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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면서
1장 논증이란 무엇인가 1. 주장-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2. 논증-왜 그런가? 2장 연역과 귀납 1. 타당성-심은하는 죽는다 2. 개연성-내일 비가 내릴 확률은? 3. 연역과 귀납의 복합-고길동은 벌을 받아야 한다 3장 좋은 논증이란 무엇인가 1. 좋은 논증의 조건 (1) 관련성 (2) 전제의 참 (3) 충분한 근거 (4) 반박 잠재우기 4장 논증으로 재구성하기 1. 호의적 해석 (1) 의도 확대의 오류-공부 안 하면 깡통 찬다 (2)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2. 숨은 전제 보완 3. 논증으로 재구성하기 5장 오류, 제대로 이해하기 1. 오류란 무엇인가 2. 오류의 종류 (1) 형식적 오류 후건 긍정의 오류 / 전건 긍정의 오류 '아니면'의 오류 (2) 비형식적 오류 3. 네 가지 기준으로 본 오류 (1) 무관련성의 오류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 / 발생학적 오류 인신 공격의 오류 (2) 수용 가능성 오류 이중 의미의 오류 / 질문 구걸의 오류(순환 논증의 오류) (3) 불충분한 근거의 오류 근시안적 귀납의 오류 / 무지 논증의 오류 결정적 증거 누락의 오류 / 공통 원인 간과의 오류 (2) 반박 피하기의 오류 반증 무시의 오류 / 우물에 독 뿌리기의 오류 6장 오류 분석 읽고 나서 |
卓石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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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아침에 눈을 뜬다. 눈을 뜨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물 한 잔 마시기. 건강에 좋다고 한다. 거의 하루도 빠뜨리지 않는 일이다. 물을 마신 후에는 습관적으로 신문을 펼친다. 매일 신문에 뭐 볼 거 있느냐는 식으로 말은 하지만, 습관이란 무서운지라 오늘도 신문을 펼치게 된다. 내게는 신문 뒷부분에 실린 사회면부터 보는 습관이 있는데 세상을 거꾸로 읽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앞으로 앞으로 읽다보면 신문의 칼럼과 사설을 읽게 되는데 별 내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른바 여론 지도층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이 또한 습관적으로 읽게 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사설이나 칼럼은 아침의 물 한 잔만큼도 내 건강을 지켜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미비한 점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는 있으나 내용을 떠나 칼럼이나 사설이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이라면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읽는 사설이나 칼럼이 제대로 씌어진 것인지, 만일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이나 줄 수 있는지,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씌어졌다. 이 책은 논리학의 셈본이다. 즉 논리학이란 무엇인지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논리학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보이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따라서 결코 어려운 책이 아니다. 어려운 논리학 책을 쓸 실력도 없거니와 이미 논리학 책은 아주 많이 나와 있으므로 한 권 더 추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논리학과 논리학의 셈본의 관계는 수학과 셈본의 관계와 비슷하다. 수학은 어렵고 수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인다. 미적분과 복소수, 벡타를 몰라도 살아가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나도 그런 것들을 배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여태껏 써본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셈을 할 줄 모른다면 불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동네 가게에서 라면 한 봉지를 사도 셈을 못한다면 얼마나 딱한 노릇인가. 셈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기술이다. 그래서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셈본을 배우고 셈을 할 줄 모르면 바보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논리학의 셈본은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물건을 교환하는 것 못지않게 생각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데, 왜 물건 교환에 필요한 셈본은 가르치면서 생각을 교환하는 데 필요한 셈본은 가르치지 않는지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남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면 생각을 주고받을 수가 없다. 또 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스스로 점검할 수 없다면 남의 말을 듣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가게에서 780원어치 물건을 고르고 1,000원을 냈다. 만약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두 사람 모두 셈을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셈을 못한다면 아주 난처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런 곤경이 사회를 불편하게 만들고 모두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셈본을 배운다.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떤가? 