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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카이로의 넝마주이'로 불리는 한 수녀의 행복론

목차

들어가면서 | 패러독스 한가운데서

1. 가난이라는 추한 현실
울부짖기
구분짓기
이해하기

2.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인간을 존중하기
연대적 교대작업
공동의 행복을 선택하기
개인적으로 책임지기

3. 가난의 풍요로움
부의 빈곤함
가난의 풍요로움
행복의 사다리

4. 가난을 선택한다는 것
가난의 얼굴
해방
가난, 정결, 순종

5. 가난한 그와의 만남
이 사람이다!
실천의 신비
노숙자

6. 먼저 가난한 이들을
호모 비블리쿠스
먼저 가난한 이들을
자선인가 정치인가?

저자 소개 2

엠마뉘엘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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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œur Emmanuelle

'카이로의 넝마주이'라고 불리며 가난이라는 '추한' 현실과 싸우는 데 일평생을 바쳐온 인물이다. 엠마뉘엘 수녀는 1908년 11월 브뤼셀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여섯 살 때 그녀가 보는 앞에서 익사 사고를 당한 아버지의 죽음으로 세상의 고통에 일찍 눈뜨게 된다. 스무 살의 나이에 수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이집트, 터키, 튀니지 등지에서 아이들에게 프랑스어와 철학을 가르치는 수녀 교사로 일한다. 오늘날 엠마뉘엘 수녀가 현대의 유명한 신화가 된 것은, 그녀가 민중을 선동하는 위대한 연설로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행동과 사랑을 한데 섞었다
'카이로의 넝마주이'라고 불리며 가난이라는 '추한' 현실과 싸우는 데 일평생을 바쳐온 인물이다. 엠마뉘엘 수녀는 1908년 11월 브뤼셀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여섯 살 때 그녀가 보는 앞에서 익사 사고를 당한 아버지의 죽음으로 세상의 고통에 일찍 눈뜨게 된다. 스무 살의 나이에 수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이집트, 터키, 튀니지 등지에서 아이들에게 프랑스어와 철학을 가르치는 수녀 교사로 일한다.

오늘날 엠마뉘엘 수녀가 현대의 유명한 신화가 된 것은, 그녀가 민중을 선동하는 위대한 연설로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행동과 사랑을 한데 섞었다. 63세에 엠마뉘엘 수녀는 카이로의 빈민촌 한가운데 정착하여 그곳에서 학교와 집과 보건소를 세우는 일을 하며 23년간 넝마주이들과 함께 생활한다.

엠마뉘엘 수녀는 구변과 유쾌함과 서정성이 넘쳐나는 여인이었다. 2008년 10월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세기를 통과하는 진정한 서사시와도 같은 그녀의 삶의 이야기는 강렬한 의미를 지닌다.『아듀』의 출판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엠마뉘엘 수녀는 여든한 살 무렵이던 1989년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필립 아소의 도움을 받아 98세 되던 2006년 8월까지 원고를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그러므로 20여 년에 걸쳐 완성된 이 책은 그녀가 쓴 첫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첫 번째라고 하는 이유는 이 책을 쓰기 시작한 시점이 그녀가 쓴 어떤 책들보다 가장 빨랐기 때문이요, 마지막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전에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것들을 고백함으로써 이 책이 사후에 출간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부끄러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백의 내용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음을 염려했던 듯하다.

