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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책소개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추석전야(秋夕前夜)
하수도공사(下水道工事)
홍수전후(洪水前後)
호박

엮은이에 대해

저자 소개 1

김경순, 소영

본명은 김경순. 호는 소영. 1904년 4월 16일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유랑의 소녀」를 썼고, 문학을 좋아하며 성장했다. 1915년 목포 정명여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1918년 숙명여고보를 졸업했다. 1925년 [학생계]에 시 「백합화」를 같은 해 [조선문단]에 단편 「추석 전야」를 이광수의 추천으로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김명순, 나혜석의 뒤를 잇는 신여성 2기 작가의 대명사가 되었다. 1926년에 일본에 건너가 니혼 여대 영문학부에서 수학했다. 독서회에 참여하고 근우회 동경지부 창립대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귀국해서 자신의
본명은 김경순. 호는 소영. 1904년 4월 16일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유랑의 소녀」를 썼고, 문학을 좋아하며 성장했다. 1915년 목포 정명여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1918년 숙명여고보를 졸업했다. 1925년 [학생계]에 시 「백합화」를 같은 해 [조선문단]에 단편 「추석 전야」를 이광수의 추천으로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김명순, 나혜석의 뒤를 잇는 신여성 2기 작가의 대명사가 되었다. 1926년에 일본에 건너가 니혼 여대 영문학부에서 수학했다. 독서회에 참여하고 근우회 동경지부 창립대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귀국해서 자신의 고향이자 조선의 대표적인 근대 도시인 목포를 배경으로 식민지 민중이 겪는 빈곤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한편 민중의 고통을 팔자나 운명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상호연대를 강조했다. 1931년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백화』를 연재하면서 작가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얻었다. 1930년대에 발표한 「하수도공사」, 「논 갈 때」, 「한귀」, 「고향 없는 사람들」 등의 단편은 일제의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농민의 비참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장편 17편, 중편 및 단편 66편을 발표해 한국 문학사에서 여성 작가의 길을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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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박연옥
1971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소설)을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한없이 느린 걸음으로 비평 활동 중이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2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99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62281910

출판사 리뷰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으로 출간하는 한국 근현대문학은 작품이 처음 발표된 대로 현대에 살려내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초판본을 그대로 싣고자 했습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빈궁의 형상화, 동반자 작가 박화성

박화성은 1930년대 강경애와 더불어 ‘카프의 조직원은 아니지만 그 이념에 동조하는 작가’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으로 규정되는 동반자 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25년 「조선문단」에 이광수의 추천으로 「추석전야」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정식 등단하게 되지만, 이후 동경 유학과 결혼, 출산을 겪으며 7년이라는 공백기간을 갖게 되었다. 때문에 그가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1930년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프로문학의 영향력 아래, 지식인 전위의 출현과 낙관적 전망의 획득이라는 다소 도식화된 작품을 창작했다. 그러나 객관적 정세가 악화되고 카프가 해산된 1930년대 후반에는 객관 현실의 구체적 형상화로 전망이 부재한 식민지 조선의 빈궁(貧窮)을 탁월하게 그려냄으로써 박화성 특유의 소설 미학을 제시해 주었다.

