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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책소개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장창 張暢
왕현모 王玄謨
심경지 沈慶之
범백년 范百年
왕현 王絢
사장 謝莊
서문백 徐文伯
양현보 羊玄保
하승천 何承天
송 유제 宋幼帝
원하 袁?
장융 1 張融
장융 2 張融
제 태조 齊太祖
제 명제 齊明帝
유선 庾詵
소예명 蕭叡明
해숙겸 解叔謙
종원경 宗元卿
광흔 匡昕
증강조 曾康祖
견빈 甄彬
유고지 庾?之
왕검 王儉
주옹 周?
왕융 王融
소요흔 蕭遙欣
공치규 孔稚珪
왕승건 王僧虔
손백예 孫伯?
유회 劉繪
서효사 1 徐孝嗣
서효사 2 徐孝嗣
심문계 沈文季
심소략 沈昭略
호해지 胡諧之
유상 劉祥
이응 李膺
상갱 商?
소침 蕭琛
사조 謝眺
심약 1 沈約
심약 2 沈約
도홍경 陶弘景
소특 蕭特
상동왕 역 湘東王繹
양 무제 梁武帝
서리 徐?
서릉 徐陵
주사 周捨
승중공 僧重公
고상 高爽
진 고조 陳高祖
고윤 高允
장손도생 長孫道生
주엄 朱淹
최광 崔光
육수 陸琇
양대안 楊大眼
유헌지 劉獻之
노경유 盧景裕
목자객 穆子客
곡사풍락 斛斯豊樂
진원강 陳元康
고양 高洋
이해 1 李諧
이해 2 李諧
노사도 1 盧思道
노사도 2 盧思道
왕원경 1 王元景
왕원경 2 王元景
고앙 高?
이원성 李元誠
위언연 魏彦淵
육예 陸乂
형자재 邢子才
왕희 王晞
이도도 李??
서지재 徐之才
북제 후주 北齊後主
이숭 李崇
소실달 蕭悉達
노개 盧愷
사마소난 司馬消難
양개 陽?
설도형 1 薛道衡
설도형 2 薛道衡
육조 陸操
왕발 王勃
나직인 羅織人
왕영연 王?然

옮긴이에 대해

저자 소개

저자 : 양개송
기록이 사서에 전혀 보이지 않으므로 자세한 생애를 알 길이 없다. 다만,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의 기록에 의하면, 북제(北齊)에서 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 벼슬을 지냈고 북평[北平: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노룡현(盧龍縣)] 사람이며 수(隋)나라 초까지도 생존했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역자 : 김장환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 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 지인소설 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와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Visiting Scholar)를 지냈다. 전공 분야는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이다.
그동안 쓰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문학입문≫, ≪중국문언단편소설선≫, ≪중국연극사≫, ≪중국유서개설(中國類書槪說)≫, ≪봉신연의(封神演義)≫(전9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세설신어(世說新語)≫(전3권), ≪고사전(高士傳)≫, ≪태평광기(太平廣記)≫(전21권),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전8권), ≪중국역대필기(中國歷代筆記)≫, ≪유의경(劉義慶)과 세설신어≫, ≪소림(笑林)≫, ≪어림(語林)≫, ≪곽자(郭子)≫, ≪속설(俗說)≫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에 관한 다수의 연구논문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12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62282528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왕소영(汪紹楹) 점교본(點校本) ≪태평광기(太平廣記)≫(北京: 中華書局, 1961)에 수록된 ≪담수(談藪)≫ 88조를 기본으로 하고, ≪감주집(紺珠集)≫(≪사고전서(四庫全書)≫본)과 ≪유설(類說)≫(≪사고전서≫본)에 수록된 ≪담수≫ 3조를 합하여, 총 91조의 고사를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담수談藪)≫는 북제(北齊) 때 양개송(陽?松)이 지은 지인류(志人類) 필기문헌 가운데 하나다.
≪담수≫에 대한 사지(史志)와 서지(書志)의 저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의경의 ≪세설≫, 배영기의 ≪어림≫, 공사상의 ≪어록≫, 양개송의 ≪담수≫와 같은 것을 일러 쇄언이라 한다(若劉義慶≪世說≫·裴榮期≪語林≫·孔思尙≪語錄≫·陽?松≪談藪≫, 此之謂?言者也). ?당 ≪사통(史通)≫ <잡술(雜述)>
≪담수≫ 8권, 양송개 찬(≪談藪≫八卷, 陽松?撰). ?송 ≪숭문총목(崇文總目)≫ 권27 <소설류(小說類)>
≪담수≫ 2권, 북제 비서성정자 북평 사람 양개송 찬. 내용은 남북을 종합하고 시기는 8대를 아울렀으며, 수나라 개황 연간에 기술한 것이다(≪談藪≫二卷, 北齊秘書省正字北平陽?松撰. 事綜南北, 時更八代, 隋開皇中所述也). ?송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 권7 <전기류(傳記類)>
양송개 ≪팔대담수≫ 2권(陽松?≪八代談藪≫二卷). ?≪송사(宋史)≫ <예문지(藝文志)·자부소설가류(子部小說家類)>

