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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
저녁마다 때리는 건 아니다. 가끔 때린다. 그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내 부모들은 아주 그럴싸한 이유로 나를 때린다. 2 학교 ‘보라고들! 학대 받는 아이, 그게 바로 나야. 자, 이번엔 확실히 눈에 보이잖아.’ 상한 얼굴로 학교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긴, 각자 자기 문제들이 있고, 각자 친구가 따로 있으니. 웃는 애들도 있었다. 내가 이 꼴이 되어도 웃기나 하는, 이런 게 우정인가? 3 병원 “널 때린다는 게 보이는데 뭐. 그런데 자주 때리니?” 나는 우물대면서 아니라고 말한다. “아뇨. 자주는 아니에요. 때릴 때도 있지만 자주는 아니에요.” 조각조각 단서들이 나온다. 그 단서들을 알아서 듣기를. 4 다시…… 집 너무 괴롭다. 이보다 더 아플 수 있을까. 온갖 잡다한 이유로 이렇게까지 맞아야만 하는 것일까. 혹시 나만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러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냥 보통 아이가 될 수만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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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아동학대를 정면으로 다룬 문제작
낮은산 출판사의 청소년 문학 시리즈 ‘낮은산 키큰나무’의 네 번째 책으로 『행복, 그게 뭔데?』(원제 Happy End)가 출간되었다. 프랑스의 젊은 작가 베르트랑 페리에(Bertrand Ferrier)의 작품으로, 부모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던 소년이 글쓰기를 통해 고통의 흔적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주인공 소년은 만 열네 살.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가정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소년은 “언제부터인가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져 버렸다”고 말한다. 부모님이 서로 험한 말을 해대기 시작했고, 소년에게도 점점 더 자주 험한 말을 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어쩌다가? 언제부터? 그것을 알 수가 없다. 소년이 안경을 세 번째로 잃어버렸을 때, ‘피우면 어떤지 알고 싶어서’ 담배를 처음 피우고 돌아온 날, 부모 입에서는 믿기 힘든 험한 단어들이 튀어나오고 피할 수 없는 손찌검이 쏟아진다. 누구든 “내 얼굴만 보면 내 생활은 그대로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소년은 생각하지만, 절망적이게도 그렇지 않다. 일부러 두 눈이 벌게진 채로 학교에 가지만, 주변 아이들 중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좀 조심하지 그랬어” 하거나 “싸움질하지 마”라고나 할 뿐. 소년은 체념한다. “각자 자기 문제들이 있고, 각자 친구가 따로 있으니.” 내성적인 소년은 그 어디에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자기를 굳이 드러내려 하지도 않으며 살아간다. 사실 아무리 적극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조건의 사랑을 받아야 할 부모에게 학대를 받는다는 것을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처절하게 무너진 자아 존중감과 부끄러움, 숨이 막혀 버릴 것 같은 막막함……. 소년도 그저 자기 내면으로 침잠할 뿐이다. 소년의 진술에서는 ‘기다린다’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기다리는 대상은 슬프게도 곧 쏟아질 매타작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부모의 대응이란 으레 그러려니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멍청이를 아들도 두다니 정말 재수도 없다”는 말을 서슴없이, 되풀이해 내뱉는 부모 밑에서 소년이 무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근사한 친구 사귀기? 얌전하게 공부? 결국 소년이 하는 것은 힘들게 사귄 유일한 친구 집 파티에서 만난 여자 친구와의 의미 없는 대화와 애무, 그리고 술과 담배 같은 것들이다. 부모들은 담배와 알코올 냄새를 알아채고는 때리고, 또 때린다. 이유 같은 건 물어보지 않는다. 배우자에 대한 분노까지도 소년을 향해 내뱉고 아들을 때리는 것으로 푼다. 소년의 마음을 헤아려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는 소년은 서점에서 책을 훔치기도 하고, 혼자만의 상상으로 포르노를 쓰기도 한다. 훔친 책들은 침대 아래 밀어넣고는 읽지도 않는다. 포르노 쓰기는 소년이 나름대로 창조하는 탈출구 같은 것. 소년은 자기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스스로 결코 겪어보지 못할 것들을 찍어 남기는 거나 같다. 겪어 보기를 아예 단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모른다. 알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책과 포르노 이야기를 발견한 부모의 발길질은 점점 강도를 더하기만 한다. “아이가 계단에서 굴렀다”며 병원에 입원시킬 정도로까지……. 시민단체를 통해 다양한 사례를 취재하여 집필한 소설 프랑스 현지에서 작가와 직접 인터뷰한 번역자 이선주씨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여러 시민단체들을 통해 다양한 아동학대 사례를 조사하고 그것을 토대로 쓴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아동학대 자체와 학대를 다루는 기존의 묘사 관점에 반대하면서, 그걸 당하는 청소년에 대해 과연 어디까지 어떻게 묘사할 수 있는지, 또한 학대 자체를 어디까지 묘사할 수 있는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는 것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10대 청소년의 심리와 그들 일상에서의 표현을 걸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점도 이 책의 특성이다. ‘청소년이 읽을 책’이라고 하면 건전한 도덕적 잣대와 모범 사례를 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하게 느낄 만한 묘사가 많다. 작가의 말을 좀더 들어 보자. “직접 겪지 않아도 텔레비전이나 인터넷만 틀면 접하게 되는 세상은 흔히 책 속에서 접하게 되는 것보다 훨씬 적나라하고 잔인한데, 부모들이나 교사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입장은 과도한 보호본능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사실과 현실을 외면하는 결과를 만든다. 그건 보호라기보다는 위선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리 멍청하지 않다.” 청소년들에게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자기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 드러내기에는 너무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들을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대변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점차 층이 두터워지는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 작가들도 우리 10대들의 삶에 좀더 밀착한, 그들을 대신해 후련하게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발표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우리나라 현장 교사의 ‘도움말’ 덧붙여 이 책의 원제는 역설적이게도 ‘해피 엔드’이다. 소설은 결코 해피 엔드로 끝나지 않는다. 주인공 소년은 결국 폭발하고 만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나간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먼 나라에서나 일어날 법한 막연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막상 이런 일을 당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책에 담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낮은산 출판사에서는 이런 역할을 할 도움말을 창원 신월중학교에서 상담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화 교사에게 부탁했다. 풍부한 상담 경험을 가진 박경화 선생은 마음을 정화하고 자아 존중감을 살려주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본인이나 친구가 가정폭력이라는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어떻게 주변에 도움을 청하면 좋을지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라, 미성년자의 가정폭력 사실을 인지한 시설의 보호자는 그 사실을 신고하고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교사 중에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청소년 전화 1388로 전화하면 가장 가까운 상담소에서 도움을 줄 것이며, 지역마다 ‘쉼터’가 있어서 피해자들을 치료해주고, ‘모자쉼터’를 찾으면 피해 미성년자가 피해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학교도 계속 다닐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 내 몸의 치유자는 바로 나임을 잊지 않고 자아 존중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 모쪼록 이 책이 자신의 존귀함을 박탈당한 채 힘들게 10대를 보내는 청소년들에게 스스로를 치유하고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