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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일러두기 제Ⅰ부 경북 북부지역 학자들의 자기의식과 기질 제Ⅱ부 퇴계학파의 이론적 특징 1장 퇴계학에 있어서 리(理)의 능동성 이론 2장 퇴계학파의 경론(敬論) 3장 퇴계학파의 심학적(心學的) 특징 4장 퇴계학파의 율곡학(栗谷學) 비판 제Ⅲ부 16세기 경북 북부지역의 성리학자 : 퇴계와 제자들 1장 이황(李滉, 1501~1570) 2장 김부필(金富弼, 1516~1577) 3장 박승임(朴承任, 1517~1586) 4장 김언기(金彦璣, 1520~1588) 5장 오수영(吳守盈, 1521~1606) 6장 권대기(權大器, 1523~1587) 7장 조목(趙穆, 1524~1606) 8장 구봉령(具鳳齡, 1526~1586) 9장 정탁(鄭琢, 1526~1605) 10장 남몽오(南夢鰲, 1528~1591) 11장 금난수(琴蘭秀, 1530~1604) 12장 김부륜(金富倫, 1531~1598) 13장 권호문(權好文, 1532~1587) 14장 배삼익(裵三益, 1534~1588) 15장 김성일(金誠一, 1538~1593) 16장 권춘란(權春蘭, 1539~1617) 17장 유운룡(柳雲龍, 1539~1601) 18장 이덕홍(李德弘, 1541~1596) 19장 유성룡(柳成龍, 1542~1607) 제Ⅳ부 17~18세기 경북 북부지역의 성리학자 : 퇴계학맥(退溪學脈) 1장 장흥효(張興孝, 1564~1633) 2장 이시명(李時明, 1590~1674) 3장 장계향(張桂香, 1598~1680) 4장 이휘일(李徽逸, 1619~1672) 5장 이현일(李玄逸, 1627~1704) 6장 이숭일(李嵩逸, 1631~1698) 7장 권두인(權斗寅, 1643~1719) 8장 권두경(權斗經, 1654~1725) 9장 이재(李栽, 1657~1730) 10장 조덕린(1658~1737) 11장 권구(1672~1749) 12장 이광정(李光庭, 1674~1756) 13장 김성탁(金聖鐸, 1684~1747) 14장 이상정(李象靖, 1710~1781) 제Ⅴ부 퇴계학파의 학맥(學脈)과 문인록(門人錄) 1장 퇴계학파의 주요 학맥(學脈圖) 2장 퇴계학파의 문인록(門人錄) : 퇴계(退溪), 학봉(鶴峯), 서애(西厓), 경당(敬堂), 갈암(葛庵), 밀암(密菴), 대산(大山) 3장 경당급문록(敬堂及門錄)의 재구성 4장 17세기 경북 북부지역 성리학계의 동향 제Ⅵ부 경북 북부지역 성리학의 과제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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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대략 300년간의 경북 북부지역 성리학을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학자로 보면 퇴계 이황으로부터 대산 이상정의 시대까지이다. 주요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부분(제2부)은 이론적 배경이자 경북 북부지역 성리학의 철학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었다. 필자는 여기에서 퇴계학파의 이론 특징을 이(理)의 능동성 이론, 경론(敬論), 심학적(心學的) 특징, 율곡학(栗谷學) 비판이라는 네 가지 점에서 고찰하였다. 둘째 부분(제3부)은 16세기에 활동한 퇴계의 주요 문인들을 횡축으로 삼아 그들의 기본 행적과 문집의 특징에 대해 기술하였고, 셋째 부분(제4부)은 17~18세기에 활동한 퇴계학맥의 주요 학자들을 종축으로 하여 그들의 행적과 문집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넷째 부분(제5부)은 자료집의 성격을 지닌 퇴계학파의 문인록(門人錄)이 주요 내용을 이루는데, 시대마다 이 지역 사상계의 중심역할을 했던 퇴계(退溪), 학봉(鶴峯), 서애(西厓), 경당(敬堂), 갈암(葛庵), 밀암(密菴), 대산(大山)의 문인록을 수록하였다.
일반적으로 ‘경북 북부지역’이란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예천, 영주(풍기), 봉화, 영양, 청송, 영덕(영해) 등을 의미한다. 이 지역에서 ‘학파적’ 정체성을 강하게 형성하고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이들은 주로 ‘학봉-경당-갈암’ 계열, 즉 일명 호파(虎派) 계열의 학자들이다. 그들은 퇴계학을 정통으로 삼아 조선 유학의 적통(嫡統)을 계승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찼으며, 무엇보다도 이(理)의 능동성을 강조하고 지경(持敬)의 삶을 직접 실천했다. 그래서 이 책 제4부에서 17~18세기 경북 북부지역 학자들을 다루면서 ‘학봉-경당-갈암’ 계열의 호파(虎派) 학자들을 중심으로 하였다. 그러다보니 갈암을 중심으로 한 특정 가문의 인물들이 지나치게 많이 다루어졌고, 반면 그 시대 이 지역의 상당수 비중 있는 학자들을 범위에 포함시키지 못했다. 이점에 대해 독자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하며, 향후 기회가 된다면 ‘서애-우복’ 계열의 병파(屛派) 학자들에 대해서도 연구의 폭을 넓히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