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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자전의 조감도 무반주 계절의 마지막 악장 버터플라이 물구나무의 태몽 산란 우리들 자신도 엄마의 입가에 머물러 있었다 산란 3 가위를 든 그녀 자전의 조감도 라비스 바이러스 지방문화재 릉릉 콜로세움 콘체르토 해변의 호텔 제2부 아크릴 상자 안의 코끼리 철탑 A를 강 이쪽에 철탑 A'를 강 저쪽에 놓고 이 마름모의 밑변을 강물이라 한다면, 다음 중 고압선의 독백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물구나무의 키스 토마토와 사막 저수지 아크릴 상자 안의 코끼리 여의도의 봄밤 물구나무의 라마단 지하철 예술 무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림을 샀어요 토마토와 도둑 토마토와 중이염 다이아몬드 호텔 토마토와 두통 물구나무 빌라 오래된 서가 제3부 물구나무의 공중 부양 ㆍㆍ 나의 몸은 싸움터라네 노란색 순환버스 우리들 자신도 엄마의 입가에 머물러 있었다 2 모피를 걸친 헬레나 물구나무의 공중 부양 물구나무의 일요일 사보이 호텔 띠리리리릭 청계고가를 달려가는 공화국 수비대 a millon mile 너의 몸도 싸움터라네 장례식이나 결혼식 같은 再校의 시간 피아노 해설 ㅣ 무궁의 꿈, 카산드라 콘체르토 · 강계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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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반주 계절의 마지막 악장
바람이 눈을 쌓았으니 바람이 눈을 가져가는 숲의 어떤 하루가 검은 창의 뒷면에서 사라지고 강바닥에서 긁어 올린 밀랍 인형의 초점 없는 표정처럼 나무나 구름이나 위태로운 새집이나 모두 각자의 화분을 한 개씩 밖으로 꺼내놓고 그 옆에 밀랍 인형 앉혀놓고 여긴 검은 창의 경계 얼어 죽어라 얼어 죽어라 입을 떼도 들리지 않는 숲의 비명 뒷면들마다 그렇게 모든 뒷면들마다 입 맞추며 먼 강의 물속으로 가라앉으리 --- p.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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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 건반을 책상 위에 그려놓고, 가만 귀 기울이고 있어요, 당신의 소원은 검은건반에서 뛰어내리는 것, 그리하여 일생일대의 화음으로 나를 부활시키는 것, 당신의 경전마다 엉터리 활자를 찍어놓고, 페이지를 봉인하고 있어요, 나는 나의 다음 체이지가 무조건 될 수 없다는 것, 우주를 한 바퀴 돌아 신발을 벗으며 ‘그것 참’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당신이 떨어지고 있는 바로 그 순간, 나도 당신이 있던 그곳을 향해 뛰어오를 수 있다면, 당신의 멈칫함이 나는 일깨우는 바로 그 주문이길, 두들겨라, 두들겨라, (나의 건반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 나의, 나를 위한 마침표는, 언제나 나의 시작 전에 찍히고 있어요, 도돌이표 마디마다 당신은 돌아오고 있겠지요, 가로지르는 모든 것들로 하여금, 당신을 향한 나의 좌표를 잃게 만들고 싶어요, 당신은, 또다시 그 높은 절벽, 검은건반에 올라서서 눈을 감고 있네요, --- p.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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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언어로부터의 철저한 탈구가 그에게 이르면 시가 된다.”
