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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 개들도 버려진 아이들처럼 길거리를 떠돈다
1장 뒷동산에서 보낸 아름다운 나날 2장 죽거나 비참하게 살아가거나 3장 101번지 골목길에 찾아온 마지막 순간 에필로그 /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들개 문제 역자 후기/ 어떤 생명도 이런 시간을 견뎌야 할 이유가 없다 편집 후기 / 한국의 들개는 안녕한가 |
들개 새끼에게 행복한 유년은 없다. 있다고 해도 아주 짧다. 이후 시간의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을지 궁리하며 보낸다.
삼겹이는 늘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짖는 법이 없다. 다른 개와 어울리는 법도 드물다. 아마 버려질 때 상당히 큰 충격을 받으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은 것 같다. 귤은 일전에 새끼 여섯 마리를 낳아 힘겹게 3개월을 키웠는데 결국 유기견 추격대가 모조리 잡아갔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삼겹이를 보고는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더니 그중 하나가 더럽다며 발길질로 삼겹이를 위협했다. 아이들은 무슨 사냥감이라도 물은 것처럼 더 신이 난 듯했고 삼겹이는 절망적으로 몸을 담벼락에 기댄 채 벌벌 떨었다. 귤이 교통사고로 죽은 뒤로 콩나물은 상실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잃은 듯했다. 서로 다른 구역에서 홀로 살아가는 다수의 암캐 사이에는 이런 미묘한 정서와 더불어 뭔가 좀 독특한 우정 같은 것이 있다. 수캐들에게는 없는, 관찰하기 힘든 면모이다. 오토바이 가게가 이사를 가면서 단백질과 반쪽이는 버려졌다. 오토바이 가게 자리에는 이발소가 들어섰는데 두 녀석은 예전처럼 가게 앞에 엎드려 있다가 쫓겨났다. 둘은 자신감을 모조리 잃어버린 채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악랄한 방식으로 버려진 개들, 이를테면 차 안에 있다가 주인에게 떠밀려 버려졌다가나 심하게 욕을 먹고 쫓겨났다거나 차타고 멀리 가서 버려지는 바람에 기력이 다 빠질 때까지 떠나는 주인의 차를 죽어라 뒤쫓아 간 끝에 결국 버려진 개들은 심각할 정도의 좌절을 겪게 되고 자기 자신은 물론 사람에게, 심지어 앞으로의 삶 전체에 자신감을 잃게 된다. 개는 시각이 후각보다 훨씬 약하다. 게다가 차의 속도에 대한 판단력도 보통 서너 살 먹은 어린아이 정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차들의 속도가 유난히 더 빨라지는 이 찻길에서 비명에 간 들개가 유기견 추격대에 잡혀간 개보다 적지 않다. 많은 들개가 무리를 지어 다닌다. 서너 마리씩 무리를 지어 한 구역을 접수하고, 그 안과 경계 지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지낸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가운데 다른 친구들로부터 돌봄을 받기도 하고, 또 그들과 협력하기도 하면서 안전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무화과는 배를 위쪽으로 내보인 채 농부 아저씨가 쓰다듬고 긁어 주길 바랐다. 이전에 집에서 살 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 주인은 왜 이 녀석들을 갖다 버렸을까, 왜 녀석이 영문도 모른 채 길거리를 떠돌게 만들었을까. 무화과의 새끼가 급히 지나가던 차량에 치여 죽고 말았다. 차에 치인 새끼는 현장에서 피를 한가득 뿌리고 죽었다. 가까이 다가간 무화과가 낮게 훌쩍이며 울어 댔다. 어떻게 이 무서운 사태에 대응해야 하는 건지 머릿속이 하얗게 된 것 같았다. 그러더니 새끼가 뿌린 피를 핥아 댔다. 새끼가 다시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았다. 청어는 사람만 보면 무조건 꼬리를 흔들어대는 녀석이다. 그런 청어도 유기견 추격대를 보고는 뭔가 이상하다 싶었나 보다. 놀라서 도망가려 했지만 이미 때가 늦은 상황이었다. 이미 유기견 추격대 너무 가까이 가 있던 상황이라 몇 발자국 뛰지도 못하고 그물망에 걸리고 말았다고 했다. 힘든 환경 속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들개들의 경우, 배우자나 새끼가 죽음에 이르면 불가사의한 신체 언어로 자신의 슬픔을 감동적으로 표현해 내곤 한다. --- 본문 중에서 |
버려진 개들에게 시민권은 없다