이상의 저록을 보면 서명과 권수와 작자가 모두 일치하지 않는다. 한편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자부소설가류>에는 “≪해이≫ 2권, 양송분 찬(≪解?≫二卷, 陽松?撰)”이라 하여 또 다른 이름이 있는데 ≪담수≫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태평광기(太平廣記)≫ 권173에 인용된 ≪담수≫의 <양개(陽?)> 조에서는 ‘개(?)’라는 이름을 가지고 문자 유희를 즐기는 고사가 실려 있는데, 아마도 같은 사람인 것으로 보이지만 거기에는 ‘송(松)’ 자가 빠져 있다. 이에 대해 청(淸) 요진종(姚振宗)은 ≪수서경적지고증(隋書經籍志考證)≫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생각건대, 양개송(陽?松)은 틀림없이 양휴지(陽休之)의 일족이며 북평(北平) 무종(無終) 사람이다. 또는 ‘송개(松?)’라고도 하고 또는 ‘송분(松?)’이라고도 하는데, ≪당지(唐志)≫ <목록류(目錄類)>를 보면 ‘양송진(陽松珍)의 ≪사목(史目)≫ 3권’이라 하여 또 ‘송진(松珍)’이라 되어 있다. 이제 ≪사통(史通)≫과 진록[陳錄: 진진손(陳振孫)의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에 의거하여 바로잡는다. 양 ≪당지≫에는 ≪해이(解?)≫가 들어 있지 않으며 또한 ≪담수≫도 없다. ≪사통≫에서는 ≪담수≫를 소설의 쇄언이라 여겼으며 진씨[陳氏: 진진손(陳振孫)]는 사부(史部)에 열입(列入)했다. 반면에 ≪숭문총목≫과 ≪송지(宋志)≫에서는 모두 소설가에 열입하여 본지[本志: ≪수지(隋志)≫]의 분류와 부합하므로 ≪해이≫가 바로 ≪담수≫의 다른 명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담수≫가 본지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按, 陽?松當是陽休之之族人, 北平無終人. 或作松?, 或作松?. ≪唐志≫ <目錄類>有楊松珍≪史目≫三卷, 則又作松珍. 今依≪史通≫及陳錄?正. 兩≪唐志≫無≪解?≫, 幷無≪談藪≫. ≪史通≫以≪談藪≫爲小說之?言, 陳氏列之史部, 而≪崇文總目≫及≪宋志≫皆入小說家, 與本志部居合, 知≪解?≫卽≪談藪≫之異名, 故≪談藪≫亦不見于本志也.