어떤 사람이 절도 용의자로 잡혀왔다. 형사가 다짜고짜 다그친다. "왜 훔쳤어?" 용의자는 "안 훔쳤어요."라고 대답한다. 몇 차례 같은 문답이 오가고 난 뒤에 형사는 "아니, 말귀를 못 알아듣네." 하며 한 대 쥐어박는다. 점차 강도가 높아지면 고문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두 사람이 모두 논리학의 셈본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형사가 "왜 훔쳤어?"라고 물으면 용의자는 "그것은 복합질문의 오류가 아닌가요?"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면 형사는 잘못을 인정하고 "그렇군. 그럼 다시 시작하자. 네가 훔쳤어?"라고 물을 것이다. 용의자가 아니라고 대답하면 형사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논리학의 셈본이다. 거스름돈을 잘못 받으면 제대로 셈을 해서 따지고 수긍하는 절차를 밟는다. 생각을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수학에 셈본이 필요하듯 논리학에도 셈본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논리학의 원리와 개념들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일상생활에 논리학을 적용하는 방법을 안내서처럼 제시하려 한다. 원리를 알지 못하더라도 안내서에 제시된 방법대로 따라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가령 에어컨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는 모르더라도 안내서대로 하면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다. 이 책은 안내서이다. 그러니까 논리학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여주는 설명서인 셈이다. 논리학이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안내서대로 하면 생각을 점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논리학 책이라고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휴대 전화기 작동 설명서를 대하듯 읽으면 될 것이다. 수학의 셈본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처럼 논리학의 셈본도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즉 이 책은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인들을 위한 안내서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주 읽는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을 분석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거의 매일 대하는 칼럼을 어떻게 읽어내느냐 하는 것은 세상을 보는 눈과 직결된 아주 중요한 문제다. 독자들이 칼럼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면 좋은 칼럼은 살아남고 시원찮은 칼럼은 사라지게 된다. 즉 우리 언론의 수준이 한 단계 높은 곳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의 신문은 칼럼을 쓰는 사람은 문장력으로, 읽는 사람은 감정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양쪽 모두 논리적 사고력을 갖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칼럼의 질이 높아질 것이고,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일조할 것이다. 독자는 신문의 칼럼을 분석하면서 우리가 읽는 칼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류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pp. 8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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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본은 실제로 셈을 하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다. 속셈학원에서 배운 셈을 동네 가게에서 실제로 과자 사는 데 쓰지 않는다면 셈본을 배울 이유가 있겠는가? 연습을 통해서 자기 것이 되면 더 이상 셈본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도 셈본의 일종이므로 독자 여러분이 완전히 익히게 되면 자연히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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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이 영화 <취권>에서 보여준 권법은 겉보기에 권법 같지 않다. 주정뱅이가 흐느적거리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자세히 보면 자연스러운 권법을 익히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그렇게 해서 권법이 몸에 완전히 익으면 권법을 잊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도 이 셈봄을 몸에 익혀 셈본을 완전히 잊기 바란다. 매뉴얼을 매뉴얼대로 하고 있다면 더 이상 매뉴얼은 필요 없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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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1년 7월 27일자 칼럼제시
