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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나라’ 9
기다림과 영원 33 떠나다 61 사생활 89 사랑에 대해 쓴다, 여전히… 125 치과에서 보낸 반시간 137 미완성작 149 나에게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을까? 169 사랑받기 위해 193 옮긴이의 말 224 |
Roger Gren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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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우리가 실존에서 지우는 어떤 것이다. 한 동화가 놀라운 방식으로 보여주듯이,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속인다. 어린아이에게 마법의 실패를 준다. 자기 삶을 빨리 흐르게 하고 싶으면 아이는 실을 살짝 감기만 하면 된다.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지거나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알고 싶을 때 아이는 실을 감는다. 그러면 아이는 빨리 늙고, 곧 실이 다 풀려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날들을, 기다림의 시간을 중시하는 것을 거부할 때 우리에게 닥치는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 p.35
점점 길어지는 인간의 수명은 사랑의 수명보다 훨씬 길다. 우정의 수명, 문학·음악·예술에 대한 취향의 수명보다 길다. 나는 예전에 큰 열정을 느꼈던 작가들에 대해 지금은 전혀 관심이 없다. 내 관심사가 달라졌거나 아니면 그 작가들이 표현하는 관심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이미 그 작가들을 두루 섭렵했기 때문에 그들과 만나는 것이 더이상 즐겁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좋아하게 되어 내가 그 작가들과 맺고 있던 조금은 독점적인 우정(썩 좋은 감정은 아니다.)이 훼손된 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내 변덕이 그들의 작품을 다시 읽을 용기를 앗아가, 그냥 멀리서 그들을 존경할 뿐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숭배한 신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속 빈 우상들을 숭배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p.77 모순 끝에는 침묵의 유혹이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쓸까? 누구를 위해? 소통의 욕구를 느끼지 않고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소통은, 혹은 소통 거부는 개인에게 제기되는 가장 까다로운 문제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 p.82 침묵에는 그 어떤 말보다, 그 어떤 글보다 더 전복적인 힘이 있다. 마르셀 아를랑에게 “가장 보기 드문 대담함은 파괴가 아니라 거부다. 말하는 것보다 더 큰 폭력. 그렇다, 그건 침묵이다.”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침묵의 유혹을 받으면서도 글을 너무 많이 쓴 나는 파스칼 피아라는 인물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 젊은 시절 그는 시를 썼다. 《쐐기풀 꽃다발》. 이 시집이 갈리마르 출판사에 출간되기 직전에―1924년이었다―그는 책을 회수했다. 그는 문학 위에 침묵 외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았다. 그의 거부에는 반사회적 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게 뭐 있겠는가? --- p.83 문학 창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생각해보면, 과거와 현재의 현실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인물 혹은 하나의 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자문한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이 아닌지. 다시 말해 그것이 나의 감수성에, 삶을 이해하는 나의 방식에, 하나의 미학에, 거기서 발산되는 일정한 음악에 부합하는지 말이다. 기억은 명백히 그 선택에 순응한다. 어쩌면 기억 스스로 이미 그 선택을 한 건지도 모른다. --- p.107 1900년대에는 한 남자가 한 숙녀에게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전하고 싶을 때 《사랑의 우정》이라는 천진한 제목을 단 책을 선물했다. (…) 숙녀가 《사랑의 우정》이라는 미끼를 물면 그 소설은 둘 사이에 영원히 일종의 담보로, 비밀 부적으로 남을 것이다. 《몬느 대장》 역시 그런 역할을 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도 한 숙녀에게 관심을 가졌을 때 먼저 알베르 코엔의 《영주의 여자》를 선물했다. 