엠마뉘엘 수녀의 다른 상품

번역은 텍스트의 여백과 작가의 침묵까지 살려 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전문 번역가. 덕성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제3대학에서 문학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로맹 가리, 밀란 쿤데라, 아멜리 노통브, 피에르 바야르, 리디 살베르, 로제 그르니에 등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중요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 책으로 모파상의 『멧도요새 이야기』, 로맹 가리의 『레이디 L』, 『하늘의 뿌리』, 『흰 개』, 『밤은 고요하리라』, 『내 삶의 의미』, 『마법사들』,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 『자크와 그의 주인』, 피에르 바야르의 『셜록 홈
번역은 텍스트의 여백과 작가의 침묵까지 살려 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 전문 번역가. 덕성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제3대학에서 문학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로맹 가리, 밀란 쿤데라, 아멜리 노통브, 피에르 바야르, 리디 살베르, 로제 그르니에 등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중요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 책으로 모파상의 『멧도요새 이야기』, 로맹 가리의 『레이디 L』, 『하늘의 뿌리』, 『흰 개』, 『밤은 고요하리라』, 『내 삶의 의미』, 『마법사들』,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 『자크와 그의 주인』, 피에르 바야르의 『셜록 홈즈가 틀렸다』, 『햄릿을 수사한다』, 아멜리 노통브의 『앙테크리스타』, 리디 살베르의 『울지 않기』, 나탈리 아줄레의 『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리고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하늘의 뿌리』,『단순한 기쁨』, 『프루스트의 독서』, 『랭보의 마지막 날』,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책의 맛』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 『호메로스와 함께하는 여름』, 『어느 인생』,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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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45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9351153

책 속으로

이토록 내가 가난의 선택을 강조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내가 가난을 체험한 그날이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중요한 날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29년 5월 5일, 그날 나는 멋부리는 아기씨의 모든 장신구들을 벗어버리고 어린 수련 수녀의 초라한 검은 드레스를 걸쳤다. 그 행동은 나를 예속시켜온 무의미한것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돌연 나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날이 갈수록 열정적인 삶 속으로 들어갔다. 자기 중심적 인간을 버리고 친애의 인간 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 이제 더이상 우리는 말과 생각과 존재 방식을 강요해온 어떤 집단성에 젖어 있지 않았다. 오직 부유하고 아름답고 유명한 사람들만을 모델로 하여,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를 지시해온 지배적 사회 모델에 종속된 자가 이젠 아니었다. 자신의 지성과 의지와 마음의 개인적 분출을 통해, 각자 자기 고유의 독창성을 발전시킨다는 느낌을 가졌다. 개인적인 걱정 거리를 넘어 공동의 행복을 선택함으로써 '보다' 생기찬 삶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지적을 해야 겠다. 첫째, 선택한 가난은 강요된 가난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가난을 선택한 이들은 가난한 이들과 동일한 처지에 놓이게 되지만 결코 그들처럼 가난해지지는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어려움이 닥쳤을 때도 후퇴의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가난을 결심한 이에게는 도처에 장애가 있는 길이라도 고무적이기만 하다. 이처럼, 선택한 투쟁은 인간의 열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어쩔 수 없이 가난을 겪는 이들은 이를 고통스러워한다.

--- pp 65~69

루소는 인간이 한 평의 땅뙈기에 울타리를 치고서 니건 내것이야 라고 외치게 된 날부터 인간의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어째서 그것이 불행인가? 그것은 인간이 땅과 더불어 자신의 마음까지 울타리로 가두었기 때문이다. 그후로 인간은 타인을 경계하게 되었다. 타인에 대한 그의 시선이 변하게 된 것이다.-117p

--- p.

내가 생-벵상-드-폴 성당에서 열정적인 젊은 관중들 앞에서 강연을 막 끝마쳤을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내게 달라붙었다. 일찍 늙어버린 초췌한 얼굴을 한 여자였다. 신선함이나 아름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꾀죄죄한 데다 도무지 신경을 쓰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매춘부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았을까? 그녀의 태도나 풀어헤친 옷차림에서 어딘지 도발적인 느낌을 받았던 걸가? 그녀에겐 전혀 매혹적인 데라곤 없었으며 입냄새 때문에 혐오감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그녀의 몸은 차갑지 않았다. 그녀에게서는 고스란히 내맡기는 육체에서 느껴지는 관능이 풍겨져 나왔다. 내게 달라붙는 그녀의 태도에느 어딘지 육감적인 데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일종의 상호침투작용을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존엄성을 되찾으려는 갈증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로서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일종의 정화를 갈구하는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의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되찾기 위해 내가 가진 순결함 속에 몸을 담그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우리 둘은 서로의 대척점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육체적 매매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고, 수녀인 나는 탐욕으로부터 해방된 세계를 표방하고 있었다.

