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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마더스
빅토리아와 스테이브니가 그것의 이유 러브 차일드 |
Doris May Le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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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은 너무 행복해서 겁이 날 지경이라고 로즈에게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근사한 일이 있을 수 있어?” 그녀는 누가 들을 새라 조용히 속삭였지만 누가 들을까?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말이 이렇게 강렬한 행복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뜻이라는 걸 로즈는 알고 있었다.
--- p.49 릴은 톰에게 밤에 찾아오면 안 된다고 말했고, 로즈는 이안에게 릴과 함께 집에 가라고 했다. “당신이 모든 걸 망쳤어.” 이안이 로즈에게 말했다. “전부 당신 잘못이야. 그냥 그대로 살면 왜 안 되는데?” 로즈는 농담조로 말했다. “기운 내. 우리는 이제부터 기품 있는 숙녀가 될 생각이거든. 그래, 너희의 망신스러운 엄마들이 미덕의 화신이 될 거라는 이야기야. 우리는 완벽한 시어머니가 되고, 너희 아이들에게는 멋진 할머니가 되려고 해.”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이안은 로즈에게 말했다. 그리고 톰은 릴에게, 오로지 그녀만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나는 당신을 절대, 결코 잊지 않을 거야.” --- p.67 버스를 타고 한 번 더 갈아탔더니 어느새 십 년 동안 그녀의 꿈속에 깃들어 있었던 집 앞에 도착했다. 이제 그녀는 열아홉, 그는 열일곱이었다. 둘은 서로가 몇 살인지 개월 단위까지 꿰고 있었다. 그는 실제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고,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여서 이제 소녀티를 벗고 세련된 아가씨가 되었다. 그가 계단을 올라갈 때 그녀는 순간을 부여잡으려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항상 꿈꿔왔던 키 큰 백인 소년과 이곳에 있건만, 마치 낯익은 사람이 다가오는데 막상 앞에 온 사람을 보니 그가 아니라 낯선 사람이거나, 아니면 헤어졌던 애인이 방 저쪽에 있는 걸 보고 기뻤는데 막상 고개를 돌리고 웃는 모습은 전혀 낯선 사람인, 그런 꿈 같았다. 지금 이 사람은 에드워드가 아니라 토머스였고, 문을 여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속았다는 생각이 되풀이됐다. 그녀가 부드러운 색감과 환한 빛으로 간직했던 현관은 훨씬 작았고, 봄날 오후의 햇살은 그녀의 기억 속에서 따뜻하게 번지던 불빛과 달리 차갑기만 했다. 장밋빛 불그스름한 부드러움의 기억은 그대로 남아 바닥과 벽에 낡은 양탄자로 걸려 있었으나, 빛이 정면으로 비치는 부분은 낡아서 하얗게 드러난 실이 보였다. 꾀죄죄했다. 그래도 예쁘긴 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돈이 많은 사람들이 새것을 살 여유가 없는 걸까? 그녀는 당장 기억 속의 방을 고스란히 마음의 저편으로 밀어버렸는데, 그 방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금 보는 건 가짜라고 낙인찍기 위해서였다. --- p.130 메리는 며칠이 지나 집에 돌아왔다. 자신은 돌아와서 보고 너무나 안도했던 것들, 빠듯한 세간이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런저런 물건들을 나무라듯이 조그만 아파트를 둘러보는 아이의 차가운 시선을 빅토리아는 놓치지 않았다. 그러더니 창가에 서서 저 아래 콘크리트 풍경을 굽어보는 아이에게 뭐가 그리워서 그러냐고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메리는 얼른 달려와 엄마를 끌어안으며 재잘거렸다. “엄마는 우리 엄마이고 나는 언제나 엄마를 사랑할 거야.” 베시와 빅토리아는 씁쓸한 미소를 주고받았고, 메리는 그 일을 죄다 잊어버렸다. --- p.176~177 그는 무엇을 손에 넣고 싶었던 걸까? 그는 무엇을 노렸던 걸까? 반도 전체를 차지하고 모든 도시를 다스리는 전제군주는 설마 아니었겠지? 도시들처럼 완벽하고 조화로운 걸 왜 파괴하려 했을까? 이유가 뭐였을까, 대체 어떤 연유였을까? 그 우울한 논의 과정 어디쯤에선가 자기 아들을 선택하는 걸 데스트라가 원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따져보기도 했다. 우리는 이런 결론을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는 자기 어머니가 창조한 모든 걸 파괴하는 괴물을 뽑아놓았다. 우리 잘못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우리는 그 명백한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 p.228~229 인도양을 지나는 삼 주 동안, 제임스는 속이 울렁거리고 몸이 욱신거리는데도 선실 벽에 등을 대고 앉아 꿈을 꾸었다…… 그건 꿈이었다. 