식민지 경제의 모순된 현실 : 「추석전야」와 「하수도공사」
그의 등단작 「추석전야」는 ‘현실폭로의 비애’가 특징이라 할 신경향파의 문학에 속하는 작품으로, 식민지 조선의 경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착취당하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과 분노를 형상화하고 있다. 영신은 초막과 같은 빈민굴에서 살고 있는 방직공장 여공이다. 그녀는 여학교를 다니다 돈이 없어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던 여성으로 궁핍한 현재의 삶을 계급의식의 관점에서 인식할 줄 아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소설은 방직공장의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어깨를 부상당한 영신의 고민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일본인 공장 감독이 어린 여공을 성적으로 희롱하는 데 분개해 항의하다가 기계의 북이 튀어나와 어깨에 부상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고통도 잠깐, 집으로 돌아가는 영신의 또 다른 고민은 사흘 앞으로 다가온 추석이다. 추석빔으로 아이들에게 댕기와 대님을 그리고 시어머니에게는 당목 적삼을 마련해주고 싶지만, 남편 없이 가족을 부양하는 영신의 수중에는 돈이 없다. 영신은 어깨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밤새워 삯바느질해 번 돈과, 공장에서 십일급(十日給)의 임금으로 받은 돈을 합해 추석을 지내려 하지만, 인색한 땅주인 영감이 찾아와 밀린 땅세를 모두 받아감으로써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비정한 현실에 영신은 땅주인이 거스름돈으로 두고 간 은화 오십 전을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돈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표출한다.
「추석전야」는 여성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식민지 현실과 만나는 여성 노동자를 창조하였다는 점과, 식민지 조선의 왜곡된 경제의 배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점, 그리고 금전에 대한 인식이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차원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문학적 평가를 받고 있다. 소설의 무대인 목포의 시가지를 굽어보며, 남쪽으로는 일인(日人)의 기와집이 즐비하고 동북쪽으로는 서양인의 집과 학교와 예배당이 솟아 있는 것과 대비해, 유달산 밑 초막으로 뒤덮인 빈민굴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는 장면에서는 작가의 예리한 현실 분석 능력이 압축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특히 ‘돈’에 대한 작가의 현실 감각은 매우 구체적인데, 살림살이와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의 체험이 구체적인 실감과 공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궁의 형상화에 있어서 남성 작가를 능가하는 탁월함을 보여준 강경애의 「소금」, 백신애의 「적빈」과 더불어 박화성의 「추석전야」는 여성주의 문학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다.
「추석전야」가 분노의 표출에 머물고 있다면, 작가 스스로 자신의 진정한 처녀작으로 꼽고 있는 「하수도공사」는 일보 진전된 계급의식과 투쟁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수도공사」는 실업자 구제를 명목으로 목포에서 벌여진 실제 하수도공사에서 소재를 취택해 일제의 조선인 착취의 현실을 현장감 있게 그려내고 있는 문제작이다. 공사를 청부 맡은 일본인 ‘중정’은 공사비의 4할을 먼저 챙긴 뒤 나머지 돈으로 공사를 진행하며 교묘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착복한다. 노동자들은 정해진 노임보다 적은 돈을 받고도 일을 하게 되지만, 깎인 임금마저 석 달 이상 밀리게 되자 경찰서로 몰려가 집단행동을 벌인다. 여기서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노동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지도적 인물로 청년 서동권이 등장한다.
