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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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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아오모리 북쓰가루 가나기, 1927년 7월 8일 후지타 모토타로·쇼지로에게
아오모리 북쓰가루 가나기, 1927년 7월 9일 후지타 모토타로·쇼지로에게
도쿄 도쓰카(다카다노바바), 1927년 7월 16일 후지타 모토타로에게
아오모리 북쓰가루 가나기, 1928년 8월 10일 후지타 모토타로에게
도쿄 도쓰카(다카다노바바), 1929년 1월 1일 후지타 모토타로·쇼지로에게
도쿄 도쓰카(다카다노바바), 1930년 9월 15일 후지타 모토타로에게
발신지 불명, 1931년 무렵 오야마 키미에게
도쿄 나카노, 1932년 6월 7일 구도 에이조에게
시즈오카 누마즈, 1932년 8월 2일 오야마 키미에게
도쿄 시바, 1932년 12월 25일 곤 칸이치에게
도쿄 시바, 1933년 1월 18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3년 3월 1일 기야마 쇼헤이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3년 5월 3일 기야마 쇼헤이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3년 7월 12일 구보 류이치로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3년 9월 11일 기야마 쇼헤이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3년 11월 11일 구보 류이치로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3년 12월 16일 구보 류이치로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4년 1월 22일 구보 류이치로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4년 6월 5일 구보 류이치로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4년 6월 27일 구보 류이치로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4년 6월 27일 기야마 쇼헤이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4년 7월 9일 기야마 쇼헤이에게
시즈오카 미시마, 1934년 8월 14일 고다테 쿄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4년 9월 13일 구보 류이치로에게
도쿄 스기나미, 날짜 불명 쓰무라 노부오에게
도쿄 스기나미, 날짜 불명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4년 11월 2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4년 11월 5일 나카무라 테이지로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4년 11월 5일 구보 류이치로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4년 11월 6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4년 11월 16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4년 12월 18일 기야마 쇼헤이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4년 12월 24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5년 1월 17일 쓰무라 노부오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5년 2월 12일 곤 칸이치에게
도쿄 세타가야 교도병원, 1935년 5월 10일 기야마 쇼헤이에게
도쿄 세타가야 교도병원, 1935년 6월 3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7월 29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7월 31일 고다테 젠시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8월 5일 나카무라 테이지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8월 8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8월 13일 고다테 젠시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8월 21일 고다테 젠시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8월 22일 사토 하루오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8월 31일 곤 칸이치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9월 2일 곤 칸이치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9월 22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9월 22일 미우라 마사츠구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9월 30일 히레자키 준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10월 4일 간베 유이치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10월 31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11월 9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11월 17일 스나고야쇼보 아사미 후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11월 18일 스나고야쇼보 아사미 후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11월 22일 스나고야쇼보 아사미 후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11월 모일 사카이 마히토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12월 4일 고다테 젠시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12월 4일 쓰무라 노부오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12월 16일 히레자키 준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12월 23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무렵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5년 무렵 곤 칸이치 앞
치바 후나바시, 1936년 1월 24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2월 5일 사토 하루오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2월 7일 사토 하루오에게
도쿄 시바 제생회시바병원, 1936년 2월 10일 스나고야쇼보 아사미 후카시에게
도쿄 시바 제생회시바병원, 1936년 2월 10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시바 제생회시바병원, 1936년 2월 12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시바 제생회시바병원, 1936년 2월 13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시바 제생회시바병원, 1936년 2월 13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시바 제생회시바병원, 1936년 2월 14일 사토 하루오에게
도쿄 시바 제생회시바병원, 1936년 2월 14일 사토 하루오에게
도쿄 시바 제생회시바병원, 1936년 2월 14일 사토 하루오에게
도쿄 시바 제생회시바병원, 1936년 2월 16일 사토 하루오에게
도쿄 시바 제생회시바병원, 1936년 2월 17일 사토 하루오에게
도쿄 시바 제생회시바병원, 1936년 2월 20일 사토 하루오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3월 1일 사토 하루오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3월 2일 스나고야쇼보 아사미 후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3월 20일 사토 하루오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3월 24일 스나고야쇼보 아사미 후카시 앞
치바 후나바시, 1936년 4월 7일 스나고야쇼보 아사미 후카시 앞
