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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책소개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한(恨)의 일생
박명(薄命)
재봉춘(再逢春)
청류벽(淸流壁)
광야(曠野)
핍박(逼迫)
비 오는 져녁
경성 소감(京城小感)

엮은이에 대해

저자 소개 1

玄相允

저자 기당(幾堂) 현상윤은 1893년 평안북도 정주군 남면에서 출생했다. 기당의 부친은 한학자로서 성균관 전적과 승정원 주서를 지냈다고 한다. 기당의 별호인 소성(小星)은 대학생 때 지은 것으로 어린 시절 학문을 통해 접한 진암 현상준과 의암 유인석의 호국정신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2세 때 조혼한 기당은 16세 때 평양 대성학교를 거쳐 1912년 보성중학교를 다니고 1914년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한다. 현상윤은 유학생활 중에 잡지 ≪학지광≫을 편집하고 스스로 필자로 활약했으며 육당 최남선이 경영한 ≪청춘≫에도 수많은 소설과 수필, 시, 논설을 발표했다. 와
저자 기당(幾堂) 현상윤은 1893년 평안북도 정주군 남면에서 출생했다. 기당의 부친은 한학자로서 성균관 전적과 승정원 주서를 지냈다고 한다. 기당의 별호인 소성(小星)은 대학생 때 지은 것으로 어린 시절 학문을 통해 접한 진암 현상준과 의암 유인석의 호국정신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2세 때 조혼한 기당은 16세 때 평양 대성학교를 거쳐 1912년 보성중학교를 다니고 1914년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한다. 현상윤은 유학생활 중에 잡지 ≪학지광≫을 편집하고 스스로 필자로 활약했으며 육당 최남선이 경영한 ≪청춘≫에도 수많은 소설과 수필, 시, 논설을 발표했다.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후 귀국해 중앙 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현상윤은 곧이어 최린과 더불어 3·1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동경 유학생들이 독립운동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은 현상윤은 국내에서 대규모의 시위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절감하고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합을 추진해 전국적 규모의 세력 조직에 앞장서게 된다. 독립운동 후 20여 개월 옥고를 치른 현상윤은 중앙고등보통학교장에 부임하게 된다. 해방 후 경성대학교를 거쳐 보성전문학교장을 맡았던 현상윤은 1946년 고려대학교 교수 겸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다. 현상윤의 학문적 업적은 1949년 출간된 ≪조선유학사≫와 1960년 복간된 ≪조선사상사≫에 나타나는데, 이 저서들은 현상윤이 뛰어난 국학자임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할 수 있다. 1960년 6·25가 일어나자 현상윤은 강제 납북되어 행방이 알려지지 않은 채 이후 타계했다는 소식만 전해진다. 근대 신문학의 선도자이자 뛰어난 국학자로 활동했던 현상윤은 1914년부터 1917년까지 4년 동안 ≪청춘≫과 ≪학지광≫을 통해 여섯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함으로써 근대 단편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였다. 그는 소설뿐만 아니라 수필과 시에 걸쳐 폭넓은 장르의 문학적 글쓰기를 시도함으로써 당대 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현상윤의 다양한 학문적 업적과 문학 활동은 2000년 간행된 ≪기당 현상윤 문집≫(경희대학교 출판국) 과 2008년 간행된 ≪기당 현상윤 전집≫ 전 5권(나남)으로 정리되었다.

현상윤의 다른 상품

역자 : 백지연(白智延)
1970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면서 문학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연구서로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창비, 2001) 공저로 ≪페미니즘 문학비평≫(김경수 편, 프레스21, 2000), ≪20세기 한국소설≫(최원식 외, 창비, 2005) 등이 있다. 현재는 경희대와 성공회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2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69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62282214

출판사 리뷰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으로 출간하는 한국 근현대문학은 작품이 처음 발표된 대로 현대에 살려내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초판본을 그대로 싣고자 했습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습니다.