약간은 어려워 보이는 이 칼럼은 논쟁적이다.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진념 부총리의 발언을 논박한 뒤에 경제의 어려움을 헤치고 나오기 위해 중국에서 배울 것은 세계화 강요의 살벌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궁리이고, 그것은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짜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칼럼은 사실상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진념 부총리 발언에 대한 반박이고, 다른 부분은 경제 난국의 해법이다. 논증으로 구성해보자. 〈가〉 전제 1. 진념 부총리가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고 말했다. 2. 첫째 이유는 기업 내부의 급여가 10배 이상 차이 난다는 것이다. 3. 둘째 이유는 중국에는 외국 자본 진출을 국부 유출로 몰아붙이는 '매판자본' 논란이 없다는 것이다. 4. 첫째 이유에 동의할 수 없는데 우리나라에도 그 정도의 격차는 흔하며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임금 격차에 있지 않다. 5. 둘째 이유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세계화 시대에 자본의 활동은 제약받지 않으므로 매판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외자가 들어와 기업을 세운다면 아무 문제가 없으나 세우는 대신 집어삼키므로 걱정거리가 된다. 6. 따라서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진념 부총리의 발언을 수긍할 수 없다. 7. 개발 독재에서 문민 정부를 거쳐 오늘의 국민의 정부까지 온갖 요직을 두루 거친 진념 부총리는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5∼10년 뒤 우리 경제의 위상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소름이 끼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8. 재계는 정부에게 발목만 잡지 말라고 요구한다. 결론 9. 중국에서 배울 것은 세계화 강요의 살벌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궁리이고, 그것은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짜내야 한다. 최대한 호의적으로 논증을 재구성하고 숨은 전제도 찾아내 보완해서 이 칼럼을 분석해보자. 관련성 이 논증은 두 개의 소논증으로 되어 있다. 전제 1에서 전제 6까지가 첫째이고, 둘째 소논증은 전제 6에서 결론 9까지이다. 첫째 소논증의 결론인 전제 6은 다음 소논증의 전제의 하나로 쓰인다. 두 개의 소논증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성해볼 수 있다. 〈나〉 전제 1. 진념 부총리가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고 말했다. 2. 첫째 이유는 기업 내부의 급여가 10배 이상 차이 난다는 것이다. 3. 둘째 이유는 중국에는 외국 자본 진출을 국부 유출로 몰아붙이는 '매판자본' 논란이 없다는 것이다. 4. 첫째 이유에 동의할 수 없는데 우리나라에도 그 정도의 격차는 흔하며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임금 격차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5. 둘째 이유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세계화 시대에 자본의 활동은 제약받지 않으므로 매판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외자가 들어와 기업을 세운다면 아무 문제가 없으나 세우는 대신 집어삼키므로 걱정거리가 된다. 결론 6.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진념 부총리의 발언을 수긍할 수 없다. 〈다〉 전제 1.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진념 부총리의 발언을 수긍할 수 없다. 2. 개발 독재에서 문민 정부를 거쳐 오늘의 국민의 정부까지 온갖 요직을 두루 거친 진념 부총리는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5∼10년 뒤 우리 경제의 위상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소름이 끼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3. 재계는 정부에게 발목만 잡지 말라고 요구한다. 결론 4. 중국에서 배울 것은 세계화 강요의 살벌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궁리이고, 그것은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짜내야 한다. 우선 논증 〈다〉를 보자. 중국에서 배울 것이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궁리라면 논증 <나>의 전제 1은 이 논증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즉 한국이 중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것과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궁리를 찾는 것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고 앞선 체제라면 중국이 우리의 궁리를 찾는 데 모범 사례가 될 수도 있겠으나 필자가 보기에 중국은 한국보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생존 전략을 짜내는 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전제 2는 진념 부총리가 한국 경제를 비관하지 말고 대책을 내놓으라는 요구인데 경제 부총리가 경제 전반에 걸친 위기감을 각성시키고 경쟁력의 획기적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 생존 전략과 왜 무관한지 알기 어렵다. 필자는 부총리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대책을 강구하자는 것은 필자의 주장이기도 한데 왜 부총리가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필자는 진념 부총리가 "개발 독재에서 문민 정부를 거쳐 오늘날 국민의 정부까지 온갖 요직을 두루 거친" 사람으로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인신 공격의 오류다. 즉 누가 말했는지가 아니라 발언의 내용을 문제 삼아야 하는데 '당신은 그런 말 할 자격 없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인식 공격의 오류, 더 정확히는 정황에 호소하는 오류가 된다. 전제 3은 재계가 정부에게 발목을 잡지 말아달라고 호소한다는 것인데 필자는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즉 정부가 재계를 압박하거나 간섭하지 말고 풀어주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제 3이 결론과 관계가 있는가는 이와는 다른 문제인데, 관련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살아남을 궁리를 하려면 정부와 재계가 대등한 입장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즉 세 가지 전제 가운데 전제 1과 전제 2는 관련이 없어 보이고 전제 3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점수는 1점이다. -- pp. 148 ~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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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1년 7월 27일자 칼럼제시