치바 후나바시, 1936년 4월 17일 요도노 류조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4월 23일 요도노 류조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4월 26일 요도노 류조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4월 27일 요도노 류조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4월 27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4월 28일 스나고야쇼보 아사미 후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5월 15일 곤 칸이치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5월 18일 사토 하루오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5월 모일 오노 마사후미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6월 20일 사토 하루오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6월 21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6월 23일 곤 칸이치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6월 23일 쓰무라 노부오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6월 27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6월 28일 히레자키 준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6월 29일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6월 30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7월 2일 히레자키 준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7월 6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7월 7일 도쿄공업대학 내 구라마에신문 문예부 사쿠라오카 코지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7월 7일 고다테 젠시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7월 11일 쓰시마 분지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7월 27일 사토 하루오에게
1936년 7월 27일 밤 사토 하루오
치바 후나바시, 1936년 7월 날짜 불명 신초샤 《신초》 편집부 나라사키 쓰토무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7월 31일 신초샤 《신초》 편집부 나라사키 쓰토무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7월 31일 신초샤 《신초》 편집부 나라사키 쓰토무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8월 2일 기쿠야 사카에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8월 7일 쓰시마 분지에게
군마 미나카미 온천 다니카와 료칸, 1936년 8월 12일 고다테 젠시로에게
군마 미나카미 온천 다니카와 료칸, 1936년 8월 22일 고다테 젠시로에게
군마 미나카미 온천 다니카와 료칸, 1936년 8월 25일 아사미 후카시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9월 15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골고타 언덕에서, 1936년 9월 16일 사토 하루오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9월 19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골고타 언덕에서, 1936년 9월 20일 사토 하루오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10월 4일 곤 칸이치에게
치바 후나바시, 1936년 10월 11일 사토 하루오에게
시즈오카 아타미 온천 야오마츠 료칸, 1936년 11월 26일 히레자키 준에게
시즈오카 아타미 온천 무라카미 료칸, 1936년 12월 8일 이부세 세쓰요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7년 1월 23일 고다테 레이코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7년 6월 12일 나카하타 케이키치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7년 6월 22일 도쿄일일신문사 경제부 히라오카 토시오에게
발신지 미상, 1937년 7월 6일 이부세 세쓰요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7년 7월 19일 오야마 하쓰요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7년 7월 22일 도쿄일일신문사 경제부 히라오카 토시오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7년 9월 25일 나카하타 케이키치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7년 12월 21일 신초샤 《신초》 편집부 나라사키 쓰토무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7년 12월 21일 스나고야쇼보 오자키 카즈오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8년 1월 11일 오자키 카즈오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8년 3월 17일 히레자키 준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8년 8월 11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도쿄 스기나미, 1938년 9월 2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야마나시 덴카차야, 1938년 9월 19일 기타요시 시로에게
야마나시 덴카차야, 1938년 9월 25일 나카하타 케이키치에게
고후 고토부키칸, 1938년 10월 17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야마나시 덴카차야, 1938년 10월 24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야마나시 덴카차야, 1938년 10월 26일 나카하타 케이키치에게
고후 고토부키칸, 1938년 11월 26일 다카다 에이노스케에게
고후 고토부키칸, 1938년 12월 16일 나카하타 케이키치에게
고후 고토부키칸, 1938년 12월 16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고후 고토부키칸, 1939년 1월 4일 다카다 에이노스케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1월 10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1월 10일 나카하타 케이키치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1월 10일 스나고야쇼보 오자키 카즈오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1월 24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2월 4일 다케무라쇼보 다케무라 타이라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3월 8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3월 10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3월 10일 나카하타 케이키치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3월 21일 다케무라쇼보 다케무라 타이라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4월 20일 가메이 가쓰이치로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5월 18일 다케무라쇼보 다케무라 타이라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5월 26일 나카하타 케이키치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5월 31일 다케무라쇼보 다케무라 타이라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6월 4일 히레자키 준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6월 9일 스나고야쇼보 야마자키 고헤이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6월 27일 스나고야쇼보 야마자키 고헤이에게
고후 미사키초, 1939년 8월 10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미타카, 1939년 9월 6일 히라오카 토시오에게
도쿄 미타카 1939년 12월 27일 다카다 에이노스케에게
도쿄 미타카, 1940년 4월 5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0년 5월 6일 히라오카 토시오에게
도쿄 미타카, 1940년 5월 23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0년 6월 7일 추오코론샤 《부인공론》 편집부 노구치 시치노스케에게
도쿄 미타카, 1940년 6월 7일 가와데쇼보 편집부 오가와 마사오에게
도쿄 미타카, 1940년 6월 10일 다카미 준에게
도쿄 미타카, 1940년 8월 2일 기무라 쇼스케에게
도쿄 미타카, 1940년 8월 20일 기무라 쇼스케에게
도쿄 미타카, 1940년 11월 23일 〈요미우리신문〉 출장소 고야마 키요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0년 12월 2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0년 12월 12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발신지, 날짜 불명(1940년 추정) 곤 칸이치에게
도쿄 미타카, 1941년 2월 1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1년 2월 16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시즈오카 시미즈 미호엔, 1941년 2월 19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1년 3월 27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미타카, 날짜 불명 스나고야쇼보 오자키 카즈오에게
도쿄 미타카, 1941년 6월 11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1년 6월 30일 〈요미우리신문〉 출장소 고야마 키요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1년 8월 2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도쿄 미타카, 1941년 10월 23일 다케무라쇼보 다케무라 타이라에게
도쿄 미타카, 1941년 12월 2일 〈요미우리신문〉 출장소 고야마 키요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1년 12월 4일 기쿠타 요시타카에게