근대 단편소설의 실험과 그 성과

소성이라는 별호로 <청춘>과 <학지광>에 소설을 발표했던 현상윤은 신채호, 이인직, 양건식, 이광수와 더불어 근대 단편소설의 실험적 형태를 보여준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신교육을 받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이들이 신소설 특유의 계몽적 담론을 벗어나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장면이 그려진다든지 소설에서 드러나는 구어체적 문장과 일상적 묘사를 강화한 대목은 현상윤 소설이 신소설과 차별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현상윤의 소설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이 겪은 내면적 혼란과 궁핍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냈으며, 그러한 맥락에서 그의 소설을 비판적 사실주의의 흐름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논의들도 있다.
돈 때문에 전락하게 되는 지식인의 가슴 아픈 행로와 봉건적 가족관계의 구습으로 고통 받는 선량한 인물의 삶은 현상윤 소설 특유의 비극적 결말로 인해 더욱 강렬한 이야기 구조로 각인된다. 자본주의 시대의 금전만능주의가 가져온 비극을 묘파하는 것에 초점을 둔 현상윤의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는 방식을 탈피하여 현실의 장벽에 죽음으로 맞서는 인물들의 비판적 대응 방식을 보여준다. 특히 여섯 편의 단편 중에서 유일하게 일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핍박>은 당시 소설로서는 획기적인 내면 서술 방식과 지식인의 비판적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청춘>과 <학지광>에 발표된 현상윤의 작품은 <한의 일생>, <박명>, <재봉춘>, <청류벽>, <광야>, <핍박> 등 모두 여섯 편이다. 이 중 <핍박>은 1917년 발표되었지만 실제 창작 연대는 1913년으로 추정되고 있다.<핍박>을 제외한 다섯 편의 소설들은 인물의 일대기를 서술자의 시점으로 관찰하고 평가하는 서술 방식을 취함으로써 신소설과 공통된 부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전의 신소설들이 주창했던 신교육을 통한 개화사상의 전파나 풍속 개량 문제는 현상윤의 소설에서 강한 주제로 피력되지 않는다. 신소설들이 사실 전달자이자 기록자로서의 전지적 작가 시점을 강하게 내세웠다면 현상윤의 소설에서 보이는 서술자의 모습은 허구적 창작자로서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현상윤의 단편소설에서 보이는 비극적인 전락 구조라든지 인물의 패배적 결말은 이런 측면에서 허구적 서사의 강화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현상윤의 소설 중 가장 먼저 발표된 <한의 일생>은 양반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가세가 몰락하여 고아가 된 김춘원의 불행한 삶을 다루고 있다. 양반집 하인으로 몰락한 김춘원은 사랑하던 약혼녀마저 자신의 주인에게 빼앗기고 그 분노를 참지 못하여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는 돈으로 자신의 여인을 유혹한 윤상호와 역시 자신에 대한 신의를 어기고 물질적 가치를 추구한 약혼녀를 살인으로 응징한다. 춘원의 살인은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당시 현실의 풍조에 대응하는 주인공의 좌절과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놈! 나도 너만 한 양반이엿단다. 나도 어마니 배 속으로 나올 ?는 우리 부모에게 우에 업는 사랑을 너만치 바다보앗단다. 그러나 운명의 신이 나로 하야곰 만장절애 알에 굴러 ?러지게 하얏다”라고 춘원이 부르짖는 대목은 비극적 운명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비극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의 일생>에서 드러난 주인공의 참담한 현실 인식과 살인 행위는 윤리와 신의가 내팽개쳐진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내는 동시에 비극적 세계에 대한 주인공의 대응 방식을 나타낸다. 물론 이러한 극단적 결말은 현실에 대한 주인공의 극복 의지를 드러낸다기보다는 운명적 비극에 대한 비관적 사유를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신소설에 볼 수 없었던 비극적 결말이라든지 주인공이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윤리적 내면의식은 근대소설이 강조한 개인의 선택과 의지를 제한적으로나마 드러낸다.
