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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백범일지
김구신경림 편저
나남 201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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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top2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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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학술원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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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2

본명 김창수, 金九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가난과 양반들의 횡포를 경험했기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동학에 들어가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무지에서 깨어나야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근대적 교육사업과 항일운동에 매진했다. 그러나 1911년 일제에 체포되어 15년형을 받고 온갖 고문을 당했다. 이때 백정, 범부들(평범한 사람들)의 애국심이 역사를 바꾼다는 의미에서 백범(白凡)이라는 호를 썼다. 3.1운동 후에는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원하였고, 광복군 창설 등 항일투쟁에 박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가난과 양반들의 횡포를 경험했기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동학에 들어가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무지에서 깨어나야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근대적 교육사업과 항일운동에 매진했다. 그러나 1911년 일제에 체포되어 15년형을 받고 온갖 고문을 당했다. 이때 백정, 범부들(평범한 사람들)의 애국심이 역사를 바꾼다는 의미에서 백범(白凡)이라는 호를 썼다. 3.1운동 후에는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원하였고, 광복군 창설 등 항일투쟁에 박차를 가했다.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조국에 돌아온 그는 남북분단을 우려해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통일정부 수립에 힘쓰다가 1949년 6월 26일 안두희가 쏜 총탄에 맞아 경교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김구 자서전 『백범일지』는 두 아들에게 자신의 지난날을 알리려 쓴 것으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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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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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庚林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와 동국대에서 공부했다.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 등이 추천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농무』 『새재』 『달 넘세』 『남한강』 『가난한 사랑노 래』 『길』 『쓰러진 자의 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낙타』 『사진관집 이층』 등과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산문집 『민요기행』 『시인을 찾아서』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시카다상, 만해대상, 4·19문화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민족예술인총연합 의장, 동국대 석좌교수 등을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와 동국대에서 공부했다.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 등이 추천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농무』 『새재』 『달 넘세』 『남한강』 『가난한 사랑노 래』 『길』 『쓰러진 자의 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낙타』 『사진관집 이층』 등과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산문집 『민요기행』 『시인을 찾아서』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시카다상, 만해대상, 4·19문화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민족예술인총연합 의장, 동국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한국 문단의 거목 신경림 시인은 향년 88세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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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414g | 153*224*20mm
ISBN13
9788930088824

책 속으로

나라는 내 나라요 남들의 나라가 아니다. 독립은 내가 하는 것이지 따로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 p.23

자네가 마음 좋은 사람 되려는 본뜻을 가진 이상 몇 번 길을 잘못 들어서 실패니 곤란이니 하는 것들을 겪은 것이 무슨 대수겠는가! 본뜻만 변치 말고 쉼없이 고치고 쉼없이 전진하면 반드시 고지에 다다를 날은 오게 마련이다. --- p.50

또 호는 백범(白凡)이라고 고쳤습니다. 우리나라 제일 아래층 사람들, 즉 백정과 평범한 사내들까지도 애국심이 지금의 나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그런 바람을 가지자는 것이었습니다. --- p.142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는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p.238

출판사 리뷰

암울했던 시대, 독립을 꿈꾼 민족의 위대한 기록!
김구 선생은 저자의 말에서 어린 두 아들에게 내가 지낸 일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쓰기 시작했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백범일지〉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해방을 거쳐 조국에 돌아오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선생의 삶에는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모습이 보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쳤지만 안타깝게도 잊혀져가는 겨레의 영웅들도 보인다. 결국 〈백범일지〉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일 뿐만 아니라 암울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한 시대의 기록이기도 하다. 〈백범일지〉는 이러한 역사적 가치 때문에 보물 1245호로 지정되었으며,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필독서이다.

백범일지가 주는 감동
백범은 미천한 백성을 상징하는 백정의 '백'과 보통 사람이라는 범부의 '범' 자를 따서 지은 선생의 호이다. 여기에는 평범한 사람들 누구라도 자신만큼 애국심을 갖기를 바랐던 마음이 담겨 있다. 〈백범일지〉에는 이러한 선생의 신념이 잘 드러날 뿐만 아니라 평생 민족을 위해 헌신하며 자신의 믿음을 실천했던 선생의 삶의 이야기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사람은 김구 선생의 삶을 통해 벅찬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김구 선생이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으로 꼽히고 〈백범일지〉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선생이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 때문일 것이다.

신경림 시인을 만나 쉬워진 〈백범일지〉
신경림 시인은 〈백범일지〉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김구 선생의 마음을 알리고자 했다. 〈백범일지〉는 애초에 김구 선생이 어린 두 아들을 위해 쓴 책이기는 하지만,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조금 어렵다. 그래서 신경림 시인은 어린이를 위한 김구 선생의 전기를 썼던 경험을 바탕으로 〈백범일지〉를 쉽게 풀어 써 〈청소년을 위한 백범일지〉로 재탄생시켰다.
신경림 시인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따르기보다 먼저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익혀야 한다고 주장하며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흉내 내는 나라가 아니라, 높고 새로운 문화의 모범이 되기를 원했던 김구 선생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청소년을 위한 백범일지〉를 통해 청소년들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김구 선생의 헌신적 삶과 깊은 뜻을 배운다면, 선생의 일깨우고자 했던 가르침은 이들의 마음에 깊이 뿌리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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