유기견, 들개를 위협적으로 묘사하는 정책자, 언론에 전하는 살아있는 자료 자연 생태 문학가인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12마리 유기견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이 관찰은 2년여 동안 지속되는데 인간에 의해 버려진 도시의 유기견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죽어가는 지를 지켜본다. 저자는 과도한 감정 표현 없이 담담하게 유기견 12마리의 삶을 묘사함으로서 인간 중심의 도시 문화 속에서 쉽게 버려지고 아무렇지 않게 폭력의 대상이 되는 버려진 개들의 비참한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책은 20년 전 대만의 이야기이지만 현재 한국의 길 위에 사는 동물들의 모습과 똑같다. 유기견과 길고양이, 산 속의 들개...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고, 질병에 걸려, 차에 치여 죽고, 포획되어 시설에서 안락사로 죽어가는 동물들에게 도시는 가혹하다. 도시는 버려진 개들에게 살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버려진 개들에게는 시민권도 생존권도 없다. 특히 길 위의 동물에 대해 장기간의 관찰을 통해 축적된 자료 없이 포획해서 죽이기에 급급한 한국의 동물 관련 정책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기도 하다. 들개 관련 부처와 언론은 행인을 위협한다며 들개를 폭력배처럼 무섭게 묘사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처사이다. 들개는 심각하게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다. 그럴 힘도 능력도 없다. 실제로 버려진 개들은 어딜 가나 오해를 받고 위협을 당한다. 그러다가 때로는 위험을 피하지만 대개는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삶에 실패한다. 이 책은 책상에 앉아 관련 정책을 생산하는 자들에게 살아있는 자료를 전달한다. 사람들은 버려진 개들을 불결하고, 무리지어 다녀서 위험한 존재로 치부한다. 하지만 그들은 허기를 채우지 못해 멍한 눈으로 살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이다. 또한 그들에게 무리는 동료에게 돌봄을 받고, 협력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의 한 방편이다. 그들은 우리가 보호해야할 대상일 뿐이다. 버려진 개들은 야생에서 오지 않았다. 도시에서 버림받아 막다른 길에 이르렀을 뿐. 사람들은 끊임없이 개를 잡아가서 죽이지만 개들은 계속해서 버려지고, 끊임없이 새로 태어난다. 도시의 자연은 이렇게 황당무계한 방식으로 균형을 이뤄나간다. 이렇게 우리는 버려진 개들을 최후의 증인으로 남길 것인가. 생존권 없이 도시를 표류하는 삶을 참혹하게 경험한 증인으로.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길 위의 생명을 따뜻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면 좋겠다. 자연·생태 문학가가 치밀하게 관찰하고 섬세하게 묘사했다 살아내라고 응원하게 되는 101번지 골목길을 떠도는 12마리 개들의 삶 자연.생태 문학가인 저자는 101번지 골목길을 떠도는 개들을 관찰하면서 객관적인 연구자의 자세를 유지한다. 개들과 가까이 지내지고 않고 그들의 삶에 관여하지도 않는다. 덕분에 독자들은 도시에 버려진 개들의 참혹한 삶을 거르는 것 없이 날 것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책 속 개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들개에 대한 편견을 바꿔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들개는 다 비슷한 모습일 거라 생각하지만 책 속에서 개들은 삶을 마주하고, 기쁨을 즐기고, 다른 개들과 관계를 맺고,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이 다 다름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독자들은 12마리 개들 각자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체형은 왜소하지만 신중하고 강한 야성을 지닌 동아 야생 환경을 견디며 살아서 기민하고 강인한 감자 천진하고 귀여운 꼬맹이 101번지 골목길 삼총사의 대장 돼지머리 돼지머리를 따라다니는 2인자로 고집이 세고 기민한 삼겹이 다른 개의 새끼도 돌봐 주는 모성을 지닌 귤 버려질까 전전긍긍하며 집개와 들개, 경계의 삶을 사는 콩나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집시 스타일 또라이깜보 오토바이 가게에서 살다가 버려진 단백질과 반쪽이 버려졌지만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는 무화과와 청어 이들에게는 함께 지내던 친구, 새끼,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영영 돌아오지 않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항시 배고픔과 불안에 떤다. 우리가 무슨 권리로 이들에게 이런 지옥 같은 삶을 강요할 수 있을까. 개들은 버려진 아이들처럼 길거리를 떠돌고, 돌봄을 받지 못하다 보니, 불량 청소년처럼 위협적으로 굴 때도 있지만 열등감에 빠져 자신감 없어 할 때가 대부분이다. 충성스러우면서도 단순한 개들은 잔인하게 버려지면 몸과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아 오랫동안 두려움 속에 살게 된다. 버려진 개들은 더 많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존재일 뿐임을 책 속 12마리 개들이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