고후 소토바무라 온천, 1942년 2월 19일 〈요미우리신문〉 출장소 고야마 키요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2년 7월 4일 다케무라쇼보 다케무라 타이라에게
고후 스이몬초 이시하라 씨 댁, 1942년 7월 24일 다카나시 카즈오에게
도쿄 미타카, 1942년 8월 7일 하쿠분칸 출판부 이시미쓰 시게루에게
도쿄 미타카, 1942년 8월 9일 고야마 키요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2년 10월 2일 하쿠분칸 출판부 이시미쓰 시게루에게
도쿄 미타카, 1942년 10월 7일 아이다 유우에게
도쿄 미타카, 1942년 10월 17일 다카나시 가즈오에게
도쿄 미타카, 1942년 11월 15일 오누마 탄에게
도쿄 미타카, 1942년 12월 31일 고야마 키요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3년 1월 9일 하쿠분칸 출판부 이시미쓰 시게루 앞
도쿄 미타카, 1943년 2월 10일 고야마 키요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3년 7월 11일 기무라 주타로에게
도쿄 미타카, 1943년 8월 17일 나카타니 타카오에게
도쿄 미타카, 1943년 10월 17일 야마기시 가이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3년 11월 17일 미야가와 켄이치에게
도쿄 미타카, 1943년 12월 31일 아오모리 남쓰가루 다자와 요코에게
도쿄 미타카, 1944년 7월 3일 야마시타 료조에게
도쿄 미타카, 1944년 8월 29일 쓰쓰미 시게히사에게
도쿄 미타카, 1944년 11월 20일 오다 타케오에게
도쿄 미타카, 1944년 12월 13일 고야마 키요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5년 2월 11일 쓰쓰미 시게히사에게
고후 스이몬초, 1945년 4월 17일 고야마 키요시에게
고후 스이몬초, 1945년 4월 22일 고야마 키요시에게
고후 스이몬초, 1945년 5월 9일 고야마 키요시에게
고후 스이몬초, 1945년 5월 18일 쓰쓰미 시게히사에게
고후 스이몬초, 1945년 6월 13일 고야마 키요시에게
고후 스이몬초, 1945년 6월 26일 기쿠타 요시타카에게
고후 신야나기초, 1945년 7월 15일 시노자키 고로쿠에게
고후 신야나기초, 1945년 7월 20일 쓰쓰미 시게히사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5년 8월 12일 야마시타 료조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5년 8월 28일 기쿠타 요시타카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날짜 불명 이부세 마스지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5년 9월 23일 다나카 히데미쓰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5년 10월 7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5년 11월 28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5년 11월 모일 다케무라쇼보 다케무라 타이라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5년 12월 14일 고야마 키요시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1월 11일 오오타 시즈코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1월 11일 벳쇼 나오키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1월 12일 오자키 카즈오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1월 15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1월 19일 신초샤 《신초》 편집부 가와모리 요시조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1월 25일 쓰쓰미 시게히사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1월 29일 사라시나 겐조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3월 2일 이마 하루베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3월 15일 기쿠타 요시타카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4월 1일 이마 하루베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4월 19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4월 19일 사라시나 겐조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4월 22일 쓰쓰미 시게히사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4월 30일 가와모리 요시조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5월 1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5월 21일 《토자이》 편집부 기시 야마지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6월 6일 고야마 키요시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6월 14일 기쿠타 요시타카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6월 26일 고야마 키요시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7월 13일 가사이 큐지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7월 18일 이마 하루베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8월 10일 고다테 레이코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8월 22일 가와모리 요시조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8월 24일 고다테 레이코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9월 1일 쓰쓰미 시게히사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9월 모일 오오타 시즈코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10월 24일 이마 하루베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10월 모일 오오타 시즈코에게
아오모리 가나기, 1946년 10월 모일 오오타 시즈코에게
도쿄 미타카, 1946년 11월 21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도쿄 미타카, 1946년 11월 24일 쓰쓰미 시게히사에게
도쿄 미타카, 1946년 12월 21일 이부세 마스지에게
도쿄 미타카, 1946년 12월 24일 마에다출판사 마시오 마사히로에게
도쿄 미타카, 1946년 12월 모일 오오타 시즈코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1월 15일 이마 하루베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1월 모일 오오타 시즈코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2월 18일 가사이 큐지에게
시즈오카 야스다야 료칸, 1947년 2월 26일 오오타 시즈코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3월 11일 오오타 시즈코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3월 23일 오오타 시즈코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4월 2일 다나카 히데미쓰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4월 30일 이마 하루베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5월 1일 후타에이쇼보 이와쓰키 히데오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5월 13일 다나카 히데미쓰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5월 21일 쓰쓰미 시게히사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6월 3일 다나카 히데미쓰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6월 15일 오오타 시즈코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7월 9일 다나카 히데미츠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10월 30일 미야가와 츠요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11월 7일 쓰쓰미 시게히사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11월 22일 야쿠모쇼텐 편집부 가메지마 사다오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12월 2일 쓰쓰미 시게히사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12월 9일 고야마 키요시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12월 11일 다나카 히데미쓰에게
도쿄 미타카, 1947년 12월 11일 가나기 우체국장 쓰시마 겐스케에게
도쿄 미타카, 1948년 1월 14일 미야기 류이치로에게
도쿄 미타카, 1948년 3월 4일 가나기 우체국장 쓰시마 겐스케에게
도쿄 미타카, 1948년 3월 5일 미토 히로시에게
시즈오카 키운카쿠 별관, 1948년 3월 15일 신초샤 노히라 켄이치에게
오오미야 다이몬초, 1948년 5월 4일 쓰시마 미치코에게
오오미야 다이몬초, 1948년 5월 7일 쓰시마 미치코에게

