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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상의 맥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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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학술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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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자서(自序) ― 해설을 겸하여

제1부 고운사상의 배경과 그 실체

제1장 최치원의 삶과 사상 형성의 배경
제2장 최치원의 철학 사상 연구 서설 ― ‘인간주체’ 문제를 중심으로?49
제3장 최치원과 고대 생명 사상의 원류
제4장 최치원의 역사의식
제5장 최치원의 승전(僧傳) 찬술과 그 사상적 함의
―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과 『보덕화상전(普德和尙傳)』을 중심으로

제2부 고운사상의 현실적 구현과 전승

제1장 이규보와 최치원 ― 이규보 연구의 회고와 전망
제2장 ‘최치원묘재홍산설(崔致遠墓在鴻山說)’의 사상사적 의미
― 최치원·김시습의 사상적 맥락과 관련하여
제3장 최치원 연구의 사적(史的) 계통
― 호남 지방의 불교 학맥과 관련하여
제4장 최치원의 두 화상찬(?像贊) 검토 ― 문명대 교수의 소론(所論) 비판

부록 | 餘論

1. ‘포함삼교(包含三敎), 접화군생(接化群生)’과 백제금동대향로
2. 최치원의 『계원필경집』
3. 「심원사수철화상비문(深源寺秀澈和尙碑文)」 찬자고(撰者攷)
4. 최치원의 철학 사상 연구사(硏究史)
5. 당은평의 『최치원 신연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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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최영성
오랫동안 최치원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왔다. 20여 년 동안 최치원과 관련하여 길고 짧은 글을 30여 편 썼고, 2001년에는 『최치원의 철학사상』이라는 책을 냈다. 『孤雲思想의 脈』은 그 뒤에 발표한 글을 모은 책으로 이전의 책에서 소개한 내용을 다시금 풀어 쓰거나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을 보충하고 있다. 저자는 이전의 책을 훨씬 뛰어넘는 진전된 연구 성과를 내놓아야 하는데 한 사람의 시각과 관점으로 연구하는 것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하며 최치원에 대한 다른 사람의 연구를 기대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1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99쪽 | 559g | 153*224*20mm
ISBN13
9788989721789

책 속으로

민족적 주체성을 세계적 보편성과 균형 있게 매개하고 조화시키는 일은 역사적으로 각 시대마다 당위적 과제였다. 최치원은 ‘보편과 특수’ 문제에서 중용을 추구하던 학자였다. ……

당시의 거대 중국은 인지 가능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명한 곳’이었다. 중국 이외의 다른 문명 세계를 선택할 여지가 없었으며, 따라서 중국 중심의 국제화가 될 수밖에 없었다. 최치원의 문명 의식을 논함에 ‘동문’이란 말은 정치적 차원에서 중국 중심의 국제적 보편 질서가 아니라, 문화적 차원에서 ‘중국 중심의 보편 문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문명 세계를 지향하는 최치원의 동문의식은 그의 표현대로 ‘기러기가 오직 태양 따르는 것만을 생각하듯이(隨陽是思)’ 수준 높은 문화를 이룩하기 위한 일념으로 선진 문명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가 애써 추구하는 ‘무모하고 줏대 없는 세계화’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민족 문화를 송두리째 말살시키고 가치관의 혼돈을 초래하여 우리 사회를 일대 혼란에 빠뜨리고 말 것이 자명한 것이 아니었다. 최치원은 문화적 민족적 뿌리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국제화를 추구하였다. 그야말로 ‘뿌리 있는 국제인’이 되기를 염원하였던 것이다. …… 이러한 사상적 이면에서 ‘문화적 융평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최치원은 한 나라, 한 민족의 문화가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한 뒤라야 바람직한 국제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후인들을 깨우치고 있다.

요약하자면, 최치원은 극단적인 모화주의자가 아니고 또 민족 문화의 특수성만 강조하여 문화적 고립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배타적 국수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문화의 보편성을 중시하였고, 아울러 특수성도 추구하였다. 그에게서 주체 의식과 문명 의식은 서로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인간의 내면적 본질을 기초로 하는 인간주체 의식을 통해 하나의 광장에서 만날 수 있고 또 통할 수 있는 일원적 관계에 있다. 최치원의 주체 의식과 문명 의식은, 신속화?정보화?세계화로 특징지워지는 오늘날 동서 문명의 보편성 추구와 세계화 지향을 시대적 과제로 하는 현대인들에게 세계화와 주체 의식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기게 하는 것으로, 어떤 것이 바람직한 세계화인지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넓게 열린 마음으로 우리 문화와 전통을 가장 ‘민족적’이고 ‘원형적’으로 잘 살려서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 바람직한 세계화일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불운한 시대의 지식인

