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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고인 물과 흐르는 물 2 문화란 무엇인가 - 위기에 대처하는 기술 3 한국 문화의 뿌리 - 가족 유사성으로 본 한국 문화 4 한국인의 가치관 - 지금 이 세상이 전부이다! 5 한국인의 인생관 - 쾌락주의와 욕망 충족 6 한국적인 건축 - 한옥 대 아파트 7 한국의 자연미 - 독자성에 대한 강박 맺음말 주 |
卓石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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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문화 수입에서 결벽증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고유의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국뽕 현상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문화 수입 없이 문화 발전은 없다. 독자적인 문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9 사회적으로는 한국적인 작가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한국적이라고 느끼고 평가했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한국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말한다면 동의하기 어렵다. ---p.11 미인에 대해 알아야만 미인임을 느낄 수 있을까? 보면 느끼는 것이지 아는 만큼 느끼는 것이 아니다. 미인에 대한 분석은 이차적이며 부수적이다. 존재가 우선한다. ---p.18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고전에 의존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당대의 문제를 소재로 삼아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있었다. 고전이든 당대든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p.23 높은 곳의 물은 넘치면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넘치지 않는다. 반드시 물길이 있어야 한다. ---p.26 영국이나 미국의 박물관은 자국의 문화재로 세계적인 박물관이 된 것이 아니다. 수준 높은 문화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문화재는 약탈에 의해 그곳으로 가게 되었지만 기본 개념은 [자국]이 아니라 [수준]인 것이 분명하다. ---pp.32~33 문화가 위기에 대처하는 기술이며 무기라고 한다면 개인과 국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시대에는 어떤 기술과 무기가 필요한가? ---p.43 한국이 역동적이라는 평가는 선진국에 비해 무질서의 정도가 높다는 의미이다. 즉 위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질서는 안정, 무질서는 혼란이라고 하지 않는가. 혼란은 위기의 한 단면이다. ---p.48 아직도 문화를 뮤지컬 감상이나 시 낭송의 밤 참석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이것은 예술 감상에 속할 것이나 무기로서의 문화는 아니다. 전통 문화에서 한 가닥 실을 찾으려 하지 말고 무기가 될 만한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p.53 무질서의 세계는 아무리 질서의 세계가 세력을 넓혀도 근본적으로 제거되지 않는다. 황석영도 학살을 다룬 위의 소설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게 되자 굿으로 가버렸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질서가 다하는 곳에서 무질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p.61 우리 문화 형성은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들고 그 문화가 또 다른 문화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을 반복하는 과정이었다. 외래문화와의 부단한 교섭이 없었다면 한국 문화는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pp.73~74 지금 우리의 정신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조선 시대의 충효나 군자, 종묘사직이 아니라 개인의 행복, 자아실현 등이다. 이런 정신적 특성은 분명 미국의 것에 가깝다. ---p.79 나는 한국어가 편하고 좋지만 어떤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더 뛰어나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따라서 한글이 독창적이기는 하지만 한국 문화의 자랑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하지만 〈훈민정음〉이 뛰어난 문화재라는 것에는 흔쾌히 동의할 수 있다. 문자 창제 과정을 엄밀하게 밝히는 책은 아마도 유례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pp.83~84 한국인이 세계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면 그것이 곧바로 한국의 자랑이 되고 한국의 우수함을 증명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시대에 뒤진 생각이다. 만약 성공한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것이지 국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85 국가 권력에 의해 막심한 피해를 본 사람에 대해 우리는 흔히 한이 많이 쌓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이 진짜 감정일까? 사회와 국가에 대한 분노와 증오, 그리고 자신의 무력함에서 오는 좌절감이 진짜 감정이 아닐까. 그런 진짜 감정을 드러내면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이다. ---p.97 일류 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단순히 봉급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꿈을 가지라고 하면서도 꿈을 실현하려 노력하면 현실을 보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좋은 것이고 잘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꺾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그것은 이 시대가 그런 시대이기 때문이다. ---pp.116~117 [왜 서양의 것이 더 우월한 것으로 평가되는가? 우리의 것도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좋다.] 이런 주장을 하는 바탕에는 열등감이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이미 서구의 것을 훌륭히 소화해서 한국화된 아파트를 만들었다. 이 점을 알았다면 굳이 한옥을 내세워 반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pp.135~136 우리는 한국의 자연미를 미 이전의 세계, 인공의 배제, 자연에의 순응, 무계획의 계획, 무기교의 기교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본 바와 같이 이와 같은 특징은 조선 고유의 것은 아니다. 이미 중국 당나라 비평의 기준이었으며 야나기 무네요시도 일본의 공예에서 발견했다. ---p.150 우리가 전통을 말하는 것은 사실은 기원을 잊고자 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전통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기원 논쟁은 끝이 나지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4대 문명이 나오는 것인가. 문화는 기원이 어디에 있든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p.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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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것은 없다