약간은 어려워 보이는 이 칼럼은 논쟁적이다.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진념 부총리의 발언을 논박한 뒤에 경제의 어려움을 헤치고 나오기 위해 중국에서 배울 것은 세계화 강요의 살벌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궁리이고, 그것은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짜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칼럼은 사실상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진념 부총리 발언에 대한 반박이고, 다른 부분은 경제 난국의 해법이다. 논증으로 구성해보자. 〈가〉 전제 1. 진념 부총리가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고 말했다. 2. 첫째 이유는 기업 내부의 급여가 10배 이상 차이 난다는 것이다. 3. 둘째 이유는 중국에는 외국 자본 진출을 국부 유출로 몰아붙이는 '매판자본' 논란이 없다는 것이다. 4. 첫째 이유에 동의할 수 없는데 우리나라에도 그 정도의 격차는 흔하며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임금 격차에 있지 않다. 5. 둘째 이유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세계화 시대에 자본의 활동은 제약받지 않으므로 매판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외자가 들어와 기업을 세운다면 아무 문제가 없으나 세우는 대신 집어삼키므로 걱정거리가 된다. 6. 따라서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진념 부총리의 발언을 수긍할 수 없다. 7. 개발 독재에서 문민 정부를 거쳐 오늘의 국민의 정부까지 온갖 요직을 두루 거친 진념 부총리는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5∼10년 뒤 우리 경제의 위상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소름이 끼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8. 재계는 정부에게 발목만 잡지 말라고 요구한다. 결론 9. 중국에서 배울 것은 세계화 강요의 살벌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궁리이고, 그것은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짜내야 한다. 최대한 호의적으로 논증을 재구성하고 숨은 전제도 찾아내 보완해서 이 칼럼을 분석해보자. 관련성 이 논증은 두 개의 소논증으로 되어 있다. 전제 1에서 전제 6까지가 첫째이고, 둘째 소논증은 전제 6에서 결론 9까지이다. 첫째 소논증의 결론인 전제 6은 다음 소논증의 전제의 하나로 쓰인다. 두 개의 소논증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성해볼 수 있다. 〈나〉 전제 1. 진념 부총리가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고 말했다. 2. 첫째 이유는 기업 내부의 급여가 10배 이상 차이 난다는 것이다. 3. 둘째 이유는 중국에는 외국 자본 진출을 국부 유출로 몰아붙이는 '매판자본' 논란이 없다는 것이다. 4. 첫째 이유에 동의할 수 없는데 우리나라에도 그 정도의 격차는 흔하며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임금 격차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5. 둘째 이유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세계화 시대에 자본의 활동은 제약받지 않으므로 매판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외자가 들어와 기업을 세운다면 아무 문제가 없으나 세우는 대신 집어삼키므로 걱정거리가 된다. 결론 6.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진념 부총리의 발언을 수긍할 수 없다. 〈다〉 전제 1.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진념 부총리의 발언을 수긍할 수 없다. 2. 개발 독재에서 문민 정부를 거쳐 오늘의 국민의 정부까지 온갖 요직을 두루 거친 진념 부총리는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5∼10년 뒤 우리 경제의 위상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소름이 끼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3. 재계는 정부에게 발목만 잡지 말라고 요구한다. 결론 4. 중국에서 배울 것은 세계화 강요의 살벌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궁리이고, 그것은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짜내야 한다. 우선 논증 〈다〉를 보자. 중국에서 배울 것이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궁리라면 논증 <나>의 전제 1은 이 논증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즉 한국이 중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것과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궁리를 찾는 것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고 앞선 체제라면 중국이 우리의 궁리를 찾는 데 모범 사례가 될 수도 있겠으나 필자가 보기에 중국은 한국보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생존 전략을 짜내는 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전제 2는 진념 부총리가 한국 경제를 비관하지 말고 대책을 내놓으라는 요구인데 경제 부총리가 경제 전반에 걸친 위기감을 각성시키고 경쟁력의 획기적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 생존 전략과 왜 무관한지 알기 어렵다. 