이상에서 요진종은 ≪담수≫의 작자명을 ≪사통≫과 ≪직재서록해제≫에 근거하여 ‘양개송’으로 정하고 아울러 ≪담수≫가 ≪해이≫의 다른 명칭이라고 주장했다. ≪수서≫ <경적지>에 저록되어 있는 ≪해이≫의 권수와 ≪직재서록해제≫와 ≪송사≫ <예문지>에 저록되어 있는 ≪담수≫의 권수가 일치하고 두 책의 작자명도 비슷한 것으로 보아 그럴 수도 있겠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하므로 단정할 수는 없다. 또한 ≪해이≫의 유문(遺文)이 한 조도 남아 있지 않아서 내용상 서로 대조해 볼 수도 없는 실정이다.
≪담수≫는 송원대(宋元代)에 망실된 것으로 보인다. 그 집본(輯本)으로는 ≪유설(類說)≫본(총 5조)과 ≪감주집(紺珠集)≫본(총 4조)이 있으며, 특히 ≪태평광기≫에 무려 88조가 인용되어 있다. 이 중 ≪유설≫본은 4조가 ≪태평광기≫본과 중복되고 1조가 ≪감주집≫본과 중복된다. ≪감주집≫본은 1조가 ≪태평광기≫본과 중복되고, 1조가 ≪유설≫본과 중복되며, 나머지 2조는 ≪감주집≫에만 집록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담수≫의 고사는 총 91조가 된다. 한편 이 91조 가운데 당나라 때의 일이 기록된 3조는 아마도 후대 사람이 찬입(竄入)한 것으로 보인다.
작자 양개송은 그에 관한 기록이 사서에 전혀 보이지 않으므로 자세한 생애를 알 길이 없다. 다만 ≪직재서록해제≫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북제(北齊)에서 비서성정자(秘書省正字) 벼슬을 지냈고 북평(北平: 지금의 하북성 노룡현) 사람이며 수(隋)나라 초까지도 생존했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담수≫의 내용 특성과 시간적 범위에 대해서는 위의 저록 중 ≪사통≫과 ≪직재서록해제≫에서 언급했듯이 ≪어림≫·≪세설신어≫와 같은 성격으로서 남북조를 포함한 8대 문사들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문을 살펴보면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역사상 실존했던 사람들이며 그 내용도 소화(笑話)만을 전문적으로 수록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사실상 ≪세설신어≫와 같은 유(類)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루쉰(魯迅)도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에서 ≪담수≫를 ‘≪세설≫의 부류’라고 했다.
≪태평광기≫에 수록되어 있는 ≪담수≫의 유문 88조 중에서 몇 조의 고사를 인용하여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북제(北齊)의 고조[高祖: 신무제(神武帝) 고환(高歡)]가 한번은 여러 신하들과 연회를 벌였다. 주흥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고조는 각각의 신하들에게 노래를 하거나 음악을 연주하게 했다. 무위대장군(武衛大將軍) 곡사풍락(斛斯豊樂)이 이렇게 노래했다.
“아침에도 술 마시고 취하고, 저녁에도 술 마시고 취하네. 날이면 날마다 술 마시고 취하니, 국가 대계(大計)는 의논할 차례가 오지 않네.”
그러자 고조가 말했다.
“곡사풍락은 아첨하지 않으니 그는 좋은 사람이다.”

이 고사는 신하가 연회 석상에서 노래를 통하여 군왕께 직간하자 군왕도 이를 탓하지 않고 그 간언을 칭찬한 것으로, 곡사풍락의 충정과 고조의 관대한 성품을 잘 묘사했으며 아울러 북제 조정의 건강한 정신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수(隋)나라 이부시랑(吏部侍郎) 설도형(薛道衡)이 한번은 종산(鐘山)의 개선사(開善寺)에 유람을 갔다가 동자승에게 물었다.
“금강역사(金剛力士)는 왜 눈을 부라리고 있고, 보살(菩薩)은 왜 부드러운 표정으로 눈썹을 낮게 드리우고 있습니까?
그러자 동자승이 대답했다.
“금강역사가 눈을 부라리고 있는 것은 사방의 귀신들을 굴복시키기 위함이고, 보살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눈썹을 낮게 드리우고 있는 것은 육도(六道)의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함이지요.”
설도형은 멍하니 넋을 잃고 대꾸하지 못했다.