동권은 상업학교를 다니다가 ‘의외의’ 검거 사건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자 동경으로 건너가 사회주의사상을 공부하고 돌아온 인물이다. 동경으로 건너갔지만 돈이 없어서 진학하지 못하고 있던 그는 ‘정’의 지떵로 사회주의를 접하고 사회주의 서적 연구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동권은 정이 귀국할 때 함께 돌아와 하수도공사장의 노동자가 되는데, 노동자들의 담합과 집단행동을 주도해 체불 임금을 받아내는 승리를 이끌어내게 된다. 그러나 동권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정치적 문제로 정이 검거되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자신의 정치의식이 정의 신뢰를 받을 만큼 진보적이지 못하다는 각성과 함께 진정한 동지로 거듭나겠다는 새로운 결심을 한다. 동권의 이러한 결심에는 노동운동이 경제적 투쟁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정치적 투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당대의 정세적 의미가 내포되고 있다. 동권과 같은 지도적 인물 유형은 박화성의 또 다른 작품 「비탈」, 「두 승객과 가방」, 「논 갈 때」, 「헐어진 청년회관」 등에서 계속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하수도공사」의 소설적 재미와 감동은 ‘문제적 개인’인 동권의 형상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동권의 계급적 각성과 성장은 전위적 인물의 등장과 낙관적 전망의 제출이라는 프로문학의 도식화된 전형을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보다는 노동자들이 경찰서로 몰려가서 밀린 임금을 달라고 투쟁하는 장면이나 돈을 받기 위해 노동자들이 아우성치는 장면을 생생한 묘사로 살려내는 작가의 힘 있는 문체와 동권과 용희와 연애 문제가 소설을 보다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김명순, 나혜석, 김원주 같은 1920년대 여성 작가들이 자유연애와 여성의 인권 문제를 문학작품 속에서 담론화하고 있다면, 1930년대 여성 작가 박화성은 추상적 자유연애의 대안으로 이념적 동지애를 제시하고 있어 주목을 요한다. 동권의 오랜 고향 친구인 용희는 동권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러한 이유로 그를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래가 유망한 부잣집 대학생과의 결혼을 거절하고 동권과 결혼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동권은 용희에게 결혼으로 맺어지는 남녀의 사랑이 아니라 새로운 애정관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념적 동지애의 추구다. 동권과 용희 사이에 싹트는 연애감정은 노동쟁의와 의식의 각성으로 이어지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이야기 전개에 서사적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권의 낙관적 전망과 역사의식 또한 용희와의 이념적 동지애를 통해 비로소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산 생활감정’으로 빚어내는 ‘빈궁의 참맛’: 「홍수전후」와 「호박」
1930년대 후반은 일제의 파시즘 강화로 진보적 이념이 전반적인 침체기로 들어선 시기다. 1935년 카프가 해산되었으며, 대부분의 작가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세태소설과 내성(內省)소설로 침잠해 들어갔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박화성은 자신의 창작방법의 한계를 깨닫고 새로운 모색에 들어갔다. 1935년 1월 1일 「조선일보」에 실린 다음 글에서는 그의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현금의 소위 빈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원인은 그 수법이 미숙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빈궁을 묘사하는 작가 자신이 빈궁의 참맛을 모르고 표현하는 까닭이다. 아무리 높은 의식수준을 가진 작가라도 산 생활감정이 없이는 그의 작품을 잃게 된다. 나의 작품이나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힘찬 그 무엇을 얻지 못하는 것은 결국에 있어 작가의 생활과 창작행동에 모순이 있는 까닭이다. (중략) 적어도 박력이 있는 작품을 낳으려면 생활과 창작방법과의 어떤 방법으로든지 조화 통일이 되어야 한다.

