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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 카메라가 글을 쓰다
2. 트뤼포 안트와느 드와넬 시리즈 : 단편 영화,< 400번의 구타>, "안트와느와 콜레트", <도둑 맞은 키스>, <침대와 탁자> 장르들에 관한 발언 : <피아니스트를 쏴라>, <쥘과 짐> 장르들의 폭발 : <부드러운 살>, <화씨 451도>, <상복의 신부>,<미시시피의 인어> 내면의 정치 : <야성의 아이>, <두 영국 여인과 대륙>, <나처럼 예쁜 아이>, <아메리카의 밤> 3. 샤브롤 총천연색의 필름 느와르 : 초기 영화, 중반기,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의 초의 '10년 주기' 4. 로메르 도덕 이야기-구애적 사랑의 기술 : 단편 영화, <사자 자리>, "몽소의 빵집 아가씨", "수잔느의 경력", <수집가>, <모드네 집에서의 하룻밤>, <클레어의 무릎>, <오후의 클로에> 5. 리베트 과정으로서의 내러티브 : <파리는 우리의 것>, <수녀>, <미치광이 같은 사랑> , <아웃 원/유령>,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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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30년 전에 메신느 가에 있는 깜깜한 시네마크 시사실에서 만난 이 다섯 젊은이들은 모두, 비록 그 방향은 다르다 할지라도, 어떻게 이야기가 영화라는 매체에서 전개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은 단지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 것만이 아니라,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해하고 싶어했다. 고다르에게 있어서 이 질문은 결국 확실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 강고한 윤리적 문제가 되었다. 다른 이들보다 더 실질적이었으며,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더 냉소적이었을 트뤼포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영화의 형식, 즉 장르에 고집스러우리만큼 관심을 가졌다. 로메르는 영화를 학문과 비교하는 쪽으로 돌아섰으며, 리베트는 영화를 연극과 비교하는 쪽이었다. 약간 외고집의 샤브롤은 의도적으로 그의 팔레트를 한 장르에 제한 시켰다. 나는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 당시에 자신들의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의 울타리를 벗어나 삶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장담할 수 있다.
1968년의 이른 겨울, 드골 정부의 문화부 장관 앙드레 말로는 앙리 랑글루와가 더 이상 시네마테크 프랑세스의 책임자로서의 그의 직무를 만족할 만큼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말로는 그를 해임하기로 결정했다. 고다르, 트뤼포, 그리고 그들의 동료들을 필두로 프랑스 영화 위원회는 이 늙은 고집쟁이를 돕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적지 않은 역사가들이 이 2월 시위를 이 해 5월과 6월에 꽃을 피운 혁명 정신을 처음으로 분명히 드러낸 사건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정치적 혁명이 영화에 대한 논쟁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뉴 웨이브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이다. ---p.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