그가 어느 책방에서 그걸 구했는지 모르겠다. 불멸을 약속받지 못할 바에야, 우리의 책들이 이렇게 암호가 되어 연인들의 기억 속에 소중한 성물처럼 남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 책들에서 최선으로 바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p.134 달리 말해 모든 인간은 자기의 고독 속에 갇혀 있다. 글 쓰는 것이 거기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다. 물론 혼자 있고 싶어서, 백지를 마주하고 자기 자신과의 시간을 향유하기 위해서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 우리가 글을 쓰는 건 지나치게 혼자여서다. --- p.201 문학과 종교의 관계는 확실하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서 창조를, 다시 말해 살아남는 방식을, 영원의 약속을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학에 생존의 희망을 두는 것은 종교에 의지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도박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마음과 기억 속에 남는 작가는 몇몇뿐인데 반해,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마치 한 줄의 글도 쓴 적이 없는 것처럼 사라지는가! 이것이 가장 개연성 있는 운명이다. 종이도 먼지로 돌아간다. 요즘엔 망각이 점점 더 빨리 찾아온다. 예전 사람들은 작가들이 죽고 나서 머무는 연옥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연옥은 일시적 망각을, 무관심을 의미했고, 또한 언젠가 어둠에서 빠져나갈 약속을 의미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경우는 참으로 드물다. --- p.208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스 황후는 울적한 기분으로 온 세상을 쏘다니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기 꿈에 다가서는 유일한 순간은 하이네를 모방한 시를 쓸 때였다. 형편없는 시였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시들 속에서 그녀는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었다. 휴식을 찾지 못하는 겁에 질린 갈매기 같은 모습이었다. --- p.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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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역사, 로제 그르니에가 펼쳐 보이는
문학의 세계, 책의 맛! 1919년생이니 올해 나이 아흔 일곱, 한 세기를 책과 더불어 살아온 로제 그르니에를 어떻게 소개할까…. 장 폴 사르트르·알베르 카뮈·로맹 가리 등과 동시대에 프랑스 지성계를 이끌었던,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역사, 지금도 여전히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며, 2013년에는 카뮈 탄생 백 주년을, 2014년에는 로맹 가리 탄생 백 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그들의 작품세계를 얘기하고, 그들과 함께한 추억을 증언했던, 프랑스인들이 ‘므슈 문학’이라 부르는 사람. 이 책은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편집자 겸 작가로 활동하며 프랑스 문학의 면모를 일궈낸 로제 그르니에가 그만의 비평방법으로 문학을, 작가들을 보면서 삶의 의미들을 밝혀낸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Le palais des livres』이다. 프랑스어 ‘palais’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궁전’이라는 뜻과 ‘미각’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아마도 ‘궁전’이라는 뜻으로 그 단어를 제목에 썼을 것이다. 그 의미에 맞추자면, 여기 책들의 궁전이 있다. 프루스트·플로베르·나보코프·플래너리 오코너·체호프·보들레르·카프카가 저자의 친구 및 동료 들인 로맹 가리·장 폴 사르트르·클로드 루아 그리고 멘토인 알베르 카뮈와 함께 행복하게 거니는 곳이다. 그러나 ‘미각’의 의미로 보자면, 저자 그르니에가 차려낸 성찬의 ‘맛’ 또한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맛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책의 맛’으로 정했다. 2011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그르니에는 아홉 개의 주제, 아홉 가지 각도로 글쓰기와 책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디어를 점령한 사회 뉴스와 문학의 관계를 짚어보고, 여러 문학작품이 그리는 기다림에 주목하며 글쓰기가 시간과 맺는 관계도 살핀다. 