봉건적 가족구조의 폐단으로 인해 비극을 맞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박명>은 해외 유학이라는 소재를 다룬다는 점에서 당대 소설들과 소재를 공유한다. 주인공인 백윤옥은 계모의 구박과 핍박을 견디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자신의 꿈을 펼치고자 하나 불운하게도 장티푸스에 걸려 숨을 거두고 만다. 윤옥의 성공을 기다리며 모진 시집살이를 감당하던 아내 이영옥은 윤옥의 죽음 앞에 절망하여 아이를 남겨놓은 채 자살하고 만다. “에익? 그래 사라선 무엇 하리. 차라리 하로밧비 가치 죽어 남에게 미움 노릇이나 아니 하는 것이…”라는 극단적 결심을 하게 되는 영옥의 ?습은 <한의 일생>에서 드러난 주인공의 비극적 현실 인식을 공유한다. 특징적인 것은 이 소설의 말미에 첨가된 서술자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보시는 여러분은 몬저 이것이 과연 사실이냐 안이냐 하는 말부터 나오리다.”로 시작되는 서술자의 말은 이 소설이 근대적 단편소설로 가는 이행기의 소설임을 환기시킨다. 이는 허구적 창작자로서의 작가라는 인식이 아직 선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이 현실, 즉 사실의 기록이며, 작가는 이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종래의 인식을 부분적으로 반영한다.
역시 일본 유학생 출신 주인공을 내세운 <재봉춘>은 유학을 중지하고 돌아와 계몽운동가로 활약하다가 신교육을 받은 여성과 연애하는 이재춘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재춘은 신여성인 김숙경과 하룻밤의 사랑을 나누는데 이후 뜻하지 않게 이름 모를 사건에 연루되어 5년 동안 제주도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이재춘과의 정분을 잊지 못한 김숙경은 결혼을 채근하는 부모에게 사실을 이야기했다가 쫓겨나 전도사로 떠돌게 된다. 결국 유배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이재춘과 재회한 김숙경은 사랑을 성취하게 되는데 이러한 해피엔딩은 현상윤 소설에서 보기 드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특히 이 작품에서 여성의 정절과 전개, 일편단심과 신의를 중요한 덕목으로 꼽고 있는데 이는 봉건적 가치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봉건적 악습의 폐해를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교적 원리에서의 효와 신의, 정절을 중요한 가치로 설정하는 현상윤 소설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드랍고 경약한 우리 숙향이는 이러케 온 천하에 무얼으로던지 밧구지 못할 ‘고든 절개’를 절망에서 붓들며 유혹에서 붓들며 협박에서 붓들며 연애에서 붓들어 왓더라.”라는 서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에서는 신여성이나 유학파 지식인의 삶 그 자체보다는 숭고한 절개와 영원한 사랑의 덕목이 더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신의를 숭상하는 지조 있는 인간에 대한 형상화는 <광야>에서 효의 가치를 구현하는 자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들이 아버지를 찾는 고된 여정을 기록한 이 소설은 아버지의 축첩 행위와 돈만 밝히는 당숙 때문에 고초를 겪으면서도 끝내 효심을 잃지 않는 의로운 인간 형상을 그리고 있다. 결국 온갖 고생 끝에 아버지를 찾는 감동적 결말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재봉춘>처럼 의로운 인간이 승리하는 낙관적 면모를 드러낸다. 물론 <광야>에서도 주인공의 험난한 인생을 예시하는 운명론적 사고는 “그러나 헤아리지 못할 것은 ?한 어듸?지든지 운명의 힘이여서”라는 서술을 통해 거듭 강조되고 있다.
현실의 고난에 좌초하는 여성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보여주는 <청류벽>은 가부장제 사회가 가하는 억압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파헤쳐 보인다. 양반의 딸인 김영은은 이성도와 결혼 후 외도를 일삼는 남편 때문에 쫓기다시피 친정으로 되돌아오고 다시 다른 남자와 결혼하지만, 창기로 팔려가 옥향이라는 이름을 갖고 고된 삶을 살게 된다. 소설은 전남편인 이성도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편지를 보내오고 이를 참담한 마음으로 읽는 옥향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기방에서 비참한 나날을 보내던 옥향은 전남편의 연락에 희망을 갖지만 돈을 더 내놓지 않으면 풀어줄 수 없다는 포주의 잔인한 처사에 절망하여 끝내는 청류벽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만다. 이 소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의 억압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보다도 선명한 사건 전개 양상을 보인다. 현상윤의 다른 소설들이 다룬 황금만능주의와 봉건적 구습의 문제를 선명하게 예시하면서 이에 절망하고 좌절하여 전락해 가는 비극적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여성의 불행한 삶은 운명적인 것으로 예시되며 이에 좌절한 인물의 대응 방식은 죽음이라는 극단적 행위로 나타난다. “아아 불상한 소녀! 언제는 사람의게 바림을 바다서 원한을 불으젹이다가, 언제는 금전의 구속을 바다서 고통을 맛보든 일생! 엇더케 사람으로 하여곰 밸을 ?게 하는고?!”라는 서술자의 탄식에서도 나오듯이 <청류벽>이 그려내는 것은 억압적 환경 속에서 비극적인 삶의 행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인간존재의 불행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소설들이 전지적 서술자 시점을 통해 사건의 서술과 해석에 개입하는 작가의 모습을 노출했다면 <핍박>은 지식인의 불안한 내면을 가감 없이 토로한 일인칭 서술 방식으로 시선을 끄는 작품이다. <핍박>이 취한 내면적 서술 방식은 근대적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단편소설의 출발로 호평받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수필적 특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미완적 실험작으로 비판받았다. 실제 많은 논평과 수필을 창작한 현상윤의 문필 활동을 참작하면 <핍박>에서 보이는 미분화된 장르 의식은 면밀히 해석할 필요가 있다.