부록ㆍ다자이 오사무 자필 노트
옮긴이의 말
다자이 오사무 연보

저자 소개 2

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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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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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있는 닦을 수(修) 자처럼 끊임없이 갈고닦는 번역가. ‘루리’의 빛도 닦기 나름이라 수행하는 마음으로 노력하지만, 어떤 날에는 ‘가차’ ‘가차’ 하며 울고 싶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쓸 수 있다는 건 세상 그 무엇보다 값지다. 이를 알려준 ‘게사니’처럼 목청을 높이며 나의 언어, 나의 문장을 기억하려 한다. 그러니까 사라져가는 ‘유카르’ 계승자가 되어 노래하고 싶어진다는 것. 새로운 소설을 쓸 준비가 되었다는 것. 이제 행운의 주문을 외울 차례다. ‘루루’ ‘루루’. 장편소설 《파도의 아이들》, 산문집 《날마다 고독한 날》, 하이쿠 안내서 《한 줄 시
이름에 있는 닦을 수(修) 자처럼 끊임없이 갈고닦는 번역가. ‘루리’의 빛도 닦기 나름이라 수행하는 마음으로 노력하지만, 어떤 날에는 ‘가차’ ‘가차’ 하며 울고 싶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쓸 수 있다는 건 세상 그 무엇보다 값지다. 이를 알려준 ‘게사니’처럼 목청을 높이며 나의 언어, 나의 문장을 기억하려 한다. 그러니까 사라져가는 ‘유카르’ 계승자가 되어 노래하고 싶어진다는 것. 새로운 소설을 쓸 준비가 되었다는 것. 이제 행운의 주문을 외울 차례다. ‘루루’ ‘루루’.
장편소설 《파도의 아이들》, 산문집 《날마다 고독한 날》, 하이쿠 안내서 《한 줄 시 읽는 법》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도련님》, 《은수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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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460쪽 | 570g | 132*225*31mm
ISBN13
9791189433147

