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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주님 본성대로|성경을 잘 읽는 법|내 것이라는 착각에 갇혀 있는 한|일이 곧 기도라 하여도|그가 누구든 형제나 누이로 보이면|세상에 속지도 말고 세상을 속이지도 말고|정말로 버려야 할 것은| 옛날 베드로가 그랬듯이|성패 따위에 꺼들리지 말기를|말과 생각이 장애가 되는 그날까지|실상 필요한 건 단 한 가지|생각에 갇혀서|당신의 채널이 되어|제 눈을 만들어주십시오|모든 행동이 당신으로부터 나오기를|하늘 북소리에 맞추어|진흙덩이 속에 감추어진 보물|세상을 한 번 속이느니 백 번 속기를|가르침의 생명|미리 절망하지 않도록|이토록 단순한 것을|영문을 알 수 없는 고통이 밀어닥칠 때|잘라 말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아는 자와 좇아서 사는 자|제 입술에 무거운 자물쇠를 둘 누구에게나 그만의 이유가 있으니|진실도 말고 정의도 말고 오직 사랑으로|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니|누구를 탓하려는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몸나로 살지 말라는 건 알겠으되|별것 아닌 세상 물건들 사이에서|두려움이 아닌 오직 사랑으로|미리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기를| 하느님을 대신하여 화를 낼 권한이|만물이 나와 한 몸일진대|생명 있는 모든 것과 통할 수 있기를| 당신께서 저를 심판하여 단죄하지 않는데|좋고 나쁜 것은 내 마음에 있으니|분노는 상대보다 먼저 나를 치리니|나를 치는 것은 나뿐|죽기 전에 죽을 수 있기를|종이 한 장 아껴 쓰는 마음 샘솟기 전에는|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놓으신 보물|말씀에 걸림 없이 당신께 닿기를|집착보다 무지가 더 문제|몸을 주신 까닭|우리 가운데서 하늘나라를 보는 기적|세상에 쓸모 있고자 애쓰기보다는| 겉모습만 늙지 말고 속마음도 늙기를|보이는 모든 것에서 당신만을 보고자|사랑 말고는 아무런 속셈 없이 셋 단순하게, 더 단순하게 살기만을|모두 나처럼 해야 한다는 착각에서|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죽게| 세상에 올 때도 벌거숭이로 왔으니|무엇을 보든 그것으로 나를 먼저 보기를|사랑은 받기보다 주는 것이 먼저이거니와|내일은 하느님 손 안에 있는 것|아무리 선한 의도를 품었을지라도|보이는 것만 보는 눈으로 살지 말고|세상의 질서와 간섭에 구속되지 않고|눈 하나 깜짝 않고 죽을 수 있는 사람| 땅으로 내려오신 주님처럼|일과 예배가 둘이 아님을|사랑한다고 백 번 말하기보다|제 입에서 누구를 비방하는 말이 나오거든|내세울 ‘나’도 없고 감출 ‘나’도 없이|모두가 나의 거울이니| 뜻이 아무리 좋아도 욕심이 지나치면|입으로 떠들고 다니는 사람보다는|저에게 주신 재료의 쓰임새를 바로 알아|자신을 불태우며 춤추는 촛불이 되고자|인생이 한바탕 연극이라면|어두운 밤길을 지켜주는 것은|주신 것들 남김없이 쓰는 것만으로도|제대로 쓸 수 있기를|살아생전 해보고 싶은 사랑은 |
李賢周, 관옥(觀玉), 이오(二吾), 이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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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이현주가 찾아낸 옛 이야기 예순 한 편과
그 이야기로 영혼의 양식을 삼은 예순 한 편의 기도문 모든 이야기 속에는 전하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찾아나서는 순간 누구나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 이 책에는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우화 예순 한 편이 들어 있습니다. 때로는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재치와 해학, 깨달음이 있는 이야기들로, 동화작가이기도 한 이현주 목사가 찾아낸 우화들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속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기도문의 틀에 담아 해석해내고 있습니다. 이현주 목사는 책머리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눈에 띄는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속에서 제 눈에 들어오는 숨겨진 이야기를 기도문의 틀에 담아보았어요. 모든 이야기가, 누가 지어낸 것이든 실제로 있었던 것이든, 그 속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안데르센이 미운 오리 이야기를 썼을 때에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에 대고 말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가 있었던 겁니다.…… 이야기 끝에 달아놓은 저의 기도문은, 아하, 이 이야기를 이렇게 읽은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참고하시고 가볍게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기도문 형식이든 편지 형식이든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스스로 이야기 속에서 찾아낸 이야기를 적어보시라고 권하는 바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여러분의 작은 이야기를 좀더 재미있고 영양가 있는 내용으로 만들어가는 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한 편씩 편안하게 읽어줘도 좋고,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들려줘도 참 좋을 이야기입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읽고 설교 때 써도 좋을 이야기이고, 스님이 설법하실 때 써도 좋을 이야기입니다. 