이 고사는 설도형의 다소 무례한 질문에 어린 스님이 이치에 합당하면서도 절묘한 대답으로 응수한 것으로 두 사람의 우열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러한 내용과 묘사수법은 ≪세설신어≫ <언어> 편의 풍모와 흡사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자비심이 가득한 얼굴을 형용하는 ‘보살저미(菩薩低眉)’라는 성어가 바로 이 고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송[宋: 유송(劉宋)]나라의 장융(張融)이 한번은 휴가를 청하여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는데, 황제가 그에게 사는 곳을 묻자 그가 대답했다.
“신은 육지에서 살지만 집은 아니며 배에서 살지만 물은 아니옵니다.”
황제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장서(張緖)에게 물었더니, 장서가 말했다.
“장융은 동산(東山) 근처에 있지만 일정한 거처가 없으며, 임시로 작은 배를 강 언덕 위로 끌어다 놓고 그곳에서 살고 있사옵니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남제(南齊)] 태조[太祖: 고제(高帝) 소도성(蕭道成)]가 일찍이 면전에서 장융을 사도장사(司徒長史)에 임명하겠다고 해놓고는 끝내 임명 칙서를 내리지 않았다. 한번은 장융이 말라비틀어진 말 한 마리를 타고 있기에 태조가 물었다.
“경의 말은 어찌 그리 말랐소? 먹이를 얼마나 주는 게요?”
장융이 대답했다.
“하루에 한 섬을 주옵니다.”
태조가 물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이처럼 말랐소?”
장융이 대답했다.
“신은 말로만 주겠다고 하고 실제로는 주지 않았사옵니다.”
태조는 다음 날 즉시 장융을 사도장사에 제수했다.
장융이 동생 장보적(張寶積)과 함께 태조를 알현했는데, 장융이 어전(御前)에서 방귀를 뀌자 장보적이 일어나 사죄하며 말했다.
“신의 형이 감히 성전(聖殿)을 더럽혔나이다.”
태조는 웃으며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 잠시 후 식사가 나오자 장융은 장보적을 밀쳐내며 함께 식사하지 않았다. 태조가 물었다.
“어찌하여 동생과 함께 식사하지 않는 것이오?”
장융이 말했다.
“신은 방귀 뀐 것을 사죄하는 놈하고는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없사옵니다.”
태조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이 고사는 남제 태조의 신하인 장융의 기지와 해학이 넘치는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 특히 자신을 사도장사에 임명하기로 한 약속을 미루던 태조를 비쩍 마른 말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풍자한 수법은 지인소설의 해학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대로 ≪담수≫는 내용상 민간 전설이나 지괴적(志怪的)인 색채가 거의 들어 있지 않고 실제 문인 명사들의 일화를 중점적으로 수록하고 있으며, 다양한 묘사 수법을 구사하여 인물의 형상화에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고사가 전대의 전적에궼 채록한 것이 아니어서 그 창작 능력이 돋보이며, 특히 북조의 인물들에 관한 고사가 대량으로 실려 있어서 남조의 인물에 편중되어 있던 위진남북조 지인소설의 영역을 확대했다. ≪담수≫는 그 내용과 묘사 특성 등에서 ≪세설신어≫가 이룩한 지인소설 관념을 비교적 충실히 구현한 작품이라 하겠다. 이제까지 위진남북조 지인소설에서 ≪담수≫는 겨우 서명만 거론하는 정도였는데, 사실상 ≪담수≫는 심약(沈約)의 ≪속설(俗說)≫이나 은운(殷芸)의 ≪소설(小說)≫보다 지인소설적인 특성을 보다 잘 구비하고 있어서 그것들을 능가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왕소영(汪紹楹) 점교본(點校本) ≪태평광기(太平廣記)≫(北京: 中華書局, 1961)에 수록된 ≪담수(談藪)≫ 88조를 기본으로 하고, ≪감주집(紺珠集)≫(≪사고전서≫본)과 ≪유설(類說)≫(≪사고전서≫본)에 수록된 ≪담수≫ 3조를 합하여, 총 91조의 고사 전체를 우리말로 옮기고 간략한 주를 단 것이다. 전체 고사는 남조·북조·수나라·당나라 순으로 배열했으며, 고사의 제목은 대부분 ≪태평광기≫의 표제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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