책 속으로

필요한 것은 지혜가 아니었어. 사색도 아니었다. 학문도 아니었고. 포즈도 아니었다. 애정이다. 푸른 하늘보다 깊은 애정이다.
--- 「1935년 8월 31일」 중에서

하지만 나의 작품을 아주 천천히 읽어보게.
역사적으로도 대단히 뛰어난 작품이야.
내가 나서서 이런 말을 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일세.
나는 혼자서 감격하고 있어.
그것만큼은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네.
--- 「1935년 9월 22일」 중에서

가을의 추위가 오장육부에 스민다. 나, 아직도 유배지에서 달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야.
--- 「1935년 9월 22일」 중에서

살아 있는 동안은 비참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이 난관을 홀로 뚫고 나갈 각오이니 안심하십시오.
--- 「1935년 10월 31일」 중에서

나는 지금 거울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순례자가 되어볼까 하고 진심으로 생각 중이다.
--- 「1935년 11월 9일」 중에서

만물은 그치지 않고 움직인다. 물의 흐름이다. 인간의 의지로는 아무리 해도 막을 수 없는 게 이 세상에는 있다. 옷깃만 스쳐도 전생의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당신에게 슬픈 인연을 느낀다.
“태어난 것부터가 이미 잘못의 씨앗이었다.”
나는, 요 며칠, 당신이라는 물이 흘러가는 모습을 생각하고 있다.
--- 「1935년 11월 모일」 중에서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난, 우리 세대 친구들을 믿고 있어. 어디에선가, 부끄러울 정도로 악수를 나누고 있을 걸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구나.
--- 「1935년 12월 4일」 중에서

‘건배! 내게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박수.) 제가 한 살 때지요.’
--- 「1935년 무렵」 중에서

재주도 없는 말더듬이 두메산골 촌놈, 적어도 좋은 작품을 바치겠습니다. 달리 다른 기술도 없습니다. 무지하게 부끄럽고 이리 한 줄 한 줄 적어나가는 사이 이윽고 부끄러움은 열 배 스무 배 쌓여서, 아아 이 부풀리는 말버릇, 요코미츠 리이치도 울고 갈 서투른 글씨여, 다시 쓰자, 다시 써, 하고 스스로를 꾸짖는 중입니다.
--- 「1936년 2월 20일」 중에서

걸작이란, 소설 한 편에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 한 작가가 10년을 걸어온 길에 바치는 형용사라고 생각해.
--- 「1936년 5월 15일」 중에서

산발한 머리가 한 뼘 정도 길었습니다.
친구에게 보여준 뒤 자르려 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 「1936년 5월 모일」 중에서

하루하루 밝게 산다면 자살은 무슨, 주사는 무슨.
붉은 유리 풍경 하나에도, 살아 있다는 기쁨, 느낍니다, 육친의 사랑을 모르는 아이입니다.
--- 「1936년 6월 20일」 중에서

작품에 대한 말은 모두 수긍. 너의 ‘다자이론’은 신뢰가 가. 너도 다자이니까.
--- 「1936년 6월 23일」 중에서

고통스러운 1년을 보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온 것만이라도 칭찬해주십시오.
요즘 다소 빈궁하여 쓰기 힘든 편지들만 수없이 쓰고 있습니다.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 「1936년 6월 29일」 중에서

저는 지금 몸을 해쳐 누워 있습니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조금도 일다운 일을 남기지 못했고, 마흔이 되어서야 어떻게든 겨우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남겨보자는 마음으로, 절실하게, 마흔까지는 살아 있을 생각입니다.
--- 「1936년 7월 6일」 중에서

