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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산. 산비둘기와 까치가 다투다가 그만 산비둘기의 깃털 하나가 떨어지고 만다. 혼자 남겨지자 너무나 외로워진 깃털. 혼자가 된 것보다 더욱 깃털을 힘들게 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슬픔에 잠긴 깃털은 간절히 기도를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해달라고. 진심은 통한 것일까? 마침내 기회가 다시 찾아오는데, 공교롭게도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산비둘기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한 까치인 것이다! 산비둘기의 깃털은 분한 마음에 몸을 떨지만 병이 난 아기까치의 몸을 따뜻하게 덮어 주면서 비로소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래, 나는 예쁜 이불이야.’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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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하여
이 책은 더불어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소박한 답변과도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숲 속 까치와 산비둘기의 다툼 끝에 산비둘기의 깃털 하나가 산길에 떨어진다. 혼자 떨어진 깃털은 쓸모가 없는 존재(정체성의 상실)로 전락하고 만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토끼에게 깃털은 너무나 보잘것없는 것이고, 장난감이 필요한 다람쥐에게는 필요치 않고, 배가 고픈 오소리에게 먹을거리가 아닌깃털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저 날개를 이루는 많은 깃털 중의 하나였던 깃털은, 아마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감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을 것이다. 급기야 깃털 속에 살고 있던 벼룩마저 곁을 떠나고 만다. 지금까지 벼룩을 싫어했던 깃털은 벼룩의 존재가 절실하기까지 하다.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의 고민이 발전하여 공생에 대한 깨달음을 부지불식간에 얻는 장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비둘기 몸에서 떨어진 자신의 변화된 환경에 당황스러운 나머지 누군가(어딘가)를 절실히 원한 것이었다면, 이야기 중반 이후로는 절실하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자리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정체성에 대하여 한 단계 성숙한 사고를 하게 되는 것. 마침내 깃털은 자신을 지금의 상황으로 몰고 온 장본인인 까치부부의 앓고 있는 아기까치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자신을 이불로 내어주는 것이다. 의인화된 깃털이 이불로 거듭나기까지(이 책의 가제는 ‘나는 예쁜 이불이야’였다.)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정체성에 대하여 고민하는 한편 공생에 대하여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글과 그림이 만나기까지 글쓴이의 말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산을 오를 때 일이었습니다. 낙엽이 여름 오솔길을 덮고 있었는데, 낙엽이 참 쓸모없어 보였습니다. 문득 발밑을 보니 낙엽 밑에서 수없이 많은 새끼 두꺼비들이 불불불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중략) 자세히 살펴보니 새끼 두꺼비뿐만 아니라 작은 곤충이나 동물들이 낙엽 밑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사계절 동안 낙엽들은 동물들의 이불 역할을 해 주고 있었던 겁니다.’이후로 작가는 산을 오르면서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졌다고 했다. 그런 마음으로 산을 오르는 작가에게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푸드득거리는 날갯짓 소리, 길가에 떨어진 깃털 하나가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 앞서 언급한 산에서의 에피소드와 상상력이 결합하여 『깃털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그린이는 ‘눈을 반쯤 감고 산을 천천히 걷다 보면 빽빽한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빛 속에서 떠도는 먼지 한 톨, 날벌레 한 마리도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닫혀 있던 나의 오감이 자연스럽게 열리고 모든 생명체가 뿜어 내는 싱그러운 기운에 나는 저절로 싱싱해집니다. (중략) 산은 여전히 어른이 된 나를 여전히 매혹했으며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줍니다.’라고 말했는데, 『깃털 하나』를 그리기 위해 배경이 된 소실산은 물론 집 주변의 산을 수차례 오르며 취재를 했다. 깃털이라는 캐릭터를 의인화하는 작업이 녹록치 않았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칫하면 우스꽝스럽거나 다른 등장 캐릭터들과 균형이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생명을 부여하되 과장되거나 억지스럽지 않은 선에서 깃털은 완성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그릴 것인가도 관건이었는데, 결국 작가가 선택한 방법은 버려진 널빤지에 그리는 것이었다. 버려진 널빤지는 (버려진 깃털이 아기까치를 위한 이불로 되었듯) 화가의 캔버스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것이다. 그 덕분에 투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나무의 결이 살아 있는 것을 독자들은 발견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