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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부
제2부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2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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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이다. 반 독자들에게는 언젠가는 읽어야 할 작가, 평론가들에게는 가장 문제적인 작가, 문인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작가 제1순위로 꼽히는, 그 영향력에 있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작가이다. 풀 네임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0월 30일(신력으로는 11월 11일) 군의관이었던 미하일 안드레예비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모스크바 빈민 병원에서 일했으며, 잔인할 정도로 엄격한 성격의 소지주였다. 종교적이고 온화한 성격의 어머니와는 달리, 잔혹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도스토옙스키에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이다. 반 독자들에게는 언젠가는 읽어야 할 작가, 평론가들에게는 가장 문제적인 작가, 문인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작가 제1순위로 꼽히는, 그 영향력에 있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작가이다. 풀 네임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10월 30일(신력으로는 11월 11일) 군의관이었던 미하일 안드레예비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모스크바 빈민 병원에서 일했으며, 잔인할 정도로 엄격한 성격의 소지주였다. 종교적이고 온화한 성격의 어머니와는 달리, 잔혹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도스토옙스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그의 작품 속 아버지들은 처음부터 부재하거나, 무능하거나, 잔학하여 자신의 자식들을 길거리로 내몰아 몸을 팔게 하거나, 자식들에게 살해당하거나, 아니면 그 자신이 자녀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심지어 성적인 폭군으로 등장하거나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나고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그의 아버지가 의사로 일하던 모스크바 빈민 병원이었는데, 그 병원의 많은 환자들은 모두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으며, 어린 도스토옙스키는 이들과 대화하기를 즐겼다. 그때의 경험과 배움은 평생의 문학적 자산이 되었다. 가난의 심리학의 대가가 될 씨앗이 여기서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작가 스스로도 평생을 가난의 굴레에서 허덕였다. 그는 돈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결코 “현실적”이지 못했던 사람이고, 자신이 감당할 능력이 있건 없건 간에 떠넘겨지는 짐을 사양할 줄 몰랐다. 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를 졸업했지만 문학의 길을 택한 뒤, 첫 작품 『가난한 사람들』(1846)로 당시 러시아 문단의 총아가 되었다. 당시 비평계의 거물이던 벨린스키에게 ‘새로운 고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서 『분신』, 『주부』, 『백야』, 『네트치카 네즈바노바』 등을 집필하면서 혁명가들과 교루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1846년)에는 작가의 가난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가난이 인간 심리와 삶에 끼치는 영향들, 그리고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에 대한 강한 동정심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소설은 당대 최고의 문학 비평가 베를린스키로부터 “러시아 최초의 사회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런 젊은 날의 도스토옙스키에게 형제애 속에서 모두가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르치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인 페트라솁스키 서클은 목마른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반가운 만남이었다. 하지만 차르 니콜라이 1세의 반동 정치하에서는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뿐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등에 대해 토론하는 것, 금지 서적을 읽는 것들만으로도 총살감이었다. 1849년부터 공상적 사회주의의 경향을 띤 페트라셰프스키 모임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 도스토옙스키는 사형은 간신히 면했으나 시베리아로 끌려갔고, 4년간의 감옥 생활과 또 4년간의 유형이 끝난 후, 도스토옙스키의 인간관 및 세계관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1840년대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도스토옙스키는 1860년대 완전히 극우 보수주의자(슬라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유형을 마치고 돌아온 작가는 1861년 러시아의 문화적 정치적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그의 형 미하일과 함께 잡지 [시대(Время)]를 창간했고, 1863년 [시대]지가 정치적 이유로 발행정지 조치를 받게 되어 폐간된다. 이듬해 형 미하일과 함께 두 번째 잡지, 더욱더 극우적이고 슬라브주의적인 잡지 [세기(Эпоха)]를 발간하여, 그 첫 호에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발표한다. 1861년 『학대받은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문단으로 복귀했다. 1866년, 후에 그의 부인이 된 속기사 안나를 고용하여 『노름꾼』과 『죄와 벌』을 속기하게 하여 발표하고, 1868년 그리스도를 닮은 “긍정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그리고자 한 『백치』를, 1872년 『악령』을, 죽기 한 해 전인 1880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모두 [러시아 통보]에 발표했다. 『죄와 벌』은 가난하고 약한 자의 고통과 굴욕을 리얼하게 묘사한 걸작이며, 만년의 미완성 대작인 『카라마조프의 형제』(1880) 또한 당시 러시아 사회의 실상을 여실히 그리면서 종교와 인간의 본질을 헤집는다. 그는 세계 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체호프, 헤밍웨이 같은 작가들부터 니체와 후대의 실존주의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후세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해서 세계문학사 중 가장 위대한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1881년 1월 28일, 폐동맥 파열로 사망했으며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네프스카야 대수도원 묘지에 안치되었다.

