선왕조의 파행적 정치사 속에 조광조라는 인물은 그 한복판에 서 있다. 34세라는 약관의 나이에 관직에 입문하여 38세에 기묘사화로 목숨을 잃을 때까지 불과 4년 동안에 조광조는 조선 왕조의 유교적 이념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 책은 조선 중기 정치사상사라는 커다란 맥락에서 조광조의 생애와 사상을 심도 있게 규명하고 있다. 사림파와 훈구파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무리하게 개혁정책을 추구하다 실패한 정치가, 조선 유교 사상사에 길이 남을 성공적인 사상가라는 극단적 평가를 넘어서서 이 책은 16세기 중종대의 정치 상황을 자세히 점검하면서 조광조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조광조의 개혁 정책!
조광조는 정치의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그 시대, 그 사회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위기와 혼란의 시대로 규정짓고 유교적 이상정치를 조선의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을 일생의 목적으로 삼는다. 연산군의 악정을 개혁함과 동시에 쫓겨난 신진사류를 등용하여 파괴된 유교적 정치질서의 회복에 힘쓰고자 했던 중종대의 분위기는 조광조의 위와 같은 정치적 신념과 더불어 그를 가장 중심적인 정치가로 만들었다. 중종의 신임을 받은 조광조는 성리학으로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고대 중국 3대(하, 은, 주 시대)의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하는 이른바 지치주의(至治主義―인간에 의해 다스려지는 이 세상이 하늘의 뜻이 펼쳐진 이상세계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중국의 성리학이 수용되고 정착되면서 나타난 한국적 특징이다. 이것은 조광조에 의해 정치적 실천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지치란 『서경』 「군진편」의 지치형향[至治馨香] 감우신명[感于神明]에서 나온 것으로, 잘 다스려진 인간세계의 향기는 신명을 감명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으며, 과거제의 폐단을 혁신할 목적으로 인재를 천거, 시험에 의하여 등용하는 제도인 현량과(賢良科)를 설치하고 많은 신진사류를 등용하여 유교정치 구현의 장을 마련하였다.

또한 도교의 제사를 맡아보는 소격서를 폐지하여 미신타파에 힘쓰고, 정몽주를 문묘 배향함으로써 조선시대 유교적 덕목과 계통을 다시금 재정립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국왕의 신임과 사림들의 암묵적 지지 이외에는 자신의 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권력기반이 없었던 조광조는 기묘사화를 통해 정치적 좌절을 경험하면서,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후 그는 사림정치가 구현되는 16세기 중기 이후 조선 사회에서 가장 뛰어난 유교 이념의 주창자로서, 사림들의 숨어 있는 생각과 시대적 요구의 핵심을 간파했던 지식인으로 평가받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그가 추구하던 개혁은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후 조선 왕조의 유교 문화가 독창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광조가 남긴 정치적 유산!
저자는 조광조가 남긴 정치적 유산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조광조의 사상은 지배정치체제를 정당화시켜주는 보수적 역할만을 담당했던 조선의 유교 역사 가운데 현실을 개혁하는 이상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만큼 학문과 정치의 일체성이라는 유교적 이념을 현실정치에서 이룩하고자 했던 조광조의 열정은 그의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둘째, 유교 국가인 조선 왕조에 있어서 정치가 도덕적일 수만은 없다는 당시의 시대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고도의 도덕적 행위로 간주한 조광조의 입장은 당시 조선 왕조의 이념적 방향을 선명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위상을 크게 향상시켰다.

셋째, 조광조의 개혁은 조선 왕조 지배층 내부에서 자체적인 노력으로 시도한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로 볼 수 있다. 조선 왕조의 지배체제가 보수적이며, 그 보수적 체제의 관성이 무척 강한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광조는 조선 시대 양반 사회의 양심으로서 활동하였으며, 자기가 속한 체제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입장을 일관되게 지켜 나갔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조광조가 성공한 개혁가인가, 실패한 정치가인가라는 단순한 평가보다는 그가 진정으로 추구했던 것은 무엇이며, 그 길에서 그가 겪었던 갈등은 어떠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상과 현실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자신의 이념을 소신 있게 추구했던 조광조의 면모는 도덕적 해이에 빠진 현재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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