아쿠타가와 상을 놓친 타격, 이해가 안 돼서 물어보고 있어. 견딜 수가 없는 일이네. 썩어문드러진 문단, 질려버렸다.
--- 「1936년 8월 12일」 중에서

자살한 뒤에 “그만큼 힘들었다면 귀띔이라도 해주지”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바로 그, 귀띔의 말,
요즘 제가 하는 모든 말이 그러합니다.
--- 「1936년 9월 19일」 중에서

산 위에서 설교하는 차라투스트라 흉내를 내며 또 피를 토했어.
--- 「1936년 10월 4일」 중에서

나는 일을 해야만 하네.
다자이도 요즘 일어서고 있네. 조금씩 중량감이 생기고 있어.
그 옛날 놈팡이, 거짓말쟁이 다자이도 그립지만, 그래서는 살 수가 없다.
--- 「1938년 10월 17일」 중에서

이삼 년, 아니 오륙 년, 일본에는 우리의 황금시대,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마음이 여유로워졌네. 자신이 있기 때문이야. 분명 이길걸세. 확신이 있어. 우리가 망할 이유가 조금도 없지 않은가. 그때까지 우리, 유연하고 단호하게, 갈고 닦으세. 유연하게, 라네.
--- 「1938년 11월 26일」 중에서

지금으로선 나, 오래 살 생각이야. 앞으로 이삼 년 안으로는 어엿한 어른스러운 작품을 완성시키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아직 내 심경이 충분치 않아. 언어에 자신이 없어. 부끄럽게 생각해.
--- 「1939년 3월 8일」 중에서

살아 있는 모든 이에게는 시를 쓸 권리가 있습니다.
천진난만하게 사시기를.
--- 「1941년 12월 4일」 중에서

내년이면 저도 서른다섯이니 중기 걸작을 하나 남기고 싶습니다(빨리 죽고 싶어 미치겠군).
--- 「1942년 10월 7일」 중에서

괴로운 일도 있겠지만, 문학에서 떨어져 생활하는 건 문학의 비료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1942년 11월 5일」 중에서
서른다섯, 서른여섯 살은 아무튼 살아남는 것부터가 괴로운 나이가 아닐까요.
--- 「1943년 8월 17일」 중에서

음, 그 다음에, 그 다음 뭐 달리 재밌는 일도 없고, 그냥 일만 한다네. 그래도 돈은 한 푼도 안 모여. 이상한 일이야. 왜 그런 걸까.
--- 「1945년 2월 11일」 중에서

우리의 세계관은 앞으로 새로이 만들어나가야만 합니다. 새로이 닥칠 현실은 쉽지 않을 겁니다. 경박한 시류에 휘둘리지 말고 씩씩하고 시원스레 살아나갈 방법을 찾아주십시오.
--- 「1946년 1월 11일」 중에서

요즘 문단은 시류에 편승해서 아주 꼴불견입니다. 이 악질적인 경향에 맞서 싸울 생각입니다.
--- 「1946년 1월 12일」 중에서

또 타락한 모양이군. 어차피 인생, 그야말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애초에 지옥이고, 즐거울 리가 없지만 말이지.
--- 「1946년 4월 22일」 중에서

저는 제 자신을 ‘멸망의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지고 멸망하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중얼거림이 우리의 문학이 아니겠습니까.
어째서 인간은 스스로를 ‘멸망’이라고 딱 잘라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 「1946년 4월 30일」 중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원래 시시한 일입니다. 저는 지금도 남몰래 계속 그리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이지 시시합니다. 역시 이 세상은 자신의 자부심도, 동경심도, 주장도 모두 버리고, 시시한 주변 사람들에게 서비스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끝마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 「1946년 8월 10일」 중에서

가장 자신 있어야 할 ‘글’을 쓰는 일이, 사실은 가장 하기 어려운 이 비극, 제가 바로 그러합니다.
--- 「1946년 10월 모일」 중에서

오늘은 바람이 강해서 나는 얌전히 책이나 읽고 있어. 하지만 내 앞길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재해 있어서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벌렁벌렁 뛰고, 서른아홉 살도 울고 싶어져.
위태로운 시국을 어서 돌파하길 빌게.
조급해선 안 돼. 우선 조용히 드러누워 있는 게 최고.
--- 「1947년 4월 2일」 중에서

‘다자이 씨의 얼굴을 보아하니 올 6월에 죽을 상이다. 나는 관상을 봐서 틀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만약 틀린다면 내 목을 내어놓겠다’라고 어느 젊은 여성이 단언하더군.
--- 「1947년 5월 21일」 중에서

좋은 인간은 학식 있는 사람보다, 재능 있는 사람보다, 고귀한 존재입니다. 늘 언행을 조심하세요.