물론 혼자 조용히 읽고 묵상하기에도 좋습니다. 누구나가 읽어도, 또 누구나와 나눠도 좋을 수 있는 까닭은 책에 소개된 예순 한 편의 재미있는 우화 하나하나가 우리가 살아가는 솔직한 모습들, 때론 지혜롭고 때론 어리석은 모습들을 가감 없이, 익살스럽게 드러내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이현주 목사처럼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자기 영혼이 성장하는 양식으로 삼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고 이해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같은 글을 읽고 그것을 해석하고 깨닫는 것도 자신의 처지나 경험, 생각에 따라 다 다를 것입니다. 특히나 우화이기 때문에 해석의 각도가 다양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입니다. 이현주 목사의 기도문은 바로 그런 해석과 깨달음의 한 예라고 볼 수 있겠지요. 아, 이런 이야기가 이런 기도로 이어지는구나, 이렇게 또 하나의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구나, 하고 발견하는 것도 이 책이 주는 큰 선물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진흙덩이 속에 감추어진 보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인도 어느 마을에 늙은이 하나가 날마다 낡은 냄비에 담긴 진흙탕 물을 막대기로 휘저은 뒤 냄비 바닥에서 묵직한 금덩이를 꺼내곤 했답니다. 하루는 호기심 많은 청년 하나가 어떻게 그런 요술을 부리는지 물었답니다. 늙은이가 대답하길, 보통 냄비에 아무데나 있는 진흙을 샘물에 넣어 젓다보면 바닥에 묵직한 금덩어리가 뭉쳐진다고 가르쳐줍니다. 몇날 며칠 청년은 가르쳐준 대로 해보는데 금덩이는 관두고 손톱만한 금 조각 하나 생기질 않습니다. 청년이 다시 노인에게 가서 묻자, 노인이 말하길 “아차! 아주 중요한 걸 하나 빠뜨리고 자네에게 일러주지 않았구먼. 물을 휘젓는 동안, 절대로 금덩어리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걸세.” 이 이야기에 붙은 이현주 목사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주님, 저에게 생애를 바쳐 이루고 싶은 ‘꿈’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그 마음에 사로잡혀서, 일상 생활을 소홀히 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고, 길을 걸을 때는 길을 걷고, 사람을 만날 때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한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 나무 막대기, 진흙덩이, 낡은 냄비, 바로 그것들 안에 당신의 보물이 감추어져 있음을 잊지 않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어떤가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것, 그것은 꼭 기도가 아닐 수도 있고 또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이에게, 학생에게,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여도 좋고, 넋두리처럼 끄적이는 낙서나 일기여도 좋고, 혹은 차 한 잔 하면서 나누는 조그만 소곤거림이어도 좋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는 이야기’를 자기의 경험과 생각과 소망을 담아서 ‘자기만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삽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이야기로 가득찬 곳,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또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며 부딪치고 얽히는 그런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이야기만 가지고 사는 사람보다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훨씬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자신의 귀와 마음을 열어둘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사람,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발전시키고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사람이 더 많아질 때 이 세상 또한 훨씬 다양해지고 활기에 넘치며 품이 넓어질 것입니다. 반면 자신의 이야기만 진리인 양 고수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이 세상은 그만큼 척박하고 살벌해질 것입니다. 이야기는 완결된 세상의 선포가 아니라 소망하는 세상에 대한 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 속에서 내가 사랑하는 수많은 ‘당신들’을 만나는 눈과 자세를, 이현주 목사가 이야기마다 소박하게 붙인 ‘이야기 기도들’에서 만나보시기를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