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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음에 둔 것이 무엇인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새로운 세기의 시작 돌아온 사람들과 떠난 사람들 |
Joshua Fe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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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날마다 지겨웠다. 우리의 권태는 주욱 계속됐다. 집단적 권태. 그건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절대 죽지 않을 테니까. --- p.11
우리는 하나같이 내가 회사에 나오지 않으면 회사가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환상, 결코 실현되지 않을 꿈같은 소리일 뿐이다. --- p.61 우울증이 극심해도 사직서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그만둔다고 하면 믿을 수가 없었다. “래프팅 강사가 되려고 해” “아마추어 밴드를 결성하려고”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그들은 다른 별에 사는 사람 같았다. 그런 대담무쌍함은 어디서 나올까? 자동차 할부금은 어쩌려고? 우리는 마지막 날 이별주를 마시면서 부러움을 감추며, 동시에 우리에게는 무분별한 쇼핑을 할 수 있는 자유와 사치가 남아 있음을 애써 기억하며 우리의 처지를 위로했다. --- p.75 우리에겐 할 일이 있었고 책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일이 전부였다. 우리는 가족이 전부라고, 하느님이 전부라고, 일요일이면 축구를 보러 다니는 것이 전부라고, 여자들과 쇼핑을 하거나 토요일 밤 독한 술을 마시는 것이 전부라고, 사랑이 전부라고, 섹스가 전부라고, 은퇴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백일몽은 그만. 청구서가 밀려들고 정리해고가 진행 중인 오후 두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일이었다. --- p.218 어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을 결코 잊지 못하고, 몇 명은 모두를 기억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로 잊혀졌다. 그것이 최선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잊어주길 원한 사람도 있었을까? 우리는 그곳에 여러 해를 바쳤고, 유명해진다는 생각으로 일했음, 마음속에 우리 모두가 기억되리라 믿어야 했다. 하지만 누군들 악취미나 구취로 기억되기를 원하겠는가? 그런데도, 완벽한 무개성으로 잊혀져버리기보다는 그런 것으로라도 기억되는 편이 나았던 것이다. 잘못을 눈감아주는 것은 선물이지만, 망각하는 것은 테러였다. --- p.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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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히 유감이지만, 당신을 해고시켜야 합니다”
2007 내셔널 북어워드 최종 후보작 뉴욕 타임스·아마존 2007 올해의 베스트셀러 선정 2001년, 20세기 미국을 급격한 경제대국으로 이끌었던 닷컴버블이 가라앉으면서, 미국은 대량 해고와 실직의 매서운 바람 앞에 서게 된다. 시카고의 한 광고회사. 그들의 일상은 평범하다. 그 시절 광고회사는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하며 닷컴버블을 더욱 확산시키는 온상지였다. 이 회사 직원들은 자신들이 해고와 실직이라는 철퇴를 맞게 되리라고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그들은 매일 출근해서 회사 동료들과 그렇고 그런 스캔들 이야기, 동료들에 관한 험담, 거짓 소문 등을 입에 올리면서 적당히 시간을 죽이고, 적당히 일을 하면서 어려운 줄 모르고 매일을 살아간다. 그런 그들에게 대규모 정리해고라는 칼이 떨어진다. 이제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은 탈출할 수 없는 일상에서 기이한 행동을 시작한다. 이 책의 매력적인 점은 등장인물들 각각이 꾸려가는 회사 생활에 대한 기발하고 웃을 수밖에 없는 묘사에 있다. 세밀하게 묘사된 그들의 행동들은 실제 호모 오피스쿠스인 우리들의 회사 생활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이다. 더 좋은 사무실 비품이 있으면,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내가 차지하려고 한다거나, 사무실의 사소한 낡은 물품 하나가 새로운 사무실에서 얼마나 마술처럼 빛을 발하는 가 등에 대한 묘사는 진정으로 호모 오피스쿠스가 아니라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또 정리해고 시기에 어떻게든 나는 일하고 있음을 보이려고, 연기를 하는 그들의 웃지 못할 행동이라든지, 해고 통지를 받고 어떻게든 잘리지 않으려고 자존심은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고 매달리는 불쌍한 모습, 얄미운 직장 동료를 골탕 먹이는 모습이나, 미운 직장 상사에게 소심하게 복수하는 모습 등. 