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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사 지망생에서 젋은 수학자로
2. 지동설에 눈을 뜬 최초의 물리학자, 갈릴레오 3. 새로운 별들의 발견과 높아진 명성 4. 팽팽한 논쟁 속에 생긴 위험한 적군들 5. 진리를 전한 죄로 종교 재판을 받은 갈릴레오 6. 뉴턴 물리학의 기초를 닦은 갈릴레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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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실체에 좀더 다가간 과학자, 갈릴레오
1610년 3월, 유럽의 학자들은 모두들 새로 출판된 한 권의 작은 책, 갈릴레오의 『별들의 심부름꾼』 때문에 흥분해 있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전까지 사람들은 하늘의 천체가 완벽하고, 달도 매끄럽고 흠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갈릴레오는 달에 산, 계곡, 둥그런 구덩이들이 많이 있어 표면이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하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갈릴레오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별들을 관찰했다. 또한 가장 놀라운 것은 목성의 둘레를 도는 네 개의 작은 위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갈릴레오는 두 개의 렌즈로 되어 있는 망원경의 원리를 알아 낸 다음 성능을 최대한 개량해 물체를 20배 크기로 확대해 보여주는 망원경을 만들었다. 그 망원경으로 갈릴레오는 놀라운 것을 관찰했다. 목성과 계속 움직이는 작은 별들을 관찰했는데, 이것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별이 아니라 목성의 달(위성)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갈릴레오는 마치 달이 지구 둘레를 돌듯이, 금성과 수성이 해의 둘레를 돌듯이, 이 위성들이 목성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는 증거를 손에 넣은 것이다. 이후 계속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이용해 금성과 토성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금성이 그믐달 모습이 되기 시작하면서 그 지름이 증가했는데, 이것이 금성이 지구와 점점 더 가까워졌다는 표시임을 알아차렸다. 이로써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해 주는 강력한 증거를 하나를 더 추가한 것이다. 갈릴레오는 지구의 움직임 때문에 밀물과 썰물이 생긴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실험과 추론을 통해 사람들을 설득해 갔지만, 갈릴레오는 적들을 수긍시킬 수 없었다. 지난 350여 년간 갈릴레오라는 이름은 강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죽고 나서 처음 일 세기 동안은 갈릴레오라는 이름이 철학과 종교 연합군으로부터 과학의 자유를 얻으려는 싸움의 상징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과 호전적인 제수이트 교단에 대항하는 싸움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