러시아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댜예프가 말한 것처럼,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지구상에 러시아인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제대로 접한 독자라면 베르댜예프의 이 말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의 작품을 통해 니체에서 현대의 실존주의로까지 그의 사상적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선과 악, 성(聖)과 속(俗), 과학과 형이상학의 양극단 사이에서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사상가로서 도스또예프스끼는 당대에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회적, 철학적 문제들을 진지하게 제기하고 숙고한다. 이러한 그의 자세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도 변치 않는 삶의 영원한 가치를 전해 준다.

‘넋의 리얼리즘’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정치적·사회적으로 복잡화된 인간의 내면 심리를 그려내며 근대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농노제적 구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들어서는 과도기 러시아의 시대적 모순을 자신의 작품 세계에 투영하면서 20세기의 사상과 문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으로 『지하생활자의 수기』,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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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1월 1일 새해 첫날 태어났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했으며 2녀 1남 중 차녀다. 성장기는 서울에서 보냈다. 한양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노어노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어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을 밟던 중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학교 어배너 섐페인(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대학원 슬라브어문학부에서 석사 학위를, 동 대학원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슬라브어문학부 대학원에서 폴란드 문학을 부전공했다. 박사 학위
1969년 1월 1일 새해 첫날 태어났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했으며 2녀 1남 중 차녀다. 성장기는 서울에서 보냈다. 한양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노어노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어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을 밟던 중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대학교 어배너 섐페인(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대학원 슬라브어문학부에서 석사 학위를, 동 대학원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슬라브어문학부 대학원에서 폴란드 문학을 부전공했다. 박사 학위 논문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나타난 숫자 상징〉이다.
도스토옙스키 연구에 뿌리를 둔 인문학적 시각으로 패션·문화·비즈니스 분야에서 활동했다. 이후 콜롬비아와 협력을 통해 양국 간 문화·경제 교류 사업을 추진한 성과를 인정받아 2024년 콜롬비아 대사관으로부터 감사패와 공로상을 받았다.
2008년부터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비롯해 도스토옙스키 작품 약 20여 권을 번역했고, 2017년부터는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 번역에 착수했다. 『죄와 벌』(2020)을 시작으로 『백치』(2021), 『악령』(2023),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2025)을 차례로 출간했다.
도스토옙스키 4대 장편을 한 사람이 번역한 예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고, 한국에서는 유일무이하다. 독보적인 번역 공로를 인정받아 2026년 푸시킨 메달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푸시킨 메달은 러시아 문화와 언어의 발전 및 보급에 공이 큰 사람에게 러시아 정부에서 수여하는 상이다. 2025년 10월에는 한국인 최초로, 러시아 외교와 문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대표 재단 〈루스키 미르〉 제17차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Instagram @anyakim_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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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8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64067888

책 속으로

●감옥에 들어가던 날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12월의 어느 해 질 녘이었다.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있었고, 죄수들은 일터에서 돌아와 점호를 준비하고 있었다. 콧수염을 기른 하사관이 마침내 내게 이 이상한 집의 문을 열어 주었다. 이 집에서 나는 그 뒤 그토록 기나긴 세월을 지내야만 했고, 실제 체험하지 않고서는 백 번을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느낌들도 참아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를 들어 나의 수감 생활 10년을 통틀어 가장 끔찍한 고통이 바로 단 한 번도, 단 1분도 혼자 있을 수 없다는 데 있을 줄 내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작업장에서는 항상 감시병이 따라붙었고, 집에 돌아오면 200여 명의 동료 죄수들이 있어 단 한 번도, 절대로 혼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민중의 가장 숭고하고 가장 눈에 띄는 선명한 특징은 공정함과 그것에 대한 열렬한 갈망이다. 어디서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또 그것을 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서 무슨 일이든지 앞장서는 수탉과 같은 습성이 우리 민중에게는 없다. 표면에 뒤집어쓴 겉껍질을 벗기고 알맹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일체의 편견을 떨쳐 버리고, 그것을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민중 속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현인들이 민중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자신 있게 말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현인들이야말로 민중에게 배워야 할 것이 아직 많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죄수를 도망가지 못하게 하거나, 적어도 그들이 도망가는 것을 좀 어렵게 하기 위해서, 정말로 그런 이유에서만 사람에게 족쇄를 채우는 것일까? 단언하건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족쇄는 하나의 수치이자, 치욕이며, 육체적 정신적 압박일 뿐이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족쇄는 절대로 그 누구의 도망에도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 아무리 서투르고 손재주 없는 죄수일지라도 족쇄의 이음새를 톱으로 베거나 돌로 내리쳐 순식간에 쉽사리 부술 수가 있다. 족쇄는 정말로 아무것도 예방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만약 족쇄가 기결수에 대한 벌로써만 채워지는 것이라면, 그럼 또다시 묻겠다. 정말로 다 죽어 가는 죄수에게 벌을 줄 필요가 있을까?