그러니 친구들이여, 우리 두 사람이 상호침투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는지 짐작하겠는가, 그것은 일종의 상호교환이었다. "이름이 뭐예요?" "아이샤." 그녀는 내게 매달린 채 울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그녀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내가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우리는 손을 맞잡은 채 성당을 가로질러 나갔다. 나는 그 여성을 동등하게 대했고, 그녀 또한 자신을 존중하는 내 마음을 느꼈던 것 같다. 이것은 그녀가 그 무엇보다 갈망하던 것이었으며, 아무도 그녀에게 제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모르겠어요. 전 집도 없어요. 길거리에서 살아요." 성당 앞뜰에 이르렀을 때 나는 그녀를 끌어안았다가 미어지는 마음으로 그녀가 추위 속에 길거리로 나서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리고는 나를 따뜻하고 안락한 방으로 데려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자동차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다. 나는 공평성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날 저녁 아이샤에게서 분출된 것으로 여겨지는 야릇한 은총이 내 안에 넘쳐나는 걸 느꼈다. 그제사 나는 예수께서 하신 불가사의한 말씀을 이해했다.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마태오 21장 31절). 아이샤의 외침이야말로 하느님을 향한 외침이다. 그것은 하늘로 팔을 들어올려 "주님, 주님!" 하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받는 인간의 외침인 것이다. 빠져나가고 싶으나 출구를 찾지 못할 때 인간은 외친다. 이같은 비탄의 소리는 하느님께로, 출애굽기의 하느님께로 곧장 올라간다. (...)

프랑스에서 겪은 이같은 경험들에서 무엇을 끌어낼 수 있는 가? 이곳에서 내가 알게 되었던 가난의 형태들은 제3세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전체 인구에 해당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개인들과 관계된 것이다. 그리고 멸시와 소외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노숙자들과 매춘부들에게 그 무엇보다 고통을 안겨주는 것은 멸시다. 그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의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

아프리카에서는 분명 대부분의 사람들이 궁핍 속에서 근근이 생활하지만, 질투를 느끼지는 않는다. 질투는 오히려 부유한 나라들에서 터져나온다. 소수의 가난한 이들이 부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그런 나라들에서.(..) 내가 보기에 사회적 동화가 있으냐 없느냐가 여러 상황들을 구분짓는 중요한 잣대 같다. (...)

제3세계의 가난한 이들은 절망을 알지 못한다. 넝마주이들을 위해 유럽에서 보내온 약을 우리가 처음으로 받았을 때, 소포꾸러미를 열던 의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빈민촌에 신경안정제라니! 이걸 누구에게 주라고? 이런 약을 처방할 일이 많은 부자 동네나 가져가야겠네요." (...) 제3세계에서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 절망에 빠지는 걸 막아주고 있다. 그 같은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아주 조그만 것에 만족한다. 주운 물건 하나도 보물이 되는 까닭이다. 삶의 이상이 지극히 단순할 때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들도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아 보인다. 언제라도 길거리에서 과일씨를 팔아서 번 5피아스터로 빵과 샐러드를 사서, 기분좋게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 pp 42~43

나의 좋재는 보잘 것 없으며, 앞으로 그 누구에게도 결코 의미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할 것이다라는 생각이야말로 무엇보다 근본적인 빈곤인 것이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와 더불어' 하기를.

상대방의 자유를 믿는 것, 그것은 그가 다시금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에게 떠날 채비를 해주는 것과 같다. 깊고 참된 우정은 가난한 이의 기본적인 욕구다.

특정한 유형의 부는 특정한 유형의 가난을, 다시 말해 일종의 황무지화 현상을 퍼뜨린다.

