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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자의 길을 선택한 폴란드의 꼬마 아가씨
2. 피에르가 마리에게 맨 처음 선물한 것은 초콜릿이 아니었다 3. 원시적인 실험실에서의 거대한 라듐의 발견 4. 학문의 길을 함께 걸어온 퀴리 부부 5. 피에르의 죽음과 그와의 약속 6. 뛰어난 과학자로 인정받는다는 것 7. 의학에 이용된 X선과 방사능 8. 마리 퀴리의 마지막 투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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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리 부부가 연구하면서 맛볼 수 있었던 '흐트러지지 않은 고요함'은 라듐의 의학적 유용성이 알려지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프랑스 산업가들은 의사들에게 제공할 라듐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마리는 20년 후에, "산업가가 아주 공평하게 우리에게 그 공장의 일부를 연구실로 제공했고, 연구에 필요한 장비의 일부도 제공했다"고 썼다. 아마 마리는 산업가들이 자신들의 전문 지식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어떻게 얻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마리와 피에르에게도 이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광물 원석에서 라듐이 포함된 바륨을 추출하는 힘든 작업을 공장의 작업자들이 대신했기 때문에 창고에서는 분별결정화 과정을 거쳐 순물질만 농축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큰 이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마리한테 훈련받은 작업자들이 정밀한 제조 과정을 통해 생산한 라듐의 판매로 돈을 번 것은 퀴리 부부가 아니라 산업가였다. 퀴리 부부는 신문들이 언론에서 '신비의 치료약'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불거진 유명세가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1902년, 기자들이 퀴리 부부의 신성한 창고에 저돌적으로 침범했을 때, 그들은 몹시 불쾌했다. 이것을 계기로 마리의 전설이 좀더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젊고, 갈색 머리이며, 외국 출신의 어머니이자 부인이 보수도 없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랜 사투 끝에 이 위대한 발견을 이뤄냈다는 내용이었다. 퀴리 부부가 라듐을 잃어버려 힘들어 하고 있다는 뉴스가 퍼지자, 피에르와 마리의 가면을 쓴 배우들이 실험실 주변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라듐을 찾는 흉내를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 pp,82~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