--- 「1947년 10월 30일」 중에서

출판사 리뷰

다자이 오사무, 국내 첫 번역 서한집
“한밤중에 홀로 일어나
흐트러진 마음 그대로 우체통에”

인간 실격자, 다자이 오사무

읻다의 ‘상응’ 두 번째 도서인《다자이 오사무 서한집》은 일본의 대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서한을 엮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한국에서도 《사양》, 《인간 실격》이란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만큼 많이 거론되고 읽히는 작가이다. 그 작품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연약함과 순수함은 다자이 오사무 자신이라 평가되는데, 이 서한집에서 드러나는 그의 삶을 지켜보다 보면 누구나 그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서한집에서 작가의 세속적인 가십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우스웠는지 캐내어 우쭐대려는 것도 아니다. 작가의 거짓 없는 꾸준한 일상을 들여다보고, 그 편지를 쓴 무렵의 작품을 함께 읽으며, 작가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함이다.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함이다._‘옮긴이의 말’ 중에서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에는 작가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그의 일상이 기록되어 있으며, 대표 작품들의 탄생 비화도 함께 읽을 수 있다. 그는 여러 지인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문학적 고뇌에 휩싸이기도 하고, 애정을 갈구하고, 문학계에 절망하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패전 후 일본의 상황과 자신의 빈곤한 처지를 자조하며 자기 환멸을 느끼는 그의 모습은 일찍이 작품 속 인물에게서 익히 본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실격자’나 ‘멸망의 백성’이라 내뱉으면서도 내면으로는 삶의 집념과 창작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그 쓸쓸하고도 외로운 고투가 서한 곳곳에 담겨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이에게는 시를 쓸 권리가 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소설가이자 고향 친구인 곤 칸이치, 당시 문단에서 주목받던 작가 이부세 마스지,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 여러 문학인 또는 출판인과 서한을 주고받았다. 아쿠타가와 상을 받지 못해 좌절하는 편지부터 차기작을 기획하는 편지까지, 그의 문학이 누구에게 영향을 받아 어떻게 이뤄졌는지 엿볼 수 있다.
전후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깊어진 그의 문학적 통찰은 여러 대작을 탄생시켜 일본 근대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문학으로, 쓰는 행위로 삶의 의지를 다졌던 다자이 오사무. 그의 책을 읽으려 한다면, 이 서한집을 곁에 두시기를 권한다. 이 서한집이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되어줄 것이다.


시리즈 소개
‘상응相應’

우리가 마주하는 작가의 작품은 정제된 정신의 결과물이다. 책을 만드는 과정처럼, 저술은 기획과 집필, 편집을 통해 가다듬어져 하나의 전체를 이루어 나간다. 완결성을 갖는 한 정신의 산물은 우리에게 지적인 희열을 주기도 하고, 그 탁월한 문체에 우리는 매료되기도 한다. 이러한 작품은 공통의 감각을 가진, 정해지지 않은 독자를 향한다. 하지만 하나의 문장이 되기 위한 생각, 미처 한 권의 책이 되지 못한 글은 어디에 있을까.

편지는 자신에서 출발하여 유일한, 적어도 제한된 독자를 향한 글이다. 또한 수신인의 답장을 요구하고 이내 자신의 반응을 담는 과정을 통해, 과제를 부여하고 생산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지는 크로키나 데생처럼 한 정신의 밑그림을 좇을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하며 그가 마주한 다양한 정서의 흔적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정해진 수신인을 보다 첨예한 논쟁의 장으로 이끌기도 하며, 자신의 문체를 조탁하고 방법론을 시험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읻다의 ‘상응相應’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해명과 주석, 자신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맥락에 대한 평가, 작가가 타인에게 토로하는 감정 등을 담아 주저로만 익숙한 작가와 사상가의 사유의 궤적을 좇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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