동경 유학생이 바라본 식민지 시대의 경성에 대한 비판적 소감을 담은 수필문 <경성 소감>(<청춘>, 1917. 11)이나 비 오는 저녁의 애상을 그려낸 수필 <비 오는 저녁>(<학지광>, 1915. 5)을 살펴보면 <핍박>의 세계에서 토로한 지식인의 내면 고백이 낯설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성소감>에서 “내 눈에는 경성은 아모리 보아도 속보다 것츨 ?이는 도회가치 보인다. 속에는 개?을 가졋슬지라도 것헤는 비단을 싸려 하는 듯하다”라는 비판이라든지 <비 오는 저녁>에서 “아아, 이십여 세나 되도록 배운 것은 무엇을 배우고 들은 것은 무엇을 들엇드냐?! 한아토 남은 것은 업고 한아토 붓잡은 것은 업다”라고 자탄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핍박>에서 표현된 지식인의 날카로운 자의식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일인칭 현재 시제의 사용, 회상과 기억에 무게를 두는 서술 방식 등의 수필적 특성이 <핍박>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핍박>이 수필적 잔재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소설이 구사하는 구어체 문장과 뚜렷해진 시간과 장소의 묘사 형태는 근대적 단편의 맹아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이 작품이 구사한 고백체 소설의 형태는 이후 1920년대 소설에서 숙련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기존의 연구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핍박>은 문체적으로 ‘?더라’에서 ‘?다’로 이행하는 특징을 보여주며, ‘나’를 화자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상윤 소설의 흐름 속에서도 이 작품은 전지적 시점에서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환된 새로운 특징을 보여준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지식인이 고향의 삶과 마주하면서 느끼게 되는 자의식의 경로를 섬세하게 추적한 이 작품은 계몽적 지식인의 우위를 선언했던 기존의 소설들과 색채를 달리한다. 이 작품은 자기우월적인 지식인이 아니라 현실의 삶과 자신의 지식인적 환상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를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이즘은 병인가 보다. 그러나 무엇으로든지 병일 이유는 업다, 신선한 공기가 맥힘 업시 들어오고 영롱한 광선이 가림 업시 빗치고 새는 울고 ?은 웃고 샘은 맑고 山은 아름다운데― 조곰도 병일 ?닭은 업다”라는 절실한 내면 토로로 시작되는 소설의 서두는 식민지 지식인의 갈등과 고뇌를 거침없이 기록하고 토로한다. 소설은 일제 식민지 체제에서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자리 잡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욕망과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차례로 서술해 간다. 병의 증상이 어디로부터 기인하는지 알지 못해 괴로워하던 주인공은 정주성 내를 돌아다니면서도 마음의 짐을 벗지 못한다. 특히 마을 농부들의 고단한 일과를 보며 주인공이 느끼는 자괴감과 반성적 현실 인식은 식민지 시대의 모순에 대한 세심한 성찰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결국 <핍박>에서 드러난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자기성찰적 고백의 양상은 이전의 신소설들이 보여준 계몽주의적 성격을 완전히 벗어나 근대적 개인의 출현을 알리는 전환기적 면모를 충분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소설이 사실을 기록하는 도구에서 벗어나 허구를 창작하는 개인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예술품임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소설은 농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흔들리는 자의식을 섬세하게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실제적인 고민으로 집중시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한계를 함께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핍박>이 보여준 근대소설적인 면모는 다양하고 풍성한 현실 비판적인 문학의 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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