그곳에 사는 행운아들의 머리 위로 축복 같은 구름을 토해내는 산이 있고, 정원이 딸린 크고 멋진 집이 등장하는 꿈. 그는 한 명은 검고 한 명은 흰 두 명의 젊은 여자가 꽃무늬 숄을 두르고 커다란 나무 밑에 있던 풍경, 그 풍경을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대프니와 보낸 밤들과 특별한 기억 하나, 대프니가 전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던, 노란 머리를 흰 어깨에 드리우고 자신을 향해 팔을 내밀던 모습. 그리고 뺨을 맞대고 추던 춤. 그리고 깊은 사랑에 빠진 그들 위로 천둥 치듯 밀려와 와르르 무너지고 두드리고 빨아들이다가 아무런 상처도 남기지 않은 채 물러난 바다. 행복한 꿈. 그는 그것만 가슴에 품고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오로지 그것만 생각했다. --- p.357 헬렌은 사랑으로 낳은 그의 아이가 지금 몇 살이냐고 물었다. 그녀가 그런 표현을 사용한 건 너그러운 처사였고,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입을 맞춘 후 개월과 날짜까지 정확한 나이를 말해줬다. 그때까지는 한순간도 의구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지만, 이건 헬렌이 받은 최초의 충격이었고 아주 심각했다. 자신이 뭔가 깊고 위험한 걸 건드렸다는 걸 그녀도 알았다. 그건 마치 꿈에서 무심코 열었다가 집을, 세계를, 풍경을,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넓고 커다란, 더 환한, 또는 더 어두운 모습을 보게 되는 문과 같았다. 하마터면 그녀는 그 자리에서 파혼을 선언할 뻔했다. 그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은 그녀가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신은 공유하지 못할 내면의 세계를 향해 고정되어 있는 얼굴이었다. --- p.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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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투마더스Two Mothers]의 원작 소설
반짝이는 사랑을 향한 욕망과 자기기만, 그리고 불가피한 상실에 관한 이야기 [그랜드마더스]에서 ‘친자매’ 혹은 ‘쌍둥이’ 같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단짝 친구 릴과 로즈는 평생 이웃해 살면서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하여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똑같이 아들(릴의 아들 이안과 로즈의 아들 톰)도 하나씩 둔다. 릴과 로즈를 중심으로 두 가족은 대가족처럼 어울리고, 릴의 남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고 나서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이안의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더욱 가깝게 지낸다. 릴과 로즈의 우정을 견디지 못한 로즈의 남편도 떠나고 아름다운 두 어머니 릴과 로즈, 더 아름답게 장성한 두 아들 이안과 톰만 남겨진다. 그렇게 그들이 연출하는 완벽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세상을 속이는 사랑이 행복하게, 그러나 그만큼 위험하게 이어진다. 앤 폰테인이 감독한 영화 [투마더스(Two Mothers)]의 원작이기도 한 [그랜드마더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도리스 레싱은 이 소설에서 서로의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는 젊은 두 아들의 친구에게서 이 금기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청년은 친구들의 치명적인 관계를 부러워했다. 그들의 사랑을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하면서 그 10년 동안의 사랑을 끝내려는 어머니들에게 오히려 분노하고 있었다. 레싱은 이 이야기에 매혹됐지만, 그들의 10년을 완벽한 행복으로 바라보는 청년의 시선을 온전히 믿지는 않았다. 레싱은 그들의 남편이자 아버지, 혹은 그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랜드마더스]는 그림 같은 해변, 그림 같은 두 집, 그림 같은 두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배경 속에서 사회적 금기와 도덕적 관습을 초월하여 서로에게 빠져드는 두 어머니와 두 아들의 이야기를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풀어간다. 레싱은 그들의 사랑에 대해 어떤 판단도 해주지 않지만 그 반짝이는 사랑이 무엇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치명적인 금기의 관계일수록 사랑은 황홀하지만 그 달콤한 사랑을 향해 위태롭게 질주하는 욕망은 고통스럽고, 세상과 자기 자신의 경계를 넘은 끝에는 그에 뒤따르는 쓰라린 대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질문을 이끌어내는 것, 독자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작가가 존재하는 이유!” 