이 시기 박화성의 문학적 고투는 ‘산 생활감정’으로 빚어내는 ‘빈궁의 참맛’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홍수전후」, 「한귀」, 「고향 없는 사람들」 등 자연재해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품들이 이러한 문학적 고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홍수전후」는 계급적 각성을 한 청년 윤성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을 지도하는 김 선생 등 이른바 지식인 전위이라 할 수 있는 지도적 인물 유형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이들은 주인공의 의식 변화를 돕는 조력자의 역할에 맞게 소설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다. 그 대신 윤성의 아버지, 봉건적 세계관을 가진 소작농 명칠과 35년 만에 닥친 홍수의 재난이 서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명칠은 영산강변에서 배 두 척을 가지고 어부 노릇도 하는 성실한 소작인이다. 사람은 천리(天理)를 거스를 수 없다는 관습적 인식에 얽매인 명칠은 늘 지주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아들 윤성이 못마땅하다. 봉건적 사고를 가진 명칠은 목숨은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며 홍수가 나도 두 척의 배에만 의지한 채 집 밖으로 피신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비는 더욱 거세지고 영산강의 둑마저 터지게 되면서 명칠의 가족은 두 척의 배는 물론 딸 쌀례까지 잃는 처참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 명칠은 아들과 몰려다니며 못된 짓을 한다고 생각했던 윤성의 친구들과 김 선생의 호의를 받게 되고 자신의 고루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를 갖게 된다. 「홍수전후」에서 눈에 띄는 면모는 작가가 가난한 소작농의 생활에 밀착해서 그들이 겪게 되는 자연재해의 피해를 충실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폭우와 대결하는 명칠네 가족의 눈물겨운 사투는 그들의 가난과 처참한 현실을 극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홍수에 이어 가뭄까지 겹친 「한귀」의 처참함은 극에 달해 있는데, 작가는 이것을 무지한 소작농 아내인 성섭의 처를 통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착하고 선량한 소작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성섭이 명칠과 같이 자각하지 못한 인물 유형에 속한다면, 성섭의 처는 배운 바는 없지만 치열한 현실 속에서 모순을 깨닫고 분노와 저항을 표출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고향 없는 사람들」은 앞선 두 작품의 최종편이라 부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토지 수탈 정책의 파행적 운영에 따라 대다수 소작농은 빈곤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에는 땅을 버리고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일용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고향 없는 사람들」의 삼룡의 가족은 그들의 팍팍한 삶을 대변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평안남도 강서농장으로 옮겨온 삼룡의 가족은 그곳에서의 생활 또한 고향에서의 빈곤한 삶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곧 깨닫게 된다. 아니 오히려 고통이 더욱 가중되어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귀향 희망으로 살아가는 삼룡의 가족에게 고향 친구 강판옥에게서 편지 한 장이 도착하는데, 고향에 남았던 사람들 또한 살기가 곤궁해져 함경북도 고무산 시멘트 공장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삼룡은 잠시 망연자실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귀향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이 발 딛고 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강인한 의지력을 가다듬는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현실과 맞서려는 삼룡의 모습에는 추상적 이념으로서의 낙관적 전망이 아니라 끈질긴 생존의 의지가 발하는 강한 생명력이 투영되어 있다.
1937년 「여성」에 실린 「호박」을 끝으로 박화성은 한글로 소설 창작이 어려워지자 일시적인 절필에 들어갔다. 박화성의 창작은 해방과 함께 다시 시작되는데, 동반자 작가로서의 그의 문학은 「호박」으로 일단락지어진다고 볼 수 있다.
「호박」은 「고향 없는 사람들」에서 삼룡의 친구 강판옥이 고무산 시멘트 공장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와 동일한 소재를 음전과 윤수 두 청춘남녀의 아기자기한 사랑 이야기로 바꾸어 명랑하게 그려내고 있다. 음전의 약혼자 윤수는 가뭄으로 대흉년이 들자, 결혼을 뒤로 미루고 시멘트 공장 노동자가 되어 고향을 떠나게 된다. 홀로 남은 음전은 사이좋게 잘 자란 호박 두 덩이를 자신과 윤수인 듯 여기며 윤수가 돌아올 때까지 잘 지키겠다는 마음속 다짐을 한다. 음전은 식구들에게 호박이 눈에 띌세라 이리저리 감춰보지만 부족한 양식 대신 호박죽을 쑤어 먹으려는 어머니의 성화에 호박 한 덩이를 내놓고 만다. 음전의 바람과 달리 남은 호박 한 덩이마저 어머니에게 발각이 되고 마는데, 추위에 고생하는 윤수의 속셔츠를 장만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음전은 어머니에게 부족한 돈을 받는 대신 고이 간직하고 있던 호박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호박을 감추기 위한 궁리와 속셔츠를 사기 위해 계산에 몰두해 있는 음전의 모습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명랑하게 형상화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혹독한 빈곤의 실상이 폭로되고 있다. 지주에게 갖다 바칠 노적가리를 수북하게 쌓아놓고, 정작 농사를 짓은 소작인들은 죽을 쑤어먹는 부조리함을 작가는 음전의 동생 종섭의 “어째 우리는 항상 죽만 먹는다우?” 하는 철없는 질문으로 능청스럽게 풀어놓는다. 또 윤수의 외할머니가 받은 편지에서 고무산 시멘트 공장 노동자들의 주택난과 열악한 생활환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각박한 살림살이에 부대끼면서도 열여덟 살 ‘큰 애기’ 음전의 젊음은 싱그럽다. 처절한 현실을 유머러스하고 가볍게 넘겨낼 수 있는 음전의 건강한 웃음 속에는 암울한 현실을 담담히 감당해 내려는 작가의 옹골찬 의지가 내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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