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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1장 | 마흔의 문턱에서 버려야 할 것 하나, 섹스 아내가 왜 여자로 안 보이죠? 둘, 우월감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요 셋, 진실 아내와 말이 통하지 않아요 넷, 자기기만 희망이 보이지 않아요 다섯, 정직함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점점 어려워요 2장 | 나이가 들어 늘기 시작한 것 하나, 죽음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을까요? 둘, 음흉함 비밀이 하나둘 늘어가요 셋, 무관심 왜 꼰대라고 부를까요? 넷, 자책감 저, 우울증인가요? 다섯, 냉소 왜 점점 뻔뻔해져 갈까요? 3장 | 마흔이 되어 우리가 잃어버린 것 하나, 사랑 사랑이 왜 변하죠? 둘, 즐거움 왜 즐겁지가 않을까요? 셋, 나르시시즘 어린아이가 되고 싶어요 넷, 행복 성공했는데 왜 행복하지가 않죠? 다섯, 미각 입맛도 없고 사는 게 시원찮아요 4장 | 인생의 오후에 찾아야 할 것 하나, 무감각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둘, 균형감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가요 셋, 애증 울화통이 터져 미치겠어요 넷, 싸움 눈물이 많아져요 다섯, 몰락 미래가 너무 불안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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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중년이 섹스를 하기 전에 옷을 벗기를 허락하는 이유는 탄력 있는 몸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존재론적 살덩어리인 자신의 삶을 이해해달라는 요청이 아닐까? 이러이러한 삶을 살아왔던 것이 나야. 그다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지만 나를 이해해줘. 물론이야. 나도 마찬가지야. 상호 이해 속에서 존재론적 살덩어리들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 환상은 상호 교환되어 공유된 환상이기에 서로의 공감 속에서 작동한다. 존재론적 살맛을 느끼는 것이다. --- p.23
상처받지 않을 권리도 있지만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도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입은 상처는 치료해야 할 의무도 있다. 상처가 전혀 없는 평온의 진공 상태보다는 오히려 상처를 입고 견디는 혼돈스러운 무질서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열매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라면 상처는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었던 상처라면 견뎌야 할 책무도 있다. 상처를 입더라도 인생은 계속된다. 상처는 회피하거나 거부해야 할 것이 아니라 탱고의 실수처럼 인생의 한 부분으로 승화시켜야 할 흔적이다. --- p.128 많은 중년들이 자기 계발에 빠져 있다. 중년의 목표 상실이다. 자기 계발이란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 쓰고,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잠재력을 발전시켜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라는 것이다. 결국에는 강제된 모델을 따르는 행위다. 니체가 말하는 어린아이의 망각이란 사회에서 요구하는 자기 자신을 망각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니체가 말하는 어린아이의 자기 긍정이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기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것과 같다. --- p.184 누구나 행복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물음의 핵심은 행복을 얻기 위한 성공의 매뉴얼이 아니다. 무엇이 있어야 할까를 묻기보다는 무엇이 없어야 할까를 묻는다면 어떨까? 좀 다르지 않을까? 평범한 일상이 고된 연습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모든 사회적 영역에서 성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불행의 싹을 돌보는 친절한 자기 헌신이 필요하다. 그것조차도 연습이 필요하다. --- p.197~198 나이 들어 오래 살다보면 부당한 처사에 익숙해져서 무감각해진다. 부당한 처사로 인한 상처도 쉽게 잊으며 예사로운 일로 치부한다. 물론 마음은 편하겠지만 어찌 보면 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둔해진 만큼 세상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이 무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민한 감수성을 잃은 만큼 현실적인 편의를 취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서글픈 일이다. --- p.224 40세에 완전한 덕을 이룬다는 것도 어렵지만, 덕을 이룬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도 없을 뿐더러,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아름다운 일인 줄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기회주의적이고 타협적이고 비굴하며 줏대가 없는 태도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공자는 자공이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떠냐는 질문에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또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떠냐는 질문에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마을의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 p.251 미움받고 욕을 얻어먹을 수 있는 배짱을 가져라. 그것을 자신이 진실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을 이해하고 용서하지 못할 사람들은 없다. 그러니 담대하라. 이 담대함은 능동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라는 대담함이 아니다. 수동적으로 타자의 비난과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대범함이다. 자신의 생각이 가진 확신이 철저하게 무너질 수 있는 위험 속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단호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자신하는 결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담대하게 몰락하라. --- p.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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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자기계발이’ 아니라 ‘이해득실’을 따져라