그리고 자기모순에 빠질 권리와 떠날(죽을) 권리에 대해, 작가의 사생활에 대해 성찰하고, 기억과 소설의 관계에도 주목한다. 문학의 해묵은 주제인 사랑도 빠뜨리지 않고, 작가들에게 미완성작품과 마지막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피고, 글을 쓰는 이유와 글을 쓰려는 욕구에 대해서도 성찰한다. 그의 펜 아래 어마어마한 작가들이 줄지어 불려 나온다. 스탕달·플로베르·카뮈·도스토옙스키·프루스트·체호프·베케트·멜빌·피츠제럴드·버지니아 울프·헨리 제임스·카프카·보들레르·포크너·발레리·헤밍웨이·사르트르·파묵·페나크·무질….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등장하는 저자와 작품의 무게만으로 이 책은 상당히 묵직하다. 그러나 이 노작가의 해박함은 위압적이지 않다. 그의 문체는 과시적이지 않고 소박하며 섬세하고 깊이가 있다. 로제 그르니에는 프랑스의 현대작가로서는 특이하게도 단편소설에 치중한 작가이다. 그는 작가이기에 앞서 기자이기도 했다. 알베르 카뮈의 추천으로 [콩바] 지에서 데뷔해 20년 넘게 기자로 활동했다. 카뮈가 편집장을 맡았던 [콩바]는 그가 “모든 것을 배운 세계”였다. 그곳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서른 살에 『피고의 역할』을 출간하면서 그는 작가가 되었고, 70년 가까이 왕성한 필력을 유지하며 사십여 편의 작품을 펴냈다. 참으로 놀라운 인생, 놀라운 창작력이다. 그르니에는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에세이·평론·영화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온 만큼 수상경력도 다채롭다. 1971년에는 작품 전체에 대해 ‘문인협회 문학대상’을 받았고, 1972년에는 페미나 상을, 1975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단편소설 대상을 수상했으며, 1985년에는 전 작품에 대해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을, 1987년에는 알베르 카뮈 상을 받았다. 장편소설로도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지만, 그는 ‘프랑스의 체호프’라고 불릴 만큼 특히 단편소설 분야에서 대가로 손꼽힌다. 또한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로제 그르니에는 작가들의 초상을 대단히 섬세하게 그려내는 평론가로도 인정받는다. 아홉 편의 에세이를 수록하고 있는 이 책은 기본적으로 문학 비평집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에세이들은 모두 하나의 문제 또는 테마로 시작되어 문학적인 자유연상을 가장한 일종의 논쟁 형태로 탐험된다. 그르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소설과 에세이들로부터 지혜와 유머를 끌어낸다. 한 예로 사랑에 관해 쓴 글에서 체호프는 여자가 없는 이야기는 증기가 안 나오는 증기기관 같다고 염려했음을, 알렉상드르 뒤마와 그의 공저자들이 연애 이야기 하나 없이 『삼총사』 속편의 제40장까지 왔음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음을, 카뮈의 『페스트』 는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현대소설인데 그 이유는 『페스트』 의 주제는 이별이고, 그 이별이란 카뮈가 전쟁의 특징 가운데 하나를 우의적인 방식으로 그린 것임을, 그르니에는 우리에게 상기시켜준다. 또한, ‘기다림’ 같은 하나의 모티브가 다양한 시대·국적의 작가들에게서 어떤 식으로 펼쳐지는지를 볼 수 있어 문학 비평의 기준에서 매우 다양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리고 독립된 아홉 편의 에세이가 내용적으로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어느 곳을 펼치더라도 보물 창고 같은 저자의 ‘문학 비평’의 세계를 바로 느낄 수 있는 책이다. 1963년부터 지금까지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편집위원으로 일하며 세기의 숱한 지성들과 교류해온 편집자이기도 하니, 그가 모르는 작가가 없고, 읽지 않은 책이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르니에는 아흔두 살에 이 책을 출간했으니, 한평생 책을 읽어온 작가의 방대한 독서 이력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그의 전기나 다름없다. 평생 읽은 책에서 밑줄 그은 문장들을 불러 내오고, 어떤 주제에 대해 세기의 작가들이 한 말들을 찾아내고, 그렇게 훌륭한 재료들로 그만의 맛을 만들어 낸 로제 그르니에의 독서 성찬. 그가 결코 교훈적이거나 현학적이지 않게 우리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책의 ‘맛’을 즐기라고 권한다. 덕택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백세 작가가 이끄는 대로 풍성하고 깊이 있는 독서를 하게 될 뿐 아니라 그의 삶까지도 읽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작가처럼 책읽기”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수준 높은 ‘책의 맛’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