“바위 틈에 내린 뿌리 아슬하고 잎도 쉬 마르겠네.
바람 서리에 유난히도 꺾이고 상하네.
가을 자태 자랑하는 들국화 꼴 실컷 본 뒤엔
섣달 추위에도 끄떡 않는 바위 노송이 부럽겠지.
아깝구나, 고운 빛깔로 바닷가에 남았으니
뉘라서 옮겨 심어 붉은 난간 보게 하랴.
여느 초목과는 아주 다른 품격인데
나무꾼이 똑같다고 볼까 두렵네.”

『계원필경집』에 실린 시 「두견(杜鵑)」에는 꽃다움을 머금은 두견화를 훌륭한 가문의 뜰에 옮겨 심어 주기를 바라는 심정이 담겨 있다. 이것은 자신의 능력이 온전히 쓰이기를 바랐던 최치원의 마음일 것이다.

최치원은 열두 살에 장삿배를 타고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요즘 성행하는 조기 유학생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진골이 아니었기 때문에 올라갈 수 있는 벼슬에는 한계가 있었다. 육두품이라는 신분상의 열세를 학문의 힘과 당나라 과거에 급제하였다는 권위로 극복하기 위해, 최치원은 굳은 각오를 하고 외로이 유학길을 떠났다. 당나라로 떠나기 전 아버지는 그런 그에게 “십 년 안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 가서 힘써 공부하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중국에서 이름을 떨친 신라의 대문장가

최치원은 『계원필경집』에서 “아버님의 그 엄격하신 훈계를 마음에 새겨, 조금도 잊지 않고 쉴 새 없이 열심히 공부하여, 오로지 아버님의 뜻을 받들기 위하였으니, 실로 ‘남들이 백을 하면 나는 천을 한다’는 노력으로 중국에 유학한 지 6년 만에 이름을 금방(金榜)에 걸었다”고 적고 있다. 아버지가 다짐받았던 십 년도 채 걸리지 않고 빈공진사(賓貢進士)에 급제했다는 사실에서 그가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대문장가 최치원의 명성은 중국에서도 대단하였다. 『신당서(新唐書)』에는 ‘글로 밭을 일군다’는 뜻으로 제목을 삼은 『계원필경집』과 『사륙집(四六集)』의 이름이 소개되어 있는데, 여기에 언급된 외국인의 저작으로는 유일하다. 특히 『계원필경집』에 실린 「토황소격(討黃巢檄)」은 반적(叛賊) 황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는 명문으로 그 이름이 높다. 그의 명성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2007년에 최치원 기념관이 그가 활동했던 중국 양저우에 건립되기도 하였다.

현대 지식인의 귀감

“겹겹이 쌓인 돌 사이로 미친 듯이 물 흐르며 온 산을 울리는데,
사람의 소리는 지척에서도 알아듣기 어려워라.
항상 시비하는 소리가 귀에 들릴까 두려워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에워싸게 했노라.”
(狂奔疊石吼重巒/人語難分咫尺間/常恐是非聲到耳/故敎流水盡籠山)

최지원의 「제가야산독서당시(題伽倻山讀書堂詩)」를 읽으면 어지러운 시대를 살았던 이의 절망을 느낄 수 있다. 물이란 저절로 흐르는 것인데 물로 온 산을 둘러싸게 하였다니, 세상에 대한 실의(失意)가 얼마나 컸는지, 그러면서도 정치 참여와 현실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마음이 짐작된다.

당나라에서 이름을 떨치고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은 고국에서 자신의 경륜을 펼치고자 하였으나 그가 살았던 시대는 당나라와 신라가 기울어가는 시기였다. 그는 혼란한 국정을 수습하기 위해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진성여왕에게 올리기도 하였다. 최치원이 올린 시무책은 받아들여지기는 했지만 쇠잔한 신라에서 제대로 시행될 리 없었다. 그는 결국 뜻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벼슬에서 면직되어 산속으로 들어가 은거하게 되었다.

입산 후 최치원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후세에 남은 여러 설화, 신선이 되었다는 말년의 이야기에서 그가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진정한 학문이 언제나 어두운 시대에 그 시대와 불화한 작가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듯 세계가 불안한 지금 시대에 최치원을 다시 읽는 일은 중요하다. 어려운 국제 정세 속에서 고대 지식인의 역할을 다한 그는 현재의 지식인에게 귀감을 보이고 있다.