가난은 지나친 무거움으로부터의 해방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에 그 무엇에도 소유당하지 않는 인간의 지혜

크디큰 사랑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너무도 큰 풍요로움으로 영혼을 채우는 일이기에 이때 영혼은 원초적 샘에서 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사물과 타인과의 올바른 관계는 뇌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섬세한 끝에서 나온다.

가난은 하느님,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훨씬 더 주의 깊게 귀 기울이게 해주죠.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받아들이도록, 최상의 우리를 되찾도록, 본질로 되돌아가도록 이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가난, 추문인가 행복한 삶의 원천인가?

1908년 브뤼셀에서 태어난 그녀는 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맞게 된 아버지의 죽음과, 그해 성탄절, 구유 속에 누운 아기예수를 통해 세상의 불공평함에 눈뜨게 된다. 스무 살에 수녀가 된 그녀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인 '엠마뉘엘'이라는 이름처럼, 그후 프랑스를 떠나 전세계의 가난한 나라의 빈민가를 떠돌며, 헐벗고 굶주린 이들과 함께하는 사람이 된다. 그곳에서 90평생을 보내고 1993년 프랑스로 돌아온 그녀는 큰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이 혼란이 그녀로 하여금 이 책을 쓰도록 종용한다.

이제껏 제3세계, 즉 개발도상국들을 비롯 소위 후진국들이 가난이라는 추한 현실에서 벗어나 선진국들처럼 살 수 있도록 열심히 싸워왔는데, 부유한 나라 돌아와 보니 그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풍요를 누리고 있는 곳에서 오히려 가난한 나라에서는 생각해보지 못한 갖가지 심각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음을 목격한 그녀는, 이 역설적인 제목의 책을 써나가면서 가난이라는 추문, 그러나 가난이 지닌 긍적적인 측면을 물질적 풍요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처방전 혹은 행복한 삶의 원천으로 전환시키고야 만다.

'나는 패러독스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가난이라는 불의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뿌리뽑고 싶을 만큼 나는 분노하게 만드는 이 악이 어떻게 풍요로움의 원천일 수 있단 말인가?'라고 외치는 그녀는 물질적 풍요의 파괴적인 면모와 가난이 가져다줄 수 있는 풍요로움이라는 패러독스 한가운데서, 그것을 넘어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선택한 가난이 궁핍과 구분되듯이, 가난의 풍요로움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가난을 찬미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그녀는 얘기하고 있다. 가난은 반드시 추방되어야 할 추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엠마뉘엘 수녀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가난'은 이를테면 '가난의 정신'일 것이다. 따라서 엠마뉘엘 수녀가 궁극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건 물질적 풍요를 완전히 포기하고 가난한 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조금만 덜 소유하고, 조금만 더 함께 나눔으로써 물질적인 가난에서 오는 정신적인 풍요와 행복의 향유일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귀기울여 할 때

'풍요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 또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가? 물질적으로는 다소 풍요로워졌을지 모르나, 빈익빈 부익부, 이유 모를 공허와 결핍, 나날이 수위를 높여가는 범죄 등 경제발전에 따르는 폐단들이 차츰차츰 파고들어와 우리 삶을 황폐화시켜온 게 사실이다.

우리는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가? 오직 경제적 능력과 물질적 풍요만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아니면 소유함으로써 오히려 소유당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력이란 무시할 수 없는 행복의 수단이자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행복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 물질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정신과 마음에 공허감을 유발시키는 주요 원인인 것이다. 그러면 이 정신적 심리적 공허를 무엇으로 예방하고 메워 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

이해인 수녀는『풍요로운 가난』이 '어떤 소설보다도 흥미롭고, 어떤 도덕서보다도 생생하고 유익한 교훈을 주며, 어떤 신학서적보다도 신의 존재를 기쁜 확신으로 전하는' 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앞으로!'라는 말을 즐겨 외치는 엠마뉘엘 수녀의 매운 질정과 절절한 호소, 그리고 비워냄으로써 채우는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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