필자는 부총리가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대책을 강구하자는 것은 필자의 주장이기도 한데 왜 부총리가 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필자는 진념 부총리가 "개발 독재에서 문민 정부를 거쳐 오늘날 국민의 정부까지 온갖 요직을 두루 거친" 사람으로서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인신 공격의 오류다. 즉 누가 말했는지가 아니라 발언의 내용을 문제 삼아야 하는데 '당신은 그런 말 할 자격 없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인식 공격의 오류, 더 정확히는 정황에 호소하는 오류가 된다. 전제 3은 재계가 정부에게 발목을 잡지 말아달라고 호소한다는 것인데 필자는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즉 정부가 재계를 압박하거나 간섭하지 말고 풀어주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제 3이 결론과 관계가 있는가는 이와는 다른 문제인데, 관련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살아남을 궁리를 하려면 정부와 재계가 대등한 입장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즉 세 가지 전제 가운데 전제 1과 전제 2는 관련이 없어 보이고 전제 3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점수는 1점이다. -- pp. 148 ~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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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에게나 필요한 논리적 생활의 매뉴얼
지난해 언론에서 호평을 받았던《한국의 정체성》의 저자 탁석산의《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가 출간되었다. 학교 때부터 독서광이자 기발한 이야기꾼이었던 저자는 이 책에서 주장과 구호만이 남발하는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읽기에 기본이 될 논리학의 매뉴얼을 제시한다. 10여 년간 논리학을 가르쳐온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씌어진《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는 논리라는 것이 그저 하나의 학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당연히 쓰여야 할 필수품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오류를 통해 어렵게만 느껴지던 논리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는 《한국의 정체성》,《한국의 주체성》에 연이은 저자의 대중적 글쓰기의 또 다른 시도이다. 그래서 이 책은 딱딱하고 어려운 인문서라는 틀에서 벗어나 빠른 속도록 변해가는 독서 대중에 초점을 맞춰 쉽지만 그 속에 깊이와 냉철한 시각을 담아내고 있다. 2. 생각을 제대로 교환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누며 살아간다. 차를 마실 때도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의향을 묻고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이렇듯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누며 생활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생각의 공유라는 측면에서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논리적인 분석이나 주장이 아니라 목소리가 큰 사람, 지연 학력 등 조건이 좀더 나은 사람의 의견이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 대화 중에도 우리는 상대편이 이의를 제기할 틈을 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화는 흔히 말하는 유교의 폐습인 가부장적 문화와 연관이 있다. "어디서 말대꾸야." 하는 식의 문화는 반론이란 개념조차 갖지 못하게 만든다. 반론은 대화의 한 과정일 뿐 반대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는 어떻게 하면 생각을 제대로 교환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즉 어떻게 하면 다른 이의 주장이나 견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우리의 귀를 크게 열리게 하고 즐겁게 토론할 수 있게 해준다. 3. 오류를 통해 논리 들여다보기 이 책의 본문 옆에는 저자 탁석산의 생각이 담긴 짧은 설명이 달려 있다.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반동으로 몰리는 사회 분위기는 문제가 없는지, 교원 성과급 제도를 반대하는 전교조의 주장에 맹점은 없는지 등에 대해서 저자의 평소 지론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토론 문화 부재, 언론 개혁, 인문학의 위기, '국민'을 외치는 공허한 정치 구호 등 대체로 지금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한 저자만의 깊이 있는 해석을 담고 있다. 특히 최근에 있었던 9 11 테러 때 미국이 보여주었던 "우리 편에 설지 테러리스트 편에 설지 선택하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저변부에는 흑백논리의 오류가 팽배해 있음을 지적한다. 누구나 각자 나름의 생각이 있다. 이 다양한 생각들을 단순히 흑백 두 가지로만 양분해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저자는 지적한다. 이렇게 무심코 받아들여졌던 사회의 여러 문제도 논리라는 구체적인 눈금으로 재면 그 속에 감추어진 오류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