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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2. 발성영화로의 이행기 3. 영화계의 재편기 4. 조영시대 : 선전 영화의 '꽃'으로 5. 해방후 : 연속과 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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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문예봉과 김신재라는 여배우들을 둘러싼 일제 말기 영화 속 젠더 정치학.
특히 1940년대의 영화에서 조선 여성들은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애매한 정체성의 조선 남성들을 대신하여 중요한 역할로 부상했다. 이 돌아온 영화들은 거의가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동원정책 및 황국신민화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기 위한 작품들인데, 대부분 김신재나 문예봉이 출연하고 있다. 이 책은 문예봉과 김신재의 데뷔부터 해방 전후까지의 활동을 시간 순으로 살펴보면서, 그들이 연기한 영화, 특히 선전 영화속의 캐릭터와 그들의 실제 삶에서의 궤적이 어떻게 서로를 상호구축하고 조응했는지, 그리고 ‘스타’이면서 ‘선전 도구’였던 이들을 둘러싼 조선 영화계내의 젠터 정치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는지 알아보려 한다. Ⅱ장에서는 대략 193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이루어지던 조선 영화계 내 여배우의 세대교체와 함께 문예봉의 데뷔시기를 다룬다. 여기서 다룰 시기는 1932년부터 <나그네>가 나온 1937년이 될 것이다. 무성영화 시대 여배우들과 달리 이 두 여배우는 이미 결혼을 하거나 하기 직전의 상태에서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문예봉은 가난하지만 착한 아내의 이미지를 새기며, 이때 이미 <임자없는 나룻배>, <춘향전>, <나그네>로 대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Ⅲ장에서는 김신재의 데뷔부터 총독부에 의한 통합영화회사인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이른바 ‘조영(朝映)’)이 설립되기 직전인 1942년경까지 다룰 것이다. 김신재는 남편 최인규의 <수업료>, <집 없는 천사>등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특히 김신재는 유창한 일본어 실력으로 이 시기에 중요한 인물로 서서히 떠오르며 출판 미디어에 많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는 1940년에 실시된 조선영화령의 영향 하에 어떻게 조선의 영화인들이 ‘국가 기능인’으로 자리바꿈하게 되는지, 그리고 조영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영화계 내 활동을 어떠했는지 알아본다. Ⅳ장에서는 본격적인 조영(朝映)시대의 두 여배우의 활동을 <조선해협>을 중심으로 다룬다. 1942년 9월에 설립되면서 조선 유일의 영화회사가 된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는 총독부의 영화정책을 충실히 따르며 지원병제도, 징병제도를 찬양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첫 작품으로 개봉한 <조선해협>은 그동안 김신재와 문예봉이 쌓아온 자신의 대표적인 캐릭터, 즉 명랑한 누이와 조용히 인내하는 착한 아내라는 이미지를 가장 최대한으로 전시한 작품이다. 문예봉과 김신재는 여기서 전 대사를 일본어로 하고 있는데, 이들이 일본어를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조선적인 것을 전시함으로써 이 이상한 ‘선전 영화’에서 살아남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당시의 자료들을 통해 알아볼 것이다. Ⅴ장에서는 해방 후 문예봉과 김신재의 행보에 관해 다룰 것이다. 문예봉은 북한으로 건너가 북한 최초의 극영화 <내 고향>등에 출연하며 건재함을 과시했고, 노년에는 북한 최고의 ‘인민 배우’ 칭호를 얻었다. 김신재는 한국 전쟁 중 남편을 잃고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주로 온화한 이미지의 중, 노년 여성 역할로 꾸준히 영화에 출연했으며 말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갔다.『친일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오르게 된 이들은 식민지 시대에서 해방, 분단에 이르는 한반도 현대사를 전시하는 삶의 행적을 보여준다. 끝으로 이 책은 <군용열차> 이후로 일본의 전쟁 동원 및 황국신민화와 같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적극 선전하려 했던 영화들을 ‘선전 영화’라고 칭할 것임을 밝혀 둔다. ‘선전 영화’라는 명칭에서 우리는 어떤 매끈하고 선명한 ‘선전’의 내용보다는, 정확히 정돈되지 않고 울퉁불퉁하며 심지어는 비(非)선정적인 내용들이 많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매끈하지 못한 영화들에서 관객들이 어떤 틈새들을 발견했을 것인가 하는 것은 조선에서 만들어진 일제 선전 영화를 이해할 때 동원되어야 할 중요한 질문 중 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