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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역사란 무엇인가
2장. 개항 이후 외세의 침략과정과 불평등 조약 3장. 개화기 근대민족국가수립운동 4장. 일제 식민통치체제와 그 전개과정 5장. 일제 식민통치시대 민족해방운동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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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질적인 차이로도 인식할 수 있을 만큼 근대와는 크게 다른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대변화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일어났다. 근대가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졌다면 현대는 독점자본주의의 출현과 그것의 세계사적 운동으로서 나타난 제국주의와 그 이후라고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를 현대의 기점으로 할 것인가, 2차 세계대전 이후를 현대의 기점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지역에 따라서 크게 다를 수 있다. 예컨대 사회주의국가의 경우 사회주의체제를 현대의 기준으로 잡는다면 러시아는 1917년 이후부터가 현대지만 동유럽의 경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가 현대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를 근대와 구분짓는 기준 또는 지표로 민족문제 또는 독립국가건설 문제를 들고 있다. 제국주의시대 이후로 지구는 대부분 지역에서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상태에 있었는데, 이러한 지역에서는 민족해방운동의 질적 발전단계나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의 건설이 현대의 기점으로 어느 다른 것보다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민족해방운동의 질적 발전이나 민족국가 건설은 정치적 변화와 함께 그 내부의 계급관계나 사회구성의 변화, 의식의 변화, 그 밖에 다른 중요한 변화를 수반하고 있다는 점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 역사에서 시대구분 논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강만길은 그의 저서와 좌담을 통해 한국근대사의 목표는 자주적이고 통일된 민족국가의 수립이라고 주장하면서 문호개방에서 합방까지의 시기를 정치적으로는 국민주권국가를 수립하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체제를 추구한 시기로 이해하여 근대사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통일된 이후에는 개화기와 식민지시기,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로서의 현대사라 할 수 있는 분단시대도 모두 통일민족국가수립 과정으로서의 근대로 인식되어야 하고, 통일 이후의 시대가 현대가 된다는 견해를 제기했다. 정창렬은 근대의 개념을 한국주민집단이 외래자본주의의 침략에 대항하여 스스로 근대민족으로 결집·형성·확립해 가는 과정이라 보고, 근대사를 민중을 주체로 하는 민족해방의 쟁취과정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그는 근대의 시점을 외래자본주의의 침략에 대해 우리 민족이 주체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하는 개항으로 잡았으며, 종점은 한국주민집단이 근대민족으로서 자기확립을 마무리하는 통일로 설정했다. 신용하는 중세사회를 극복하고 자본주의체제를 수립하려는 흐름이 시작된 1850년대 말에서 1860년대 초를 근대의 시점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근대의 종점, 즉 현대의 기점은 해방으로 설정했다. 해방 이후는 반봉건성의 요소가 사실상 극복되어 기본적으로 현대고도자본주의체제, 현대독점자본주의체제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식민지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파악했다. 또한 유원동은 자본주의 맹아를 중심으로 한 사회경제질서의 변화에서 근대의 기점을 찾는 데 상업활동과 자본축적을 근대자본주의적 경제내용으로 파악하여 18세기 후반 영조·정조시대를 근대의 기점으로 제시했다. 이 밖에도 근대의 기점을 갑오개혁기로 설정하는 견해도 있다. 적어도 갑오개혁기 이후에 비로소 근대적인 제도와 사상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며, 중세적 국가에서 근대적인 국가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는 점에서이다. 한편 임영태는 현대의 기점을 해방 이후로 못박았다. 그는 불철저하나마 이 시기에 한국근대사의 과제가 수행되어 봉건성도 거의 극복되었고, 종속적이지만 고도자본주의단계에 들어왔으며, 국가도 상대적으로 신식민지 단계라고 인식했다. 그리고 이병천은 지표를 두 가지로 사용하여 사회구성체로 볼 때는 현대의 기점이 세계사에서는 사회주의인데 분단상황으로 두 개의 사회구성으로 분열되어 있어 애매하다며 민족운동사적 관점에서 현대는 민족해방·민주변혁의 주도권이 부르주아지로부터 민중에게 옮아간 3·1운동 이후라고 파악했다. 이처럼 남한의 경우 한국근현대사의 기점에 관한 논의는 다양하게 진행되었지만, 통일된 시점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서에서는 책을 구성하는 데 따른 편의상 한국근대사의 기점을 외세의 침략과 그 불평등조약 체결을 통해 본격적인 자본주의체제로 편입될 수밖에 없었던 1876년의 개항으로 설정했으며, 현대사의 기점은 좌우이념 대립으로 인해 현대사회의 분단구조가 확정되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사상을 수용한 일제시대로 설정하여 책을 구성했다. 이는 특히 1920년대 사회주의 수용으로 인해 식민지 조선의 민족해방운동과 민중운동이 질적으로 변화되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