●족쇄가 떨어져 나갔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것을 손에 들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찬찬히 바라보고 싶었다. 그것들이 방금 전까지도 내 발에 붙어 있었던가 하고 생각하니 새삼 놀라웠다.
“그럼, 안녕히! 안녕히 가시게들!” 죄수들이 띄엄띄엄, 거칠지만 그러나 뭔가 만족스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안녕히! 자유여, 새로운 삶이여,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이여…. 이 얼마나 눈부시게 빛나는 영광의 순간인가!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도스토옙스키와 “죽음의 집”의 경험
≪가난한 사람들≫로 엄청난 문학적 성공을 거둔 28세의 다소 오만한 젊은 작가는 페트라솁스키 서클에서 당대 인텔리겐차 사이에 유행하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에 대한 이론에 접하게 된다. 그는 푸리에주의, 그리고 공산적 경제 원리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지상에서의 이상 국가 건설 이론에 심취해 전 민중이 하나같이 잘 사는 사회에 대한 꿈과 그들의 이론에 크게 공감한다. 그러나 자유주의 사상과의 이 같은 짧은 놀음은 도스토옙스키로 하여금 저 유명한 가짜 처형극과 시베리아 감옥에서의 4년간의 수감, 시베리아 도시에서의 6년의 유형이란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4년간의 수감 생활은 도스토옙스키에게 그를 둘러싸고 있던 밀수꾼, 화폐 위조자, 어린이 강간범, 부친 살해범, 강도 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는 마주치기 어려운 인간상과 그들이 저지른 거의 모든 형태의 범죄에 대해서 깊이 있게 관찰할 기회를 제공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죄수를 보며 그들의 범죄와 이에 대해 죄수들이 갖는 심리적인 태도, 그리고 그들 하나하나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시베리아 유형 전 도스토옙스키가 갖고 있던 이데올로기는 많은 변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첫째, 작가는 인간 본성의 어둡고 야만적인 면을 발견하게 된다. 시베리아의 감옥은 작가에게 악을, 그것도 추상적인 원리가 아닌, 매일매일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제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악과 대면시켰다. 인간 본성의 심연 속에 있는 선과 악의 카오스와 악마적 요소의 우세를 보고 난 후, 푸리에주의의 인간 본성 이론으로부터 작가가 자신의 신념으로 받아들였던 ‘본성적인 선’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둘째,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것에 대한 작가 자신의 신념에 대한 수정이 가해졌다. 도스토옙스키는 죄수들의 병적으로 야심 있는 성질이 때로는 자아의 이성에 반대되는 행동과 결과를 낳음을 보았고, 인간의 행위는 더 이상 이성으로 예측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 죄수들 간의 힘의 역학 관계에 대한 관찰을 통해, 그는 자신의 이전의 신념, 즉 인류가 어떤 지배자도 피지배자도, 또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이 평등하고 동등한 관계에서 조화로이 살아갈 수 있다는 신념에 대한 명백한 반증들을 발견했다. 죄수들 간의 격렬한 우위 다툼을 목격하고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의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이 발견은 도스토옙스키로 하여금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개인들이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다는 이전의 믿음을 지지할 수 없게 했다.

이렇게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개인적인 불행은 후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천재 작가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경험이 된다. 범죄 심리와 심리 분석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많은 부분이 온갖 형태의 죄수들과 부대끼며 보낸 4년간의 시베리아 유형 생활에 빚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또한 이런 시베리아 경험과 성서 읽기를 통해, 종교 작가로서의 도스토옙스키가 태어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경험한 4년간의 “죽음의 집”의 경험은 물론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벌이요, 고통이었겠으나, 예술적 차원에서는 위대한 작가로 태어나기 위한 산고의 세월이었으며, 철학적 차원에서는 민중과 러시아성에 대한 깊은 깨달음의 기회였고, 종교적 차원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던 어린 양이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으며, 작가가 자신을 죽음을 통해 부활한 나자로와 동일시하게 되었던 대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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