고운 최치원의 민족 주체 의식

단재 신채호는 “최치원의 그 사상은 한(漢)이나 당(唐)에만 있는 줄 알고 신라에 있는 줄을 모르며, 학식은 유서(儒書)나 불전(佛典)을 관통하였으나 본국의 고기(古記) 한 편도 보지 못하였으니, 그 주의(主義)는 조선을 가져다가 순지나화(純支那化)하려는 것뿐이고, 그 예술은 청천(靑天)으로 백일(白日)을 대하며 황화(黃花)로 녹죽(綠竹)을 대하는 사륙문에 능할 뿐이었다”라고 하여 일찍이 최치원을 사대모화(事大慕華)의 화신으로 단죄하였다. 오랫동안 최치원은 ‘사대모화의 표본적인 인물’로 규정되어 왔다.

이 책의 저자 최영성은 이러한 평가에 반대하며 최치원의 민족 주체 의식을 고찰한다. 당시 신라 유학생 가운데 당나라에 귀화해 버린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최치원은 「진감선사비문」에서 “비록 공(空)을 체관(諦觀)한다고 하여 어찌 본국을 잊을 수 있겠는가(雖曰觀空, 豈能忘本)”라고 하였듯 조국에 대한 자아·주체 의식에 남달랐음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어서 저자는 최치원의 철학 사상이 ‘인간주체’에 기반을 두고 민족 주체 의식, 문명 지향 의식이라는 두 방향으로 전개되었다고 말한다. 최치원은 당시의 어지러운 정세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 통합의 원동력으로 민족의식을 부르짖었고, 아울러 우리의 문화적 긍지와 문화 창조의 역량을 최고도로 발휘하여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문명 의식을 고취시켰다. 이런 최치원의 사상이 후대에 이규보(李奎報), 김시습(金時習), 휴정(休靜), 유일(有一), 이서구(李書九), 최제우(崔濟愚), 김항(金恒) 등 삼교회통 내지 조화를 주장하는 학자?종교인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최치원을 정점으로 독특한 사상적 맥락을 이룬 한 무리의 학자·사상가들에게 ‘고운 학맥’ 또는 ‘최치원 계보’라 이름 붙일 수 있다고 한다.

유불선 삼교회통의 풍류사상

최치원은 유교의 관점에서 볼 때는 유학자였고, 불교나 도교의 관점에서 볼 때는 불교인이고 도선가(道仙家)였다. 그러나 그는 어느 한 사상이나 종교에 매여서 배타적 성향을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최치원이 모든 사상과 종교가 대립·갈등 없이 공존하면서 화해·융합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고 한다. 당나라에서 귀국한 이후 그는 우리 고유 사상을 탐구하였고, 「난랑비서」에서 우리나라에 서로 이질적인 사상들을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기반인 풍류도가 있음을 밝혔다.

또한 저자는 이것이 ‘호계삼소도(虎溪三笑圖)’에 담긴 뜻과 부합한다고 이야기한다. 호계는 중국 여산(廬山)의 동림사 앞에 흐르는 시냇물이다. 고승 혜원은 동림사에 들어온 후 호계를 경계로 속세에 나가지 않고 수행과 교화에 전념했다고 한다. 그는 호계까지 손님을 배웅했는데, 그가 무심코 이곳을 건너려고 하면 호랑이가 울었다고 한다. 어느 날 도가의 도연명(陶淵明)과 유가의 육수정(陸修靜)이 찾아와 돌아가는 길에 이야기에 도취된 나머지 혜원이 무심코 호계를 건너버렸다. 호랑이의 울음소리에 이 사실을 깨닫고 세 사람이 크게 웃었다 한다. 최치원이 학문적 종교적으로 그리던 이상적인 경지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고운사상의 맥을 찾아서

저자는 오랫동안 최치원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왔다. 20여 년 동안 최치원과 관련하여 길고 짧은 글을 30여 편 썼고, 2001년에는 『최치원의 철학사상』이라는 책을 냈다. 『孤雲思想의 脈』은 그 뒤에 발표한 글을 모은 책으로 이전의 책에서 소개한 내용을 다시금 풀어 쓰거나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을 보충하고 있다. 저자는 이전의 책을 훨씬 뛰어넘는 진전된 연구 성과를 내놓아야 하는데 한 사람의 시각과 관점으로 연구하는 것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하며 최치원에 대한 다른 사람의 연구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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