참신한 화법으로 매혹적인 연주를 하는 최하연의 첫 시집,『피아노』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 건반의 독백 시단에 신선한 호흡을 불어넣으며, “이미지의 미학에 화법의 가벼움을 겹쳐놓는 새로운 미학적 기획”으로 주목 받아온 시인 최하연의 첫 시집 『피아노』가 문학과지성사에서 2007년 11월 16일 출간되었다. 2003년 제3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서 「모피를 걸친 헬레나」 외 4편으로 시단에 나온 최하연 시인은, 심사를 했던 당시 『문학과사회』 편집 동인들(김동식, 김태환, 박혜경, 우찬제, 이광호, 정과리, 최성실)로부터 “서정시의 기본적인 규범과는 다른 지점에서 사물에 접근한다”는 평을 받았다. 우선 심사위원들이 주목한 그의 시의 강점은 “사물에 인간적인 가치와 정서를 덧입히는 익숙하고 상투적인 수사학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선작 해설의 내용을 빌리면, 이 젊은 시인에게 있어 “시적 화자는 사물을 묘사하는 자도 아니며,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도 아”닌 “‘사물과 풍경의 독백’을 듣는 자”로 나타난다. 여기서 사물의 독백이란 “사물들의 시간을 엿보는 자의 독백”이자, “풍경 안의 내적 사건들의 독백, 혹은 그 사건들을 지각하는 독백에 가깝다.” “그래서 그 독백은 누군가 엿듣기를 바라는 독백, 혹은 누군가와 함께 발견하고 싶은 독백이 된다.” 최하연 시인의 언어를 통해 나온 독백들이 한 권의 시집 안에서 독자들을 기다린다. 데뷔 후 4년 만에 나오는 첫 시집이다. 책상 위에 그려진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 건반들에 가만 귀를 기울여보자. 총 3부에 걸쳐 44편의 작품들로 묶인 최하연의 첫 시집 『피아노』다. 악몽의 읊조림, 그 언어의 새로운 경지를 향한 유영 시집 소개 글에 적힌 바와 같이 『피아노』는 언어에 대한 자각이 없이는 다가가기 힘든 세계이다. 해설에서도 “최하연의 시는 이해의 영역을 훌쩍 벗어나 있”으며 “첫머리부터 끝까지, 그의 시는 전체가 불협화”라고 밝히고 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언어의 자유와 의미의 질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최하연의 시가 가진 또 하나의 힘이다. 그의 아슬아슬한 전진은 언어의 새로운 경지를 향해 유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철두철미한 언어적 배반은 역설적이게도 완미한 형상의 새로운 비의성을 낳는다.” 이번 시집에서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강계숙 씨는 여기서 완미한 형상이란 “세계와 현실과 인간의 악몽화, 그것의 치밀하고 정교한 발현, 그리고 악몽의 현재화를 위한 구성의 운산(運算)을 가리키”고, 새로운 비의성은 “그러한 악몽이 세계의 꿈으로 탈바꿈되는 신비, 요컨대 ‘악몽의 꿈’이 있다면 이런 형태일 것이라 설득될 법한 불가사의한 임의 분출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어둔 밤에는 밤의 노래가 있듯, 악몽의 세계에도 꿈은 있다. 비록 추한 심상일지라도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음유할 때, 악몽(의 세계) 역시 자기 한계와 부정성을 넘어설 가능성을 얻는다”고. 그가 시집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악몽의 읊조림’이 “자기 극복의 가능성을 위한 시적 도전이자 당대를 향한 예술적 응전이라 할 수 있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경계에서 들리는 불길하고도 매혹적인 선율 『피아노』 첫 곡은 「무반주 계절의 마지막 악장」이다. 강계숙 씨는 “우리의 감각을 벗어나 상식을 무용하게 만드는 비가시적인 공간성, 스스로 움직이는 어두운 공간성의 현현”을 이 시가 표상하는 풍경이자 이 시에서 나타나는 “검은 창”의 실체로 보고 있다. 또한 “이 막막한 곳을 채우고 있는 것이 물”이라고 역설한다. 그리하여 “무궁(無窮)한 검은 물의 공간”이 우리가 마주하는 첫 시의 정체라고 밝혀내기에 이른다. 그 “검은 물의 공간은 스틱스styx처럼 망각과 사멸의 이미지가 가득”하고, “밀랍 인형의 초점 없는 표정”과 “얼어 죽어라 얼어 죽어라”라는 저주, “입을 떼도 들리지 않는 숲의 비명”이 가라앉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곳은 삶이 아니라 죽음을, 생명이 아니라 주검을 잉태하는, 자궁(子宮)이 아닌 무궁(無宮)이며, 또한 우리의 뒷면이라고 해설의 초반에 적고 있다. 그는 이러한 무궁(無窮/無宮)을 최하연 시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모티프 중 하나로 보고, 이것이 드러나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피아노』에 수록된 작품 곳곳에서 찾아내기도 했다. 이를테면, 생명의 창조나 생성의 모태와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무궁(無宮)이라 할 수 있는 “목 한 번씩은 매봤을 물그림자 사체들”(「여의도의 봄밤」)과 무궁(無窮/無宮)의 물, 다시 말해 무궁(無窮)한 무궁(無宮)이 표상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아기는 여전히 튜브에 꽂혀 있고/웃고 있”는 공포스러운 광경(「산란 3」)이 그것이다. 첫 작품에서부터 “예언과 기원(祈願)과 계시가 혼재된 불길하고도 매혹적인 선율”로 독자의 발목을 잡는 최하연 시의 매력은 가만히, 조용히, 아득해지는 뒷면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뒷면의 세계를 바라보며 우리가 서게 될 곳은 “현실과 비현실, 사실과 꿈, 낮과 밤, 육체와 영혼, 삶과 죽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라 할 수 있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지나,『피아노』의 칠흑처럼 검은 창을 들여다본다면, 독자들은 낯설지만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끼게 되는 특별한 미학적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