도리스 레싱은 “작가의 일은 질문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바로 작가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게 우리의 기능이지요”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작가적 신념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빅토리아와 스테이브니가]는 하층민인 흑인 고아 소녀 빅토리아와 백인 중산층 가정인 스테이브니 가족을 교차시키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연갈색 혼혈아 메리를 통해 백인 중산층의 도덕성, 인종과 계급에 대한 고정관념, 개인적인 편견 등을 드러내지만 그 같은 이중성은 빅토리아도 역시 가지고 있다. [그것의 이유]에서는 자신들이 직접 선출한 왕인 아름다운 데로드와 함께 고대국가를 통치했던 12인 위원회 중 한 명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기록하면서 필사적으로 어떤 이유를 찾는다. 평화롭고 풍요로우며 노래와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나라에서 최상의 통치자 교육을 함께 받았던 데로드가 왜 그 모든 기반을 부정하며 그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나라가 황폐해지고 타락해가는 것을 방치하는지. 그 이유를 집요하게 파고들던 그는 자신들이 무엇에 미혹되어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레싱이 지금 당신은 무엇에 미혹되어 있는가 하고 묻는 듯하다. [러브 차일드]는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영국 군인 제임스의 사랑과 환상과 집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랑만이 던질 수 있는 위대한 질문들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매번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 한 번만 사랑할 수 있는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때문에 얼마나 어리석어질 수 있는가? 우리가 정말로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랜드마더스]는 아흔넷의 일기로 영면한 도리스 레싱의 마지막 소설집으로, 60여 년 작가로서 세상을 불합리하게 고착화하려는 모든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질문을 제기해온 그녀가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그리고 그 인생들과 그 사랑들이 교차하는 사회에 대해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기도 하다. 추천평 위대한 작가들이 모두 그렇듯이 도리스 레싱은 각각의 인물들이 특정한 공간에서 특정한 순간에 감당해내는 다양한 감성을 끌어내면서 그들을 살아 숨 쉬게 한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레싱의 문장은 이번 작품에서도 변함없이 강렬하다. 그녀는 전체적인 조망뿐만 아니라 그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감각도 탁월하다. -《더 타임스》 캐릭터와 상황을 그려내는 솜씨는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경제적인데, 각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는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능숙하게 보여준다. 그 효과는 강력하다. -《리터러리 리뷰》 레싱은 이 네 편의 짤막한 중편으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치열하고 내밀한 이 작품들은 전부 틀에 박히지 않은 확대가족들의 시련과 고난을 다루며, 중산층의 도덕성과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 개인적인 편견을 제대로 고풍스럽게 공략한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사랑의 생소함, 변덕스러움, 어려움, 그리고 때로는 잔인함, 이는 레싱이 반복해서 되돌아가는 핵심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이며, 현재 집필 활동을 하는 어느 작가도 그녀보다 이 주제를 더 잘 탐구하지 못한다. 그녀의 시선은 흔들림이 없고, 판단은 확고하며, 연민은 관대하다. -《스코츠맨》 [사생아]는 단순하고 짧은 이야기지만, 장편에 어울리는 아이러니와 통렬한 지혜를 담아냈으며, 여기에는 온 생애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거미줄처럼 얽힌 생들의 관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데이 타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