[한국적인 것이 없다]라는 탁석산의 주장은 꽤나 논쟁적으로 들린다. 한국 문화 전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명교류사적 측면에서 보면 문화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상식과 어긋난다. 모든 민족의 문화는 역사적 과정에서 뒤섞이며 발전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입장은 한국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대의 사회 속에서 그때그때 존재할 뿐, 시대를 초월해서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조선 시대와 현대 한국을 비교해 보자. 물질 조건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정신세계도 완전히 다르다. 왕조 국가 조선의 지배적 가치가 충효와 군자, 종묘사직이라면,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토대로 한 현대 한국의 가치는 개인의 행복과 자아실현이다. 실제로 이 책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한국적인 것]이라고 여기던 것들이 대체로 인류 보편적인 것이거나,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굿으로 대표되는 샤머니즘(황석영의 소설 『손님』을 비롯해 우리 문학의 주요 소재)은 [인류가 무질서를 처리해 온 방법 중 하나일 뿐]이며, 동북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또한 [무기교의 기교]로 대표되는 한국의 자연미 역시 이미 중국 당나라에 등장한 개념이며, 이후 일본인 학자(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를 거쳐 우리의 독자성을 강조하기 위해 요청된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심지어 인생관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인의 인생관이 [욕망 충족 이론](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선이다)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는 20세기 중반 자본주의 경제가 확산하면서 나타난 세계적인 현상으로 한국인도 그 대세에 합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100년 지나면 우리 문화 저자는 한국만의 독자성을 확인하기 위해 [전통 문화 속에서 한 가닥 실을 찾으려는] 궁색한 시도는 [왜소한 시대]의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우리 문화에 대해 결벽성을 띠는 태도가 한국 문화의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진단이다. 왜소한 시대가 만들어 온 편견은 아파트에 대한 시각에도 드러난다. 이미 우리는 한옥의 구조를 재구성한 형태로 한국화된 아파트를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한옥의 마당 역할을 하는 발코니와 다용도실, 바닥을 데우는 온돌) 여전히 아파트는 서양적인 것으로, 한옥이야말로 우리 고유의 건축으로 분리하려 생각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열등감([왜 서양의 것이 더 우월한 것으로 평가되는가? 우리의 것도 그에 못지않게 좋다])이 있다고 진단하다. [서구의 것을 훌륭히 소화해서 한국화된 아파트를 만들었다는 점을 알았다면 굳이 한옥을 내세워 반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의 고유성을 강박적으로 찾으려는 기원 논쟁을 이제 그치자고 강조한다([거슬러 올라가면 4대 문명이 나오는 것인가]). 한국 문화를 관통하는 몇 개의 공통된 [한국적 DNA]를 찾으려고 애쓰지 말고, 오히려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을 적용해 우리 문화를 들여다보자고 제안한다(70~78면). 한 가족이 겉보기에는 모두 닮은 것 같지만 모두에게 공통된 부분이 없는 것처럼, 우리 삼국 시대, 고려, 조선 전기와 후기도 개개의 문화가 부분적으로만 겹칠 뿐 모두에게 공통된 고유한 특징은 없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가족 유사성의 관점으로 한국 문화를 들여다볼 때 오히려 한국 문화의 지평이 한층 넓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한 [문화에는 국적이 없다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수입한 물소를 교배해 지금의 한우가 되었듯, [어떤 문화든 들어와 백 년 정도 지나면 그 나라 문화라고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기로서의 문화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한국 문화의 독자성을 부정하는 저자의 시각에 불편해할 독자도 있겠다. 당신은 한국 사람 아니냐며 따져 물을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논의가 [내가 살아왔고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힌다. 이 땅이 더 풍요롭고 편안해지길 원하기 때문에 하는 건설적인 조언이다. 그는 문화는 그 기원이 어디에 있든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라고 강조한다. 곧 우리 사회가 앞으로 경쟁력을 갖추려면 무기로서의 문화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문화를 [위기에 대처하는 기술이자 무기](미술사학자 고유섭과 문화인류학자 야마구치 마사오의 정의를 종합)로 바라본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듯 [뮤지컬 감상이나 시 낭송의 밤] 같은 예술 감상이 문화가 아니라, 시대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나 학문, 가치 등이 문화다. 실제로 일본은 난학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도모했고, 조선은 건국 초기에 유교를 수입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조선은 후기에 이르러 무기가 될 만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망국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수출보다 수입]이라고 강조한다. K팝의 세계적인 인기에서 보듯 어떤 문화가 매력이 있다면 수출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노력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문화를 수입하려면 [피로써 피를 씻는] 악전고투를 벌여야 한다. 과거 조선이 중국에서, 근대 한국이 미국, 유럽, 일본 등에 새로운 문물을 배우기 위해 개인적·국가적으로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여기서 핵심은 [수준]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 물은 자연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지만, 높은 수준의 문화(미학적, 학술적, 사상적, 기술적, 가치 면에서 뛰어난 것들)는 일부러 물길을 내지 않으면 흐르지 않는다. [우리 것]에 대한 고집 때문에 높은 수준의 문화를 받아들길 거부하면 한국은 [고인 물]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문화는 애써 가꾸지 않으면 죽는 [인공 식물]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