몇 해 전부터 ‘마흔’을 키워드로 한 책들이 많이 출간됐다. 그 책들을 보면, 마흔에는 『논어』를 읽어야 하고, 이순신도 만나야 하며, 『손자병법』을 읽고, 또 역사도 알아야 하며, 심지어는 수학까지 다시 공부하라고 말한다. 대부분 마흔을 다룬 책들은 40이라는 나이를 흔들리는 존재, 외로운 존재, 불쌍한 나이로 묘사한다. 이 책도 ‘마흔’이라는 나이를 외롭고 처연한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하지만, 마흔이라고 해서 어떤 유혹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공자로부터 시작된 오랜 사회적 믿음에는 선을 긋는다. 공자는 40세를 불혹(不惑)이라 했다. 어떤 일에도 미혹되지 않고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도덕적인 인간이 되라는 말로 들린다. 이 말을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완전한 인격이 되라는 말로 이해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40세에 완전한 덕을 이룬다는 것도 어렵지만, 덕을 이룬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도 없을 뿐더러,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아름다운 일인 줄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어쩌면 기회주의적이고 타협적이고 비굴하며 줏대가 없는 태도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251쪽 중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강요하는 중년의 자기 계발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한다. 많은 중년들이 자기 계발에 빠져 있다. 중년의 목표 상실이다. 자기 계발이란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신경 쓰고,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잠재력을 발전시켜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라는 것이다. 결국에는 강제된 모델을 따르는 행위다. (-184쪽 중에서) 이 책은 대한민국 중년들이 목표를 상실을 하게 된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한 방법으로 삶의 이해득실을 따져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뭔가 새롭게 시작해야 마흔의 문턱에서, 이룰 목표나 지향할 인격보다는 이해득실을 먼저 따진다.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이며, 이로운 것은 무엇이고 해로운 것은 무엇일까?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또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해득실’은 보통 뭔가를 자꾸 따지고 확인한다는 의미에서 깐깐하고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오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이해득실은 일종의 ‘자기 점검’이다. 이 책은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나이인 40대가 되어서 한 번쯤은 인생의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자기 점검은 ‘철학’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쩌다 마흔이 된 사람들을 위한 철학 카운슬링 ‘제2의 사춘기’인 마흔 즈음, 몸과 마음은 10대 못지않게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이유 없이 공허하고, 감정이 절제되지 않아서 쉽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진다.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애정을 받고 싶고,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가는 것 같아 그 변화가 두렵기만 하다. ‘꼰대’, ‘개저씨’ 등으로 불리며 중년이 공공의 적으로 치부되는 것도 무섭고, 아내 혹은 남편이 내 곁에 가까이 오는 것을 꺼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마흔의 문턱에 이제 막 들어섰거나, 마흔을 지나 50대를 통과하고 있는 중년에게 공감을 얻을 만한 20개의 질문이 각 장에 걸쳐 담겨 있다. [아내가 왜 여자로 안 보이죠?]는 자기만의 환상에 빠진 중년의 섹스를 현대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을 통해 꼬집고, [아내와 말이 통하지 않아요]에서는 상대방에게 진실하지 않은 채 서로 고집만 부리는 행동을 주돈이의 『통서』를 통해 풍자한다. [왜 점점 뻔뻔해져 갈까요?]에서는 너무 뻔해진 세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사는 중년의 모습을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냉소적 이성 비판』으로 비추고, [왜 즐겁지가 않을까요?]라고 묻는 중년들에게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쾌락’의 개념을 들려준다. 또한 [성공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라는 물음에는 주희의 『근사록』을,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가요]라고 우울한 미소를 짓는 마흔에게 『주역』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개저씨? 아재? 뱃살이 늘어가는 중년들에게 철학을 권함 ‘아저씨’는 주로 중장년층이다. 직장에서는 부장급이고 가정에서는 10대 이상 아들딸이 있는 가장이다. 한편에서는 ‘개저씨’로 폄하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아재 개그’, ‘아재 파탈’ 등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이제 대중문화를 읽는 주요 코드가 됐다. 저자는 이런 아저씨라면, 피부의 주름과 뱃살을 걱정할 일이 아니라, 뱃살을 빼려고 하지 말고 넉살과 익살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축적된 뱃살 속에는 인격이 숨어있다고들 한다. 배짱과 교활함도 숨어 있다. 배짱 가득한 넉살과 교활한 익살은 철학적 능력의 핵심이다. 뱃살이 늘어나는 마흔은 철학적 토대를 갖추기 시작하는 나이다. 더불어 나이 들어서 생기는 주름이란 생기를 잃은 추한 굴곡이 아니라 우아함이 말없이 숨어 있는 은신처이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망각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삶의 의미들을 기억하고 있는 계곡이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의 흐름에 반항하며 시간의 무상함을 전언하려는 안간힘의 흔적이기도 하다. 주름은 자신의 철학이 남긴 역사적 증거다. 그러므로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는 가장 인간다운 훈장인 것이다. 주름을 없애려는 성형수술? 그것은 역사를 지우고 왜곡하며 승패를 조작하려는 가장 악랄하고 추잡한 사기술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래서 개저씨, 아재, 아저씨, 중년…으로 불리는 마흔은 주름이 아름다운 노년의 얼굴을 가져야 한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이 오죽한 세상, 더 이상 젊지 않아 서러운 당신께 이 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