껄끄러울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는 오히려 너무나 사실적이기에 우리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 톰은 정리해고 당했다는 소식을 듣더니 사무실 창문에다 자기 컴퓨터를 던져버리려고 했다. 톰은 창문에다 컴퓨터를 던져버리고 싶긴 했지만, 유리창이 깨져서 컴퓨터가 길거리에 떨어진다는 확신이 설 때에만 그럴 생각이었다. 유리창이 깨지지 않으면 낭패일 테니까. 유리가 깨지지 않으면, 사람들이 톰은 뒤집어엎는 것도 제대로 못했다고 떠들어 댈 것이다. 그는 그 나쁜 놈들에게 그런 만족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톰은 컴퓨터 주변 기기를 떼어내던 일손을 멈추고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뭐라도 하긴 해야지.”(p.26) ♣ 사무실 코디네이터는 팔짱을 끼고 문간에 기대어 서서 내 책장을 훑어보는 거야. ‘이거 톰의 책장이에요?’ ‘아뇨, 톰의 것이 아니고 내 거예요.’ ‘흠, 누군가 톰의 책장을 사무실에서 가져갔거든요. 그래서 내가 찾아다 놓아야 해요.’ 톰이 잘린 지 하루나 되었나?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그 여자는 내 방으로 와서는 뭘 훔쳐갔냐고 묻는 거야. 그러더니 또 묻더라. ‘이거 톰의 의자인가요?’ 내 의자를 보고 말이야. 사실 책장은 톰의 것이었어. 그가 해고됐을 때 내 사무실에 갖다 놨거든. 하지만 의자는 절대 톰의 것이 아니었다구. 내 의자였다니까! ‘이거 내 의자예요. 내 거라구요.’ 그러니까 그 여자가 다가오더니 의자를 가리키며 이러는 거야. ‘일련번호를 봐도 되겠어요?’ 그걸 누가 알았겠어? 일련번호라는 게 있다는 걸 누군들 알았겠냐고? 세상에 그러니까, 일련번호라는 게 있더라고. 물건마다 뒤에다 일련번호를 붙여 놔. 그렇게 해서 누구한테 뭐가 있고 어느 사무실에 있는지 파악하는 거였어. 그거 혹시 알고 있었어?(pp.41-42) ♣ 벌써 해고당한 크리스가 그 회의 자리에 함께 앉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도 없이, 회의 문서가 모두에게 돌아갔다. 크리스도 회의 자료를 받았다. 정말로, 이제 직원도 아니면서 회의 내내 함께 앉아 있을 생각이었을까? 린은 재킷을 벗더니 의자에 걸쳐놓고 말했다. “좋아요, 이 장례식을 시작해봅시다.” 린은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우리가 페이지를 넘기자, 크리스도 페이지를 넘겼다. 다른 일에는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린이 앉아서 자료를 읽고 있었고, 크리스가 같이 앉아서 자료를 읽고 있었다. 그 둘은 방금 자르고, 잘린 사이인데도 둘 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같이 회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린이 그를 못 본 것일까?(p.62) 내가 회사에 나오지 않으면 회사가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환상…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일 뿐. 거대 도시, 고층 빌딩, 조그마한 사무실, 책상 한 자리 차지하고 살아가는 한없이 약하고 작은 사람들. 그 거대하고 잔인한 그물에 포획된 채 살고자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모습은―비록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로 유치해 보이기는 쿇지만―참 약하면서도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찌질하지만 왠지 미워할 수 없는 연민이 느껴지는 바로 당신과 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조슈아 페리스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미국 문단과 각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2008년 미국 내셔널 북어워드 최종 후보작에 오른다. ‘21세기 카프카의 탄생’이라는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동시에 문학성과 대중성의 균형을 이룬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소설은 대도시의 고층빌딩과 사무실 그리고 정리해고라는 사방이 봉쇄되어 탈출할 수 없는, 실존적 불안 앞에 놓인 사람들의 심리와 그 심리가 표출되는 그들의 행동에 대한 예리한 묘사, 평범하고 무던해 보이는 일상 속에 녹아 있는 관계의 날카로운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이 스펙터클한 사건의 진행 없이, 그리고 세상의 즐거운 단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눈과 생각을 사로잡는 이유는, 일상 속에 갇혀 있을 때는 그 일상에서 탈출을 꿈꾸지만, 그 일상의 기반이 무너지면 한없이 흔들리고 힘들어하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모습은 어쩌면 마주하기 껄끄러운, 너무 적나라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없이 약하지만 동시에 강한 생명력을 지닌 호모 오피스쿠스들이기에, 그들이 사는 블랙 코미디 같은 세상의 모습을 보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